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96화 (196/300)

196화 주님의 엉덩이(1)

쇠창살 안쪽 안대로 눈이 가려진 채, 양손이 결박된 유대인 두 사람.

도무지 믿기 힘든 것을 본 히나 공주가 질문을 던졌다.

“저기, 그, 예언가 어머님. 이 사람들은 도대체…?”

“죄인입니다. 아주 큰 죄악을 저지른 사탄의 민족인 유대인들. 그리고 이번 주 일요일에 헬레나 신도는.”

말허리를 끊고는 히나 공주의 손에 단도 하나를 쥐여 주는 교주 박금덕.

얼어붙은 냉기처럼 시퍼렇게 날 선 칼날은 당장이라도 피를 보고 싶어 아우성치는 것처럼 불빛에 반짝였다.

“이 독사의 자손들을 직접 주님의 제단 앞에 바칠 겁니다. 산 채로 심장을 뽑아서.”

“네…?”

잠시 정지한 히나 공주의 사고.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가 몇 차례 울리고 난 후, 단도를 쥔 그녀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마구잡이로 떨리기 시작했다.

“못 해요. 못 해요. 절대 못 해요! 진짜 저는 절대로. 으윽…!”

눈물과 함께 내뱉은 절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곧바로 마취제가 묻은 천을 입가에 대어 히나 공주를 잠재운 마리아.

“일어나면 조치토록 하겠습니다.”

“흠, 상태가 영 안 좋단 말이지. 마리아 신도? 지금 이 상태로 재림 행사를 치를 수 있다고 보나?”

시체처럼 바닥에 축 늘어진 히나 공주를 가리키며 마리아에게 묻는 교주 박금덕.

마리아는 허리춤에 매단 승마용 채찍을 한 손으로 꽉 쥐고는 대답했다.

“신앙이 깊어지게끔 남은 시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예언가 어머님.”

“일요일까지 남은 시간은 닷새뿐입니다. 아예 사람이 망가져도 괜찮으니,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시길.”

“확실히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부디 걱정 마시길.”

히나 공주를 둘러업고 지하감옥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마리아.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교주 박금덕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좁은 감옥 안, 금방 자욱해진 연기.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잿빛 구름을 내뱉으며, 그녀는 방금 마리아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재림 행사만 끝나면… 헬레나 신도. 아니, 히나 공주 따위야 미치광이가 되든지, 아예 죽어버리든지 아무런 상관도 없을 테니까.”

* * * *

탄약 자동차 나주 연구소는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군대식 문화가 팽배한 탄약그룹. 그렇기에 주말 야근이라는, 직장인으로서 끔찍한 환경도 가능한 법이다.

그렇게 넥타이를 맨 채, 편의점에서 캔 커피를 사 오며 길을 걷는 직원들.

문득, 그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거대한 3층 전원주택만 한 크기의 무언가가.

“뭐지? 야밤의 마케팅 같은 건가? 근데 우리 탄약그룹, 식품 회사도 있었던가?”

초대형 복숭아.

가로, 세로, 높이 8m의 위용을 자랑하는 그 괴물은 핑크빛 복숭아 모습을 한 채로, 탄약 자동차 연구소 잔디밭에 서 있었다.

“에이, 저게 무슨 식품 회사용 마케팅이야. 그냥 그룹 전체 이미지를 좀 유하게 만들려고 홍보물 만든 거겠지.”

“하긴, 이름부터 탄약에 로고는 불꽃이면 갈 때까지 간 거지. 우리 애는 이제 세 살인데, 아빠 회사 이름이 막 무섭데.”

생각보다 호평하는 직원들.

그러나, 관리자는 그 초대형 복숭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슬리퍼 차림으로 뛰쳐나와 삿대질을 갈겨대는 연구소장.

“아니, 이게 뭣이여! 뭔 괴상망측한 것이 여기 서 있는 겨? 경비팀은 전부 뭐 하고 있었냐!”

“좀 진정하시죠, 소장님. 제가 지시한 겁니다.”

“회장님… 이요?”

어리둥절한 모습의 연구소장.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그 초대형 복숭아에 가까이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내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 회장님. 혹시 이 초대형 복숭아 말입니다요. 제가 생각하는 그걸로 만든 게 맞으신지….”

“맞습니다. 광산용 대형 덤프트럭입니다. 인수자가 없어서 여기 연구소 라인에 모셔져 있던.”

“캬하! 역시 회장님이십니다요! 상남자에 마초적인 이 탄약그룹도 물론 자랑스럽습니다만, 아무래도 요새는 또 부드러운 이미지가….”

아무래도 이 아저씨는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모양이다.

이 초대형 복숭아는… 그룹 이미지 체인지를 위한 것도, 혈기왕성한 회장의 단순한 유희거리도 아니니까.

“아니요. 뭘 상상하시든지 그건 아닙니다. 다 틀렸어요. 이 녀석의 용도는.”

그저 존재감.

환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머릿속에 섬광을 불러일으킬 거대한 존재감.

그 존재감으로… 나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사실 하나를 알려줄 것이다.

이제까지 신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속임 당하고, 또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한 자들에게.

“사람들에게 사실 하나를 알려 주기 위한 겁니다. 세상에 교주 한 사람의 말로 이루어지는 구원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퉁, 퉁. 나는 주먹으로 이 분홍색 쇳덩어리를 두들겼다.

타악기처럼 울리는 경쾌한 소리. 묵직한 이 느낌을 몸으로 기억하며, 나는 며칠 전 걸려 온 김원철 아저씨와의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어흐… 인자 좀 연락이 되네. 여보세요, 회장님아?

* * * *

‘목소리만 들어도 생고생 중이신 게 느껴지네요.’

-내가 살다 살다 이 나이에 맴매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잖어. 나가기만 해 봐. 아주 탄약그룹 술 창고 열쇠부터 가져갈 것이여.

힘이 빠진 김원철 아저씨의 목소리.

사이비 종교의 계율대로 살아가는 것이 퍽 힘들긴 한 모양이었다. 특수부대 출신도 저렇게 맥을 못 추게 하다니.

‘부동산째로 다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좀 어떤가요? 그 재림 행사인가 뭔가 하는 것 이전에 히나 공주는 뺄 수 있겠습니까?’

-택도 없어야. 지금 이렇게 연락 닿은 것도 기적이여.

본래 사전에 계획했던 매일 연락을 하겠다는 것과는 달리, 교단에 들어가고서 처음으로 내게 전화를 준 김원철 아저씨.

아저씨는 혀를 내두르며 <주님의 동산>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예 경비부터 삼엄해서리… 접근하려 했다가는 도끼 맞고 장작처럼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질걸?

‘그러면 결국, 재림 행사 때 쓰기로 한 <그 방법>밖에 없긴 하겠네요.’

<그 방법>.

다소 거칠고 우악스럽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주는 방법.

집단 최면에 빠져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쓴다면, 분명 제단 위에 선 교주의 권위를 와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가 D-day입니까?’

-일요일 밤 아홉 시. 딱 그믐달 떠서 어두컴컴할 때 할라나 봐.

‘아예 외부 개입을 막으려고 작정을 했나 봅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놈들이여. 아 참, 들어보니까 무슨… 복숭아가 주님의 엉덩이라나?

주님의 엉덩이라니.

역시 사이비 종교 수준답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작명이란 말인가.

‘주님의 엉덩이? 아니, 그건 또 무슨 신성 모독 같은 말입니까?’

-청소 아주머니가 증언했던 것처럼, 복숭아로 만든 과실즙에 환각제를 탈 거 같어. 그래서, 그걸 마시면 천국이 보인다고 주님의 엉덩이라네.

‘맙소사.’

사실 탄약그룹 이름을 지으신 할아버지의 네이밍 센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오늘. 그 생각은 아무래도 취소해야 할 성싶다. 주님의 엉덩이 앞에서는 탄약그룹이고 뭐고, 그냥 평범한 이름에 불과하니까.

-아무튼, 여기가 인터넷이 안 돼서리, 재림 행사 관련 세부 내용부터 빨리 말로 전달할게.

뭔가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목소리를 낮추고는 서둘러 핵심 정보만을 빠르게 보고하는 김원철 아저씨.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하게 조사한 게 맞다. 탄약그룹 술 창고를 통째로 주어도 좋을 만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일요일 재림 행사 때 뵙도록 하지요.’

-히나 공주만 구하고 나 버리고 가면 안 돼야.

‘주님의 엉덩이만 안 마시면 됩니다. 그 상황에서 환각제에 취해 있으면 진짜 답도 없어요. 아시죠?’

-쩝. 거, 복숭아 맛 환각제는 좀 궁금하긴 했는디… 역시 나는 천국 가기는 글러 먹은 인간인가 보네.

마약 수사관이 알면 펄쩍 뛸 법한 말과 함께 종료된 통화.

정말이지… 앞으로는 복숭아는 영 입에 못 댈 것 같다. 그 주님의 엉덩이도 그렇고, 지금 내 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이 초대형 복숭아 덤프트럭도 그렇고.

회상을 마친 나는, 연구소장에게 지시해 운전석에 타게 했다.

“바로 시동부터 거시죠. 소장님 광산용 대형 트럭 운전할 줄 아시죠?”

“네? 물,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려는 건지…?”

“가깝습니다. 여기서 20분도 안 걸려요.”

미리 준비해 둔 음성 인식 내비게이션. 어디로 안내해 드리면 되겠냐는 기계음에, 나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곧바로 그 사이비 종교집단의 이름을 대었다.

마치 출정식을 앞둔 기사라도 된 것마냥.

“<주님의 동산>으로 갑시다.”

* * * *

-컹! 컹! 컹컹!

오늘이 재림 행사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유달리 사납게도 울어대는 맹견 도베르만.

다가오는 자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경비견을 뒤로한 채, 교주 박금덕이 전도사에게 질문했다.

“준비는 문제없이 끝났겠지?”

“경비부터 평소보다 곱절은 삼엄하게 세웠습니다. 행여나 불손한 신도가 이탈자가 될 일은 일절 없습니다.”

“외부 개입 문제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쪽 동네 돌아가는 상황을.”

나주에서 20년 동안을 숨죽여 살아온 <주님의 동산>.

거기에 엔터 업계에 뻗어놓은 영향력과 자금력 때문에, 그들의 지역 사회 장악은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었다.

“지역 경찰부터 소방, 면사무소, 농협까지, 오늘 일에 대해서는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근방 주민들도 지금쯤 서울에 있을 테니, 오늘만큼은 속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겁니다.”

효도 관광을 보내주겠다며, 인근 농민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서울로 올려 보낸 전도사.

재림 행사를 맞이해, 모든 것은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지고 있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것이기에.

“말 그대로 <주님의 동산>이 되겠군. 오직 제사장만이 유일하게 칼을 휘두르는 신전처럼.”

“그것보다… 히나 공주가 정신이 좀 심하게 나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아아, 그거.”

이번 재림 행사에 얼굴마담 겸 상징물 역할을 맡은 히나 공주.

심장을 꺼내어 제단 위에 올리는 의식을 치러야 하기에, 상당한 정신적 학대가 그녀에게 쏟아져 내렸다.

제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폭력과 더불어.

“마리아 그 광신도 년이 미친 듯이 잡아대더군. 뭐, 그래도 생각하지 않아도 몸에 익은 대로 행동하게끔 되었으니 충분하다.”

“음… 알겠습니다.”

때마침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

기괴한 음률에 맞추어 북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고, 몽롱한 연기가 어두운 밤하늘 위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보였다.

그리고, 장막 너머로 터져 나오는, 광신도들의 환호성 소리.

“예언가 어머님! 부디 이곳에 나와주소서! 어리석은 죄인들이 구원을 갈구하나이다!”

잔뜩 달아오르는 광신의 분위기.

잔잔하던 북소리가 심장을 터트릴 듯 울려 퍼지자, 박금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을 향해 걸어 나갔다.

가짜 신 뒤에 숨은, 자신의 진짜 욕망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그럼… 슬슬 시작해 보도록 하지. 거룩하신 주께서 나를 재벌로 만드실, 재림 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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