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93화 (193/300)

193화 사이비 종교(4)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

느낌이 좋지 않을 때, 보통 선택지로 주어지는 것은 두 개뿐이다.

①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천천히 하나하나 해결하기.

② 돌다리 위에서 번지점프를 뛰더라도 일단 미친 것처럼 빨리 일을 해결하기.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단연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을 나.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유대인 아저씨들 문제였다면 또 모를까, 히나 공주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 억류되었음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니까.

‘탄약 자동차 나주 연구소 현지 직원 전원에게 설문을 돌리세요. 그 근방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이상한 부분이 있냐고. 특히.’

그렇기에, 몇 시간 전.

나주로 출발하려는 김원철 아저씨에게 신신당부하며 말을 건넨 나.

‘엔터 산업 쪽과 연관 있는 기업 또는 단체에 흉흉한 소문이 도는지를 꼭 체크하셔야 합니다.’

‘오케이. 이건 내가 직접 내려가서 싹 다 총괄하고 와야겄어.’

파발마를 띄워 보내듯 전속력으로 나주를 향해 달려간 김원철 아저씨. 아마 지금쯤이면 설문 문항이 적힌 종이를 직접 직원들에게 배부하고 있겠지.

그리고, 이번 일을 해결할 다음 타자. 힘 빠진 노크 소리와 함께 엄마가 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어요? 히나 공주 소식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엄마.

아무래도… 예상했던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히나 공주의 휴대전화가 꺼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마리아조차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

“후우, 역시나인가.”

“어떻게 해…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소속사 대표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고….”

“전 회장이란 사람이 그런 것도 몰랐는걸요. 일단 상황을 좀 정리해 볼게요. 그러니까 가장 먼저.”

울먹이는 엄마를 진정시킨 나는 곧바로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크고 작은 동그라미 안에 써넣어진 생소한 연예계 쪽 회사들의 이름.

나는 그 가운데 가장 중앙에 놓인 회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엄마에게 물음을 던졌다.

“에덴동산 레코드. 여기가 핵무기 엔터를 때리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맞지요?”

“엄마가 조사한 게 맞다면, 이쪽이 주동자야.”

“대관절 뭐 하는 업체길래 이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 다시 눈에 힘이 들어간 엄마는 내게 돌아가는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CZ E&M 이재훈 회장 쪽 라인을 통해 받은 정보를 포함해서.

“음반 시장 쪽 숨은 강자야. 업계 경력도 거의 20년이 넘은 데다가, 케이블 TV나 중소 엔터 회사 지분도 제법 들고 있거든.”

“소리 소문 없이 강하다라.”

“그런데… 조금 이상한 소문도 같이 도는 곳이야. 이게 정확하게 확인된 게 아니라 말하기가 조심스럽기는 한데.”

행여나 부정확한 정보로 내게 손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엄마.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여봐란듯이 가슴팍을 팡팡 두들기며 일부러 말속에 자신감을 과하게 섞어 내뱉었다.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해결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전부 제 몫이니까요.”

“그렇지… 우리 서준이는 회장님이니까.”

여러 가지 감정이 실타래처럼 둘둘 감긴 듯, 흡족한 표정을 짓는 엄마.

탁자 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엄마는, 이제는 준비되었다는 듯 곧바로 눈빛을 바꾸고서 내게 질문했다.

“그럼, 혹시 <주님의 동산>이라는 종교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니?”

“<주님의 동산>?”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곧바로 내게 자료를 건네는 엄마.

맨 꼭대기의 천주교 광주대교구 아래쪽으로 내려온 선은, 이내 혈관처럼 산하의 수많은 지구(地區)를 타고 흘러, 나주의 모 성당에 닿았다.

그리고, 그 성당 끄트머리에서 붉은색의 굵은 선으로 연결된 문제의 수도회. <주님의 동산>.

“가톨릭 쪽 산하 수도회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여기가 왜요?”

“아직까지는 그냥 풍문이긴 한데, 여기가 그냥 수도회가 아니라 신흥 사이비 종교라는 말이 있어. 그리고.”

펄럭, 다음 장으로 넘겨진 자료.

거기에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여성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한때는 수녀 신분이었고, 이제는 <주님의 동산>이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 노릇을 하는 그녀의 이름은.

“에덴동산 레코드의 실소유자가 거기 교주, 박금덕이라는 소문도.”

“잠깐만, 그러면 그 사이비 종교 집단 위치가…!”

“전라남도, 나주. 그래서… 엄마는 너무 불안해. 우리 히나,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러게 말이다. 불안감이 다가오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지만.

그리고, 그 순간. 때맞춰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 간만에 타이밍을 잘 맞춘 김원철 아저씨는, 웬일인지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약간 급한 듯한 목소리로.

-어, 회장님아. 지금 설문조사 다 끝났걸랑. 정식 보고 올리는 것보다, 간이 보고 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리.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우리 회장님이 말했던 그 난신적자 같던 평행이론이 맞는 것 같걸랑. 지금 내부에서 결정적 증언이 나왔어. <주님의 동산>에 대한.

점점 맞춰져 가는… <주님의 동산>이라는 기괴한 단체가 그려진 퍼즐 판.

김원철 아저씨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꺼내어 빈 공간에 정확히 집어넣었다. 내가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딸랑구가 거기 빠졌다가 나왔다던 사람이 있었지 뭐여. 탄약 자동차 나주 연구소에서 청소부 아주머니로 있는 양반인디… 일단 녹음본부터 바로 보낼게.

* * * *

-나는 그 못된 것들 생각만 했다 허면, 밤에 잠이 들었다가도 바로 화들짝 깨어나유. 살다 살다 세상천지에 그런 악마들도 없어부러!

딸깍, 벌써 다섯 번째 반복해 듣는 녹음 파일.

괴로운 기억을 상기해서일까? 청소부 아주머니의 격앙된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시작은 제 딸년이 무슨 하나님 믿는 동아리를 시작한 것부터였는디, 처음에는 그냥 성당 다니는 동아리인 줄 알았슈.

가톨릭이라는 겉껍질을 잘 위장한 <주님의 동산>. 아마 대학생 딸은 그저 평범한 천주교 동아리인 줄로만 알았을 터다.

물론, 그것이 실상은 자신과 주변인의 인생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라서 나도 딸년 따라서 같이 푹 빠졌는디… 시방 이게 뭣이당가. 그것들이 집안 돈이란 돈은 죄 청소기처럼 빨아가고서, 내 딸년 몸뚱이까지 싹 다 가져가부렀어!

무언가… 생각보다 더 정도가 심각한 증언.

혹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청소부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순 나쁜 것들이여… 성당 소속이라 뭘 어떻게 건들지도 못허구. 동네 경찰하고도 짝이 맞은 건지 동네 사람, 동네 똥개도 내 말을 듣는 척도 안 혀!

가톨릭이라는 위장막. 그리고 지역 경찰과의 유착.

이 공고한 방패막이는 사이비 종교가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힘을 기르게 만든 자양분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는 김원철 아저씨의 녹음된 목소리.

혹시 그 안에 있었을 때, 유대인이 있었냐는 물음. 잠시 고민하던 아주머니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곧장 대답했다.

-유대인? 아아, 그 허여멀건하게 생긴 양놈 두 명? 아이고! 그러고 보니 그 양반들 어떻게 되었나 모르겄슈. 오래 살아봐야 탄신절까지고 재림 행사가 코 앞인디.

딸깍, 종료된 음성 녹음 파일.

내 앞에는 나주에서 서울까지 3시간 만에 돌아온 김원철 아저씨가 자리해 있었다.

“후우… 몇 번을 다시 들어도 환장할 노릇이네요.”

“빨리 때려잡아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든 뭐든 총동원해서. 히나 공주도 엮였으면 그 너구리도 빨리 움직일 것 아니여.”

“일단 너구리가 너구리굴에 없습니다. 유럽 정상회담 순회 돌면서 지금 바티칸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하필이면 지금 같은 타이밍에 영 도움이 안 되는 대통령.

거기에 그 순방 자체도 문제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그 바티칸… 천주교가 문제입니다.”

“걔들이 왜?”

“일단 <주님의 동산> 쪽이 사이비는 맞는데, 하필이면 외부 위장막으로 천주교 껍질을 쓰고 있으니까요.”

“아이코야, 그것도 그렇네.”

“외교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으니, 검찰이든 경찰이든 둘 다 소극적일 겁니다. 지역 유착 문제는 덤이고요.”

서울에 있는 검찰이나 경찰 중앙 수뇌부를 단시간에 꼬드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저번에 주괘율 건으로 합을 맞추었던 박은지 검사가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으니까.

‘옘병, 나 법무부 과천 본부 보내 놓고 뭔 일선 현장 일을 묻고 그래?’

‘승진하셔서 좋으면서, 또 괜히 그러신다.’

‘웃기시네. 그나저나. 물어봤던 그거, <주님의 동산> 말이지. 지금 상황이면 바로 일망타진 이건 힘들어. 장기 수사라면 또 모를까.’

미치광이처럼 날뛰던 이 인간 백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박은지 검사는 자신도 답답하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해. 적어도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수뇌부 쪽이 아무런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게.’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있을 테니, 열매를 떨어트려 달라는 말.

하여간, 수뇌부에 있는 관료들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탄약그룹 자체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

“흠… 결국, 우리 쪽에서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디. 어떻게 한담?”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듯 고민하는 김원철 아저씨.

물론 나는 뾰족한 수가 있다.

다만, 그 수가… 김원철 아저씨에게 조금 따끔한 주삿바늘 같아서 문제일 뿐.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요.”

“응?”

“탄약그룹 경호팀 인력. 몇 명 따로 차출해서 잠입시킵시다. 히나 공주부터 빼고, 상황 봐서 증거도 수집하고.”

“하긴, 그 방법밖에 없겠네. 가만있자, 그러면 총괄 책임자를 누구로 한다…?”

일부러 뜬 가자미눈으로 지긋이 눈앞의 김원철 아저씨를 바라보는 나.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이 양반은 위기를 감지했는지, 한 발짝 물러서며 말을 더듬었다.

“어어? 왜 그렇게 보는 겨? 내 얼굴에 뭐 지지 묻었나?”

“딱 적당한 인선이 눈앞에 있어서 말이죠. 이번 사건 처음과 끝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 회장님아. 그러면 설마…?”

현장 뛰는 것은 저번 후쿠시마에서 충분히 했다. 이제는 좀 신뢰하는 임직원에게 믿고 맡겨도 되지 않을까?

나는 김원철 아저씨의 손을 꼭 잡고 사슴 같은 눈망울을 반짝였다.

“거기 <주님의 동산> 신도들은 두발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여자는 귀밑 3cm 단발, 그리고 남자는.”

그래, 남자는 바로 지금 김원철 아저씨의 헤어스타일에서 뒤쪽만 더 시원하게 밀어버리면 되는.

“완전히 깎은 민머리. 그것도 면도기로 두피가 보일 만큼 시원하게 후처리까지.”

“헉…!”

지진이라도 일은 듯,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삶은 주꾸미 예정자의 눈동자.

꼭 쥔 손에 힘을 가득 넣으며, 나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Never ever.

“삭발 후에 새로 자라나는 모발은 강해진다고 합니다. 부디, 이 막중한 책임을 꼭 좀 맡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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