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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85화 (185/300)

185화 재앙은 쓰나미처럼 다가와서(7)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원자력 발전소 안으로 이제 막 진입한 나.

-사막 같은 머리머리! 녹지화도 불가능한 대머리머리! 자라나지도 못하는 머리머리!

-흐미… 무슨 이런 왈가닥이 공주 타이틀씩이나 가지고 있는 겨. 내가 이걸 탄약그룹 차기 안주인으로 찜하다니. 미쳤지, 미쳤어.

휴대전화 너머로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들려오는 대머리 vs. 철부지. 그 숨 막히는 혼신의 전투.

처음 본 상황에서 저 정도까지 으르렁거리다니, 두 사람 전부 대단도 하다 싶다.

“둘이 무슨 개그하나? 이쯤 되면 그냥 즉석 콩트나 다름없는데… 아야!”

꽝, 습관처럼 고개를 가로젓다가 천장에 찧은 머리.

180cm에 가까운 키인 내가, 그보다 훨씬 작은 공간에 욱여넣어지다 보니 확실히 불편하긴 불편하다.

나는 쓰라린 머리를 쓰다듬지도 못한 채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장갑차 내부가 좁긴 어지간히도 좁네. 그나저나….”

심각한 내부 상황.

시뻘겋게 녹이 슨 철근 다발이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그 모습을 기괴하게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장갑차의 무한궤도가 아니었으면 진입 자체가 어려웠을 상황.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네. 나름 내진 설계가 되어있긴 했는데, 역시 쓰나미를 정통으로 맞아서인가?”

쿠궁, 잔해물을 짓밟으며 앞으로 전진해 가는 소형 장갑차.

창문도 없이 꽉 막힌 장갑차이기에, 나는 외부 카메라에 비치는 애매한 풍경을 보며 조금씩 속력을 높여나갔다.

“미리 한번 와봐서 다행이야. 역시 길을 익히고 안 익히고는 확 차이가 난다.”

그나마 와타나베 소장이 재난 발생 직전, 이곳을 견학하게끔 허락해 줘서 다행인 상황.

생각보다… 와타나베 소장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곳, 발전소 바로 뒤편에서 열린 마지막 회의 때, 기술적인 부분에서 내가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정도로.

그르렁거리는 궤도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때 있었던 회의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 그럼 속전속결로 처리합니다. 제가 발전소 내부로 들어가서, 로봇팔로 냉각수 공급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대재앙으로 번진 이유는 냉각수 공급 문제 때문이었다.

바닷물을 투입하면 원전을 영영 못 쓰게 되니, 시간을 질질 끌다가 결국 노심이 용융된 셈.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와타나베 소장. 그러나, 불현듯 고개를 쳐드는 불안감 때문인지, 그는 내게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냉각수 공급이 아예 기계적인 고장 때문에 안 되는 거라면요?’

‘그래서 이 로봇 팔이 있지 않습니까. 코쟁이 아저씨와 함께하는 아바타 놀이도 있는 거고요.’

사실… 와타나베 소장이 조금 불안한 부분을 이야기한 건 맞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달리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눅 든 모습을 보이면 사기만 떨어질 뿐.

강행해야 하는 순간에는 우직하게 가는 것이 맞는 법이다.

나는 소형 장갑차 앞쪽을 가리키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앞에 연결된 카메라는 여기 휴대전화 화면에 그대로 비칠 겁니다. 영상통화로요.’

‘흐음….’

‘그럼 여기 코쟁이 분이 저를 조종하는 거지요. 뭘 어떻게 움직여라, 무슨 선을 잘라다 붙여라 등등.’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나머지는… 그저 하늘에 맡길 뿐.

‘냉각수만 채우면 모든 게 다 해결됩니다. 절망적인 대재앙도, 후쿠시마 원전의 영구 폐쇄도. 전부 없던 일이 되겠지요.’

스스로 다짐하듯 내뱉었던 마지막 말.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모두를 뒤로한 채 이곳, 지옥의 초입으로 걸어 들어왔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해서일까?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입한 내부 시설. 나는 휴대전화에 대고 바깥에 현 상황을 알렸다.

“현재 1차 게이트 진입 완료. 와타나베 소장님, 화면상에 앞으로 진행 방향 쪽으로 특이사항 있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그대로 쭉 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2차 게이트가 나올 겁니다. 그다음이 원자로고요.

“이건가…? 윽!”

쿵, 갑자기 찾아온 거센 진동.

아무래도 위쪽에서 무언가 육중한 것이 장갑차 위로 떨어진 모양이다.

가장 취약했던, 후면부 장갑이 찌그러진 듯, 다리 쪽에 오는 압박.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방사능 수치가… 이거 단단히 미쳤네. 이 정도면 이미 냉각수는 다 떨어졌겠고, 자칫하다가는 원전이 통째로 망가지게 생겼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방사능. 장갑차 내부의 방사능 수치는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나마 보호복을 입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터.

거기에 더해서.

“소장님, 와타나베 소장님? 이거 통신이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그쪽도 좀 이상합니까?”

통신 두절.

고농도의 방사능은… 일반 휴대전화의 내부 반도체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다.

“아무래도 방사능 때문에 전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일반 영상통화는 힘들지 싶습니다. 비상 작동으로 전환토록 하겠습니다.”

-회장님? …인데 …입니까?

말소리가 파묻힐 만큼 지지직거리는 소리.

이를 대비한 비상 통신 장비를 연결하고, 부팅까지 기다리는 그 순간.

“아, 이제 다 끝났네. 연결이 잘 되었는지 테스트를… 어어?”

삐그덕, 끼익.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기괴한 소음.

무언가가 위에서 크게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충격이 내게 찾아왔다.

의식을 잃을 만큼 거대한 충격이.

* * * *

‘그런데 회짱뉨. 그 생각, 문제 있따.’

꿈인가…?

몽롱함 속에서 스멀스멀 생각나는, 마지막 작전 회의 때의 기억.

서양인 기술자, 속칭 코쟁이 양반은 그래도 나름 전문가 짬밥이 있긴 한 건지, 내게 우려의 의견을 표했었다.

‘방사능 쎄다. 통신 끊어지면 망한다. 진짜 망한다.’

‘다 계획이 있습니다. Plan B도 없이 준비하는 것은 바보짓이니까요.’

그래서 보닛을 열고 보인 우주선용 통신 기기.

대놓고 큼지막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과거의 유산을 본 코쟁이 양반은, 두 눈이 왕방울만 하게 변했다.

‘이거 완죤 구닥다리 유물!’

‘구닥다리라도 안정성은 확실합니다. 방사능 때문에 통신이 끊기지도 않죠. 문제는. 죄 흑백에 느려터지고 화질도 구리다는 거지만.’

‘되기만 한다묜야… 어찌어찌 지시는 가능하겠쥐만….’

‘그러니 잘 좀 부탁합니다. 아바타 놀이의 묘미는 조종사가 얼마나 잘났느냐에 달려있거든요.’

갑자기 찾아온 서늘한 고통.

몽롱하고 따듯했던 회상이 조금씩 옅어져 가자, 갑자기 현실의 냉랭함이 온몸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다시 돌아온 제정신.

“조종사 이전에 일단 아바타가 살아야 뭐든 하겠지. 쿨럭! 쿨럭!”

이거 아바타도 할 짓이 못 되나 보다.

갑자기 유세나 보좌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현직 조폭 주괘율에게 막말 폭탄을 던지라고 하지를 않나, 일국의 공주랑 검도 대결을 시키지를 않나.

아무래도 난 나쁜 고용주였나보다.

“내벽이 붕괴한 건가? 큰일 날 뻔했다. 아니지….”

어찌어찌 움직이는 몸뚱이와 어찌어찌 작동하는 장갑차 엔진. 로봇팔 자체도 큰 고장은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쓰러져 있던 동안 급격히 올라간 방사능 수치.

이제는 정말 위험하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장애를 입을 정도로.

“큰일 났다… 이래서야 보호복을 입어도 절대 오래 못 있는데.”

일단 빨리 일을 마치는 게 우선이다. 나는 비상 통신 장치에 대고 말을 꺼내었다.

“아, 아. 들리십니까? 와타나베 소장님, 코쟁이 아저씨?”

-이제 잘 들린다! 회짱뉨 아직 안 죽었나?

반가운 코쟁이 양반의 목소리.

이 양반 목소리가 기분 좋게 들릴 줄이야.

“내가 죽긴 왜 죽어요. 잠깐 문제가 생겼는데, 아무래도 빨리 처리하고 나가야겠습니다. Plan B, 지금부터 비상 통신 장치로 교신합니다.”

-Okay!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는 Plan B.

그러나, 2차 게이트를 넘어 원전 가장 깊숙한 곳으로 진입한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 이거 일 났네.”

거의 다 바닥을 보이는 냉각수.

시뻘겋게 달구어질 만큼 뜨거워진 원자로에서는, 장갑차 내부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와타나베 소장님? 냉각수 설비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위치 끄고 켜는 걸로는 안 될 것 같아요.”

-혹시 오른쪽 철제 상자 보이십니까? 그것부터 열어주십시오. 내부에 최대한 손상이 적게끔.

와타나베 소장의 지시와 코쟁이 아저씨의 조작 설명대로 철제 상자를 연 나.

-아아,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한 결함이네요. 그쪽 선이 엉켜있습니다. 보시면 전류 공급 선을 끊으시면… 어어?

“소장님?”

큰 문제 없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일.

그러나, 마지막 관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매서운 복병. 그건 바로.

-한 회장님, 혹시… 색깔 확인이 불가능할까요?

Plan B, 비상 통신 장치가 가진 최대 맹점. 그것은 바로.

-화면이 흑백이라… 붉은색 선을 이어 붙여야 합니다만….

* * * *

총리대신 전용 방탄 승용차 안.

자민당 간사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총리대신은 의자에 몸을 파묻고는 입을 열었다.

“매를 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꼭 집을 지켜야 할 때, 말을 듣지 않는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인 것이지요.”

가네야마로부터 가지고 온 영상으로 협박을 하자, 그제야 밥그릇 싸움을 멈춘 관료들.

이제야 비로소 컨트롤 타워의 체계가 잡힌 모양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총리대신 각하. 아직 엉덩이에 불이 붙지도 않았건만, 그저 몽둥이를 들어 올리자마자 바로 기강이 잡히더군요.”

“검은 머리 짐승이 다 그렇지요. 그나저나.”

살짝 커튼을 젖혀 본 바깥 풍경.

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후쿠시마 시가지의 모습은,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후우… 폐허도 이런 폐허가 없군요.”

“송구합니다, 총리대신 각하.”

“천재지변이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발생보다 중요한 것은 사후처리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숨을 내쉬는 총리대신.

그는 답답한 듯, 천천히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본래대로라면 컨트롤 타워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그자는 바로.

“도쿄전력의 나까무라 사장. 지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지요?”

“아, 예. 마침 준비해 두라 지시했습니다. 이봐, 그거 가지고 오게.”

곧바로 테블릿 PC를 가지고 온 비서관.

화면 속에는 후쿠시마 시청 앞에서 얼굴에 철판을 깐 채 헛소리를 늘어놓는 나까무라 사장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와타나베 소장 그 친구는, 하여간 사람이 맛탱이가 갔어요! 괜히 유배지에 처박혀 사는 게 아니다 이거야!

전국적으로 송출되는 생방송.

총리대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추하군.”

“사람이 좀… 그렇습니다. 옹졸하지요.”

“일단 뭐라 하는지 계속 들어나 봅시다.”

아예 록스타라도 되는 듯, 마이크를 꼭 쥐고는 부르짖는 나까무라 사장.

그의 남 탓 대상 2호기는 자국민도 아닌, 외국의 재벌 회장이었다.

-그러면! 한서준이는 왜 굳이 원자력 발전소 안에 들어갔는가? 이게 다 객기요, 객기! 끼고 사는 여자들이 딱 보고 있으니까 말이지!

자칫 히나 공주와 덴노 황실에 대한 불경 비슷한 것으로 연관될 수도 있는 발언.

자칫 정치적 문제로 번질 수 있기에, 총리대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어… 숫제 발악을 하는구먼.”

“크흠, 빨리 중단하라 이르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저거 혹시…?”

화면을 끄려는 간사장을 제지한 총리대신.

마침 해당 채널에서 장면이 바뀌고 앵커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앵커 뒤쪽 배경 화면으로 쓰인 영상에서 보이는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

“히나 공주? 공주가 후쿠시마 원전 앞에 있다고? 어째서?”

어수선해진 스튜디오 분위기.

자기들끼리 내부 조율을 마쳤는지, 방송국 사람 몇몇이 화면에 보이던 중, 마침내 앵커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쿄 TV 단독 보도입니다. 후쿠시마 발전소 원자로 과열을 막기 위해 탄약그룹 한서준 회장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내부로 들어간 장갑차 화면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는데요, 일단 영상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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