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재앙은 쓰나미처럼 다가와서(6)
“도대체가 관료들은 지금 뭣들 하는 겁니까! 아직도 재난 통제 보고가 안 올라오고 있다니요?”
쿵, 주먹으로 나무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총리대신 공관을 가득 채웠다.
평소 고요함과 차분함이라는 모습에서 벗어나, 터져 나오는 분노를 감추지 않는 총리대신.
잔뜩 날이 선 그 모습에 자민당 간사장은 주눅 든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로 권한 충돌 때문에… 일종의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유례가 없는 대형 사고이다 보니….”
“말 같잖은 소리! 지금 상황에서 무슨!”
보신주의에 절어 있는 관료들.
그저 소극적인 보신주의라면 또 모를까, 그것이 적극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발생하는 밥그릇 싸움.
그 앞에서 사고 수습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여는 총리대신.
“관료들 목줄을 세게 당깁시다. 숨통이 턱턱 막히면 말을 듣겠지.”
“총리대신 각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가네야마 그 야쿠자 놈에게 얻어낸 상납 영상, 지금 사용합시다. 퍼지고 싶지 않거든 무조건 내각 명령에 복종하라고 하십시오.”
정치적으로 중대한 순간에 쓰기 위해 아껴 두었던 그 영상.
총리대신은 바로 지금이 칼을 뽑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경찰이든 소방이든 철밥통은 없습니다. 뒷수습 똑바로 못하는 순간 정권하고 같이 나락으로 가는 거라고 덧붙이는 것 잊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총리대신 각하.”
“아, 그리고. 하나 더.”
경찰, 소방과 함께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주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 총리대신의 입에서 그자의 이름이 나왔다.
“도쿄전력의 나까무라 사장은 아예 연락도 안 된다지요? 후쿠시마에서 사고에 휘말린 것 아닙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저희 쪽 소식통 정보로는, 어제 술을 과하게 마셔서 못 일어나고 있다고….”
“이런 한심한 작자를 보았나! 비상 상황에 이 무슨 추태인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총리대신.
짧게 한숨을 토해낸 그는 자민당 간사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예 이참에 아랫사람들 단도리를 거하게 치려는 것처럼.
“당장 책임을 묻고 엄히 조치하도록 하세요. 술에 절어 있다는 게 사실이면, 반드시 책임을 묻게 할 겁니다. 무조건!”
* * * *
“옘병할, 옘병할, 옘병할…!”
그리고, 여기 단도리의 대상이 된 아랫사람 1호.
해가 환하게 뜨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나까무라 사장.
휴대전화에 산처럼 쌓인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확인한 그는, 숙취고 나발이고 일단 정신이 번쩍 든 채로 식은땀부터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인생 최대의 위기다…! 일단 침착해야 해! 대일본제국의 사나이 나까무라, 어서 야마토 정신으로 생각해라! 흐압!”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며 정신 무장에 나서는 나까무라 사장.
깨우침을 얻겠다며 냉장고 안 얼음물을 머리에 뒤집어쓴 그는, 정신이 들기는 한 모양인지 그럴싸한 대응책을 생각해 냈다.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은 오직 보신(保身)뿐이지. 일단 책임은 남에게 돌린다. 화살받이로 쓸 적당한 놈이….”
화살받이.
여론의 비난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쏟아지게 된다면, 일단은 살 수 있다. 차후 기회를 봐서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는 것이 이치니까.
“와타나베 그놈 하나로는 좀 모자른데… 좀 더 사이즈 크고 적당한 놈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가장 만만한 버림 패로 적당하다 여긴 대상, 와타나베 발전소장.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부하직원 꼬리 자르기 그림으로 보인다면, 분명 후폭풍이 불어닥칠 터.
어제 먹다 남은 마른안주를 씹으며 머리를 돌리는 나까무라 사장. 그의 고뇌는 요정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손님, 편히 쉬셨는지요?”
“크흠, 아, 그래. 계산은 어떻게 하면 되지?”
“이미 한서준 회장님이라는 분께서 전부 결제하고 가셨습니다.”
“한서준…? 그 조선 놈이 돈을 다 내고 갔다고?”
접대를 받는 자가 돈을 내고 간 기이한 상황.
그러나, 나까무라 사장이 그런 것에 고마움을 느낄 리가.
“그래, 그렇지! 바로 그놈이야!”
그의 머릿속에는 오히려 다른 쪽 감정의 스위치가 눌러졌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 부스러질, 그럴듯한 방패막이에 대한 애도 비슷한 감정이.
휴대전화를 꺼내어 비서에게 전화를 건 나까무라 사장.
“어, 나다. 돌아가는 상황은 좀 어떤가?”
-아이고, 사장님. 지금 위아래로 싹 다 난리입니다! 사장님 어디 가셨냐고 다들 난리예요! 심지어 총리대신 직속 비서실까지도!
“윽… 총, 총리대신이?”
총리대신까지 나섰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잘못하면 직무유기로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까.
“크흠, 시끄럽다! 경거망동을 멈추고 침착하도록! 자네는 무슨 호들갑을 이리 떨어대!”
-예…?
“내 적절한 방법을 찾았다. 발전소 근처로 갈 테니, 기자회견이나 잡아 둬!”
거센 고함을 내지름과 함께 끊긴 통화.
까만 액정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며, 나까무라 사장은 결의가 담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우, 옘병할. 일단 재난이고 뒷수습이고 나발이고… 이대로 책임 뒤집어쓰는 건 안 돼. 나는 무조건 살아남아야겠다.”
* * * *
“참으로, 참으로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참담한 현실입니까!”
지진으로 황폐해진 후쿠시마. 그나마 멀쩡한 시청 건물 앞에서, 나까무라 사장은 기자들에게 일장 연설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쏟아지는 질문들.
“질문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서너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발전소 내의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몇 개의 질문을 귓등으로 흘리고, 자기가 원하는 질문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나까무라 사장.
“쓰나미 이후 원자로 붕괴 위험이 있다고 하는데요, 나까무라 사장님께서는 이번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 있다고 보십니까?”
책임.
그 오묘한 두 단어가 기자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애써 웃음을 감춘 채, 침통함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도쿄전력의 사장으로서 저는 최선을 다해 수습에 나섰습니다.”
뻔뻔한 헛소리에 술렁이는 기자들의 모습.
“이봐, 저 말 진짜야? 어째 믿음이 영….”
“에이, 나까무라 사장, 저 양반이 무슨 수습이야. 딱 남 탓하기 전에 밑밥 깔면서 시동부터 거는 거지.”
살짝 비치는 악어의 눈물.
손수건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눈물을 훔친 나까무라 사장. 그는 기자들의 잡담 내용을 그대로 실현하듯, 갑자기 주먹을 쥐고는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휘체계가 발동하기 바로 전! 갑자기 돌발행동을 한 자들 탓에 저는 쉬이 추가 조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기자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기가 막히지?”
“히야… 아주 과학이 따로 없네. 진짜 저건 보신주의의 화신이여.”
그런 기자들의 목소리 따위야 가볍게 무시한 나까무라 사장. 그의 입에서 억울한 두 총알받이 두 명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발전소장 와타나베 스고이! 그리고… 탄약그룹 회장 한서준! 어설픈 영웅 심리에 절어 있는 두 사고뭉치를 적극 규탄한다! 규탄한다!”
아예 일장기가 그려진 붉은 머리띠를 동여매기 시작한 보신주의의 화신.
“우웩.”
“더 들을 것도 없어. 저거 계속 남 탓만 할 양반이니까… 어라?”
그 모습에 아예 등을 돌린 기자들.
그런데… 운명의 장난 같은 걸까?
그곳에서 빠져나와 갈 곳이 없어진 기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휴대전화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얼마 전, 가네야마라는 야쿠자 산하의 언론사로 이직했다던 선배의 전화가.
“어, 선배. 무슨 일이야? 히나 공주? 여기 후쿠시마에? 아니, 잠깐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쭈뼛 솟아오른 기자의 더듬이.
그 더듬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뒤이은 기자 선배의 말에서, 분명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특종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히나 공주가… 와타나베 발전소장이랑 같이 있다고? 탄약그룹 쪽 사람들까지 전부?”
* * * *
그 시각, 후쿠시마 발전소 바로 뒤편.
서양인 기술자의 멱살을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히나 공주의 모습.
“미쳤어, 미쳤어! 거길 자기가 왜 들어가는데! 무슨 만화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회좡뉨이 자기가 가겠따고 해쒀요. 회좡뉨은 진짜 사나이.”
“하! 그렇다고 그걸 그냥 들여보내요? 이… 받은 돈값도 못 하는 코쟁이 양반아!”
“쥭기 싫따. 아픈 것또 싫따. 방사능 진짜 싫따.”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말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김원철의 중재가 있은 후에야, 그들의 육체적 대화는 어찌어찌 종료될 수 있었다.
“하이고, 좀 있어 봐요. 괜히 정신 사납다. 거, 공주님아. 일단은 요 코쟁이가 마음에는 안 들어도.”
바람을 잔뜩 넣어 가득 부풀어 오른 히나 공주의 양 볼.
손가락으로 그 오동통한 볼을 찔러 바람부터 뺀 김원철은 연신 그녀를 타일렀다.
“지금은 좀 냅둬 보자고. 그래야 아바타로 연결된 우리 회장님이… 조금이라도 집중할 수 있을 거 아니여.”
“…입만 산 대머리.”
“뭐시라고라? 요 밤톨만 한 꼬맹이가…!”
참가 선수가 바뀐, 육체의 대화 2라운드.
대머리 vs. 철부지. 숨 막히는 전투. 하지만, 그 세기의 대결은 아쉽게도 유세나 보좌관의 호통 소리에 불발되고 말았다.
“조용히 좀 해요! 김 비서실장님도, 히나 공주님도 둘 다!”
“히잉….”
혼이 나 쭈그러든 두 사람.
유세나 보좌관의 손에 든 휴대전화에서는 탁한 기계음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이 어쩌면 사지(死地)임을 알면서도 묵묵히 들어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현재 1차 게이트 진입 완료. 와타나베 소장님, 화면상에 앞으로 진행 방향 쪽으로 특이사항 있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그대로 쭉 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2차 게이트가 나올 겁니다. 그다음이 원자로고요.”
-알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말씀드릴 테니 코쟁이 아저씨더러 딱 붙어 있으라고….
지진 때문에 생긴 잔해물 탓일까? 조금 헤매는 듯한 목소리.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런 콘크리트 잔해 따위가 아니었다.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 탓에 지직거리기 시작한 통신 신호.
-소장님, 이거… 통신이 조금… 입니까?
“한 회장님?”
-…인 것 같은데요. 아마도… 비상 작동을….
아슬아슬하게 지속되던 통화는 점점 그 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잡음이 심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들려온 굉음.
-쿠궁!
안쪽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 것일까? 쿵 소리와 함께 끊긴 신호.
긴장감으로 고요해진 바깥, 곧이어 정신이 든 유세나 보좌관의 목소리가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회장님…? 한서준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