169화 밀려오는 재앙을 막는 법(1)
고(故) 임계현 회장의 묘소가 있는 경상남도 의령. 이곳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쯤 내달리면 나오는 곳이 있다.
바다낚시의 성지이자, 해물 좋아하는 아저씨들이 눈이 뒤집힌다는 그곳. 통영.
“뭔 또 통영입니까? 일은 언제 하시게요? 뒤처리할 것들 쌓여 있다고 실무진에서 비명을 지르던데.”
임재호 부회장과의 담판을 마무리 짓고 서울로 올라가려던 중, 갑자기 자동차 방향을 틀던 김원철 아저씨.
어쩐지, 휴가 간 전용 운전기사를 대신해 자기가 운전대를 잡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보나 마나 트렁크에는 낚시용품이 가득 차 있겠지.
“흐흐흐… 아랫동네까지 내려왔는데 이렇게 콧구멍에 바닷바람 한번 싹 불어 넣어줘야 좀 리프레시도 되는 법이여.”
언뜻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또 그럴듯한 회유와 설득.
자기만의 창의적인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김원철 아저씨는 아예 바다 사나이의 감성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낚시는 민물낚시랑 또 다르다니까? 좀 더 뭐랄까… 사나이의 가슴을 마구잡이로 요동치게 한다고 해야 하나.”
“괜히 배 타고 멀리 나가다 욕보지 마시고, 갯바위 낚시나 하고 다찌집이나 들렀다 가는 걸로 하죠.”
“에잉, 아쉬워라. 아, 그리고 아까 말했던 뒤처리할 것들. 그거 얼추 마무리 다 끝났다니까.”
끼익, 언제 도착한 것인지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남해 풍경.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따위야 간지럽다는 양, 김원철 아저씨는 낚시 가방을 등에 메고는 내게 보고 아닌 보고를 이어나갔다.
“읏차, 박철수 씨, 그 양반은 탄약그룹 북미 본부에서 품기로 했고.”
“그리고요?”
“J-Coco 특허 중 필요한 부분은 금액에 맞게 지분 인수 계약 완료. 상무부 허가야 딱 봐도 프리패스지. 우리 회장님 덕분에.”
말 하나는 청산유수인 이 양반. 어느새 간이 의자에 앉아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나. 별수 없다. 사실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온 것도 있고, 조금은 시간표에 쉼표를 찍는 날이 있어도 괜찮겠지.
이쪽 동네 다찌집에서 나오는 소주 안주도 상당히 괜찮기도 하고.
그렇게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나는 옆자리에 앉아 김원철 아저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하이 캐피탈> 쪽도 의외의 타격을 입었다지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게.”
“그르게 말이여. 중앙 정계에서 빠따 큰 거 하나 든 모양이야. 엉덩이에 불나도록 두들겨 팼겠지. 죽지는 않아도.”
SA그룹의 뒷배 노릇을 하며 자본 투자를 강행했던 <상하이 캐피탈>.
이번에는 그들과 직접적인 적대도 없었고, 애초에 그들을 끌어들인 것이 의도한 바였긴 했지만… 이 정도의 성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베이징 중앙정부의 신임을 모두 잃고 반쯤은 해산 상태라는 <상하이 캐피탈>. 뉴욕 본부에서 보았던 제임스 왕 이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또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뭐, 그래도 꾸역꾸역 잘 살아남는 치들이니 혹시 모르지. 나중에 까꿍! 하고서 또 나타날지도?”
“까꿍이고 뭐고, 별로 만나고 싶은 얼굴들은 아니네요. 뭐, 일단 다 잘 풀리고 있으니 좋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아, SA 정밀기기?”
이래저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양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김원철 아저씨.
무언가 말을 삼키려다가 만 듯한 표정으로, 아저씨는 속마음을 바깥으로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난, 참… 뭐랄까. 아직까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해야 하나. 물론 우리 회장님이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괜찮으니 편하게 말하셔도 됩니다.”
“쩝, 그럼 또 말 안 할 수가 없지. 그 로봇 팔 만드는 회사. 암만 봐도 아직은 응용하기에 영 시기상조여. 군용으로나 민수용으로나, 둘 다.”
예상했던 대로 현실적인 반응을 내비치는 김원철 아저씨.
사실… 아저씨의 이런 반응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그 어떤 탄약그룹의 임직원들에게 물어본들, SA그룹의 계열사 중에서 가져올 만한 것으로 다른 게 많지 않냐는 것이 중론이었으니까.
그러나.
“상용화 레벨은 아직 멀었죠. 시제품이라도 있으면 됩니다, 일단은.”
“그러니까 그게 궁금하다는 거지.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갑자기 대뜸 로봇 팔 시제품이 필요하다는 건지….”
지금 상황에서는 말할 수 없는, 앞으로 밀려올 거대한 재앙.
2011년 3월. 지금으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날… 전 지구적 대참사가 일어날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지금 내가 경고한다 하더라도 그쪽 사람들이 귀담아듣지는 않을 터. 그렇기에 필요한, 사후 피해를 최소화할 특수장비.
“뒤늦게 온 땡깡 비슷한 거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보면 로봇 같은 거 좋아하는 유치원생들 있지 않습니까, 특히 남자애들.”
“흐음, 이거 영 수상한디. 우리 회장님, 일이랑 운동 말고는 따로 취미도 없는 걸로 아는데, 갑자기 로봇팔이라. 어어…?”
내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던 탄약그룹 중진 임원의 모습은 갑자기 흔들리는 낚싯대에 사라져 없어졌다.
기네스북에 등재할 대어라도 잡을 것처럼 마구 호들갑을 떠는 김원철 아저씨.
“온다, 온다! 큰 거 온다!”
“뭘 큰 게 옵니까. 그냥 낚싯바늘에 폐그물 걸린 건데.”
“에잉, 좋다 말았네. 이래서 배 타고 나가야 하는 건데….”
참… 어찌 보면 순박한 양반이다. 이런 때에 보이는 모습만 봐서는.
어느덧 빠져나가는 바닷물. 아무래도 썰물 시간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울상을 한 이 대머리 아저씨의 양쪽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걸었다.
“김도 샜는데 이쯤에서 그냥 다찌집이나 가시죠. 빨리빨리 마시고 빨리빨리 올라갑시다. 아무래도.”
딸깍, 미리 숙취 해소 음료수 캔을 따 목에 털어 넣는 나.
눈부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얼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회상하듯 입을 열었다.
“대통령하고 조만간 한 번 더 볼일도 있을 것도 같고요.”
“아아, 저번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처럼? 그 일본 특사단 동행 건?”
“뭐, 그런 셈이지요. 일단 보니까 그때 대통령도.”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 하나를 띄워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원철 아저씨.
피식, 새어 나온 웃음을 뒤로하고, 나는 낚시 가방을 짊어진 채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날,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꽤나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을 했으니까요. 지금 우리 비서실장님이 그러는 것처럼.”
* * * *
시곗바늘을 조금 앞으로 되돌려, 나는 눈 내리는 청와대 상춘재 앞마당에서 대통령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분명 나이가 환갑 언저리인 이 양반은 정말이지 어지간히 체력이 좋았던 것 같았다. 그 추운 날에도 빠른 걸음으로 눈길을 헤치고 걸어갈 정도였으니.
“본래 능력만 있는 자는 운까지 따르는 자를 이길 수 없는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한 회장은 참 운도 좋구먼.”
고(故) 임계현 회장의 작고와 이번 미국에서의 일 때문에 입지가 초라해진 SA그룹. 거기에 유언장의 내용에 따라 첨단 기술 부문과 전통적인 백색가전 부문을 맞교환까지 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IT 산업 선두 기업 선정은 탄약그룹의 몫으로 돌아갔고.
‘약속대로 집중적인 정부 지원이 이루어질 걸세. 뭐, 이런 상황이면 사실 탄약그룹에 이 나라가 목을 매게 생겼지만 말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요. 당치도 않습니다.’
항상 말에 뼈를 담는 대통령.
지나치게 커질 탄약그룹을 경계하겠다는 뉘앙스가 팍팍 담긴 그 말에, 나는 최대한 뱀의 혓바닥을 흉내 내어 듣기 좋은 말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저 너구리 같은 양반하고 척 지는 건 사양이니까.
‘고(故) 임계현 회장께서 늘 말씀하시던 사업보국(事業保國)의 이념. 저 또한 그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화가 통해서 좋군. 확실히 한 회장이 눈치도 빠르고 센스도 있어. 그… 임재호 부회장 그 친구는 좀 답답하더구먼.’
내 대답이 퍽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곧바로 시작된 임재호 부회장과의 비교.
‘식견도 좀 짧고 결단력도 부족하고.’
‘임 부회장님도 좀 더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성숙해지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이젠 온전히 그룹의 오너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내 임기 안에는 글렀다고 보네. 아버지 되는 양반의 절반도 못 따라가니, 당최 영 못 미더워서 말이지. 뭐, 그나저나.’
정원 끄트머리에 뿌리박은 큰 소나무를 반환점으로 삼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추는 대통령.
철갑 같은 소나무 허리에 손바닥을 댄 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떠보듯 말을 내뱉었다.
‘이번 일본 특사단. 거기에 굳이 동행하겠다고?’
‘가서 꼭 좀 할 일이 있을 성싶어서 말입니다.’
‘뭐 좋은 자리라고 거길 가려고 하나? 어차피 반쯤은 독도 건으로 기 싸움이나 하러 가는 사절이라, 경협 이슈 꺼내기도 어려울 텐데.’
이맘때쯤부터 한창 불타오르기 시작한 독도 분쟁.
사실 양쪽 모두 알고는 있었다. 누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고 누구의 영토인지.
다만, 이웃 나라와 싸우는 것만큼 지지율 올리기에 좋은 것이 좀처럼 없을 뿐.
‘단순히 경제 협력 문제로 가려는 건 아닙니다. 좀 더 복잡한 부분이 나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복잡한 부분? 어느 쪽에서 말인가?’
‘굳이 말씀드리자면 에너지 쪽, 특히 원자력 발전소 쪽이 될 것 같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뜬 대통령.
무슨 일일까…? 이 사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설마 뭐라도 아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내 귀에 들려온 것은, 제 주인만큼이나 흥분에 찬 골든레트리버, 복실이의 숨소리였다.
-헥! 헥헥!
또 내 바지에 침을 적시는 복실이. 그리고 그 개에 그 주인답게, 대통령은 갑자기 내 양어깨를 붙잡고 기쁜 표정으로 흔들어 젖히기 시작했다.
‘한 회장! 자네 설마 일본에 원전 기술을 수출할 생각인가?’
‘네? 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 뭐라 해야 하지? 약간 좀 다른 상황이….’
‘믿고 있었네! 역시 한 회장은 내 지지율… 아니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인재 중의 인재라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는 대통령.
마치 카지노 슬롯머신 화면에서 숫자 777만이 보이는 것처럼, 그의 두 눈에는 앞으로 올라갈 지지율만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대통령님, 그게 아니라….’
‘가야지, 우리 한 회장이 가서 꼭 성과를 내오리라 믿겠네. 박 실장! 한 회장에게 주게 외교부에 관용 여권 하나 파 놓으라고 하게나!’
일단… 착각하게 내버려 두자.
대통령이 바라는 원전 기술 수출이야 어차피 생각도 안 했으니까 패스.
하지만, 아마도… 저 양반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지지율은 오르지 않을까 싶다.
탄약그룹이, 그러니까 한국 재벌 그룹의 수장이 후쿠시마 사태라는 거대한 재앙을 해결할 테니까.
‘주일대사한테도 연락하게! 여기 한 회장이 하겠다는 일에 괜히 야지 놓지 말고 알아서들 협력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