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주님의 엉덩이(2)
찌르르르, 풀벌레 우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여름날의 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찰 수사관은 벌레에 물린 팔뚝을 긁어대며 푸념을 내뱉었다.
“어흐, 덥다. 아래쪽 동네라 그런가, 서울보다 훨씬 더운 것 같은데.”
“뭔 소리예요. 거기서 거기구만. 선배가 맨날 현장 안 뛰고 사무실에만 있으니 그렇지.”
그리고, 그런 검찰 수사관에게 괜한 핀잔을 주는 후배. 서로 막역한 관계인지, 그들은 긴장이 풀린 채로 한마디씩 농담을 주고받았다.
“야, 박은지 검사한테 그렇게 닦였는데 나도 좀 쉬어야지 않겠냐? 그리고 지금 꼬라지 좀 봐봐.”
“아, 뭔 꼬라지?”
“법무부 가서도 나 현장 돌리는 거. 옘병, 아주 사람 잡는 귀신이여, 귀신.”
본래 박은지 검사 밑에서 고통받는 삶을 살던 검찰 수사관.
인사이동 시즌이 되어 박은지 검사는 법무부로 날아갔고, 드디어 압제자로부터 해방된 프롤레타리아트 노동자 혁명이 일어난 듯싶었다. 물론 그건 착각에 불과했지만.
“시간 좀 났다 싶으면, 바로 전화해서 뭐 시키질 않나. 이번에도 그렇지. 나주까지 와서 뭔 고생이여.”
“하이고, 승진 포인트 모은다면서 투덜대면서도 나갈 땐 또 나가잖수. 뭐, 아무튼.”
망원경을 댄 눈으로, 저 멀리 울타리 너머를 바라본 후배 수사관이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한 건이다? 이번 건은?”
“박은지 고 미친년이 물어다 준 건데 확실 100%짜리지.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어쩌면 말이야.”
행여나 새나 쥐가 들을세라, 밤말도 조심스레 꺼내는 검찰 수사관.
“이거, 한서준 그 양반 작품인 것 같기도 하고.”
“한서준? 그 괴짜 사고뭉치 회장? 계절 바뀔 때마다 굵직한 건으로 TV에 얼굴 안 비치면, 온몸에 두드러기 난다는?”
“아, 확실한 건 아니여. 나도 박은지 검사 그 여자가 중얼거리는 거 들은 거니까.”
분명 그랬다.
평소 전화로 자신에게 이것저것 시키던 때와는 달리, 웬일로 과천에서 서초동까지 직접 와서 밥을 사주던 박은지 검사.
어제 입던 옷을 그대로 입었는지, 술 냄새가 진동하는 정장 차림의 그녀는, 아침 겸 점심으로 해장국을 퍼먹으며 혼잣말을 곁들였었다.
‘확실히 한서준이가 대가리는 좋단 말이지. 내 밑의 놈들은 숭어 대가리인데. 아, 우리 수사관님 대가리 말하는 건 아니고.’
물론 빨간 뚜껑의,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도 함께.
햇빛이 쨍쨍한 대낮부터 소주 한 병을 비우던 박은지 검사. 검찰 수사관은 그런 그녀를 머릿속에 떠올린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는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숭어 대가리는 니미… 아야, 따가워라!”
위이이잉, 소리와 함께 찾아온 가려움. 아무래도 풀숲에 모기가 여간 많은 게 아닌 듯했다.
“하여간 시골 동네. 과수원 근처라 그런가 모기는 또 오지게 많아요.”
“흐흐흐. 선배, 진짜 모기는 저 안에 있지 않수? 사람 피 하나는 제대로 빨아먹는 주님의 모기.”
“그러게 말이다. 저놈의 사이비 종교가 뭐라고 전 재산에 몸뚱이까지 다 가져다 바치고… 어우, 왜 이렇게 윙윙거려?”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통째로 다 뿌렸건만,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커지는 모기 날갯짓 소리.
아니, 어쩌면 검찰 수사관은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귀를 찌르는 이 불쾌한 소음이, 사실은 모기 따위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무언가의 발걸음 소리일 수도 있기에.
“내 혈당 높은 건 또 어떻게 알고, 아주 달콤한 것만 찾아서… 어어어?”
“뭐, 뭐여… 저건! 흐미, 세상에나!”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물체.
엉덩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동그랗고 분홍빛을 띤 그것은 바로.
“복숭아…?”
복숭아, 모양의 겉껍데기를 뒤집어쓴… 가로·세로·높이 각각 8m 규모의 광산용 대형트럭.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바라보던 검찰 수사관의 머릿속에서, 박은지 검사와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이번 작전, 협조 대상자는 누구라고 보면 되는 겁니까?’
‘아아, 그거. 지금 바로는 말 못 하고. 그냥 가면 딱 알아요.’
‘네?’
해장국 한 그릇을 추가하고는 스테인리스 컵에 소주를 따르던 박은지 검사. 코가 벌겋게 달아올랐음에도, 그녀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일은 없었다.
다만, 묘한 말 한마디를 덧붙였을 뿐.
“이런 미친… 그 말이 진짜였어? 아침부터 술 퍼먹고 헛소리한 게 아니라?”
그저 술꾼의 헛소리로만 들렸던 그 말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정말 사실 그대로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네 복숭아가 유명하걸랑. 초대형 복숭아가 사탄 잡으러 달려오면, 그냥 그건갑다 생각하면 됩니다.’
* * * *
-그릉그릉! 위이이이이잉!
기가 막힌 엔진 굉음을 내며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복숭아 모양 대형트럭, 일명 <주님의 엉덩이>.
아예 타이어 대신 무한궤도를 단 이 트럭은 무지막지한 수백 톤의 무게를 자랑하며, 지나가는 곳마다 도로를 박살 내고 있었다.
“회, 회장님? 이거 지금 맞게 가는 것 맞습니까요? 아스팔트가 죄 망가지고 있습니다만….”
“상관없습니다. 얼마 안 하니까 나중에 싹 보상하면 되고요. 일단 그냥 전력으로 달리세요.”
“아니, 이제 슬슬 길이 없는데….”
길이 없다니. 이런 괴물딱지를 운전하면서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이 정도 체급이 되는 순간, 그냥 가는 곳이 곧 길이요, 빛이요, 생명이리니. 그저 묵직하게 전진만 하면 될 뿐이다.
“무한궤도 뒀다 뭐 합니까. 산이고 언덕이고 실개천이고 그냥 뭉개버리고 직진하십시오. 탄약그룹 사나이답게!”
“탄약… 사나이? 탄! 약!”
탄약 사나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언가 이상한 스위치 하나가 들어간 연구소장.
왜 약간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게 느껴지나 싶었는데, 마침 딱 머릿속에 이유가 떠올랐다.
작전 시작 전, 김원철 아저씨가 내게 말했던 내용이.
‘하이고, 나주 연구소 그 양반. 피곤한 스타일이드만.’
‘딱히 별것 없어 보이던데. 문제 있습니까?’
‘나름 이택규 사단 출신이여. 해병 ROTC 출신은 아니고, 육군에서 탱크 몰았다던디. 아무튼, 이쪽도 전형적인 옛날 탄약맨이여.’
탄약그룹 군대 문화의 선교사였던 이택규 전 사장. 그리고 그를 따르던 임원진들.
그때 어지간한 책임자들은 얼추 잘랐었는데, 이 양반은 곁가지라 그런가, 그냥저냥 남아있었나 보다.
탄약 상남자 스위치가 눌러지자, 즉각 반응하는 연구소장.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핫, 둘, 셋, 넷!”
대뜸 군가. 아니, 탄약그룹 비공식 사가(社歌)를 부르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구소장.
일단 이런 건 내 취향은 아니기는 한데… 운전대를 맡겼으니, 일단은 맞춰는 줘야겠지.
“…바로 내가! 사나이! 탄약 사나이!”
반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군가를. 아니, 비공식 사가(社歌)를 따라 불러주자, 갑자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연구소장.
“회장님께서 저를 믿어주시고! 또 옆자리에 함께 서시니! 어디라도 단숨에 주파할 수 있습니다! 악!”
“그… 좋은 자세입니다. 저기 울타리 보이십니까?”
일단 감동은 감동이고 해야 할 일부터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나는 <주님의 동산>의 경계선인 나무 울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명령했다.
“그대로 밀어버립니다. 탄약 사나이의 기갑 정신으로. 악!”
“필! 승! 아아아아악!”
전차 부대의 혼이 깃든 연구소장.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덜컹거리는 트럭 속에서, 나는 안전 손잡이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일부터 저지르고 봐야겠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흰색 울타리. 울타리 주변에는 오토바이를 탄 광신도 경비대가 이쪽을 보며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
아예 그들이 외치는 말이 들릴 만큼 가까워진 상황.
“어… 어…! 저거, 저거 뭐야!”
“복숭아? 설마… 주님의 엉덩이인가! 우리를 구원하시러 메시아가 오셨단 말인가!”
이런 반응은… 뭔가 당혹스럽다.
재림 행사에 환각제 섞은 복숭아 주스가 나온다는 것도, 복숭아가 나름 사이비 종교의 상징물이라 <주님의 엉덩이>라 불리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하… 진짜 모르겠다. 기왕 이리된 거, 어디 갈 데까지 가 보자.”
그래. 애초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다.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댄 나는, 결심을 마치고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독은 독으로 잡는다고, 사이비 종교는 또 다른 사이비 종교로 잡겠다는 결심을.
“썩 물럿거라! 이제부터 주님의 엉덩이가 그대 죄를 사하리라! 거룩하신 은혜를 세계만방에 떨치리라!”
통할까…? 싶었는데, 진짜 통했다.
갑자기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광신도 경비대원들.
“오오! 역시 내 말이 맞았어! 에덴동산의 복숭아는 곧 주님의 엉덩이일지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주인이신 하느님께 힘찬 영광 있으라!”
아무래도 평소 장기간 복용하던 환각제 부작용 탓일 것이다.
그런 그들을 조금 불쌍하게 바라보며, 나는 광신도 경비대원을 향해 참된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했다.
나름 그래도 진심이 조금 담긴, 구원의 메시지를 담아서.
“구원받으라! 그대 죄 많은 자들이여,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라!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미래가 있으리!”
* * * *
“어우, 이거 냄새만 맡어도 머리통이 핑글핑글 돈다야.”
환각 물질이 들어간 향을 코로 듬뿍 흡입했기에 두통이 온 모양이었다. 관자놀이를 매만지는 김원철.
뒤이어, 탄약그룹 정보팀 직원의 소심한 타박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복숭아 주스 마셨으면 김 비서실장님도 쟤들처럼 주님 찾고 난리였을 거 아닙니까. 무슨 호기심이 그리 강하신 건지….”
“아, 호기심이 아니고. 그 뭐시기냐.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다 이거지.”
“아, 예.”
그나마 김원철을 포함한 잠입한 인원 전부 왕년에 특전사 출신이었기에, 따로 정신을 잃거나 하지는 않은 상황.
갑자기 바뀐 음악 소리에 정보팀 직원이 달라진 공기를 느꼈다.
“슬슬 시작하나 봅니다. 그 재림 행사.”
“어어, 저기 뚱땡이 교주 아줌마 나온다야. 우리도 바로 준비하자. 현재 ‘엉덩이’ 위치는?”
“지금… 북서쪽으로 3km 근방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손목시계 안에 숨긴 GPS 표시장치를 확인한 정보팀 직원. 대략적인 ‘엉덩이’의 도착 시각을 예상한 김원철이 정보팀 인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케바리. 자, 그럼 기도들 합시다. 실눈 뜨는 거 잊지 말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시작된 재림 행사. 곧바로 교주 박금덕이 재단 위로 올라가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신자들을 향해 외침을 토해냈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너희 죄 많은 자들이여! 아직도 주님의 품에 안기지 못한 불쌍한 이들아! 팔을 높이 들어라!”
“와아아아아아! 할렐루야!”
콘서트에 온 것처럼 높이 든 천여 개의 팔.
“아구구구. 오십견 땜에 죽겄는데, 진짜.”
“아, 빨리 좀 드세요, 김 비서실장님. 이러다 들킬라.”
“아퍼 죽겄어, 이눔아. 젊은 놈들은 이게 얼마나 아픈 줄 모른다니까. 그리고, 지금 팔 들 때가 아니여.”
팔 대신 손가락을 들어 제단 쪽을 가리키는 김원철.
분홍색 불빛 한가운데에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이는 그 광경은 바로.
“유대인… 그리고, 히나 공주!”
“시작이다. 다들 이동해!”
왕년의 특전사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 나오는 김원철.
그는 순식간에 정보팀 직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놓고서, 복숭아 트럭을 타고 달려오는 어린 지휘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 빨리 위치로!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게 생겼네. 뭐, 지금 지휘관이 그때보다 훨 잘났으니, 그때보다 일은 수월하게 풀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