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재앙은 쓰나미처럼 다가와서(8)
“진짜다! 저기 히나 공주가 있다!”
후쿠시마 발전소 앞, 선배 기자의 말을 듣고는 카메라를 들고 헐레벌떡 찾아간 방송국 취재진.
나까무라 사장의 헛소리를 듣다 와서일까?
자그마한 박격포만 한 카메라가 무겁지도 않은지, 그들은 취재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어… 그런데, 저기 같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가만있자, 저기 가운데 양반은 와타나베 소장? 아니, 저 사람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지금 자기 상사가 뒷담화 까는 줄도 모르나?”
시청 현장의 동료 기자들에게 듣기로는, 벌써 한 시간째 연설을 이어나간다는 나까무라 사장.
일단, 화면을 바라보는 와타나베 소장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 보였기에, 기자들은 근처에 선 히나 공주에게 먼저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을 시작했다.
“저기, 히나 공주님? 저희 ‘도쿄핫 저널’입니다만…?”
“아, 정신없으니까 좀 가만히 입 닫고 있어 봐요. 이 중요한 타이밍에 나불거릴 때야?”
시작과 동시에 잘려버린 취재.
마치 잡상인을 대하듯 한쪽 손을 털어내는 그녀의 반응에, 기자들은 한 발자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달리 할 것이 없기에, 아까 전 넘겼던 화면으로 시선을 옮긴 그들.
“이게 뭔 상황인지… 어어? 이게 뭐야!”
고작 3.5인치 남짓의 작은 휴대전화 화면 안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내부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앵글이 연속으로 바뀌는 모습이.
“원전 내부는 방사능 범벅일 텐데, 저기에 사람이 들어갔다고? 도대체 누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참을 아무런 소리 없이 송출되던 화면에서 흘러나온, 한 남성의 목소리.
-어우, 죽겠네. 들리십니까?
“한서준 회장님!”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이 탁 풀려버리자, 너나 할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이 터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살아계셨어.”
“저기… 누가 상황 설명 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기자들을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 김원철 비서실장.
“에헤이, 방해하지 말래두. 기자들이쇼?”
“예, 그렇습니다만.”
“흠, 마침 잘됐네. 혼자 그렇게 용을 쓰고서 누가 알아주지도 못하면 뭔 소용이여.”
뒤이은 간략한 설명.
가느다란 수수깡에 지점토를 붙이듯, 하나하나 채워져 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기자들의 입은 점점 벌어졌다.
결국, 터지고야 만 감탄사.
“한서준! 탄약그룹 회장이 직접 안에 들어갔다는 겁니까? 이럴 수가…!”
“나도 처음 들어간다 했을 때 그 반응이었수다.”
“아니, 재벌가의 수장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그래서 말이요, 기자 양반. 내가 좋은 생각이 있는디.”
흐흐흐,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뒤통수를 살짝 긁는 김원철.
그는 카메라를 든 기자의 귓바퀴에 대고 무어라 말 한마디를 속삭였다.
“이거. 지금 나오는 라이브 영상, 생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겠수? 일본 전국 방송에.”
* * * *
“빨간색 선이라.”
빨간색 선을 이어 붙이는 간단한 작업.
그러나, 이 간단한 작업은 실질적 색맹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와타나베 소장님, 이거… 무슨 색깔 선인지 흑백화면으로만 봐서는 모르는 겁니까?”
-죄송하게도… 그렇습니다. 따로 표시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저희 쪽 관리 상태가 영 부실했습니다.
“아니요. 지금 잘잘못을 따지자는 건 아니고. 진짜 문제는.”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 책임을 따지기는 무슨. 그런 건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게 닥친 일을 해결하는 것부터가 우선이니까.
빨간색 선. 그 하찮고 보잘것없는 짤막한 전선을 확인하는 것.
아주 간단한 작업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목숨을 걸고서.
“장갑차에서… 하차를 하느냐 마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잠시 찾아온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격한 반대를 부르짖는 와타나베 소장.
-아니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지금 원자로 상황을 보니까 방사능 유출이 너무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죠. 마커 펜으로 표시를 하고 로봇팔로 서둘러 이어붙이는 것.”
삐, 삐, 소리를 내며 또다시 울리는 방사능 측정기.
나는 장갑 낀 손바닥으로 기계음이 나오는 구멍을 덮어버리고는, 결심한 듯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바로 퇴각. 그것 말고 달리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건, 이건 정말 아닙니다!
“더 늦으면 이것조차 못 합니다. 저는 일본 재난 컨트롤 타워 수뇌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알고 있고요.”
보신주의와 밥그릇 싸움에 절어 있는 일본 관료들.
아마 내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그리고 아예 사람이든 기계든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방사능 유출이 심해진다면.
그들은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바닷물을 채워 넣어 원전을 영영 못 쓰게 하는 결정조차도.
왜냐하면… 역사가 그랬으니까.
“시간은… 제 편이. 아니, 이곳 사람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지금 당장.”
결심을 마치고 내뱉은 내 마지막 말. 통신 장비 너머에는 고요한 침묵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무언가 계산식을 세우는 듯, 몇 차례 종이 위에 펜을 거칠게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린 후,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 와타나베 소장.
-방사능 보호복은… 최소한의 보호는 가능합니다. 지금 농도로 보았을 때.
한숨 소리와 함께 이어진 그의 말.
-10초. 단 10초 안에 표시를 끝내고, 다시 장갑차 안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물론 최대한 빨리 원전 밖으로 빠져나오셔야 하고요. 그렇기에.
“그렇기에…?”
-저는… 절대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아니, 반대로 말리고 싶습니다, 회장님.
본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업(業)을 다른 이가 대신 지고 있기에, 축 처질 수밖에 없는 그의 모습.
약간의 흐느끼는 소리는 주변 이들을 감정적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뒤이어 들리는 히나 공주와 김원철 아저씨의 외침.
-어서 빠져나와! 약혼녀 과부 만들 셈이야?
-하이고, 회장님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히나 공주 말이 맞어. 무조건 포기하고 나와야 한다니까. 너무 위험해.
다 한마디씩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유세나 보좌관과 코쟁이 아저씨 또한 다급함이 묻은 목청으로 부르짖듯이 소리쳤으니까.
-회장님… 제발 나와주세요. 이건, 이건 아니예요.
-회짱뉨은 할 거 다 했따! 죽을 수도 있따! 이건 전문가 의견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나뿐인 목숨, 거기에 회귀까지 해서 돌아온 목숨이니, 목숨 귀한 것쯤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패를 던질 수 있는 때는 지금뿐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당면한 위험성과 되돌아오는 성과. 나는 머릿속 양팔 저울 위에 그 두 가지를 올리어 생각했다.
결코, 감정적인 판단이 아닌, 이성적인 합리성만으로, 어떤 선택이 더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가야 할 길이 눈에 보이는데,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이제는 내려야만 하는 결정.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심호흡과 함께 모두에게 대답을 내뱉었다.
“구급차 정도는 미리 불러 주십시오. 모든 일을 끝내고, 최대한 빠르게 다시 돌아올 테니까.”
* * * *
“그래서! 한서준이라는 자가 뭐 하는 사람인가!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여기 찌르고 저기 찌르고… 아주 천방지축이다, 이거요!”
“사장님, 나까무라 사장님. 잠시만 이것 좀….”
한참을 이어지던 일장 연설. 아니, 보신주의자의 헛소리.
마침 그 지루함에 기자들 또한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려는 차, 도쿄전력 비서실 직원 하나가 그의 뒤로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었다.
“사장님,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잠시만요.”
“뭐여. 이놈아. 지금 기자들 다 있는데.”
연단 아래로 내려간 두 사람.
혹여나 누가 들을세라, 고개를 가로저어 주변을 확인한 비서실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하이고, 지금 총리대신께서 후쿠시마에 오셨습니다. 지금 바로 사장님을 뵙고 싶으시답니다.”
“뭐랏!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냐!”
-짝!
화풀이용으로 때린 싸대기.
그러고는,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서 황급히 떠나는 나까무라 사장.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억울하게 맞은 비서실 직원은 그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썩을 놈이, 말도 못 붙이게 쪼아 놓고서. 퉷! 너도 똑같이 좀 당해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총리대신이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달려가는 나까무라 사장.
“흐흐흐. 이건 기회가 분명하다. 내 연설을 듣고 각하께서 감동하신 것이 틀림없어.”
뭔가 이상한 기대를 품은 그는 알지 못했다.
자기가 화풀이용으로 때렸던 그 싸대기.
그것보다 훨씬 더 매섭고 아픈 싸대기를 자기도 맞게 될 줄을.
“아이고, 총리대신 각하! 도쿄전력의 나까무라가 왔습니다! 하하하,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짝!
“어어… 각하?”
“미친놈.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것인가!”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별에 할 말을 잃은 나까무라 사장.
곧바로 총리대신의 냉기 서린 힐난이 뒤를 이었다.
“감히 일본 국민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홀로 나선 은인을 모욕해? 그것도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닥쳐라! 자, 똑똑히 봐 둬라. 네놈 어깨에 놓인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자가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더 있을 가치도 없다는 듯, 자리를 떠난 총리대신.
입만 벌리고 있는 나까무라 사장에게 총리실 보좌진은 말없이 태블릿 PC 하나를 내밀었다.
현재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내부에서… 고군분투 중인 한 남자의 모습.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장갑차 바깥으로 달려 나가는 그 모습은, 일본의 모든 방송에서 송출되고 있었다.
“아아…!”
이제야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깨닫게 된 비겁자의 망연자실한 모습.
그런 것 따위에 더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총리대신은 옆에 선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시청장, 소방청장.”
“예, 총리대신 각하!”
부적절한 상납 영상으로 목줄을 틀어쥐고 나서야 말을 듣기 시작한 두 청장.
이제는 말 잘 듣는 개가 된 그들에게 총리대신은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 바로 후쿠시마 원전 앞에 가능한 모든 지원에 나서십시오. 최악의 상황까지도 전부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서.”
“예, 각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시 거처로 쓰고 있는 텐트.
창문도 없는 그곳에서는, 쓰나미로 반파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황량한 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총리대신.
“한서준 회장… 그 짧은 기간 동안 정말 여러 차례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군. 그저 단순한 장사치로 알았건만, 이건 숫제.”
감탄의 한숨을 내쉬며, 그는 생각나지 않았던 말을 내뱉었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단어 하나를.
“영웅… 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