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재앙은 쓰나미처럼 다가와서(4)
후쿠시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도호쿠 국제공항 화물청사.
“으허, 깜짝이야!”
-쿠구궁!
비행기에서 내린 김원철.
통관을 위해 화물청사에서 세관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발생한 지진.
갑자기 천지를 흔들리는 굉음에,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손등으로 보호하며 구석에 웅크린 채 주저앉아 있었다.
“뭣이여… 이게 뭣이여. 진짜 지진이여?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것도 다 겪네.”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 천장 타일. 두 눈을 꼭 감은 그는 억지를 부리며 일본에 가겠다던 어제의 자신의 모습이 미울 뿐이었다.
탄약 정밀기기 공장에서 있었던, 미셸 사장과의 대화를 회상하던 김원철.
‘흐흐흐. 암만 생각해도 내가 직접 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네? 김 비서실장님께서 일본에 직접 가신다고요? 굳이 안 그러셔도….’
원래는 미셸 사장이 가기로 했던 일본.
그러나 어디 해산물 좋아하는 낚시꾼이 일본을 놓칠 리가 있을까. 3월이 제철인 도미회에 눈이 먼 김원철은, 손가락으로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 코쟁이 아저씨 관리 감독할 사람도 필요하고, 우리 회장님 얼굴 본지도 까마득해서 막 상사병 비슷하게 나려고 하걸랑요.’
‘아니, 기술자분은 딱히 관리 감독할 필요가 없는 전문가시고, 상사병은 또 무슨….’
그냥 아무것이나 막 가져다 붙인 변명. 그러나 때때로 굳은 의지 앞에서 그깟 변명 따위야 장식품에 불과한 법이다.
할 수 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승낙의 의사를 표하는 미셸 사장.
‘에휴, 일단 알겠습니다. 어차피 회장님 보필하는 일이면 김 비서실장님이 더 나으시겠죠.’
‘땡큐! 사랑해용.’
그렇게 부푼 꿈을 가득 안고서, 화물용 비행기 앞좌석에 탔던 김원철.
‘흐흐흐. 아주 혼자만 신나게 일본 생활 즐기셨다 이거지? 딱 기다리쇼, 회장님. 멋쟁이 신사 김원철이가 출발합니다잉.’
멋쟁이 신사를 자처하며 선글라스를 고쳐 쓰던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바로 옆자리에 함께 동승하던 서양인 기술자. 장갑차의 로봇 팔을 원격 조종할 속칭 코쟁이 아저씨가, 갑작스러운 지진에 멘탈이 나갈 것을.
“Holy shit! Fucking terrible! Oh my god… The earthquake will punish us!”
“아, 쫌 가만히 있어 봐요! 무슨 신이 갑자기 벌을 준다고 그래, 이 정신 사나운 코쟁이 아저씨야!”
엎어진 채로 김원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게거품을 무는 서양인 기술자.
지진이 조금 가라앉고서도, 그는 단단히 얼이 빠진 모습으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Uhhh… Help me god. Help me, please…!”
“하이고야. 일 났네, 일 났어. 이거 어째 도착하자마자 아주 디스코 방방을 거하게 태워주는 나라여, 일단은….”
진정이 되자 찾아온 생각.
튼튼하게 지었다는 이 공항도 이렇게 미친 듯이 흔들렸건만, 분명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도 상황은 비슷할 터였다.
“아흐, 제발 받아라. 제발, 쫌.”
다급한 기색을 감출 여유조차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전화를 거는 김원철.
속절없이 귓가를 울리는 통화대기음이 입안을 바싹바싹 마르게 할 때쯤, 전화기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회장님아! 나 지금 막 공항 도착했는디, 막 땅이 흔들리고 난리여. 거, 지금 있는 곳은 괜찮고?”
-…이니까, …겁니다. 거기서 …모시고, 그대로 …시면 됩니다.
“지진 때문에 그른가, 신호가 개똥이라 안 들려야! 다시 좀 말해주시겄어?”
아무래도 지진 탓에 통신 장애까지 생긴 모양이었다. 답답한 듯, 고릴라처럼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는 김원철.
“어흐, 환장하겠네. 우짜냐.”
“공항 왔으니까 바로 장갑차 끌고 출발할 겁니다. 거기서 기술자분 모시고 그대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아, 이제 좀 똑바로 들리네… 으잉?”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숨을 식히고 있는 어린 상사의 모습.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김원철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을 더듬었다.
“아니. 우리 회장님, 무슨 홍길동이여? 언제 갑자기 온겨…? 거, 옆의 분은 또 누구고.”
함께 온 와타나베 소장을 가리키는 김원철. 그러나, 지금은 설명을 늘어놓을 시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통관이 끝난 장갑차는 어디선가 가지고 온 트럭 뒤에 순식간에 적재되었으니까.
“지금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빨리 움직입시다. 바로!”
* * * *
“아아, 그러니까 이분이 발전소장이시고. 지진 나자마자 우리 회장님하고 같이 공항으로 바로 달리셨다고?”
“뭐, 대충 그런 겁니다.”
지진 때문에 갈라진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트럭. 덜컹거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발전소에서 이곳까지 오게 된 여정을 김원철 아저씨에게 이야기했다.
“여기 와타나베 소장님께서 트럭을 수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빨리 올 수 있었고요.”
“그나마 다행이여. 그나저나….”
창밖으로 보이는 황량한 풍경. 지진으로 초토화된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는 갑자기 대뜸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이게 뭔 꼴이여. 일본 가서 도미 회나 실컷 먹을라 했는디, 오자마자 지진에 난리에.”
“그러니까 그냥 한국에 계시라고 한 건데… 그냥 이쯤 되면 다 팔자다 생각하고 저랑 같이 수습이나 하시죠.”
“수습? 뭔 수습?”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되는 듯해 보이는 김원철 아저씨.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한번 거하게 지나간 지진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났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 터.
그러나…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높은 언덕배기에 차를 세운 나는 손가락을 들어 해안가를 가리켰다. 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파도를.
“저 수습이요. 저게 다 지나간 후에 말입니다.”
“그건 또 뭔 말인지… 으힉!”
파도.
비유적 표현이 아닌 진짜 파도.
살면서. 아니, 어디 영상 매체에서라도 저런 집채만 한 크기의 파도는 처음 본다.
아니, 사실 ‘집채만 한’이라는 표현도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지금 다가오는 쓰나미는… 어지간한 10층짜리 빌딩 높이만큼 높고, 그마저도 병풍처럼 드넓은 폭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저… 저, 저거. 영화 CG 아니지?”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저게 원자력 발전소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 겨?”
“어떻게 되긴요. 당연히 전세계급 재앙의 끝이 뭔지 오늘 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물론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통째로 박아도 버티는 원전이니만큼, 붕괴되거나 하지는 않을 터.
그러나, 분명 지하의 발전 설비는 들이닥친 바닷물로 침수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원자로의 노심 냉각을 통제하는, 모든 안전설비까지 전부.
“지금부터 그 꼴 나는 거 안 보려고 여기서 이러는 거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데에도, 그 위용이 압도적인 쓰나미.
푸른 물결 위 하얀 거품을 뿜어대며 들이닥치는 쓰나미는, 어느새 해안가를 노크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시작했네요. 쓰나미가 빠져나가면 그때 바로 작전 시작입니다. 장갑차에, 로봇 팔 조종 기술자까지.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어… 회장님아, 그런데 문제가 있어야.”
이론상 완벽했던 계획.
그러나, 세상엔 별의별 변수가 다 있는 법이다.
난감한 듯 뒤통수를 벅벅 긁던 김원철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뒷좌석을 가리켰다.
눈이 반쯤 뒤집힌 채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는 백인 기술자 아저씨의 모습을.
“What? Are you fucking mad? I… I can`t do that! I never go there, never!”
“그… 요 코쟁이 양반이 때려죽여도 안 간다는디.”
아예 엑스(X)자로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아래로 내린 채 눈을 감고 있는 기술자.
공항에서부터 뭔가 상태가 영 안 좋다 싶더니만, 이건 숫제 못 써먹을 정도다.
“일당 10만 달러 더 준다고 해 보세요. 그래도 돈 앞에서 무너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자기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디, 하아… 코쟁이들은 이게 문제여. 근성이 없어야.”
진짜 문제다.
근성이고 뭐고… 일단 조종할 사람이 없게 생겼으니까.
* * * *
일본 도쿄, 총리대신 관저.
옷조차 갈아입을 새도 없는 모양이었다. 흰색 유카타 소매에 먹물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으나,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 총리대신.
그는 관저 지하에 연결된 벙커로 이동하면서 내각 정보실장의 보고를 받았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도호쿠 지방 전역이 지진으로 붕괴되었습니다.”
정보실장이 꺼낸 태블릿 PC. 그 안에는 참사 현장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수수깡처럼 부러진 전신주. 종잇장처럼 구겨진 주택.
금 간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자동차 수백여 대가 질서를 잃고 어지러이 얽혀 있었다.
얼굴을 찌푸린 총리대신이 정보실장에게 물었다.
“기간 시설이야 진작에 초토화되었을 것이고, 가장 우려되는 것은… 후쿠시마 쪽일 터. 원자력 발전소는 어떻습니까?”
“일단 내진 설계는 완벽합니다. 그래서 초대형 지진 자체에는 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진짜 문제는.”
차마 자기 입으로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듯, 주저하는 정보실장.
눈을 질끈 감은 후에야, 그는 어렵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후속타로 올 쓰나미. 그게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쓰나미라… 기상청에서는 뭐라고 했다지요? 도쿄전력 쪽과 연락은 되고 있고?”
“기상청에서는 최대 15m급 쓰나미가 온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도쿄전력 쪽은… 하아.”
15m라는 거대한 쓰나미 규모에 놀란 총리대신. 그러나 놀랄 일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나까무라 사장, 전혀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혹시 모를 재난이 터지면, 총지휘를 맡아야 할 나까무라 사장의 부재.
물론 그는 지금 이 순간도 술에 절어 꿈나라를 거닐고 있었다. 워낙 책임감 자체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이틀 전에 후쿠시마 발전소에 갔다는 것 이후로 소식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골치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미간을 세게 집는 정보실장.
외교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자의 이름을 말했다.
“탄약그룹 한서준 회장. 그 사람도 지금 후쿠시마에 있지 않습니까.”
“그랬었지요….”
지하벙커에 도착한 총리대신.
장관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총리는 컵에 든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후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미쳐 돌아가고 있군. 그나저나.”
물을 마셔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갈증.
평생 정치판에서 직감을 갈고 닦은 자의 감각 때문일까? 하필이면 지금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
먹물 묻은 손으로 유리잔을 매만지며, 총리대신은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온 뒷말을 덧붙였다.
“한서준, 그 친구는 꼭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것 같단 말이지. 물론… 이건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