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사이비 종교(1)
광주 인근, 전남의 한 대형 과수원.
완연한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과수원에는 푸르른 복숭아나무가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목가적인 농촌의 풍경. 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누군가가 길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예언가 어머님이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어머님! 주님의 품 안에서 늘 거룩하소서!”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고는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는 광신도들.
<주님의 동산>, 그곳에 몸과 마음이 모두 속박된 이들에게, 교주 박금덕은 신이나 다름없는 자였다.
물론 그런 이들의 찬미 따위 하찮다는 듯, 그녀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지만.
“전도사, 으뜸 신도는 언제 온다고 했지? 히나 공주 때문에 일정 빼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내일 저녁에 내려온답니다. 작고한 그분 모친이 전남 분이셔서, 기일 핑계로 하루 날을 비웠다고 합니다.”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적이 드문 뒤뜰로 발걸음을 옮기는 박금덕.
이제 막 꽃이 핀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던 그녀는, 손가락으로 분홍색 꽃잎을 간지럽히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아주 좋아. 일본 건만 잘 풀린다면… 이 지긋지긋한 시골에서 가축들 부리는 것도 다 끝이야. 아랫것들에게 맡겨야겠지.”
흠칫 놀라 이리저리 주위를 돌아보는 전도사.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을 토해냈다.
“예언가 어머님, 부디 주의하십시오. 자칫 신도 중 누구라도 듣게 된다면….”
“가축 놈들이야 농사짓느라 못 들을 것 아니냐. 너도 이럴 땐 굳이 예언가 어머님이니 하는 헛소리로 장단 맞출 필요가 없고.”
박금덕의 사촌 동생인 전도사.
그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본심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세계교 쪽 선례로 보았을 때, 그쪽 수익은 한국 시장의 최소 10배. 아니, 100배까지도 잠재력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친 사이비 종교 세계교.
박금덕과 전도사, 그들의 목표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던 신앙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세뇌된 신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굴러가는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일 뿐.
“그렇지. 그렇게… 원화, 엔화 가리지 않고 머저리들이 바치는 현금다발을 쓸어 모으게 되면.”
때마침 복숭아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
이제는 생각할 힘을 잃게 된 신도들의 고됨이 바람을 타고 박금덕의 뺨을 스쳤다.
탐욕의 미소를 입에 걸며, 그녀는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혹시 모르지. 나도 세계교처럼 어지간한 탄약그룹 사이즈만 한 재벌 그룹 오너가 될 수 있을지도.”
“누님께서 계획하는 왕국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다시 침착한 어투로 돌아온 전도사. 그는 손을 들어 신도들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가축들에게 주기적으로 세뇌를 해야 하고요.”
“흐음….”
“요사이 통제가 느슨해지는 조짐이 보입니다만.”
“작년 통틀어 이탈자가 몇 명이었지?”
“스무 명이 조금 넘습니다. 지금도 몇몇 흔들리는 자들이 눈에 보이고요.”
제아무리 행동·정보·통신·감정을 모두 통제한다 한들, 세뇌 속에서도 빼꼼히 고개를 드는 인간의 이성.
신도가 곧 돈줄이요 노동력이자 영업사원인 이들에게, 이탈자의 존재는 치명적인 법.
“지금 하는 통성기도로는 부족하다 이건가. 기도 때 피우는 연기에 약을 좀 더 타야 하나?”
“워낙 환각제 성분이 독해서… 통성기도 끝나면, 사나흘은 그대로 늘어져 쉬어야 하는 게 문제입니다.”
“결국,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건데.”
불법 마약 사용까지 서슴지 않는 이들이었으나, 점점 한계에 봉착한 상황.
가만히 고개를 기울여 고민하는 박금덕. 곧바로,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 아름다운 복숭아꽃과 대비되는, 사악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지하 감옥에 있는 ‘제물’들 말이야, 조금 일정을 앞당기는 게 어떻겠어?”
“예언자 어머니 탄신절 때 쓰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탄신절은 11월이야. 지금 상황에서 일곱 달이나 어떻게 기다려?”
무언가 소름이 잔뜩 끼칠 만큼 무서운 말을 주고받는 그들은 구석진 곳의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괴기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녹슨 철문. 지하로 들어가는 숨겨진 출입구의 콘크리트 계단을 걸어 들어가자, 어두컴컴하고 습한 비밀의 공간이 그들을 반겼다.
“히나 공주. 그 계집애 세뇌가 끝나면 제를 크게 올리자고. 우리 <주님의 동산> 일본 진출을 크게 선언하면서 말이지.”
형용하기 힘든 악취가 풍겨 나오는, 쇠창살 안쪽의 감옥 안.
“읍! 읍읍읍…!”
그곳에는… 손발이 묶인 채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는 외국인 두 명이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교리상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자들이니 교단의 적이지. 이들의 목숨으로 결속을 다진다. 그날까지 제물 관리 잘하고.”
“예, 누님. 명심하겠습니다.”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내며 맞물려지는 녹슨 경첩.
뚜벅, 뚜벅. 콘크리트 계단 위쪽으로 올라가는 발소리 너머로, 이스라엘 출신 외국인들의 절규만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 * * *
사람이든 기업이든 뭔가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작명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남이 지은 이름을 보고서 평가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법.
더군다나, 그 창조자가 우리 엄마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고.
“핵무기 엔터테인먼트…?”
“어때? 우리 아들이 생각했을 때도 제법 괜찮은 이름이지 않아?”
그, 괜찮지… 않습니다, 어머님.
다른 좋은 이름들 다 놔두고, 하필이면 연예기획사 이름이 핵무기라뇨.
물론 우리 탄약그룹 이름도 썩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하다못해 방산 기업 정체성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위와 같은 내용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말들을 꾹꾹 수납함에 눌러 담으며, 나는 조심스레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이거 회사 이름 상태가 좀 그런데… 혹시 다른 생각해둔 거라도 없을까나?”
“어머, 얘! 핵무기 엔터가 뭐 어때서 그러니?”
아니, 뭐가 좀 어떻긴 합니다, 어머님.
심지어 히나 공주 때문에 만든 회사인데, 핵무기는 좀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이를테면 ‘리틀 보이’라든지 ‘팻 맨’이라든지… 뭔가 트라우마가 될 법한 것들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까.
“차라리 탄약 엔터테인먼트라면 또 모를까. 핵무기는 너무 괴팍스럽지 않을까요…?”
“얘는, 괜히 탄약 딱지가 붙으면 재벌 그룹이 문화산업까지 대놓고 손 뻗는다고 사람들이 욕할 거 아니니.”
차라리 욕을 좀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그 순간, 뒤이은 엄마의 말 한마디.
내 가장 약한 곳을 훅 찌르고 들어온 그 말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야 말았다.
“물론 그러면서도 엄마는 마음이 좀 그랬어.”
“응…?”
“기왕에 우리 아들이 엄마 소일거리라도 하라고 만들어준 회사인데 그룹하고 너무 연관 없어 보이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나온 게 핵무기야.”
감성에 호소하는 엄마.
이젠… 모르겠다.
하기야, 어차피 수익을 바라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다. 결국, 팔랑거리는 백기를 들어 올린 나.
“…엄마 뜻대로 하세요.”
“역시 우리 아들. 보는 눈이 있어! 그래서 말인데, 이거 한 번 봐봐.”
“이건?”
엄마는 내게 엔터 쪽 사업계획서를 좀 작성해 보았다며 USB 하나를 건네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열어본 파일.
그러나… 거기에는 생각 외의 혜안이 숨어 있었다.
“잠깐만. 이거, 엄마가 기획한 거예요? 직접?”
“엄마도 나름 그쪽 밥깨나 먹은 몸 아니겠니. 후배들하고 업계 종사자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대충 돌아가는 판이 보이더라고.”
회귀 전, 연예기획사에 대규모로 투자금을 뿌려 지분을 얻고 자회사로 만들었던 모 대기업의 전략.
그것과 거의 흡사한 전략이… 엄마의 USB 안에는 다소 어설프고 거칠지언정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와버린 감탄사.
“미래에서 오셨나…?”
“얘는 농담도 짓궂어. 아무튼, 이건 미래에 이랬으면 좋겠다, 정도의 개념이고. 일단은 걸그룹 사업에 주력해야지.”
아예 제대로 마음을 먹고 온 듯한 엄마. 회사 설립도 이루어지지 않았건만, 세부적인 사항까지 다 틀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회사 인재풀 구하는 것도 순조롭고. 제일 중요한 히나 공주도 아예 초장부터 딱 잡아 두었어.”
“그 여자, 서울 맛집 탐방 간다고 신나 있더만.”
“걸그룹 할 애가 무슨 맛집이니? 이제부터 허락되는 맛은 닭가슴살, 현미밥, 샐러드 이 세 개뿐이야. 최소 석 달 동안 외출 금지고.”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엄마의 엄정 조치. 이게 말괄량이 길들이기지.
앞으로 데뷔까지 그녀에게 남은 것은 폐관수련뿐이다. 물론 군만두 같은 고칼로리 음식 따위는 없고.
“뭐, 일단 이 정도면 히나 공주는 별문제 없겠네.”
엄마를 보내고 의자에 깊게 몸을 묻은 나. 간만에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히나 공주 쪽 수행원들도 뭐… 딱히 특별한 게 없고.”
이래저래 탄약그룹 정보팀을 시켜 조사했지만, 문제 될 부분은 딱히 없는 상황.
그나마 마리아라는 여자 하나가 조금 특이한 정도? 고인이 된 모친이 한국인이라나.
이런 건 굳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도 못 된다. 기지개를 쭉 켠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다 잘 풀렸다고 봐도 되겠어. 일단은 일본 가느라 밀려 있던 일감부터 싹 처리해야겠다.”
역시 예측 가능한 일은 해도 해도 즐겁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평화로운 삶을 보낼 수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여름이 되어 복숭아 향이 진하게 날 무렵, 그런 생각이 말도 안 되는 방심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 * * *
“뭐라고요? 갑자기?”
몇 달 후, 평안함으로 가득 찬 여름의 어느 날.
갑자기 걸려 온 엄마의 전화. 그것은 새로운 난관이 내 인생에 또다시 등장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아니, 잘 풀리던 중에 왜 편성이 잘린 거지?”
-그러게 말이야. 정말로 난감하게 되었어. 데뷔 스케줄 촉박하게 맞춰서 진행하는 건데….
데뷔 일정이 두어 달 앞으로 다가온 히나 공주.
거기에 맞추어 진행되는 모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그러나 이게 웬걸, 제작사 측에서는 촬영 사흘 전, 갑작스럽게 촬영 불가 통보를 보내왔다.
지극히 일방적으로, 아무런 이유도 적시하지 않은 채로.
“이런 일이 일반적인 건가? 연예계 쪽에서는?”
-얘는, 그럴 리가. 그래서 말인데… 혹시 CZ E&M 쪽에서 견제구가 들어온 건지 확인해 줄 수 있니?
“알겠어요. 기다려 봐요.”
콘텐츠 관련 공룡 기업이라 할 수 있는, CZ E&M.
엄마의 의심은 일견 타당했다. 솔직히 탄약그룹을 등에 업은 <핵무기 엔터>에 시비를 걸만한 곳은 그곳뿐이니까.
그렇기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건 직통 전화. 그러나… CZ E&M 회장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백만 광년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한 회장님. 솔직히 좀 서운합니다. 하아… CZ 그룹 체면이 있지. 막말로 저희 그렇게까지 양아치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