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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73화 (173/300)

173화

밀려오는 재앙을 막는 법(5)

한국 특사단이 묵고 있는 도쿄의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신주쿠 중심가의 고층 빌딩.

수많은 인파가 가로지르는 초대형 횡단보도를 내려다보는 험악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뒷골목 출신의 사람인 건지 뺨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 흉터. 그리고 유카타 안쪽 힐끗 보이는 괴기한 요괴 문양의 문신까지.

뿌연 담배 연기를 김 서린 창문에 내뱉은 그는, 부복한 자신의 부하에게 물음을 던졌다.

“해서, 자민당 총리 직속 라인이 직접 여기까지 온다? 자기네들이 뒷배를 봐준다는 걸 각인시키고자?”

“그렇습니다요, 보스. 이대로만 쭉 가서 안전하게 정권을 지켜낸다면, 이라는 뒷말을 덧붙였지만 말입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가네야마 하야토, 한국식 이름으로는 김화평. 그는 재일 조선인 출신 야쿠자였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거대 조직 휘하에 연예기획사와 신문사를 비롯한 기업 수십 개를 거느릴 만큼 세력이 거대한.

“정치하는 귀족 나으리 놈들, 그런 식으로 빠져나갈 개구멍 파놓는 거야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보다.”

양팔을 하늘로 올린 채 기지개를 켜는 가네야마. 그 모습은 마치 검은 표범 같았다. 당장이라도 시퍼런 송곳니를 드러낸 채 앞으로 내달릴 것만 같은 비열한 표범.

“사람 장사도 크게 해야 한다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문이 낫구먼.”

“흐흐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요. 한번 올가미에 걸린 놈들은 감히 찍소리도 못하니 말입니다.”

사람 장사.

야쿠자가 주도하는 일본 연예계.

그 어두운 일면 때문인지, 한번 가네야마 쪽 조직과 얽힌 이들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

부적절한, 매우 부적절한 상납의 대상이 된 미모의 연예인이든, 하룻밤 쾌락에 눈이 멀어 발목을 잡히고 만 높으신 분이든, 양쪽 모두가.

“사업이 막힐 때마다 좋은 소화제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그 상납받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다. 보관 철저히 해 두고.”

“삭제도 유출도 안 되게 이중으로 보안을 걸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요. 보스.”

“그래, 그럼 주요 부처 관료 놈들은 일단 목줄을 매두긴 했는데… 어때, 그 자민당 정치가 놈들은 좀 이쪽에 혹하지 않던가?”

“아… 그게 말입니다.”

겸연쩍은 듯 머리를 벅벅 긁는 부하 야쿠자.

역량이 미치지 않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그는 말머리를 흐리며 소박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듣는 귀가 여럿인 치들이니, 코가 꿰인 놈들 꼴이 어찌 되었는지 풍문으로라도 들었을 겁니다.”

“하! 여우 같은 놈들. 꼴에 옛 화족(和族) 집안이라 체면 떨어질 일은 만들지도 않겠다, 이건가?”

대대로 영지를 세습해온, 일종의 귀족 출신이라 할 수 있는 옛 화족(和族) 집안의 정치가들.

바닥부터 기어올라 욕망에 눈이 먼 관료들과는 달리, 고고하신 정치가들은 연예인들의 미모에 눈이 뒤집혀 일을 그르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야쿠자 조직의 구린내 나는 사건을 덮어주며, 주기적으로 피 같은 돈과 인력을 뜯어갈 뿐.

-펄럭!

금박 입힌 일본 전통 양식의 부채를 쫙 폈다가 다신 접어버리는 가네야마.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가 가진 그릇에 비해 너무 큰 욕망의 뜻을 담은 혼잣말을.

“뭐,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 장사이니… 언젠간 내 것이 되겠지. 다른 방법으로라도.”

드르륵, 왕골 다다미로 만든 미닫이문에 약간의 틈새가 벌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방 밖의 또 다른 부하 야쿠자의 목소리.

“보스, 자민당 간사장님께서 막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그 영감탱이 놈 빨리도 오는구먼. 조선 속담에 이르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만, 딱 그 말 그대로군.”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는 나막신을 신고서, 응접실이 있는 별채로 향하는 가네야마.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딛는 때마다 인위적으로 부드러워지는 그의 험악한 표정.

별채 다다미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그의 환한 얼굴에는, 아까와는 정반대의 굴종으로 그린 가면이 걸려 있었다.

“어르신, 간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아아, 그래. 가네야마 대표, 오래간만이야. 나야 늘 똑같지.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앉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이어지는 대화.

중정(中庭)에 놓인 대나무 통발에 물이 채워졌다 떨어졌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날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가네야마에게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녹차를 따라주며 덕담을 건네는 자민당 간사장.

“한일관계하고 이번 선거 말이야. 자네 공이 참 크더구먼. 이래저래 복잡할 것 없이 일이 쉽게 풀리고 있다네.”

“그저 작은 일을 했을 뿐이건만, 그리 말씀하시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쁠 뿐입니다.”

“허허, 이 사람. 겸손은.”

“저,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

말끝을 흐리는 가네야마.

굴종의 물감으로 잘 칠해진 가면 틈 사이, 그 가느다란 눈구멍 속에서 빛나는 그의 안광.

질문이 없어도, 논쟁이 없어도. 그는 눈앞의 높으신 정치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행여나… 선거가 끝나고 자신이 조종하는 극우 혐한 단체가 쓸모가 없어진다면, 이제 남은 것은 토사구팽뿐 아니냐고.

“허어, 이 친구. 그런 식으로 눈 뜨는 모습은 여전하구먼. 내 조심하라 이르지 않았던가?”

“송구합니다. 어르신.”

권위 의식에 절어있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가네야마를 깔아뭉개는 자민당 간사장.

“…….”

잠시 찾아온 불편한 침묵.

따뜻하던 방 안에 불어온 냉랭한 찬바람은, 녹차로 입술을 적신 간사장의 대답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 기세를 감출 수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도 말게나. 가네야마.”

“어르신?”

“자네 같은 사냥개는 솥에 집어넣는 것보다, 이렇게 쥐새끼라도 잡게 두는 편이 더 나으니.”

“…이해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불만족스러운 절반, 그리고 만족스러운 절반이 섞인 듯한 애매한 대답.

서로가 서로를 지극히 수단으로만 보는 이 대화의 끝은, 늘 그러하듯 자민당 간사장의 지시로 끝을 맺었다.

“밑에 자네 조직이나 더 움직여 봐. 혐한 단체에 인력 보강하고 한국 대사관 앞에서 반한(反韓) 집회도 좀 크게 하고.”

* * * *

지잉, 불쾌한 마이크 기계음 소리가 귀를 쿡쿡 찔렀다.

물론 그 불쾌함은 그저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 뒤이은 메인 코스 헛소리는 그깟 쇳소리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다! 비루한 조센징은 억지 주장을 멈추어라!

-한국 군경은 불법 점유 중인 다케시마에서 당장 물러나라! 하루빨리 수복하여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다시 찾자!

특사단이 묵은 도쿄의 모 호텔 근방, 한국 대사관 앞 도로변.

비싼 밥 먹고 저리도 할 짓도 없는 모양이다. 별 괴상한 논리로 무장한 목소리가 아침나절부터 내 귀청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요, 회장님. 아예 전광판 달린 트럭까지 대절한 걸 보니, 본격적으로 일을 벌일 건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 가만히 보면, 무엇보다.”

유세나 보좌관의 말에 손을 뻗어 혐한 시위를 하는 군중을 가리킨 나.

앞쪽의 몇몇 보여주기식의 여성들을 제외한, 나머지 시위대는 전부 건장한 남성들뿐이었다. 아주 험하고 무섭게 생긴, 딱 봐도 뒷골목 쪽 사람들이겠구나 싶은 남성들.

“목덜미에 괴상한 문신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네요. 어깨 위에 달린 세숫대야도 야쿠자스러운 게 죄 험악하니 빠그라져 있고.”

“윽, 꼭 예전 아버지… 아니, 아버지와 같이 일하시던 삼촌들 모습 같습니다, 회장님.”

지금은 손을 씻고서 새사람… 까지는 아니지만, 일단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정착한 유태촌.

어젯밤. 아니, 정확히는 오늘 새벽. 잠이 덜 깬 목소리의 그는 급하게 걸어온 내 전화를 받았다.

대관절 혐한세력을 뒤에서 조종한다는 야쿠자 집단. 도대체 그 수장으로 있는 자가 어떤 놈인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며.

‘이거야 원.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주시더니, 고작 묻는 것이 가네야마, 그 복어 같은 놈이 궁금하신 거였소?’

‘복어 같은 놈이라니요?’

다행히도 그 야쿠자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유태촌. 특유의 걸걸한 음성으로 그는 내게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그놈, 생긴 것이나 하는 짓이나 복어랑 똑같으니까 말이오.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해 그 비루한 몸뚱이를 한껏 부풀리고는 한껏 잔가시를 세워대니.’

애초에 재일 조선인 출신인지라 한국 뒷골목 세계에서도 제법 유명한 모양인 가네야마.

그냥 정치깡패 비슷한 것인 줄로만 알았건만, 생각보다 제법 번듯한 규모의 사업장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는 유태촌의 말.

‘일본 쪽 연예계 쪽은 놈이 잡고 있다고 보면 됩디다. 그것도 꽤나 추잡스러운 방법으로.’

‘피곤하게 생겼네요, 이래저래. 여하튼, 감사합니다.’

‘되었소. 부족한 것은 내 딸년이 챙길 터이니, 한 회장님은 잊지나 마시길.’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던 유태촌.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영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때, 어느새 도착했는지 유세나 보좌관이 내게 말을 건네었다.

“회장님, 다 왔습니다. 말씀하셨던 검도장입니다.”

-팡! 팡! 손목! 머리!

내려친 죽도가 쪼개지는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기합 소리.

검도장 안에는 주일대사로부터 받은 사진과 똑같이 생긴, 열아홉 살의 앳된 소녀가 맨발로 마룻바닥을 박차고 오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회장님.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뭐가 말입니까?”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담긴 목소리로 내게 묻는 유세나 보좌관.

이어지는 그녀의 맹점을 찌르는 질문은 타당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만약 덴노 황실 가문에서 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혐한세력을 조종하는 야쿠자를 솎아내지 못하면, 일이 수포로 돌아갈 텐데요.”

일본인들에게 어떤 국가적 상징물 정도의 역할을 하는 덴노와 황실 가문. 하지만, 상징은 딱 상징의 역할까지만이지, 실제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거나 하지는 못하는 상황.

결국, 유세나 보좌관의 말대로 그 야쿠자 놈들을 자민당 집권 세력에게서 떼어내는 것이 중요할 터.

그러나.

“저도 방금까지는 그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방금 생각한 건데요.”

-팡! 팡! 허리! 머리!

경기를 재개했는지, 다시금 들리기 시작하는 경쾌한 매타작 소리.

이내 압도적인 격차로 마무리된 경기. 묵직한 검은색 호구를 벗어던진 공주의 땀에 젖은 머리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밝게 반짝거렸다.

딱 봐도 아름다운, 단아한 외모와 함께.

“이거 어쩌면…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공주님이 저와 그럴듯한 드라마 한 편을 찍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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