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사이비 종교(5)
사이비 종교는 각기 기가 막힌 세뇌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곳, <주님의 동산> 또한 마찬가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교주 박금덕은 신도들을 세뇌하는 데에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활용했다. 특히, [B.I.T.E 모델]이라는 세뇌의 정석 코스를.
“새벽녘에 기상하자마자 바로 예배당으로 가십시오. 늦는 것은 믿음을 약하게 하리니, 체벌이 있을 것입니다.”
B. 행동 통제(Behaivor control).
<주님의 동산>에 납치된 히나 공주에게 가장 먼저 강요되는 것은 엄격한 규율에 대한 복종이었다.
입안을 바싹 마르게 할 만큼, 세세하게 규정된.
“히나 공주님은. 아니, 히나 신도는 깨우침이 늦었으니 잠을 줄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얼마나 자야….”
“4시간. 그 이상의 잠은 몽마의 유혹일지니, 사탄의 속삭임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하십시오.”
꽉 막힌 규칙과 부족한 수면으로 피폐해지기 시작한 히나 공주의 정신상태.
그다음으로 이어진 세뇌 과정은 I(Information control). 정보 통제였다.
“절대 히나 신도가 외부와 연락하지 못하도록 막으세요.”
“예, 마리아 신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휴대전화는 부수어 가루로 만들었으니.”
“신앙을 빨리 받아들이게 하려면 머리를 비워야 합니다. 이제부터 식사에도 조금씩 환각제를 섞으십시오.”
이것을 기점으로 확연하게 줄어든 히나 공주의 반항.
울타리를 넘어 탈출을 시도하고, 인근의 공중전화로 도움을 청하려 했기에, 그녀를 옭아매는 족쇄는 점점 더 크고 무거워졌다.
T(Thought control). 사고 통제 기법이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로 사용될 정도로.
“히나 신도. 히나 신도!”
평소보다 한층 더 엄격한 모습으로 히나 공주를 부른 마리아.
“마리아? 무슨 일이야?”
“마리아 신도. 라고 불러야지요. 그리고 신도끼리는 상호 존중함을 아직도 숙지하지 못한 겁니까!”
광신도의 손에 든 승마 채찍에 위압감을 느낀 히나 공주.
조금이라도 규율을 어기면 가해지는 구타에, 고개를 떨구어 시선을 피한 그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리아… 신도. 무슨 일이십니까…?”
“예언가 어머님께서 당신을 위해 천국에서 쓸 이름을 내려주셨습니다. 부디 기쁜 마음으로 간직하시길.”
이름을 바꾸어 정체성까지 바꾸려 드는 사이비 교단.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는 예배당 앞으로 끌려 나오기까지, 연신 세례명을 중얼거리며 땅바닥만을 바라보았다.
“헬레나….”
“이제 당신은 헬레나 신도라 불릴 것입니다. 거룩한 은혜를 받은 헬레나 신도! 이 자리에서 함께 기도합시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내면을 뒤집어 까놓는 세뇌 방식. E(Emotional control), 감정 통제.
“주님의 품에 안긴 어린양, 우리 헬레나 신도를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듣는 이의 귀를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히나 공주를 앞으로 불러 세운 교주 박금덕.
새하얀 눈처럼 하얀 면사포를 손수 씌워주며, 히나 공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그녀는 군중 앞에서 광신의 불씨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비록 헬레나 신도는 뒤늦게 들어온 자였으나, 신실한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멘! 아멘! 아멘!”
“그러나!”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따스했던 눈빛. 그러나, 교주 박금덕은 마치 가면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곧바로 정반대의 눈빛으로 히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부족함. 주께서 예언가 어머님의 육신에 주께서 재림하시어 세계만방을 구원하신다는 믿음에 대한 부족함!”
흡사 사냥감을 바라보는 뱀이라도 된 것처럼, 차갑고도 공포스럽게.
“아직도 헬레나 신도는 사악한 죄인의 모습을 벗지 못했습니다. 그대, 죄 많은 여인 헬레나여! 그대는 정녕 회개할 수 있는 자인가!”
“회개하라! 회개하라! 죄인 헬레나는 회개하라!”
미리 약속이라도 했던 걸까?
연단을 향해 날아오는 투척물.
히나 공주의 몸을 때리는 물이 담긴 페트병과 자잘한 천 뭉치. 그리고 그녀를 향한 증오스러운 폭언.
이제는 정신이 나가다 못해 입을 벌린 채 눈물 흘리는 히나 공주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괴로운 언사가 튀어나왔다.
“으으으… 이제까지 잘했잖아요.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닥치거라. 더한 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거든.”
시릴 정도로 싸늘한 박금덕의 대답.
그들의 목소리가 연단 아래 광신도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곧바로 마이크를 잡고 큰 목소리로 외치는 마리아의 함성이 이어졌으니까.
“이제부터 그대의 숨은 죄악을 예언가 어머님께서 정화하시리니! 헬레나여, 거룩하신 교주님의 발등에 입 맞추어 회개하라! 다시 새로운 삶을 얻으라!”
“와아아아아아! 할렐루야!”
몽롱한 복숭아색 환각제가 코를 찌르고, 광신도 집단의 외침에 머릿속 가느다란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겨 버린 히나 공주.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몸을 굽혀 굴종의 자세를 취했다.
“성스러우신 예언가 어머님을 뵙습니다. 부디… 발등에 입 맞추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웃음 짓는 교주 박금덕.
“나의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구름만큼 포근한 목소리로 히나 공주를 감싸 안는 그녀.
품 안의 히나 공주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억세게 힘을 준 박금덕이 이성을 잃은 신도들에게 외쳤다.
“내 발등에 입을 맞춘 자여. 그대 참된 구원을 얻을 지어라! 주님의 동산에 누워 천국의 콧노래를 흥얼거릴 지어라! 할렐루야!”
* * * *
“히나 공주. 아니, 헬레나 신도가 어디까지 신실해졌다고 보나?”
통성기도가 끝난 후, 복숭아나무 뒤편으로 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 박금덕.
그녀의 사촌 동생인 전도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바로 대답을 건넸다.
“정신이 절반쯤은 나가지 않았겠습니까? 완전히 세뇌는 안 되더라도… 분위기에 떠밀리면 반강제로 조종은 될 정도이니.”
“제물의 심장을 생으로 뽑아 올리는 건 발등에 입 맞추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텐데.”
사람을 죽이는 것.
그리고… 그 후, 곧바로 잔혹한 의식을 치르는 것을 강요할 생각인 박금덕.
재림 행사를 완벽하게 치르려면, 히나 공주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것도 그저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광신에 사로잡힌 수준의.
“사람 피 냄새에 좀 익숙해지게끔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재림 행사 때는 환각제 농도를 높일 것이라… 자잘한 실수는 괜찮을 겁니다.”
“가축들이 일본에 포교를 떠나도 절대 울타리 바깥으로 뛰쳐나갈 수 없게,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을 새겨야 해.”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기괴한 올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신발 밑창으로 담뱃불을 비벼 끈 박금덕.
아무렇게나 꽁초를 풀숲에 던진 그녀가 결심을 마친 듯, 전도사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 짓지. 바로 상급 신도들에게 전달하도록.”
“언제로 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주 일요일. 통성기도가 끝난 후, 재림 행사를 시작한다. 미리 묵직하게 분위기 깔아두는 것 잊지 말고.”
“염려치 마십시오. 확실하게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불어오는, 여름의 습한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금덕.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서울에서 내려왔다던 멍청한 이들이 다섯 명이나 새로 들어왔다고도 했으니까.
“김원철이라고 했었나? 그 새로 들어온 멍청한 놈. 헌금을 3억 원이나 했다지?”
“아, 예. 듣기로는 집까지 팔았답니다.”
“좋다. 아주 좋아. 곧 그런 가축들이 수십만, 수백만이 될 것이다.”
피식 웃음 짓는 그녀. 박금덕의 눈앞에는 생생한 환영이 비추어졌다.
이대로… 일본에서 크게 신도를 모은다면 손에 들어올, 어지간한 재벌가 부럽지 않은 재력이라는 환영이.
물론 그 환영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 * * *
“스타일이 훨 낫네요, 원철 스님. 가시는 길에 시주 드리는 것은 공양미 대신 소주가 좋으시지요?”
빡빡 깎은 김원철 아저씨의 헤어 스타일.
이건 마치 재입대를 앞둔 입대 장정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30년 전쯤에는 있었을, 젊음과 푸릇푸릇함은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에효, 내가 진짜 살다 살다 별짓을 다 하네. 난 땡중이라 소주 같은 거 안 마셔. 저기, 장식장 안에 든 서른 살짜리 이쁜이라면 또 몰라.”
이곳, 탄약그룹 본사 근처 내 오피스텔.
억울함이 눈에 가득한 김원철 아저씨는 장식장 안쪽에 진열된 위스키를 가리키며 대놓고 시주를 요구했다.
예전에 빈 살만 왕세자에게 받았던 위스키였는데, 가격이 대충 중형차 한 대 값은 훌쩍 넘는다고 했던가. 물론 그 양반에게 이 정도는 그저 콜라 한 캔 가격이었겠지만.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린 위스키. 나는 그 황금빛 액체로 목을 적시고는 처음부터 계획을 되짚기 시작했다.
“크흐, 일단 다시 한번 작전을 되새김질해 봅시다.”
“오케바리.”
“최우선 목표는 히나 공주의 신병 확보. 부수적으로 그 이스라엘 사람 두 명의 안전까지.”
“전자는 확실하게 할 수 있어. 우리 정보팀 애들, 나름 베테랑이걸랑. 근데 후자는 영 모르겄네.”
조금 곤란한 듯, 습관처럼 뒤통수를 긁으며 말을 꺼내는 김원철 아저씨.
아무래도 할당된 전문인력 다섯 명으로 지하감옥에 갇힌 유대인까지 구하기는 어렵지 않냐는 식의 논지였다.
“거기에 그 양반들, 벌써 죽어서 무슨 장식품 비슷한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 재림 행사인가가 있기 전까지는 살려두었을 겁니다. 이번 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도 그놈의 재림 행사이고요.”
재림 행사.
나는 그날, 탄약 자동차 나주 연구소의 청소부 아주머니가 증언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왜 신고할 생각일랑 못 했냐믄… 그게 참, 말하기가 또 거시기헌디. 요것은 어디서 말씀하시믄 안 되는 것이여잉.
서울에 올라와서라도 수사기관에 신고할 생각은 못 했냐는 질문에 주저하며 대답하던 청소부 아주머니.
-마약… 비슷한 걸 신도들한테 강제로 들이쉬게 만든당께. 그니께 암만 거기서 도망헌 사람도 뭘 어쩌지를 못햐.
환각 물질로 신도들을 통제하는 <주님의 동산>.
일반 기도 시간에도 널리 쓸 만큼, 보편화되어 있다면… 분명 재림 행사같이 큰 기념일에 이를 안 쓸 리가 없을 터.
“전부 환각제에 취해 있을 그 타이밍. 군중 의식에 마약이 더해져 힘이 풀린 그때가 결행의 순간입니다.”
“기회는 그때 딱 한 번뿐이네.”
결정적인 증거를 잡고, 히나 공주를 구한다. 여기에 추가로 유대인 두 사람도 구하면 더 좋고.
나머지는 박은지 검사 측에서 파견할 수사관이 알아서 할 것이다.
정식 수사 루트가 아닌, 근처에서 즉석 신고를 받았다는 형식을 한.
“저도 이번 주 일정을 탄약 자동차 나주 연구소 출장으로 잡겠습니다. 상시 연락이 가능하게끔. 자, 그러면.”
마지막 남은 황금빛 위스키를 목구멍 너머로 털어 넘긴 나.
김원철 아저씨를 바라보며 씩 웃음 지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신 나간 광신도들에게 진짜 지옥이 뭔지를 보여주러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