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밀려오는 재앙을 막는 법(3)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노크 소리와 함께 방 안을 향해 고개를 삐쭉 들이민 박동희 정책실장의 모습.
“각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아, 박 실장. 그래, 무슨 일인가?”
“조금… 판단을 함에 앞서 먼저 속에 담으신 뜻을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평소 대통령의 심복을 자처하던 박동희 정책실장. 인간 비데로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는 도가 텄건만, 영 외교적 이슈에는 판단이 느린 그였다.
이번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더군다나 특명전권대사로 임명한 김 교수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던 인사였으니.
“김 교수 말이로군. 왜 특사단에 그 친구를 넣었느냐고?”
척하면 척인 모양이었다.
숫제 손바닥 위에 박동희 정책실장을 올려 두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대통령.
자신이 부처님에게 관찰당하는 손오공이 된 줄도 모르는 박동희 실장. 그는 제 나름대로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최대한 유능한 측근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마음을 가득 부여잡고서.
“크흠, 한일관계의 변곡점을 짚어낼 만한 인물은 아니라 판단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심히 중차대한 문제이니 말입니다.”
김 교수.
대통령의 고향 친구이자 영 시원찮은 정치외교학자.
확실히 박동희 정책실장의 말은 타당했다. 깜냥이 안 되는 이를 특사단장에 올렸기에, 그 결과는 영 시원찮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러나, 뒤이은 대통령의 심드렁한 말 한마디.
“중요치 않은 문제이니 김 교수 그 친구를 보낸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해 보았나?”
“각하…?”
“박 실장. 이 친구, 참. 정치 물을 그렇게 마셔도 아직도 셈이 흐리구먼.”
피식, 비웃음 반 가소로움 반씩이 섞인 웃음을 내보이는 대통령.
‘이 너구리 같은 인간아. 댁만큼 복잡스럽게 셈하는 작자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보라 해라.’
비록 속마음은 불경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박동희 정책실장은 열심히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을 비비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저 같은 놈이 어찌 감히 대통령 각하의 깊은 뜻을 헤아리겠습니까.”
“이거야 원. 자네란 사람은 참… 잘 듣게.”
자리에서 일어난 대통령.
천천히 기지개를 켠 그는 동쪽으로 난 창을 향해 몸을 틀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일본 놈들이 어찌 나온들, 결국에는 다 내 이득인 것이야. 저쪽이 만약 독도 문제에 유화적인 제스쳐를 보낸다면.”
창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줄기.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기까지 한 햇빛은 유리창을 넘어 수백 년 전쯤 제작된 듯한 갑옷에 닿았다.
아마 임진왜란 즈음 쓰였을 법한, 중세 시대 일본 사무라이의 갑옷에.
“나는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풂과 동시에, 독도를 지킨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만약 그 반대라면.”
한 발짝, 한 발짝. 옻 기름을 먹여 흑색으로 빛나는 가죽 갑옷 앞에 선 대통령.
까끌까끌한 손바닥으로 가죽 겉면을 매만지며, 그는 늘 그러하듯 싱긋 웃음을 지었다.
“총성도 선전포고도 없는, 이 가짜 한일전쟁의 총사령관 놀음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말이야.”
“크흐… 역시 각하이십니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판단하시는 그 모습에, 정말이지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요.”
“허허. 이 사람, 아부도 참.”
언제나 그러하듯, 이번에도 정치 요괴 대통령다운 발상.
‘하여간 통밥 굴리는 솜씨 하나는… 저놈의 잔머리는 누굴 닮은 건지.’
속으로만 삼킬 법한 말을 간신히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꾹꾹 눌러 담은 박동희 정책실장.
비록 대통령의 영악스러움에 학을 떼고 있었으나, 이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갑작스럽게 비서관 하나가 노크도 없이 집무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각하, 외교부에서 긴급 보고입니다!”
“허허, 무슨 일이기에 이리 급히 들어와?”
하얗게 사색이 된 얼굴의 비서관.
말을 더듬는 그의 모습이 퍽 답답했던 모양이다. 손에 든 결재판을 빼앗아 가듯 가져간 대통령.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하! 일본 자민당 놈들이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로구먼. 이런 귀여운 짓도 다 하고 말일세.”
일본 내각의 한국 주일대사 추방 통보.
결례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외교적 관습과는 동떨어진 그 행태에 박동희 정책실장은 새어 나오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옘병. 대사 추방이 귀엽긴 개뿔이….”
“음? 방금 자네 무어라 말했던 것 같은데?”
“아, 아, 아닙니다요. 대통령 각하. 그나저나, 이거 재계 쪽에서는 타격이 있을 거라 말이 나오지 싶습니다만.”
급히 말을 돌린 것이었지만, 그 효과는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경을 칠 법한 불경스러운 발언 따위 잊어버린 채, 고민하기 시작한 대통령.
“흐음, 재계라. 그래, 그렇겠지. 좀 힘들기야 하겠구먼.”
그리고, 막 떠오른 누군가의 얼굴. 대통령 자신이 일본 특사단에 끼워준 그 젊은 청년은… 아무래도 쉽게 쉽게 갈 운명은 아닌 듯해 보였다.
“하, 참. 이거 한서준 회장 그 친구는 거기서 고생 좀 하게 생겼구먼.”
* * * *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내려진, 주일대사 추방 통보.
나를 포함한 특사단 전원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아무것도 못 하고 숙소로 잡은 도쿄의 모 호텔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단 가장 큰 책임은 큰소리 뻥뻥 친 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인지상정. 회의실로 잡아둔 호텔 스위트룸에서, 나는 김 교수에게 자초지종에 대해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김 교수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입니까? 지금.”
“하아, 그기 참말로 말하기가 쪼매 민망한 부분이 있어가….”
진짜 민망하긴 한 듯, 내 시선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방바닥 무늬만 세고 있는 김 교수.
암만 큰 기대 없이 발탁된 인사라지만, 그래도 나름 대통령 특사인 신분.
혹시나 있을 제갈공명급 해답을 기다리던 내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마, 일단 좀 상황을 봐야 하지 않겠십니꺼? 되았고예, 요 근처에 기깔나는 스시집 있는데 같이 밥이나 드실래예? 사케 곁들여가.”
“…저는 빠지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해결할 능력은커녕 의지조차 없는 김 교수의 모습.
이 양반하고 이야기할 것은 더 없다. 곧바로 호텔 바깥으로 나간 나는 인근의 한적한 공원으로 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 도움이 안 돼, 도움이. 그나저나.”
얄궂게도 내리는 2월 끝자락의 함박눈. 만약 이번 특사 방문 기간에 일 처리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내 손바닥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방사능을 내뿜고 있을 것이다.
일본을 넘어 전세계로.
“이대로라면 큰일인데….”
“회장님?”
고개를 돌아보니 나를 뒤따라온 유세나 보좌관이 서 있었다.
갑자기 뛰쳐나온 내 모습에 조금 당황했던 모양이다. 추위 때문에 붉게 변한 볼을 한 채 내게 말을 건네는 그녀.
“김 교수님이 찾으시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되었습니다. 볼 것도 없어요. 아마 사케나 죽어라 마시자고 하겠죠. 그보다 좀 걸읍시다. 머리도 식혀야 하니.”
한 걸음, 한 걸음. 아무런 말 없이 폭넓은 교차로의 횡단보도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일단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긴 해야 한다. 미래를 엿보고 왔는데, 이대로 방관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무언가, 생각지 못한 그럴듯한 방법이 필요한 상황.
그리고 그 방법은,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유세나 보좌관이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회장님. 외람되지만… 고민하고 계신 부분이 계속 막힌 상태라면, 그걸 뚫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뚫을 수 있는 사람…?”
“예, 이쪽 분야 전문가를 좀 수배해 보심이 어떠신지?”
김 교수가 아닌 다른 대학교수부터 탄약그룹의 베테랑 일본 주재원들까지, 다른 전문가 리스트를 쭉 읊는 그녀.
전문가, 전문가… 이번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지금 당장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전문가.
그런 사람이… 있나?
“있지. 그것도 바로 이 근처에.”
“회장님?”
“뭐, 따로 수배할 필요도 없겠네요. 일단… 조언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있다. 그런 전문가가. 왜 진작 생각을 못 했을까 의아할 정도로.
나는 곧바로 유세나 보좌관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횡단보도에서 벗어나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 양반, 지금쯤 짐 싸서 내일 집으로 돌아갈 준비나 하고 계실 테니까요. 택시! 택시!”
일본 내각의 추방 명령.
그래서 내일 당장 한국으로 쫓겨날 한국 주일대사.
“회, 회장님…!”
관물대에 보급품을 수납하듯 유세나 보좌관을 택시 뒷좌석에 구겨 넣은 나는, 엔화 현찰 다발을 흔들며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외쳤다.
“한국 주일대사 공관으로 갑시다. 지금 바로! 따따블!”
* * * *
한국 주일대사 공관.
외교관 추방. 소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대상이 된 주일대사.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제법 금슬이 좋은 모양인지, 그는 아내가 건 걱정 섞인 전화를 받고 있었다.
“어, 그래. 별일 아니니, 당신은 걱정 안 해도 돼.”
-혹시 극우 세력인지 하는 놈들이 당신한테 폭탄이라도 던지는 것 아니여? 아이고 무서워라.
“아, 괜찮대도. 여기가 무슨 아프리카도 아니고 무슨 폭탄이 터진다고 그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냥 맘 편히 있으래도.”
뚝, 금방 끊긴 통화.
평소처럼 담배 연기를 쭉 들이마신 주일대사는 의자에 몸을 누인 채 한탄 섞인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에휴, 팔자하고는. 외교관 인생, 숫제 남의 나라 셋방살이 인생이여.”
외무고시 합격부터 외교부 입직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오르는 데에 30여 년.
일본통임을 자부하는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 결정된 자신의 거취는 지극히 일본의 여당, 자민당 측의 내부 알력 다툼에 의해 정해진 것을.
“후우… 이쪽 자민당 주류 계파 놈들이나 우리 대통령이나 지지율 장사에 눈이 벌게서야 원.”
어차피 한국 대통령이야 꽃놀이패를 쥐고 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자민당 내부 사정. 극우 세력의 손을 빌리게 된 주류 계파의 상황을 떠올린 그는, 결국 걱정이 가득 담긴 혼잣말을 내뱉었다.
“파탄 난 한일관계는 누가 복구할꼬? 걱정이 태산이구먼.”
“그 관계, 제가 복구해 보겠습니다.”
벌컥, 갑자기 열린 집무실 문.
머리 위에 큼지막한 물음표를 띄운 주일대사의 귀에 연이어 들린 것은, 공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하이고, 응접실에서 좀 기다리시지. 이렇게 무턱대고 같이 올라오시면 제가 대사님헌티 혼난다니까유!”
훤칠한 키에 젊은 외양의 청년.
서른도 채 안 되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본 주일대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어디서 많이 뵌 것도 같고… 아아! 탄약그룹 한서준 회장님? 이번 방일 특사단에 동행하셨다는?”
“대사님, 제가 지금 좀 급합니다. 그러니 앞뒤 예절부터 의전까지 다 자르고 조금 무례하게 굴어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내민 손이 민망할 정도로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는 모습.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일대사.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말에 그는 순식간에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건 마치… 지금 자신이 하던 고민을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나 다름없었기에.
“지금 박살 난 한일관계. 열흘 안에 딱풀로 붙일 방법 좀 알려주십시오. 다 안 붙어도 좋으니 대충 엉성하게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