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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92화 (192/300)

192화 사이비 종교(3)

전남 나주 외곽의 과수원, <주님의 동산>.

광기 어린 그곳 그곳의 지하 감옥에는, 간수 비슷한 누군가가 쇠창살에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탈진한 두 명의 유대인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면서.

“식사 시간이다. 더러운 죄악의 민족이여!”

흡사 가축에게 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던져 준 눅눅한 식빵 조각 몇 개.

그러나, 광신도는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식빵을 먹어대는 유대인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그의 모습.

“예언가 어머님께서 친히 배려하시지 않았다면, 너희 간악한 뱀 같은 유대 놈들은 벌써 사지를 백 번도 찢었을 것이야!”

“하이고, 화가 많이 나셨네. 일단 저놈들 밥부터 먹이죠.”

분노한 광신도를 말리는 또 다른 신자. 상대적으로 조금 지위가 더 높아 보이는 그녀는, 차분하지만 확실한 어조로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했다.

“일단 살려는 두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하아… 그래도 신도님, 저 죄인 놈들을 다시 결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렇게 움직이는 형상을 보는 것조차 너무나도 끔찍합니다.”

“진정하시죠. 예언가 어머님께서 시찰하러 오실 때 아니면, 그냥 두어도 도망칠 염려는 없습니다.”

“그러면 팔다리 힘줄이라도 끊는 식으로…!”

세뇌가 불러온 분노에 눈이 뒤집힌 광신도. 당장이라도 창살 안으로 도끼를 휘두르려는 그의 팔을 붙잡으며, 지위가 높은 여자 신도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쓰임이 있는 법이니. 저 뿔 달린 검은 염소들 또한 그렇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크흠, 이건 상급 신도들 내부에서만 도는 말입니다만.”

주위를 살피고는 약간 뜸을 들이는 여신도. 그녀는 마치 중대한 비밀이라도 누설하는 양, 광신도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곧 재림 행사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이번 달 이내에.”

“재림 행사!”

재림 행사.

이 정신 나간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교주 박금덕의 생일만큼이나 중요시하기는 이벤트.

자신들의 믿음이 세계로 뻗어 가나면, 메시아가 내려와서 구원 방주에 태워준다는 것이 재림 행사의 시나리오였다.

물론, 현실은 그런 것 따위 없이 그저 헌금을 빙자한 상납금을 바치는 것이지만.

“쉿, 조용히.”

“아아… 죄송합니다.”

“되었습니다. 자, 예언가 어머님의 성경 외전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아예 자체적으로 사이비 경전까지 있는 <주님의 동산>.

여신도는 박금덕이 썼다는 성경 외전 문구를 인용하며, 두 손을 모아 입을 열었다.

“저기 머나먼 동쪽, 해가 뜨는 그곳을 향해 믿음의 항해가 있으리라.”

“아아! 어찌 잊겠습니까, 그 귀한 말씀을.”

“그래서 저들을 지금 살려두는 겁니다. 재림 행사가 찾아오는 그 날, 거룩하신 주께 예배드리며 제물로 바쳐야 하니까요.”

갑자기 시작된 기도 분위기.

특유의 괴상한 Y자 자세를 한 그들은 쌍으로 눈물을 흘리며 순한 맛 통성기도를 시작했다.

“오오… 주님! 부디 예언가 어머님을 송축하소서! 저 죄 많은 자의 피로 천년왕국의 초석을 닦으소서!”

그리고, 그들 미치광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빵조각을 목구멍 너머로 씹어먹는 두 유대인.

“미친놈들. 아니, 미친놈년들이겠구나.”

“조용. 괜히 저 광신도들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그들. 송축이니 거룩이니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재림 행사. 그날이 되면 자신들의 목이 계속 어깨 위에 붙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돌아버리겠네요, 보스. 저놈들 저거… 저희를 뭘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나야 모르지. 하지만, 재림 행사 어쩌고저쩌고하는 걸 보아, 일단 확실한 건.”

선배 엔지니어의 귓가를 울리는 광신의 언어.

침통한 표정의 그는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들이 이곳에 갇히게 된, 그날의 시발점을.

“그날, 광주공항에서 보았던 출입국관리 공무원부터… 일이 단단히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 * * *

두 달 전.

‘보스, 왜 서울로 안 가고 여기 광주공항으로 온 겁니까? 본사는 위에 있다던데.’

‘탄약 자동차 연구소가 이 근처니까. 우리야 엔지니어인데 실무진하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지. 서울은 재무 쪽이 알아서 할 것이고.’

광주공항에 내린 두 유대인.

모든 것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투자 건도, 기술 개발 건도.

비록 직급은 낮은 실무자 위치였으나, 일이 잘 진행되고 있음은 충분히 느끼고 있던 그들.

그러나, 잘 나아가던 그들의 앞길에 돌부리 역할을 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출입국관리 공무원 한 사람이었다.

‘다윗, 이사야라. 이스라엘 분이시네요? 두 분 모두.’

‘네, 그렇습니다만.’

그것도… <주님의 동산> 소속의, 진성 광신도 공무원이.

‘흐음… 그렇단 말이지. 어쩌면 이게 바로 신의 뜻이란 말인가.’

은색 촛대가 수놓아진, 푸른색 이스라엘 여권을 만지작거리는 광신도 공무원.

한참을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가 괴이했는지, 선배 엔지니어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저기, 무슨 문제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숙소를 어디로 잡으셨는지요?’

‘금남로에 에덴동산 호텔이라고, 지하철역 바로 앞에….’

‘오오! 이 또한 기적이리라!’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환희하는 광신도 공무원.

에덴동산 호텔. 하필이면 <주님의 동산>에서 운영하는 곳이기에, 그는 자신의 신앙에 확신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할렐루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니.’

‘아, 예… 감사합니다.’

여권 속지에 입국 도장을 받고는,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유대인.

곧바로 광신도 공무원은 어딘가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신도님. 방금 주께서 뿔 달린 염소 두 마리를 이 세상에 내려보내셨습니다. 부디 자신들의 죄를 씻을 수 있도록,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데려가시길.

광신에 휩쓸려 사람이기를 포기한 채로.

* * * *

그리고, 지금.

이곳 <주님의 동산>에 찾아온 또 다른 외부인.

“마리아? 여긴 과수원 아니야?”

“참으로 아름답지 않나요, 공주님?”

으뜸 신도 마리아의 손을 꼭 잡고 이곳에 내려온 히나 공주.

막연한 불안감이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그녀였지만, 마리아가 쥔 손은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여기는 창조주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고 합니다.”

“어… 시골은 다 이런 건가? 일단 복숭아는 맛있겠네.”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길한 감정.

도망쳐야 한다는 직감은 히나 공주에 경보음을 울리고 있었다. 여기, 이곳. 절대로 발조차 들여서는 안 되었던 곳이라고.

“오오, 마리아 신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언가 어머님.”

기척도 없이 히나 공주의 뒤편에서 다가온 사이비 교주 박금덕.

히나 공주에게 가볍게 곁눈질한 그녀는, 곧바로 마리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마리아 신도께서 큰일을 하셨습니다. 주의 은혜가 그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을 것이니, 구원의 방주는 으뜸 신도부터 타게 되리라!”

갑자기 시작된 축복 기도.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단체로 무릎을 꿇는 주위 광신도들.

“아멘! 아멘! 주께서 오시는 그날을 위해 아멘!”

“예언가 어머님께서 송축하시니, 가시는 곳 구석구석에 빛이 있으라! 할렐루야!”

그 모습을 보고는 새하얗게 질린 히나 공주의 얼굴.

싸해진 분위기에,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마리아를 향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뭐, 뭐야. 이 분위기는… 여긴 도대체 뭐 하는 곳이야? 아니, 아니. 그 전에, 마리아… 당신 누구야?”

여전히 히나 공주의 손을 놓지 않은 마리아.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히나 공주의 눈을 바라보며 섬찟한 웃음을 지었다.

“예언가 어머님께서 가라사대, 앎이 지나치면 그것은 곧 무지보다 못하는 것이니.”

“가, 가까이 오지 마! 저리 가…!”

“오직 순종하는 마음만이 심장 안에 자리 잡은 사탄을 내쫓게 하리라.”

히나 공주의 뒤쪽에서 덮쳐오는 사내들.

흰 천 조각이 입에 물리고, 히나 공주의 의식이 점점 옅어져 갔다.

검게 변해가는 시야. 정신을 잃기 전, 그녀가 들은 마지막 말은, 그토록 믿었던 마리아의 시리도록 차가운 축복뿐이었다.

“이제는 그대도 주님의 품속에서 순종하는 어린양이 되시길.”

* * * *

탄약그룹 집무실.

히나 공주를 요양차 내려보내고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핵무기 엔터와 이스라엘 모터즈 아이즈(Motors eyes)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내 눈에 무언가 희한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무섭도록 불길한 무언가가.

“참 희한하단 말이지. 안 그렇습니까?”

“뭐가 말이여. 이혼하고도 괜히 연락해서 잔소리하는 예전 마누라가?”

또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김원철 아저씨.

아무래도 이 양반, 이혼한 전처하고 다시 연애하는 게 분명하다. 괜히 찔리니까 자동으로 나온 방어 기제인 게 분명하다.

“박자옥 여사님하고는 그냥 다시 합치시라니까.”

“으엑,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이건 그 뭣이냐, 한번 갔다 온 사람만이 알 수 있걸랑. 자유의 소중함이란 것을.”

중년 아저씨의 내숭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 나.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자기한테 불리하다 생각했는지, 김원철 아저씨는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꾸어 버렸다.

“크흠, 그나저나 뭐가 그렇게 희한하길래 막 팔자(八子) 눈썹을 만들 정도여?”

“이게 참. 제가 평행이론 어쩌고 하는 비과학적인 난신적자를 싫어하는데, 자꾸 뭐가 겹쳐서 말입니다.”

비과학적인 난신적자.

그중에서도 논리적인 척을 가장한 비논리의 제왕인 평행이론.

한두 가지의 연관성만을 가지고 전혀 다른 일들을 억지로 엮는 이것은, 내가 참 싫어하는 것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당히 역겨운 직감이 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섬뜩한 기분을 선사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방금까지 보던 서류 위에 형광펜을 칠하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히나 공주 멘탈을 탈탈 털어버린 연예계 쪽 회사 중에 대장 노릇하는 곳. 에덴동산 레코드 본사 위치.”

전라남도 나주라는 지명 위에 칠해진 노란색 줄.

“그리고, 이스라엘 모터즈 아이즈 직원들. 실종 전 최종 위치 확인이 된 곳도 이곳.”

경찰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기록지 위, 거기에도 전라남도 나주라는 지명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김원철 아저씨가 말했다. 순 억지에 가깝다는 주장과 함께.

“에이, 너무 끼워 맞추기다.”

“마지막으로… 히나 공주가 그 마리아라는 여자와 함께 요양하러 간다는 그곳도 바로.”

그러나.

“전남, 나주.”

“어…?”

억지였던 것이 더는 억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

흔들리는 동공을 보이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김원철 아저씨.

“잠깐만… 혹시 히나 공주 그 이후로 연락이 되고 있었나?”

“오늘 오전부터 안 된답니다. 마리아 쪽에서 휴식 핑계로 거부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좀 이상하더라고요.”

“……!”

빼꼼히 고개를 든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불안감. 그것은 야밤에 무심코 본 소녀 형상의 인형처럼 쭈뼛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린아이가 봤다면 잠결에 찾아온 공포로 무심코 바지춤을 적셨을 정도로.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알아봐야겠습니다. 이거… 어쩌면 평화로운 시골 마을 속에 뭔가 기괴한 것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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