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사이비 종교(2)
막말로 저희 그렇게까지 양아치 아닙니다.
뭐라 해야 하나… 재벌 회장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되질 않을 발언인 건 확실하다. 아주 직설적인 말로 서운함을 토로하는 CZ E&M의 이재훈 회장.
-아닌 말로, 우리 CZ E&M이 핵무기 엔터를 왜 신경 씁니까? 뭐 하러 굳이 그런 손톱만 한 회사를?
“손톱만 한… 뭐, 사실이긴 합니다만.”
-아, 미안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러면서도 또 은근히 마음은 여린 건지, 그는 금방 화가 식어 말실수에 대한 겸연쩍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뒷배로 있는 탄약그룹이 순 핫바지다. 그런 뜻은 아니고, 어차피 회장님은 이쪽 엔터 산업에 진심은 아니지 않냐 이겁니다.
역시 이쪽 업계 선두 기업 오너 짬밥은 허투루 먹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핵무기 엔터테인먼트> 창립 비화에 대해서 꽤나 잘 알고 있는 듯한 이재훈 회장.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제조업 하는 탄약그룹이 주력사업을 이리로 틀고 싶지도 않을 거고요.
하긴, 탄약그룹 특성상 제조업, 특히 방산이나 중공업같이 뭔가 묵직하고 남성적인 산업 위주의 경영을 주로 하는 편.
적어도 엄마가 내게 보여주었던 USB 안의 내용을 모르는 입장에서, 이재훈 회장의 눈은 정확한 셈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그에게 적절한 대답을 주었다.
“그럴 생각일랑 일절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당연하지, 이 바닥도 숨은 노하우가 얼마나 중요한데. 여하튼, 그 정도 취미 생활… 저희는 별 신경 안 씁니다.
“오해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렇게나 엔터 산업에 열정 있으신 분께 실례를 범했네요.”
사실 별생각 없이, 그저 적당히 아무렇게나 던진 사과.
그러나, 엔터 산업에 열정이 있다는 칭찬 비슷한 말에 뭔가 이상한 스위치가 눌린 걸까?
-열정! 열정 하면 또 할 말이 많지. 내 말 좀 들어보세요, 한 회장님.
“네…?”
스위치가 눌려도 단단히 눌린 그는 내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장장 1시간 동안, 귀에 닿은 전화기가 뜨거워질 정도로.
-그래서! 한국의 문화산업은 반드시 꽃필 거다 이겁니다. 왜? 모든 미디어 산업에 혜안을 가진 내가 계몽가의 위치에 있으니까!
아, 생각났다.
예전에 상공회의소 모임 때, 한 중견기업 회장에게 들었던 내용하고 똑같네.
분명 그때… 그 양반이 이렇게 말했었지, 아마.
‘어휴, CZ E&M 이재훈 회장이랑은 뭔 말을 하면 안 돼요.’
‘네? 왜 그러시는지?’
‘그 양반,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거든. 옆에 있으면 기가 다 빨린다니까.’
그 말 그대로 장장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이재훈 회장.
정말 딱 알맞은 별명이다.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
-한 회장님도 잘 봐 둬요. 앞으로 걸그룹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는지. 일단 3세대로의 물갈이가….
“그, 이 회장님 생각은 잘 들었습니다. 정말 잘 들었고요.”
이재훈 회장의 서운한 기색이 전화기 너머로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딱 봐도 삐진 것이 분명한 게, 은근히 이 아저씨도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인가 보다.
그래도 더 이야기가 길어지면 곤란하다. 타이밍을 잡은 김에 빨리 내가 원하던 질문을 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좀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이거 괜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시간도 너무 뺏는 것 같고.”
-무슨 그런 말씀을! 문화산업 이야기라면 사흘 밤을 꼴딱 새울 가치가 있어요. 뭐가 궁금하십니까?
다행히도 우리의 열정맨은 내면의 열정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무난하게 연결된 이야기. 히나 공주를 둘러싼, 연예계 전반의 왕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그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해답을 내렸다.
-아아, 그건 아마 이런 식일 겁니다. 지금 각 잡고 단체로 엿을 먹였다는 거지요?
“그런 셈이지요.”
-그러면 중간 규모의 기업 중 하나가 대장 노릇을 하고 있을 겁니다. 모래알 같은 회사들이 뭉쳤다면, 누군가는 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니.
“계획적인 소행이라는 겁니까?”
-자기네 쪽 라인은 전부 핵무기 엔터에게 왕따를 놓아라, 이런 식으로 오더를 내렸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이쿠!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이재훈 회장. 전화기 너머에서는 한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또 시간 초과예요! 벌써 한 시간 째라니까!
외가 쪽 친척을 비서실장으로 썼다고는 들었는데, 이런 이유였구나.
그제야 통제가 되는 듯, 우리의 열정맨은 내게 양해를 구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아, 한 회장. 미안해요. 우리 비서실장이 또 그만 끊으라 잔소리를 하네. 뜨거운 가슴이 부족한 여자라… 나중에 또 통화합시다.
다이내믹한 인상을 남긴 채 끝난 통화. 열정맨의 캐릭터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 그가 말했던 것 가운데 건질 만한 것은 있었다.
“대장 노릇을 하는 놈이 하나가 있다라.”
대장 노릇.
겉으로는 고만고만한 중소·중견 규모의 회사들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도 위계질서가 있다는 뜻일 터.
손가락 위로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결심을 내렸다.
“일단은, 히나 공주부터 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일단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이 우선일 터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핵무기 엔터의 걸그룹 숙소를 향해 달려간 나.
거기에는… 이제껏 내가 본 히나 공주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우울증 환자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어어… 한서준 회장, 왔어…?”
“히나 공주님?”
무기력한 모습의 그녀.
밤잠마저 설친 건지 눈 밑에는 깊은 응달이 내려앉아 있었다.
일단,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다. 간식으로 사 온 마카롱을 강제로 입 안에 털어 넣자, 그제야 반쯤 울먹이며 말하는 히나 공주.
“딸꾹…!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 * * *
“이건… 좀 심한데요.”
히나 공주가 당한 것은 꽤나 악의적이었다.
아예 촬영 일정 자체를 어기는 것은 애교였고, 홍보용 영상에 들어갈 클립을 엉망으로 망쳐놓기도 한 상황.
거기에 음반 작업이라고 해 놓은 것에는 대놓고 욕설이 포함된 잡음이 심하게 들어가 있었다.
아예… 사람 마음을 난도질해 놓기 딱 좋을 정도의.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히나 공주님이 뭘 어떻게 한다고 그럽니까. 딱 봐도 지금 단체로 물 먹이고 있는데.”
목줄 풀린 들개처럼 발랄하게 날뛰던 여자가 이렇게 기가 팍 죽어 있으니 불쌍한 마음이 든다.
거기에 미우나 고우나 일단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인데, 이런 고초를 겪게 하다니 확실히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바로 자금력을 동원해서 업계를 통째로 뒤집어엎으면, CZ E&M과 전면전인데….”
대놓고 연예계 쪽에 뭔가 크게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운 상황.
설사 행동을 하더라도 히나 공주의 멘탈이 문제다. 당장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일단 좀 쉬고 계세요. 머리가 복잡할 때 뭘 하려고 하면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안 그래도 마리아가 내 안색이 나쁘다 그러긴 했어. 조금… 시골 같은 데 가서 일, 이 주정도 있다 오는 건 어떠냐고.”
희미하게 기억이 나기 시작한 마리아라는 사람의 프로필.
아마 작고한 모친이 전남 나주 출신의 한국인인가 그랬을 것이다. 수행원 되는 사람이 그쪽 시골에 연이 있다면, 조금 마음 놓고 보낼 수 있겠지.
“갔다 오시죠. 어차피 연습도 안 될 겁니다.”
“응. 계속 늘어져 있으면 숙소 팀원들한테도 미안하고, 조금만 쉬고 올게. 걱정 끼쳐서 미안.”
“뭘 걱정을 끼친다고 그럽니까. 빨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지금 모습 진짜 적응 안 되니까.”
그렇게 마리아 씨의 손을 꼭 잡고, 단둘이서 나주행 KTX에 몸을 싣는 히나 공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경호원이 필요하냐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됐어. 한국 치안 좋은 거 다 아는데. 마리아만 있으면 돼.”
그렇다.
치안 좋은 한국.
아무리 CCTV 수가 적은 지방이라 하더라도, 사실 중범죄가 일어나거나 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렇게 나는 그녀를 떠나보냈다.
꼭 잡은 손을 쥔 수행원의 본모습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로.
* * * *
“두꺼비 미디어, 별사탕 콘텐츠, 그리고… 에덴동산 레코드.”
다시 돌아온 집무실.
탄약그룹 정보팀이 올린 보고서를 본 나는, 히나 공주의 멘탈을 흔들어 놓은 기업들의 이름을 하나씩 되짚기 시작했다.
“확실히… 좀 이상한데? 중견급 제작사하고 음반 유통사가 굳이 이렇게 단체로 핵무기 엔터 하나만을 때린다고?”
정말이지 봐도 봐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
특히 <에덴동산 레코드>라는 회사의 행태는, 신생 회사에 대한 견제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만큼 치졸했다.
“누구 하나가 대장 노릇을 한다라. 도대체 누가? 어째서?”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이해 가지 않는 이 사달을 되짚으며, 나는 습관처럼 만년필을 손 위로 빙글빙글 돌리었다.
핑그르르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백금 만년필이 딱 멈춘 그 순간, 이제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원철 아저씨.
“아이고, 큰일이여.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나. 벌써 말세가 왔는가?”
이제는 주술사로 전직을 하려는 모양이다. 세상 탓을 하며 종말론을 설파하는 대머리 예언가의 모습.
“그건 또 무슨 사이비 종말론 같은 말입니까?”
“에헤이, 그런 미운 말 하면 못써. 진짜 일이 나긴 났걸랑.”
“네?”
아무래도 진짜 신통력이 생긴 건지, 뭔가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김원철 아저씨.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려는지, 아저씨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내게 보고서 하나를 내밀었다.
“그, 우리 탄약 자동차 협력사 말이여. 이스라엘 자율주행 연구 벤처 기업.”
“아아, 모터즈 아이즈(Motors eyes) 말입니까? 거기가 왜요?”
모터즈 아이즈.
이스라엘 모 대학 산하의 신생 스타트업. 자동차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대한 원천 기술을 가진 이 기업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인수 또는 지분 투자를 위해 그쪽 실무진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
그러나.
“광주공항 내리고서 연락이 안 된디야. 정말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나?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이요…?”
증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
그리고… 내 등 뒤를 타고 머리끝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기시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필이면 이 순간 떠오른 히나 공주와 수행원 마리아의 얼굴.
잘못된 방향으로 무언가가 질주하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