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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79화 (179/300)

179화 재앙은 쓰나미처럼 다가와서(1)

-건배! 간빠이!

도쿄 한국 대사관에서는 축하연회가 열렸다.

독도를 둘러싼 외교 분쟁. 보다 정확히는 양국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한일 갈등이 마무리되었기에.

촉촉한 연기와 잔불로 구워지는 바비큐 구이. 한 손에는 고기 꼬치를, 다른 한 손에는 술병은 든 김 교수는 벌건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내 그랄 줄 알았십니더! 우리 회장님 아이믄, 그래 큰일 할 사람 또 어디 있겠십니꺼?”

“아이고, 김 교수님 또 취하셨다.”

“흐흐흐. 회장님요, 이런 날에는 좀 마셔줘야 하는 깁니더. 안 그래예?”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더욱 달아오르게 만드는 김 교수.

사실 이 아저씨는 딱히 한 건 아무것도 없긴 하지만… 뭐, 상관없다. 방해만 안 해도 그게 어디인가.

“마, 장관님도 일 딱 해결되니까 바로 근두운 타고 날라 오셨다 안캅니꺼? 장관님, 그렇지예?”

“허허허, 한 회장님께서 이렇게 엉킨 매듭을 풀어주셨으니까요. 정말이지 대통령 각하의 신임을 받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그려.”

새하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치하하는 외교부 장관.

외교부 입장에서는 정말 갑자기 대박이 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올 법도 하다.

외교부 최대 숙원 중 하나였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었으니.

그러나… 그렇게 칭찬 세례가 쏟아지는 도중, 갑자기 훅 들어온 의문의 공격.

“거기에 이렇게나 아리따운 약혼녀까지 얻으시다니. 이거 참, 정말이지 남자로서 다 가지셨습니다. 부럽습니다, 허허허.”

“약혼녀… 요?”

“음? 일본 궁내청에서는 그리 알고 있는 모양이던데요? 덴노 그분이 눈물을 한 바가지나 흘리셨다는데.”

“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냥 가짜 연애 연기만 하는 것 아니었나?

갑자기 찾아온 혼돈으로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이 풍성한 콧수염을 가진 외교부 장관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정신적 후속타를 이어났으니까.

“하하하, 감추려고 하셔도 이미 늦었습니다. 벌써 한국 언론에도 쫙 퍼졌으니까요.”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잠시만. 잠시만요. 유세나 보좌관!”

다급히 유세나 보좌관을 향해 손짓하는 나. 곧바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보고서가 내 손에 쥐어짐과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새어 나오고 말았다.

-[연예가 일보] 국적을 뛰어넘은 양국 간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세기의 약혼! 한서준 회장♥히나 공주.

-[애국신문] 약혼 이후 분석! 황실 남자 직계 후손들이 모두 죽는다면? 사상 최초로 한국계 덴노 즉위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무언가 황색언론 레벨에서 벌인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소스를 받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사들.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한 명뿐이다.

“환장하겠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얼른 나와요. 내가 찾아가야 하나?”

나는 구석에 숨어 조용히 내 눈을 피하는 히나 공주에게 다가가 어깨를 꽉 쥐었다.

“히나 공주님?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아… 아빠한테 거짓말 좀 했지. 사랑하는 낭군님을 위해서 한국으로 넘어가는, 헌신적인 여자가 되겠다. 뭐 그런.”

“맙소사.”

“아니, 안 그러면 아빠가 안 보낼 것 같았다니까?”

한국으로 튈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단 되는 대로 변명을 늘어놓았다는 히나 공주.

이거 생각보다… 일이 좀 커진 모양이었다.

* * * *

“참고로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 세기의 약혼, 적극 찬성이십니다. 여차하면 한일 FTA 경제협력의 상징적인 기념비로서 두 분께서….”

“아니, 아니. 그건 되었습니다. 적극 사양이고요. 일단 그 너구리 같은 대통령님에게 연락부터 좀 해야겠네요, 일 더 커지기 전에.”

싱글벙글한 외교부 장관의 말허리를 중간에 끊고서 곧바로 휴대전화를 집어 든 나. 히나 공주가 무지성으로 질러댄 불부터 끄고 봐야겠다.

마침 조금 시간에 여유가 있었던 건지,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들리는 대통령의 목소리.

-새신랑? 한창 바쁠 텐데 괜히 나이 든 사람한테 전화를 다 주고.

“그런 게 아니란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실제로는 그런 게 아니라도, 막상 그런 게 되면 좋지 않겠나? 여러모로 국익이라든지 내 치적이라든지.

이럴 줄 알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까지 전부 알고 있는 대통령. 보나 마나 이 연애가 거짓임인 것 또한 이미 인지하고 있을 터.

물론… 대통령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조만간 이루어지기는 할 것이다.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해서.

“국익이나 치적은 제가 다른 쪽으로 생각하는 게 있으니, 좀만 참고 기대하고 계시면 됩니다.”

-음? 한 회장 자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혹시 저번에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원자력 건?

묘하게 촉이 좋은 건지 싶은 대통령.

과녁 정중앙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듯한 그의 말이 뒤이었다.

-뭐,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쪽 수출이 쉽지는 않을 텐데? 아무리 일본 쪽 국민 사윗감이 되었다고 한들 말일세.

“자세한 건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그 사윗감 어쩌고 하는 것 말고, 원자력 건이요.”

뚝, 어찌어찌 종료된 통화.

어쨌거나… 후쿠시마로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는 셈이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할 재앙을 막는 것에 더해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내 어깨에 실린 짐이 유독 무겁다.

거기에 이 철딱서니 없는 공주까지 등목을 타고 있고.

“아, 맞다. 그래서 말인데, 아빠가 좀 보자는데.”

“…대충 장단에 맞춰는 드려야겠네요. 일정은 언제로 잡으면 되는 겁니까?”

“음, 대충 황실 행사 끝나는 게 이틀 후니까.”

손가락을 하나둘씩 접어가며 날짜를 세는 히나 공주.

그녀의 입에서 뒤이어 나온 말은… 참 얄궂다 싶었다. 어떻게 타이밍도 이런 식인 건지.

“3월 11일?”

“아, 하필이면 그날이네. 이거 안 되겠습니다.”

“응? 왜?”

3월 11일.

이제 곧 다가올 재앙의 날.

그날은 도쿄에서 아침 드라마 연기나 할 때가 아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절망이 드리워진 그림자를 막으러 가야만 하니까.

“뭐가 되었든 그날은 좀 피합시다. 아니, 스케줄 상 한동안은 좀 만나 뵙기 힘들겠네요.”

“아, 왜. 아빠 멘탈 나가 있을 때에 진행해야 술술 풀린단 말야.”

“멘탈은 앞으로도 나가 계실 테니, 그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응…?”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히나 공주.

나는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는 그녀의 후드티를 고쳐 씌워주며,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분간… 전 세계가 너 나 할 것 없이 조금 정신이 없을 테니까.”

* * * *

충남, 탄약 정밀기기 공장.

굉음을 내뿜으며 생산 설비에서 빠져나오는 거대한 차량 한 대.

어지간한 소형 장갑차 크기만 한 그 차량 위에는 딱 봐도 복잡해 보이는 로봇 팔 하나가 달려 있었다.

“오라이! 오라이! 더, 더, 더, 더!”

-쿵! 끼이이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위용을 드러내는 장갑차. 아니, 재해 대비용 구호 차량.

최종 검수를 모두 끝마친 김원철. 그는 머리에 쓴 안전모를 벗어 던지고는 곧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지, 그렇지. 흐으… 인자 좀 쉬겠네. 안 그래요, 성 사장님?”

“그러겠네요. 김 비서실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정말로요.”

서로 생수 한 병을 나누어 마시는 두 중년 남성.

본사 고위 임원들까지 총출동해 매달릴 만큼, 촉박한 시간 내로 끝내야 했던 이번 프로젝트.

녹색 우레탄 도장을 칠한 바닥에 큰대자(大)로 뻗은 김원철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우리 회장님, 약혼만 아니었으면 바로 일본 달려갔을 거예요.”

“왜요. 현장에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회장님은 일본 가서 연애나 한다고?”

“빙고! 그나마 탄약그룹 대 이을 주니어는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꾹 참았죠. 보니까 마귀할멈도 은근 좋아하는 것 같드만.”

“허어… 서 이사장님까지도요?”

소통의 부재가 낳은, 뭔가 이상한 착각. 중년 아저씨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씨 집안의 후손에 대한 열띤 토론은 누군가의 입장과 동시에 일단락되었다.

“그러니까, 마귀할멈 그 양반이 증손주를 꼭 봐야 본인이 편하게 눈을 감으시겠다고….”

“여기들 계셨네요.”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의 남자. 미셸 사장.

마지막 기술 오류가 있는지까지 점검을 마친 모양이었다. 최종 확인을 위해 김원철에게 물음을 던지는 그의 모습.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 비서실장님, 회장님께 이제 선적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목적지가 도쿄 간사이 국제공항 맞죠?”

“엥? 아니, 아니에요. 하이고, 미리 말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네? 도쿄에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이제 곧 도쿄에서 위로 올라간다 했어요. 가만있자, 어디로 보내라 했더라….”

푸른색 공장 잠바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는 김원철.

노안 탓에 흐릿해 보이는 글씨에 초점을 맞춘 그가 휘갈겨 쓴 글자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그 생소한 지역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로.

“센다이, 센다이 국제공항. 그 후쿠시마였나? 원자력 발전소 근처 공항이요.”

* * *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상부에서 온 전화를 받고서 눈살을 찌푸린 와타나베 스고이 발전소장.

고막이 터지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도쿄전력 사장, 나까무라 기모찌의 목소리는 그 안에 다급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야! 막아, 무조건 막아!

“하아… 총리대신 명령으로 견학하라는 데 어떻게 막습니까?”

히나 공주와의 열애설이 터지더니, 또 갑자기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견학.

탄약그룹의 회장이라는 남자의 예견된 방문에, 도쿄전력의 나까무라 사장은 마음이 급한 듯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새끼… 외부인 견학 들어가면, 우리 도쿄전력이 수십 년간 똥 싸놓은 거, 전국에 다 까발리라고? 거기에 한국까지 포함해서?

“그러게 제가 작은 사고라도 덮지 말고 무조건 안전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보신(保身) 몰라? 보신! 이 자식이 누구 모가지 날아가는 꼴을 보겠다고!

그놈의 보신주의.

극도로 경직된 사내 문화 탓에 이제껏 현장에서 덮어버린 자잘한 사건만 수십여 개.

분명 외부인의 시찰이 있게 된다면, 임시로 덮어두었던 것들도 드러나게 될 터.

머리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미간을 꼬집으며 와타나베 소장이 차선책을 논했다.

“하아, 그래도 축객령 자체는 불가능합니다. 최대한 조심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옘병… 그럼, 들어는 오게 하더라도 무조건 비협조적으로 가! 주요 시설 같은 건 절대 보여주지 말고!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결국, 늘 같은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결론.

그러나, 이번만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본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인식했는지, 나까무라 사장은 마지막으로 즉흥적인 말 한마디를 내뱉고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아니지, 아니지. 내가 직접 간다! 가서 계집 끼고 접대를 하든 뭘 하든 구워삶아서 보내버려야겠어!

“아니, 사장님이 오시면 더 혼란이….”

-됐다! 끊어!

뚝, 강제로 끊긴 전화.

한숨을 내뱉는 와타나베 소장. 그는 늘 그러하듯 의자를 반대로 돌려 작게 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늘 평화로워 보이는 푸른 바닷가. 그나마 그의 복잡한 마음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

“후우, 파도치는 거나 좀 보고 있어야겠군. 응?”

그러나… 오늘따라 유달리 달리 보이는 바닷가.

평소와 달리 거세게 밀려오는 물살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멀리 도망치라고.

“내 눈이 이상해진 건가? 그렇게 고요했던 바다가… 왜 이렇게 흉악스러워 보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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