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주님의 엉덩이(4)
“엉덩이! 엉덩이! 주님의 엉덩이!”
“오오오… 드디어! 드디어 구원받을 수 있어! 믿습니다!”
분홍색 폭죽 터지는 모습과 함께 초대형 복숭아에 넋이 나간 광신도들.
환각제 기운에 맛이 간 그들 사이에서,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하늘 위로 벗어 던진 김원철.
그는 제단 위쪽을 향해 달려가며 탄약그룹 정보팀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절대 제단 위로 못 올라가게 막아! 벌써 맛탱이 간 게, 해롱대느라 힘도 못 쓸 것이여!”
“저희는 걱정하지 마시고 바로 할 일 보십쇼, 비서실장님!”
정보팀 직원들이 광신도들을 막는 동안, 곧바로 제단으로 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는 김원철.
과거 특전사 시절의 육신은 어디 갔는지, 점점 호흡이 거세지는 상황.
“아이고, 삭신이야. 무슨 계단이 이렇게 가파르다냐. 도가니 다 나가게 생겼네. 그나저나.”
그러나, 그 거친 호흡 속에서도 새어 나오고야 말아버린 웃음.
저 위쪽, 커다란 복숭아 속에 들어있는 자그마한 문짝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김원철.
“으흐흐흐. 진짜 이런 정신 나간 무대뽀 작전은 도대체가 어떻게 생각한 것이여.”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이 괴상망측한 계획의 입안자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싹 다 밀어버리고는, 그저 간단한 사칙연산이라도 푼 것처럼 정답을 말하던 한서준이라는 남자에 대해.
<주님의 동산> 잠입 후, 다시 한번 몰래 주고받았던 통화.
‘복잡할 것 없습니다. 그냥 쭉 밀어붙입니다. 불도저처럼.’
‘뭔 소리여? 우리 회장님답지 않게 권모술수 같은 것도 안 쓰고.’
평소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제갈공명이라기보다는 하후돈 같은 스타일의 해결법을 택한 모습.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왜 굳이 묻냐는 뉘앙스와 함께, 정답에 대한 해설이 뒤따랐다.
‘가로·세로·높이 각각 8m에 무게가 300톤짜리 괴물입니다. 여기에 신성함의 상징인 복숭아 코스프레까지 하는 거죠.’
‘그렇긴 하지. 그래서?’
‘거하게 행사하느라 집단 최면에 걸린, 뽕 맞은 광신도들에게 그 복숭아 괴물이 뭐로 보일까요? 아마 제가 그런 상태라면.’
묘한 웃음과 함께 끊었던 말을 그대로 이어나가던 불도저 성애자.
‘눈앞에 강림한 기적. <주님의 엉덩이> 자체만으로 기적이라 여길 겁니다.’
그리고, 지금.
그때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래쪽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광신도들의 함성.
“엉덩이! 엉덩이! 와아아아아아!”
반쯤 넋이 나간 채로 거품을 물며 내지르는 그 함성을 배경음악 삼아, 김원철은 이번 작전의 핵심 내용을 곱씹으며 달려 나갔다.
‘그러니, 그때가 찾아오면 간단한 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첫째, 신도들이 제단으로 몰려가지 못하게 통제한다. 그리고.’
타박타박, 돌계단을 내달리며 찰진 마찰음을 내는 슬리퍼.
이제 맨 꼭대기까지 남은 것은 불과 대여섯 걸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묶여 있는 유대인 두 사람과 정신을 잃은 히나 공주, 그리고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칼을 손에 쥔 교주 박금덕.
그 모습을 보고는, 다급한 마음에 허리춤에 꽁꽁 묶어둔 무언가를 꺼내 든 김원철.
‘둘째, 제단 위에서 펑펑 터질 불씨를 최대한 빨리 진화한다. 문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자신이 모시는 어린 주군의 예지력에 혀를 내두르며, 회상을 마친 그는 방금 꺼내 든 무언가에 부착된 안전핀을 뽑았다.
그리고는, 자포자기하듯 내뱉은 한 마디.
“설마 이게 진짜 문자 그대로의 뜻이었다니… 에라 모르겠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으아아아아!”
* * * *
무릎 관절도 안 좋은 김원철이 계단으로 내달리기 바로 전, 대리석으로 장식된 사이비 제단 위에 선 교주 박금덕.
아래쪽에서 외쳐대는 광신도들의 엉덩이 타령이 어지간히 신경을 거슬렀는지, 그녀는 분노의 감정을 감추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머저리들 같으니! 누가 봐도 광산용 트럭 위에 복숭아 껍데기를 씌운 것이거늘! 이놈들은 죄다 명태 눈깔이란 말이냐!”
“환각제 때문에 정신이 나갔을 겁니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그나마 전도사만큼은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난리 통에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대안은 뒤이은 내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지만.
-지금부터… 내가 거룩하신 주의 이름으로 손길을 뻗을 것이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너희들 모두를 꺼내줄, 구원의 손길을!
기계음 사이로 섞여 나온 내 거룩한 선동의 목소리.
얼핏 듣기에 신성함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으나, 그런 것 따위야 아무 상관 없었다.
이미 이 광산용 대형트럭을 <주님의 엉덩이>로 인식한 광신도들에게는 그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숭배의 대상이었으니까.
“크흑… 저 이단 놈이 개소리를!”
“예언가 어머님! 어서 피하십시오! 후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칼 한 자루를 손에 꽉 쥐고는 망설이는 모습의 박금덕.
그래, 도망쳐라. 차라리 지금 도망치다 잡히더라도 그게 나을 것이다.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었다가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아니지. 아니야. 피하면 안 돼!”
“예언가 어머님? 아니… 금덕 누님?”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일본 진출 계획에 내가 시간과 자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
전도사를 향해 절규하듯 소리치는 박금덕. 칼을 쥔 그녀의 손에 울긋불긋한 혈관이 여기저기 잔뜩 도드라졌다.
“누님… 지금 상황에서 뭘 어쩌시려는 겁니까?”
“강행해야지! 어차피 저 이단 트럭 말고는 나머지 상황은 그대로잖나!”
격앙된 어조로 소리를 지르는 박금덕.
그녀의 부릅뜬 두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된 지 오래였다. 탐욕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실핏줄이 여기저기 터진 상태로.
“경찰이고 소방이고, 하다못해 읍사무소 말단 직원도 여기는 절대 못 와! 이 동네 무지렁이 농부 놈들도 다 관광버스 태워 보냈고!”
“금덕 누님….”
“차라리 잘 되었다. 그냥 이걸 이용해서 최대한 빠르게 재림 행사를 끝낸다. 그리고, 저기 조종석에 탄 저 이름 모를 놈도.”
조종석에 탄 내 쪽을 향하는 그녀의 칼끝. 희미한 그믐달 빛을 받은 칼날은 어서 벨 것을 가지고 오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스산하고 을씨년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바깥으로 끌어낸 다음, 제물로 삼아야겠지. 오늘, 아예 날을 잡았구나. 심장 팔딱이는 것 하나는 실컷 구경하게 생겼어. 일단, 먼저.”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짓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모양인 박금덕.
칼을 쥔 그녀의 시선은 다시 반대쪽을 향하여, 제단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히나 공주를 향했다.
“원래 죽어야 할 놈들부터 시작한다! 개돼지들 이목부터 집중시켜!”
* * * *
-팟!
전광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제단 뒤쪽에 걸어두었던 흰색 천이 이렇게 영상을 보내는 역할도 할 줄이야.
전도사를 시켜 칼을 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클로즈업하게 한 박금덕.
의식이 나간 채로 누워 있는 두 유대인을 향해 칼을 뻗으며, 그녀는 아래쪽 광신도들을 향해 최대한의 성량으로 외쳤다.
“죄 많은 어린 양 떼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죄 많은 자의 심장을 뽑겠나니, 이로써 너희들의 원죄 또한 뽑혀 없어지리라!”
그 광기 어린 목소리가 광신도들의 가슴팍에 닿은 모양이었다.
다시금 시선을 <주님의 엉덩이>에서 제단 위를 향해 옮겨가는 신도들.
“어…! 예언가 어머님이시다!”
“지금 바로 제물을 바치나 봐! 드디어 기다리던 재림의 날이 오다니!”
그녀에게 단 한 번 주어진, 마지막 기회. 반쯤 잠든 채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히나 공주를 끌어가며, 박금덕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거세게 고동치고 있었다.
“으윽, 무거워…!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통째로 잃는다. 20년 동안 쌓아 올린 내 왕국 전부를!”
제단 앞에 선 박금덕.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때마침, 농밀하게 잘 익은 복숭아 향기와 함께 불어오는 여름의 바람.
살짝 꿉꿉한 그 바람을 뺨에 스쳐 보내며, 박금덕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피로써 회개하라!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어리석은 백성들아!”
“택도 없는 소리.”
그리고, 그 순간.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장면을 정면에서 목도한 나.
더는 기다리지도, 묵과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런 정신이 나갈 대로 나간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참교육뿐이다. 탄약그룹 특산 폭죽으로 만든 뜨거운 참교육이.
-퍼버버버펑!
“으억…! 끄아아아아아, 뜨거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 박금덕의 등짝에 적중한 소형 폭죽 여러 발.
-치이이이익!
“어후, 안 늦어서 다행이네!”
다행히 딱 타이밍이 맞았다.
품속에서 꺼낸 소형 소화기를 들고서, 박금덕을 향해 뿌리는 김원철 아저씨.
이 미친 사이비 종교 교주가 다치는 것 따위야 전혀 상관없지만… 그녀가 양팔을 잡고 있는 히나 공주까지 화마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끄아아아악! 이 신의 저주를 받을 놈들아! 평생을 지옥에서 썩어 문드러질 독사의 자식이여!”
등짝이 어지간히 따가웠던 걸까?
진흙탕에 빠진 돼지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눈물 흘리는 박금덕.
지극히 속세에 찌든 그녀에게 내가 할 말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찬물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가장 먼저 죄를 뉘우쳐야 할 사람은 박금덕, 당신이거든.”
* * * *
박금덕의 등짝을 폭죽으로 쏴 재끼고, 김원철 아저씨를 시켜 히나 공주를 보호한 나.
곤히 잠에 빠진 유대인 아저씨 두 사람은 일단 깨울 여력도 안 된다. 꿈나라에 수납해 놓을 뿐이다.
적어도… 갑자기 터진 이 사태에 어리둥절해 있는 광신도 집단을 진정시키기 전까지는.
“듣거라! 그릇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여!”
그래서 곧바로 시작해야만 했던, 즉흥 연기.
근엄한 표정, 근엄한 목소리, 근엄한 자세를 취하자, 그들 중 누군가가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주님의 엉덩이>에서 나오신 분이라면… 혹시, 천사님?”
“천사님! 천사님이 분명해! 그런데… 왜 예언가 어머님을 벌하신 거지?”
아니야.
그냥 교주 타이틀도 아니고, 아예 사람도 뛰어넘은 존재인 천사님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돌겠네….”
그러나, 지금만큼은 천사가 아니라, 천사 할애비라도 해야 한다. 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 군중의 흐름을 최대한 안전하게 통제하려면 더더욱.
“사탄이 이 여인의 몸에 깃들어 감히 주님의 이름을 삿되게 불렀나니! 내 이를 심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노라!”
그래서 질러 본 천사님 코스프레.
다행히 환각제 효과는 쉽게 빠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바람잡이 역할을 하던 탄약그룹 정보팀 직원의 선동이 있자, 곧바로 신앙심을 창조해 내는 일반 신도들.
“사탄! 사탄이라니! 할렐루야!”
“아이고, 천사님. 살려만 주십쇼! 벌하지 말아 주소서!”
아까까지 박금덕이 쥐고 있던, 자칭 성검을 손에 들고 흔드는 나.
환호성 소리가 조금 잦아들자, 나는 칼끝으로 대형 예배당 건물을 가리키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대 어리석은 백성들은 예배당으로 가 죄를 뉘우치라!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눈을 꼭 감은 채로!”
“아멘! 아멘! 모르고 그랬습니다, 천사님! 참회하고 뉘우치겠으니 용서해 주소서!”
정말 신기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신자들.
대열의 끄트머리까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옆에서 김원철 아저씨가 내뱉는 감탄사를 귀에 담으면서.
“히야… 진짜 사이비 교주가 따로 없네. 우리 회장님, 직업 바꾸실라고?”
“후우, 때려죽여도 이런 건 두 번은 못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때만 하더라도 알지 못했다.
그냥 사이비 종교 수준을 넘어, 엄청나게 대중적인 종교 집단의 열렬한 환호가 다시 내게 쏟아질 줄은.
그리고, 그 시작점은… 지금 저기 제단 위,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고 있는 유대인 아저씨 두 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