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70화 (170/300)

170화 밀려오는 재앙을 막는 법(2)

SA 정밀기기의 탄약그룹 편입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서울 본사에서 따로 떨어진, 충남 쪽에 있었기에 소속감조차 약했던 기업. 오히려 일부 직원들은 연봉이 좀 더 높은 탄약그룹의 편입을 반길 정도이기까지 한 상황.

그러나 역으로, SA 정밀기기를 인수해야 하는 탄약그룹의 고위 임원들은 꾀나 골머리를 썩이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회장의 그림자 분신이나 다름없는, 김원철 비서실장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고.

“왐뫄, 깜짝이야! 히야… 무슨 연구실이 완전 공사판이여.”

구(舊) SA 정밀기기. 아니, 이제는 탄약 정밀기기로 이름이 변경 중인 이곳.

공장 한쪽에 마련된 연구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케이블 선 사이에는 자동차 사이즈만 한 이상한 무언가가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초췌한 몰골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제품 제작에 매진 중인 연구원들까지.

김원철 비서실장은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옆에 선 미셸 탄약전자 사장에게 물음을 던졌다.

“사람 잡겄네, 사람 잡겄어. 미셸 사장님아. 이 양반들 며칠째 퇴근도 못 했죠?”

“회장님 특명 떨어진 판국에 퇴근이 어디 있습니까, 그나마 특별근무 수당 세게 나온다 하니 다들 힘들어도 그냥 하는 거죠.”

“확실히 일정이 무지막지하게 빠듯한 것이 평소 우리 회장님 스타일은 아닌데….”

조금 우려되는 모습으로 시찰을 이어나가는 김원철 비서실장.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강타하는 연구실을 찬찬히 걸으며, 그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회장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자, 이제 저는 갑니다. 김 비서실장님도 가시면 되고요.’

‘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똑같은 곳 가는 줄 알겠네. 누구는 일본 가는디 누구는 지방 공장 가는 거잖어.’

선글라스를 낀 채, 새로 받은 관용 여권을 흔들며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어린 회장.

일본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는 무언가를 가만히 생각하더니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같은 겁니다. 조금만 길게 보면.’

‘그건 또 무슨 난해하고 철학적인 소리여.’

‘뭐,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잘 좀 부탁합니다. 이게 무리한 일정이라는 것 저도 알고 있긴 하지만, 꼭 정해진 일정에 맞게 진행해 주세요. 꼭이요.’

평소 모습과는 달리, 누가 봐도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며 신신당부까지 하던 회장. 분명… 무언가 자신이 말하기 힘든 어떤 것이 있었음이 확실했다.

그 묘한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김원철 비서실장. 그는 평소처럼 뒤통수를 긁으며 맡은 일을 충직하게 진행해 나갔다.

“쩝, 에라 모르겄다. 일단 시키는 대로는 하는 게 맞긴 한데, 가만있자… 이건 또 뭐여?”

조금 더 중심을 향해 가까이 가자, 곧바로 그의 눈에 들어온 시제품.

겉으로 드러난 엔진과 앞코가 삐쭉 나온 특유의 모양새. 적어도 외형만큼은 탄약그룹이 생산하는 익숙한 군용 장갑차였다. 뭔가… 겉에 두르고 있는 외장이 심하게 두껍고 이상했지만.

“이게… 원래대로라면 크기가 이렇게까지는 크지 않을 텐데. 안 그래요, 성 사장님?”

“그렇죠. 겉에 강철 장갑은 다 떼고 그 무게만큼 납을 둘렀습니다. 방사능 차폐 기능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하시더군요.”

김원철 자신과 함께 이곳까지 붙들려 내려온 성원식 탄약 인프라 사장.

이 정도 떡장갑이면 어지간한 방사성 물질이 뿜어져 나온들, 기계 조작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으리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뭐여, 무슨 일본하고 핵전쟁이라도 하려고 그러시나? 그 전에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는디. 이거 일방적으로 뚜드려맞게 생겼어.”

“저… 핵무기는 일본에도 없습니다만….”

소심한 뒷말을 들릴 듯 말 듯 덧붙인 성원식 사장.

그는 겸연쩍은 헛기침을 내뱉고는 일본과의 전쟁을 주창하던 호전광 대머리에게 조심스레 귓속말을 건넸다.

“크흠, 혹시 김 비서실장님도 모르십니까? 회장님께서 왜 갑자기 이런 지시를 하셨는지.”

“몰러유. 진짜 몰러. 평소 같으면 말 안 해도 대충 눈치로 때려 맞추는디, 이번 결정은… 진짜 하나도 모르겄어. 아무튼.”

자기도 같은 이유로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는 김원철 비서실장.

퉁, 퉁. 그는 로봇 팔이 달린 장갑차 시제품 앞으로 다가가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기고는 입을 열었다.

“괴물이긴 하네요. 생긴 것으로 보나, 떡대로 보나. 무슨 로봇 만화에 나오는 그런 거 같네.”

“일주일 내로는 시제품 생산이 끝날 겁니다. 테스트 끝나자마자 바로 일본에 항공으로 선적하라고 하셨으니, 대충 도착하면.”

손가락으로 이런저런 일정을 고려하며 계산을 마친 성원식 사장.

곧이어 그는 날짜 하나를 말했다. 실제 역사에서 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로.

“3월 11일. 늦어도 12일 오전에는 도착하겠네요.”

* * * *

“한 회장님은 일본이 처음이시라꼬예? 히야… 이거, 지가 이번에 진짜 풀코스로 모셔야겠네예.”

“풀코스…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

특사단 단장으로 임명된 부산대 김 교수는 일부러 자리를 내 옆으로 해서 앉은 모양이었다.

탄약그룹 쪽에 연줄을 만들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대통령과 묘하게 가까운 관계라 생각했던 걸까?

딱 봐도 교수 관상의 그는 강연이라도 나선 것인지 시종일관 입을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풀코스가 부산만 있는 게 아이고! 저랑 딱 다니시믄 일본도 풀코스다 아입니꺼?”

“아, 예….”

“마, 회장님 돈코츠 라멘 무봤심니꺼? 참말로 기가 맥힌다 아입니꺼. 가가 야키소바도 함 드셔 보이소.”

돈코츠 라멘과 야키소바.

뭔가… 돼지국밥과 밀면을 권유받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양측 음식 성격도 어찌 보면 비슷하기도 하고.

계속 떠들고 있는 사람 민망하게 단답으로 대답하기도 뭣하다. 나는 그런 김 교수에게 그의 전공과 관련된 이번 특사단 방문의 목적을 물었다.

“그…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만, 독도 영유권 관련해서 항의 방문차 가시는 것 아닙니까? 왠지 걱정이 좀 덜해 보이셔서요.”

“아아, 독도 때문에? 그기 다 쑈 아입니꺼, 쑈! 흐흐흐.”

“쑈요?”

대통령과 고향 친구라는 김 교수.

기내식으로 나온 땅콩을 맥주와 함께 먹으며, 그는 소탈한 웃음과 함께 외교가의 뒷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점마들 저거, 인자 지지율도 낮아가 내각 불신임으로 집권당 정부가 터지게 생겼다 아잉교.”

“아아. 일종의 뭐랄까, 외부의 적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겁니까?”

“정답입니더. 거, 우리 대통령 금마가 가끔 다른 나라에 막 질러대는 거랑 비슷하다 보시믄 됩니더.”

근래 들어 악화된 한일관계가 아예 파탄 직전인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쇼에 불과하다니. 어찌 보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다.

이번에 후쿠시마 대지진 때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는 것을 막으려면, 그리고 그 공으로 일본 원전 시장에 발을 뻗으려면 중간에 장애물이 없는 편이 낫다.

냉랭한 분위기라면, 행여나 도쿄전력 같은 원전 쪽 인사들과 접선조차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비행기 의자에 몸을 깊게 묻으며 대답했다.

“흠, 처음엔 분위기가 좀 민감한 듯 보여서 말입니다. 어쨌든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잘 풀리겠네요.”

“하이고, 걱정 마이소. 윗대가리들은 다 뒷사정 알고 있심더. 알고 그라는 거니까, 회장님은 적당히 사진 찍고 고마 경제 쪽 일 보시믄 됩니더. 허허허.”

호언장담하며 가슴팍을 팡팡 치는 김 교수.

연이어 볼록 솟은 아랫배를 가볍게 두들기던 그는, 일이 다 잘 풀리거든 하루 이틀 식도락이나 즐겨보자며 흥에 겨운 모습이었다.

그래, 그랬었다.

도착하자마자 열린 첫 회담에서… 일본 외무성 고위 관료의 폭탄선언을 듣기 전까지는.

“아국은 다케시마를 둘러싼 한국의 억지 주장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이에 귀국 주일대사를 추방할 것을 정식으로 공표하는 바입니다.”

“뭐, 뭐라꼬예…? 지금 추, 추, 추방이라 했십니꺼?”

하아, 시작부터 난리다.

김 교수, 이 양반. 그렇게 잘 풀릴 거라 호언장담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숫제 어리바리한 이등병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무슨 개떡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 * * *

“차렷! 열중쉬어!”

일본, 도쿄전력 동북 지방 본부.

각 잡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의 모습. 간만에 도쿄에서 본사 사장이 온다는 말에, 그들은 하던 일도 멈추고 의전에 최대한의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봐, 와타나베. 여기 근무자 전원 모인 거 맞지?”

“네… 뭐, 필수 운영 요원 빼고는 다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영 마뜩잖은, 후쿠시마 발전소의 관리자 와타나베 스고이.

원자력에 평생을 투신한 그는, 이런 사내 정치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늘 골머리를 썩이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차는 본사 선배 임원.

“쯧쯧쯧, 하여간 이러니까 촌구석에 유배나 당하지.”

“저는 이 생활도 나름 만족합니다만….”

“에헤이, 이 사람. 그러지 말고 이따가 사장님 오시면 눈도장도 좀 찍고 그래 봐. 큰애 곧 고등학교 갈 텐데, 계속 이런 깡촌에서 키울 거냐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와타나베 스고이. 어차피 공부와 담쌓은 큰애이기에 별로 문제 될 부분도 아니었다.

그가 진짜 본사로 가기 싫은 이유는 바로… 지금 중앙 현관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배불뚝이 사장 때문이었으니까.

“으헉! 벌써 사장님 오셨다. 긴장, 다들 긴장하고, 연습했던 대로. 하나, 둘 셋!”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사 선배 임원의 지시에 맞게 합창하듯 울려 퍼지는 목소리.

줄지어 선 직원들의 직각 인사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손목시계 줄을 덜그럭거리며 헛기침을 하는 본사 사장, 나까무라 기모찌.

“기본은 됐구먼. 정신교육도 잘 된 듯하고.”

“아이고, 사장님. 제가 미리 와서 확인 다 했습니다요. 여기 와타나베 이 친구가 참으로 관리를 잘해서….”

“스톱.”

인간 비데를 자처하는 본사 선배 임원.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허리를 자른 사장은 와타나베를 보며 말을 걸었다.

“와타나베, 네가 여기 소장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사장님.”

“하여간 이놈의 연공서열제… 이런 비리비리한 놈도 소장씩이나 달고 말이야. 잘해, 위에서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원리원칙주의자인 데다가 사내 정치에 어두운 와타나베 소장.

정반대 나까무라 사장은 그런 그가 예전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덧붙인 한마디.

“원자력 발전소 관리나 잘해. 괜히 사고 난 거 위로 보내지 말고 알아서들 묻고.”

“사장님, 안전 규정상 아무리 작은 오류라도 무조건 원자력 위원회에 보고를….”

“하, 이 새끼 이거… 와타나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섞어 역정을 내는 나까무라 사장.

답답함에 가슴팍을 쳐대며, 그는 와타나베 소장에게 손가락질과 함께 뒷말을 덧붙였다.

자기 딴에는 나름 인생의 나침반이라 여기는, 특유의 보신주의 철학을 곁들이며.

“보신(保身)하라고, 보신! 절대 잡음 안 터져 나오게 무조건 파묻어! 괜히 위에서 말 나와서 조직이 유탄 맞지 않게끔 말이다!”

그리고, 나까무라 사장의 그런 인생철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다가올… 거대한 재앙의 쓰나미 앞에서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 명약관화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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