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밀려오는 재앙을 막는 법(6)
“가네야마 대표! 네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와장창!
시원하게 박살 난 상차림.
고급 일식집 다다미방 위에는 부서진 식탁과 깨진 그릇과 섞인 음식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측이라도 한 듯,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는 가네야마 하야토.
그는 낮게 내리 깐 야쿠자 특유의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 진정 좀 하시지요. 국세청장님.”
“이 미친 야쿠자 새끼! 진정?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알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여!”
탁, 바닥에 놓인 누런색 서류 봉투 하나. 그 안에 든 것은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가네야마가 상납한 미모의 여배우와 국세청장이 함께 밀회를 나누고 있는 사진이.
“압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뭐라…!”
분노에 차 죽일 듯이 눈을 흘기는 국세청장. 그러나 가네야마는 그저 바닥에 떨어진 사케 병을 집어, 남은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넘길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한마디.
“그 사업장. 당신이 세무조사 지시한 곳.”
“……!”
“저희 조직 소유인지 뻔히 아시는 분이 그러시면 되겠습니까? 약점도 많으신 양반이.”
꽉 쥔 국세청장의 두 주먹.
그러나 그 떨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로 다가온 두려움. 행여나 이 사진이, 그리고 아마 높은 확률로 존재할 영상이 퍼진다면, 자신의 모든 커리어는 끝장이기에.
“가네야마 이놈…!”
“뭐, 간이 배 밖으로 나오셨으니 어쩌겠습니까? 내 다시 집어넣어 드려야지.”
그렇게 떨군 고개.
자리에서 일어난 가네야마는 유카타 옷깃을 여미고는, 이내 국세청장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잘하자고, 잘.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지?”
“…알겠네.”
힘없이 멀어져가는 국세청장.
허리춤에서 담뱃갑을 꺼낸 가네야마는, 이내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쯧, 가뜩이나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저딴 놈까지 옆에서 윙윙거리니, 이거 골치가 아프구먼. 어이, 밖에 누구 없나!”
드르륵, 열린 미닫이문.
마침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부하가 근처에 있던 모양이었다. 바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가네야마.
“장부 현황 가지고 와. 겉껍데기 말고 비밀 장부로.”
“예, 알겠습니다. 보스.”
난잡하게 적힌 비밀 장부.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빼곡히 적힌 그 장부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합법의 경계로 올라온 이 야쿠자 조직. 생각보다 적자 폭이 커지고 있었다.
“하! 자민당 귀족 나으리들, 뭔 상납금을 또 이렇게 뜯는 거야? 인력 지원에 뭐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오래전부터 하나씩 인수하기 시작한 언론과 미디어 회사. 무리한 투자는 곧 부실을 불러오고 있었다.
거기에 자민당에 줄을 대느라 발생한 검은 비용까지, 줄줄이 태산이라는 말이 딱 적합한 상황.
“비싼 돈 들여서 투자했건만, 이게 영 밥값을 못하는군.”
“아랫것들 기강을 좀 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스?”
“기강?”
일반인들처럼 평범한 경영을 해대니, 아랫것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느슨해진다는 논리를 펼치는 부하 야쿠자.
아까 국세청장과 있었던 사건 때문일까? 오늘따라 가네야마는 부하의 말이 유독 타당한 것처럼 들리었다.
“그래… 기강, 기강이라.”
그렇게 내린 결심.
그 결심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고, 그는 우악스러운 주먹을 허공에 날리며 지시했다.
“이놈들, 이번 달 내로 큰 거 하나 가져오라 해.”
“큰 거라 하심은…?”
“특종! 돈값 못하는 놈들은 버러지나 다름없으니까, 기생충 약으로 죽기 싫거든 단독기사 제대로 된 거 내오라 해.”
날것 그대로의 흉포한 모습.
금기시하는 모든 것을, 심지어 덴노 가문에 대한 것까지, 자신이 뒷배를 봐줄 테니 성과만 내라는 가네야마.
그는 마지막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장급부터 말단까지 숨도 못 쉴 정도로 팍팍 조이면, 뭐가 되었든 나오게 되어 있으니.”
* * * *
히나 공주.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갈 예정인, 이 열아홉 살 난 일본의 공주는 조금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빠! 할 말이 있어. 진짜 중요한 말.’
‘어… 무슨 일이니, 히나?’
빨간 펜으로 빗줄기가 죽죽 그어진 빵점짜리 시험지와 함께, 장래 희망 계획서를 덴노의 면전에 들이밀던 히나 공주.
애초에 황실 구성원에게 성적 따위 무엇이 중요하겠냐만, 그녀의 목소리는 위풍당당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쾌활함을 뽐내고 있었다.
충격으로 덴노의 목덜미를 붙잡을, 이어진 발언과 함께.
‘나 아이돌 할래. 아무래도 공부는 글렀고, 길거리 밴드 같은 거라도 먼저 시작해야겠어.’
‘히나야,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니…?’
빵점 따위는 애초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던 양, 그녀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덴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연예인! 탑스타! 이쪽이 운명인 것 같으니까 꼭 할 거야. 무조건!’
‘아이고, 내 팔자야. 넌 지금 성적이 전교 꼴찌인데 아무 생각도 안 드니? 그것도 빵점을 받아 놓고?’
‘아빤 지금 그게 중요해? 나 연예인 할 거라니까? 그것도 걸그룹으로!’
화를 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아이.
혼을 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아이.
아니, 하도 밝아서 화를 낸들 의미가 없는 아이.
그게 바로 히나 공주였다.
‘하아, 어쩌다 이런 계집애가 내 딸내미로 태어나서… 학교나 똑바로 다녀! 괜히 남들한테 황실 욕 먹이지 말고!’
‘어차피 비밀로 하고 다니는데 괜히 쓸데없이 잔소리셔.’
암만 신분을 숨기고 학교에 다닌다고 한들, 그래도 일국의 공주는 공주.
그것도 보수적인 국가의 보수적인 공주로서의 책무가 잔뜩 어깨 위에 올려진 상황이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선데이 도쿄] 신주쿠의 한 소극장에서 열린 록밴드 공연. 그런데 히나 공주와 닮은 보컬의 모습이 보인다!
세간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할 공주는 밴드 활동과 함께 밤낮없이 거리 공연을 전전하며 덴노의 속을 썩이는 일등 공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집안에서 태풍을 일으키고 다니던 그녀가, 유일하게 속풀이를 할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으랴랴랴랴랴! 머리! 머리!”
검도였다.
“승리! 시워어어어언 하다!”
“저기… 히나야?”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어딘가를 가리키는 검도 도장 관장. 늙은 관장의 손가락 끝에는 웬 젊은 남녀 한 쌍의 모습이 있었다.
꽤나 예쁘고, 또 잘생긴 두 사람이.
“뭐예요, 저 바퀴벌레 한 쌍은? 연인? 부부? 불륜?”
“크흠, 그건 나도 모르겠고….”
“마음에 안 드네, 누군 평생 공주 타이틀 때문에 연애도 맘대로 못 했는데.”
“…원래 공주 타이틀 신경 잘 안 쓰잖니. 아무튼, 저기 두 분, 한국에서 오셨다는데 대련 상대를 찾으신다네. 혹시 괜찮다면 말이다.”
어차피 이 시간대에는 히나 공주와 관장, 그리고 사범 두어 명 빼고는 텅 빈 검도 도장.
그것도 오늘은 웬일인지 맞상대할 사범 두 명도 일이 있다고 나오지 않은 상황.
손목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관장은, 이 힘 넘치는 히나 공주에게 넌지시 자신의 희망 사항 섞인 제안을 넌지시 건네었다.
“싫지 않다면 히나 네가 상대해주지 않으련? 보니까… 저 두 분, 아주 실력자라고 하시던데.”
“실력자! 그러면 세게 해도 된다는 거죠?”
“아마… 그렇겠지? 난 잘 몰러. 히나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실력자라는 말에 올라가는 히나 공주의 입꼬리.
마침 잘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그녀. 그렇지 않아도 영 눈꼴 신 커플이었는데, 이참에 참교육이나 한번 거하게 해줄 심산인 모양이었다.
자신의 애인 없는 설움을 손에 쥔 죽도에 가득 담아서.
“딱 대라고 하세요. 두 연놈 다.”
* * * *
여러 차례 옻칠해 자연스러운 빛이 나는, 멋들어진 검은색 호구. 쭉 뻗은 팔 끝에 내려앉듯 쥐어진, 질 좋은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죽도.
아주 좋다. 이 정도 장비발은 갖춰야지 저 무지막지한 검도 유단자에게 가까이 붙어서 코등이싸움이건 뭐건 할 테니까.
아, 물론 내가 아니라.
“그럼 잘 부탁합니다. 유세나 보좌관. 저 먼 곳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유세나 보좌관이 하는 거지만.
“저기… 회장님?”
오늘따라 흔들리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유세나 보좌관.
사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애초에 성별도 다르고 체급은 더더욱 다른 데다가, 검도라는 운동을 취미로라도 해본 사람은 우리 둘 중 유세나 보좌관뿐이니까.
“전 쇠질하고 권투, 두 개밖에 모릅니다. 그렇다고 검도 vs. 권투 누가 더 강한가, 이런 류의 호기심은 이미 졸업한 지 오래라서요.”
“저도 대학 때 검도 동아리 1년 한 게 전부입니다만…?”
“아, 맞다. 이거.”
유세나 보좌관이라면 1년 경력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말과 함께 내민, 조그마한 전자기기 하나.
아마 그녀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인이어? 이건 또….”
그리고, 유세나 보좌관의 면전에 대고 살랑살랑 흔드는 네모난 검은색의 무언가.
“무전기…!”
이제야 비로소 아바타 게임의 재현을 체감한 건지,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그녀.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잘하는 분야인 만큼 좋아하는 마음도 생긴 모양인 듯하다. 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야겠다.
“저번에 한 번 해보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 주괘율 상대하실 때 보니까, 당장 아침드라마 주연급으로 활약하셔도 될 정도였더라고요.”
“아니, 잠깐만요 회장님.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이런 중차대한 타이밍에 겸손의 미덕을 내보이려는 유세나 보좌관.
아쉽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를 누릴 때는 아니다.
마지막에 붙은 개떡 뭐시기 그 말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아마 김원철 아저씨에게 잘못 배운 단어일 터.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말고 감정에 호소할 뿐이다.
나는 유세나 보좌관의 장갑 낀 두 손을 꼭 붙잡고, 꽃사슴 같은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꼭 좀 부탁할게요. 지금 제게는 오로지 유세나 보좌관 하나뿐입니다.”
통한 건가?
참으로 복잡미묘한 표정.
하늘을 보았다 땅을 보았다 다시 고개를 가로젓던 그녀는, 마치 예비 동작이라도 하듯 발로 바닥을 구르더니 이내 해탈한 모양이었다.
이마를 짚고는 포기한 듯 수락 의사를 밝히는 유세나 보좌관.
“하아… 내가 진짜 미쳐.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고 하셨죠?”
역시 유세나 보좌관이다. 참으로 유능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손수 호구 뒤편의 묶음 끈을 동여매 주며, 비장한 총사령관의 목소리로 그녀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무조건 딱 붙으세요. 가까이.”
“네?”
“어차피 저쪽 공주 검도 스타일이 그냥 무턱대고 돌진해서 코등이싸움 좋아하니까, 안 다가가도 자기가 알아서 붙을 겁니다. 그러면.”
살며시 손가락으로 도장 바깥쪽을 가리키는 나.
딱 보아도 어디 특수부대 출신임이 드러나 보이는 양복 입은 사내들은, 선글라스를 끼었음에도 그 눈빛이 빛나 보였다.
물론 조금 후에는… 저 양반들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해일처럼 다가오겠지만.
“저기, 저 무서운 경호원 아저씨들 눈치 안 보고 얼마든지 귓속말이 가능할 겁니다. 그때부터 제 지시대로 일본어로 말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