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사이비 종교(6)
“회장님 오셨습니다, 일동 차렷! 경례!”
“아아, 그런 거 하지 마요. 제발 좀.”
다음 날, 다시 찾은 탄약 자동차 나주연구소.
연구소에 들어서자마자 양옆으로 줄을 쫙 선 채 도열한 직원들.
무슨 조직폭력단 보스 기분 만끽하는 것은 사양이다. 나는 양손을 휘저어 직원들을 해산시키고는, 연구소장에게 핀잔을 주었다.
“괜히 쓸데없는 의전에 목숨 걸지 말고, 그냥 하던 일 하시라니까.”
“헤헤헤, 그래도 우리 직원들, 회장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도무지 주체하질 못해서 말입니다요.”
“됐고. 바로 차량 생산 라인으로 갑시다.”
“넵! 충성충성!”
아예 칼 같은 거수경례까지 붙여 올리는 연구소장.
사람이 능력은 있는데, 너무 줄을 잘 타려는 게 보이니 이런 건 단점이다.
굽실거리는 그를 따라 들어간 연구소 가장 안쪽.
“트럭 시험 생산 라인입니다요. 쬐끄만한 1톤짜리 탑차 소달구지부터 광산에서 쓰는 300톤짜리 덤프트럭까지 있습죠.”
탄약 자동차에서 생산하는 모든 자동차는 이곳 나주 연구소를 한 번씩은 거치게 된다.
특히나, 트럭이나 중장비같이 묵직하니 육중한 차량. 탄약그룹이 잘 만드는 것들은 이렇게 한 대씩을 전시해 놓고.
“이것도 아니고, 이건 너무 작고, 이건 크긴 한데 가로세로 길이가 심하게 차이 나고.”
소달구지라고 해도 좋을 만한, 작을 크기의 푸른색 트럭을 시작으로, 하나씩 시선을 지나치는 차량들.
점점 아주 특수한 산업 현장에서나 볼 법한 중장비들이 눈에 띄나 싶던 그 순간, 내 발걸음을 그대로 잡아 세운 트럭 한 대.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8미터의, 어지간한 3층짜리 단독주택만 한 그 검은색 트럭.
내가 생각했던 것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게, 그 광산용?”
“넵! 저희 탄약 자동차의 자랑 중의 자랑입니다요. 회장님의 업적에 걸맞게 거대한 위용이 마치 태산처럼….”
“뒤에 수식어는 됐고요. 확실히 크긴 하네요. 이건 어디로 납품한다고요?”
“그게 사실은, 호주 석탄 광산으로 보내야 하는디, 그쪽 사업하는 양반이 그만 회사 말아먹고 저승행 편도 티켓을 끊으셔서… 크흠.”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당장 누군가에게 팔 것도 아닌 광산용 대형트럭.
텅, 텅. 나는 주먹으로 이 묵직한 괴물 쇳덩어리를 가볍게 쳐대며 말했다.
“아무튼, 인수자가 없다는 거네요. 지금은.”
“인수자가 관짝 안에 들어가셨으니까요. 최대한 빨리 이걸 주워갈 호구를. 아니, 새로운 고객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질책을 듣는 것이라 착각했던 모양이다. 잔뜩 얼어붙은 모습으로 내게 고개를 숙이는 연구소장.
나는 이 과잉 충성 아저씨의 구부러진 허리를 펴 주면서 대답했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어차피 이거 온전히 새 차로는 못 팔 겁니다.”
“네? 이 녀석을 사용할 만한 현장이 한국에는 없습니다만….”
“한국에도 있습니다. 내가 좀 쓸 데가 있거든요. 이번 주 내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멍청한 표정을 짓는 연구소장. 이 양반에게까지 굳이 깊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마침 내게 다가온 유세나 보좌관이 타이밍도 맞게 대화의 맥을 비집고 들어왔다.
“회장님. 보고드리겠습니다.”
“아아, 유세나 보좌관. 어떻게, 폭죽 재고는 충분하답니까?”
“네. 전부 분홍색으로 준비했습니다. 최대한 복숭아색에 맞추었습니다. 시각 특수효과도 제작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 없었고요.”
매년 여름, 여의도 탄약빌딩 인근에서 벌이는 불꽃놀이.
하지만, 아쉽게도 올해만큼은 불꽃놀이는 없을 것이다. 그때 사용할 모든 재고는 이번 일을 위해 쓰일 테니까.
가짜 기적과 가짜 믿음을 터트리기 위한, 진짜 폭음으로서.
“좋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히나 공주는 고운 정, 미운 정이 둘 다 제법 들어서요. 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유세나 보좌관 역시 이번 일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잔뜩 화가 난 채로, 이를 꽉 앙다문 그녀의 모습.
이렇게 모두가 일치단결해 있으니, 이번 작전은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도 없을 터.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들어 광산용 대형트럭을 가리키고는, 연구소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거 말입니다. 도색 좀 바꾸고 외부 좀 예쁘게 꾸밉시다. 최대한 봄 학기 신입생처럼 샤랄라하게.”
“그… 회장님? 정확히 어떻게 하면 될는지요?”
저 시커먼 괴물딱지를 갑자기 스무 살 여대생으로 바꿔놓으라는 명령이 이해가 가지 않을 법도 하다.
머리통 위에 큼지막한 물음표 하나를 올려놓은 연구소장. 나는 그런 그에게 즉답을 주는 대신, 지난번 들었던 청소 아주머니의 녹음 파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재림 행사? 그게 어떻게 진행 되냐구유? 흐미, 그것들 교리 때문에 늘 하던 방식대로 갈 게 뻔해유.
천주교 쪽에서 찔끔, 어디 신흥 종교 쪽에서 찔끔, 그리고 자체적으로 연구한 것까지 해서 그럴듯하게 만들어냈다는 <주님의 동산>의 교리.
-영생의 복숭아. 죽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교주 년의 축복이 담긴 복숭아를 처먹으면, 주님의 동산에서 평생 행복하리라! 하는 개소리 말이유.
복숭아를 상징물로 한 이 사이비 교단은, 재림 행사에서도 그 엉성한 교리를 놓지 못한 모양이었다.
“영생의 복숭아라.”
그렇다면… 오히려 좋다.
종교적 상징자산으로서의 무언가가 대놓고 모두에 눈앞에서 조각조각 깨부수어진다면, 그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 또한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 한 자루를 꺼내며, 나는 아직도 영문을 몰라 하는 연구소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핑크로 합시다. 광산용 덤프트럭이 큼지막하고 가로세로 길이도 비슷하니, 겉에 구조물만 씌우면 꼭.”
그리고, 즉석에서 그려내는 외부 구조물 데생. 동그란 분홍빛에, 뭔가 아기 엉덩이 같은 그것은 바로.
“복숭아 같겠네요. 광신에 빠진 이들이 아무리 먹는다고 한들, 영원히는 못 살겠지만.”
* * * *
“예언가 어머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주님의 동산>, 초급 신도를 위한 예배당.
원래 군 시절에도 애국가나 군가도 적당히 눈치 보다가 립싱크로 부르는 그였다.
그렇게 뺀질이 소리까지 듣던 그였으나, 교주 박금덕에 대한 찬송가는 목놓아 불러야 하는 상황.
“옘병, 박금덕의 ‘박’자만 불러도 무엄하다고 게거품을 물어 재끼면서 무슨.”
“김 비서실장님, 제발 조용히 좀…”
“아, 내가 뭐 틀린 말 했다냐. 살다 살다 무슨 이런 개떡 같은 집단은 또 처음이여.”
탄약그룹 정보팀 부하들의 만류에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는 김원철.
그리고, 부하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김원철의 시원하게 밀어버린 뒤통수에 굵직한 죽비(竹篦) 하나가 다가와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딱콩!
“김원철 신도!”
“아야! 흐익…!”
초급 신도들의 기강을 세게 잡는 교사 신도.
새파랗게 젊은 조카뻘 여자에게 매를 맞은 김원철. 비록 속에서는 울화통이 터지고 있었으나, 항상 얼굴은 웃어야만 했다. 스마일.
“하하… 부르셨어요?”
“기도 중 잡담은 사탄의 속삭임과 다를 바 없으니! 그대 예언가 어머님의 백성들은 입을 닫고 눈을 감고 오로지 신앙에만 집중하라!”
눈이 반쯤 뒤집힌 채, 게거품을 물고 설교하는 교사 신도.
숨을 토해내며, 그녀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성경 외전, 예언가 어머님의 말씀 4장 4절 말씀입니다.”
“아… 그랬던가요?”
“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입 닫고 눈 감고 기도에 집중하세요. 경고입니다!”
반질반질한 뒤통수에 붙여진 마귀 스티커 한 장.
교사 신도가 떠나자, 정보팀 직원은 주변 눈치를 보며 김원철에게 속삭였다.
“우리 비서실장님, 또 기도실 독방 끌려가게 생겼네요. 거기 쥐도 나온다면서.”
“시껌마.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사이비 종교집단까지 와서 뭐 하는 건지 원.”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여긴 순 이빨도 안 먹히는 게 문제여. 외부하고 어떻게 연락을 한다냐.”
생각했던 것보다 한층 강화된 보안. 이탈자 때문일까, 아니면 다가온 재림 행사 때문일까.
김원철과 탄약그룹 정보팀 직원들의 모든 휴대전화는 입교식 전에 모조리 압수된 상황.
“그럼, 휴대전화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까?”
“하나 있어, 딱 하나. 문제는 그거지. 여기 광신도들하고 뚝 떨어져서 우리 회장님한테 전화할 기회가 없다는 거.”
“그러네요. 그게 제일 문제죠.”
“뭐, 찾다 보면 길이 보이겄지. 일단 지금 해야 할 거는.”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하는 척 눈을 반쯤 감은 김원철과 탄약그룹 정보팀 직원들.
교주 박금덕에 대한 괴상한 찬양을 배경음악 삼아, 그들은 작전 회의를 이어나갔다.
“지하 감옥에 있는 히나 공주랑 유대인 둘. 그 양반들 빼돌릴 각부터 잡아야 혀.”
“위치는 파악했습니다. 과수원 북쪽, 산자락으로 가는 언덕에 있더군요.”
“경비 상태는 어떤디?”
“삼엄합니다. 칼하고 도끼로 무장했고요, 무력행사를 하기엔 인원수도 저쪽이 훨씬 많습니다.”
“하긴, 특수부대 출신이고 나발이고 쪽수 앞에 장사 없지. 그러면.”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하나하나 지워지는 선택지.
머릿속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진 그 선택지를 하나씩 땅 위에 버려가며, 김원철은 그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 회장과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만약 모든 면에서 탈출구가 없다면… 즉각 제게 말해주십시오.’
‘응? 뭘 어떻게 할라고?’
‘상대가 가장 취약한 순간을 노려야지요.’
상대가 가장 취약한 순간.
모든 이들의 이목이 한 군데 쏠리고, 외부 경계마저 느슨해진 채 축제 분위기로 서서히 접어 들어가는 그때는 바로.
‘재림 행사. 그자들이 광기에 취해 있을 때, 진짜 불지옥이 뭔지를 보여줄 겁니다.’
살며시 눈을 뜨는 김원철.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최종 선택지를 마음속으로 집어 들며, 그는 옆자리의 정보팀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그리고 남들의 이목을 확 끌어야만 하지만, 적어도 효과 하나는 확실할 그 방법을.
“기존 작전 전부 폐기. 마지막 작전으로 간다. 재림 행사 때 외부 협조를 받는 방향으로.”
“알겠습니다.”
* * * *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축축하고 불쾌한 기운이 엄습했다.
맥없이 다리를 떠는 히나 공주. 그녀가 다시 빛을 본 것은, 그녀의 눈가에 씌워진 안대가 벗겨진 다음이었다.
“이제 안대를 벗기겠습니다. 헬레나 신도.”
팟, 갑자기 눈에 들어온 밝은 빛에 눈을 깜빡거리는 히나 공주.
“으으… 눈부셔라. 어어… 여긴 어디예요? 저는 왜 여기에?”
“헬레나 신도! 믿음 없이 질문하는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리셨습니까!”
아직 세뇌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히나 공주는 평소 습관처럼 질문을 던지고는 크게 혼이 나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오른손에 든 승마용 채찍이 히나 공주의 등짝을 향해 휘둘러지려는 그 순간.
“저런, 우리 으뜸 신도께서 엄격함이 지나치십니다.”
“예언가 어머님, 오셨습니까.”
자애로움을 연출하며 채찍이 들린 마리아의 손목을 잡는 교주 박금덕.
“이제 헬레나 신도는 주님 앞에서 큰일을 해야 할 어린양일진대, 엄격함보다 자애로움으로 대해야지요.”
“어… 예언가 어머님?”
영문도 모르고 눈만 껌뻑이는 히나 공주. 그러나, 세상에 공짜 호의는 없는 법이라던가.
부드러운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싼 박금덕은 쇠창살 너머의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을 꺼내었다.
스스로 그토록 증오한다고 외쳐대는 악마보다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자, 이리로 와서 이것 좀 보시지요.”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