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00화 (200/300)

200화 이스라엘에서(1)

뭐든지 간에 굵직한 일 하나가 끝나면,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뒷정리가 되시겠다.

특히나, 이번 <주님의 동산> 건처럼 아예 대놓고 대형 사고를 쳤다면 더더욱.

“으어어엌. 아니, 진짜 이건 레전드여. 검사 생활하면서 요런 케이스는 또 처음이라니까.”

“크흠, 박은지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사실.

회귀 이후로 처음 받는 검찰 조사치고는 뭐랄까, 참… 이게 조사인가 싶을 정도로 느슨한 긴장감을 자랑하는 상황.

심지어, 자기 사건도 아닌데, 담당 부장 검사에게 다짜고짜 찾아온 박은지 검사. 그녀는 날림으로 써진 조서를 읽으며 연신 폭소를 터트렸다.

“으흐흐흐. 아, 미치겠네. 조사 계속해야 하는데, 너무 웃겨서 진척이 안 돼.”

“박은지! 얌마, 넌 좀 나가 있어! 정신 사납다!”

“아, 왜요. 이거 반은 내 사건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밑에 수사관 애들 보낸 거 기억하라고요, 당숙 아저씨!”

“이게 미쳤나, 진짜! 또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정말 한 대 맞고 나서야 조사실에서 쫓겨난 박은지 검사.

서로 오촌지간이라고 했던가?

묘하게 얼굴 생김새가 닮아 보이는 부장 검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조사를 이어나갔다.

“크흠, 민망하게 되었습니다. 한 회장님. 은지 저것이 저희 명문 박씨 집안의 돌연변이 같은 거라서….”

“그… 괜찮습니다. 일단 계속하시죠.”

펄럭,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서류 뭉치. 그는 내게 교주 박금덕의 조사 내용을 보여주며,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했다.

“박금덕 쪽에서는 뭐 특수상해가 어쩌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회장님께서는 아무것도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정당방위, 긴급 피난, 자구행위. 위법성 조각 사유로 다 알아서 마사지하라는 VIP 특별 지시가 있었으니까요.”

특별 지시.

생각보다 뒤처리하는 데에 별다른 트집 없이 내게 협조한 대통령.

애초에 히나 공주의 수행원에 대해 운을 띄운 사람이 자신이어서였을까?

이곳 검찰 조사실에 들어가기 전, 나와 전화 통화를 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하여간… 폭풍을 부르는 사나이로구먼. 아니, 이제는 한서준 천사님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천사님 타이틀까지 얻어서 그런가, 저도 그냥 팔자대로 살까 합니다.’

‘끄응. 이거 참, 칭찬해야 할지, 문책해야 할지 아주 머리가 아프군. 일단, 그래도 칭찬 쪽이 더 많다고 치겠네. 교황 건도 있고.’

때마침, 바티칸에서 교황과 회담을 나누던 대통령.

참 시의적절하게 터진 <주님의 동산> 사건은, 곧바로 교황청의 파문 선언을 이끌어 내었다.

-[파문 선언]

나주 <주님의 동산> 교주 박금덕과 그녀를 따르는 자들에 대하여, 본 바티칸은 이를 이단이라 판단하였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식간에 내려진 파문.

하기야,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살인 미수,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 위반, 기타 자잘한 횡령까지.

사이비 교리에 대한 부분을 떠나서, 가톨릭교회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문제였을 것이다.

대충 교주 박금덕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겠다는 조사 문건 마지막 페이지를 본 나는, 면전에 앉은 부장검사에게 말을 건네었다.

“아무쪼록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더 하실 말씀은?”

“아아,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이것도 형식적인 거라서요.”

바쁜 사람을 괜히 오래 붙들어두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게 작별 인사를 하는 부장검사.

악수를 건넨 손을 맞잡은 나는, 아까 하지 못했던 말 한마디를 마저 덧붙였다.

“아, 그리고. 사이비 종교 건 말고도, 엔터 업계 쪽도 심도 있는 조사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지요. 이게 히나 공주와도 연관이 깊어서, 저희도 각 잡고 나서야 할 성싶거든요.”

에덴동산 레코드 등을 필두로 한, 박금덕 휘하의 엔터 회사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시작점은 히나 공주의 가시밭길 같던 연예계 진입부터였으니, 조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끄응, 일본 쪽 외교 이슈로 일이 커지지 않으려면, 저희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까지 싹 끝내야 하거든요.”

“뭐, 부장검사님께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름 정무적 판단을 한답시고 고민하는 부장 검사.

나는 그런 그를 위해서, 내가 보고 들은 약간의 정보를 이야기해 주었다.

“일단 그 동네 총리대신분하고는 논의가 되었고요.”

정치적 이익에 목숨을 건 일본 총리대신. 그는 한국 측에 딱히 항의하거나 하는 일 없이, 외교적으로 조용히 넘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일본 내부적으로 판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에 가장 깊게 연관된 당사자. 히나 공주의 반응.

“당사자하고도 이야기가 잘 되었으니까,”

생각보다 빨리 병상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녀는, 다행히도 그 충격적인 사건에 자아가 붕괴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 * *

“좀 어떻습니까? 몸은.”

“개판이지. 그 복숭아 환각제가 워낙 독해서 말이야. 팀원들에겐 미안하지만, 데뷔는 내년으로 연장이야.”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한 채, 요양 생활을 이어나가던 히나 공주.

병실 안은 도저히 갑갑해서 못 버티겠다며 뛰쳐나온 그녀는, 곧바로 내 집무실로 향했다.

슬픈 표정의 속마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차마 숨기지 못한 채로.

“그리고… 사실 몸보다 마음이 더 안 좋고.”

“아아.”

아직 채 치유되지 못한 그녀의 마음 상태.

그것은 그저 사이비 종교 집단 내부에 갇혀 구타와 세뇌를 당해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믿고 친언니처럼 따르던 사람, 마리아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터.

다행히도… 재림 행사 당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히나 공주는 보지 못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마리아의 광기에 휩싸여 추해질 대로 추해진 모습을.

‘어째서…? 어째서…!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한서준 네놈이 무슨 짓을 한지나 알고 있는 거야!’

박금덕을 제압하고, 신도들을 예배당으로 몰아넣은 그때.

내가 모든 상황을 정리하자, 뒤집힌 눈으로 내게 다가와 악다구니를 퍼붓던 마리아.

‘마리아,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모르는 건가…?’

‘그 더러운 입 닥쳐!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사탄 같은 자여!’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히나 공주에게 다가가, 앙상해진 몸을 꼭 안아주는 마리아.

진심 어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려가며, 그녀는 내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영원한 안식! 주님의 나라에서 맞이할 행복! 이 모든 것을 네놈이 부쉈다! 히나 공주님과 함께 올라탈 구원의 방주까지도!’

‘완전히 미쳤군. 광신에… 눈이 멀어서 스스로를 잃은 건가. 아니, 잃은 건 자기 혼자만의 삶은 아니겠지.’

그릇된 광신에 빠져, 자신뿐만 아니라 가장 소중히 여긴 이까지 모래 지옥으로 빨아들인 마리아.

서럽게 우는 모습으로 보아, 아직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지, 왜 잘못된 신념에 눈이 뒤집혔는지까지도.

‘감옥에서 차분히 머리 좀 식히다 보면, 정신이 들 날이 올 겁니다. 본인이 한 짓이 무엇인지, 왜 그토록 눈이 멀었었는지까지.’

제단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던 경찰차 사이렌 불빛.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점점 요란하게 다가오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예전에, 돌아오기 전에는 그랬었으니까.’

* * * *

“알다시피, 마리아 일도 있고,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마리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히나 공주.

나는 탁자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에게 답했다.

“아무 생각 말고 일단 쉬시죠. 적어도 핵무기 엔터에서 실적 가지고 쪼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여간, 재벌답다니까. 아무튼, 오늘 여기 온 건, 할 말이 있어서 왔어.”

“할 말?”

머리 위에 쓴 검은색 야구모자를 자기 손으로 푹 누르는 히나 공주.

평소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인 모양이었다. 조금 부끄러운 듯,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야 입을 연 그녀.

“구해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이제 좀 철이 드신 것 같기도 하고.”

“뭐래니. 일단, 내 용건은 여기까지. 곧바로 들어오실 분이 또 계시잖아?”

생각보다 이번 일에 얽힌 사람들이 워낙 많아야지.

히나 공주의 뒤를 이을, 다음 손님은 아예 노크조차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조금 예의가 없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손님이 아니니까.

“내가 정말 못 살아… 어쩌려고 그렇게 무모한 일만 척척 벌이는 거니?”

“아, 오셨어요?”

탄약그룹의 자회사 핵무기 엔터.

그 회사의 대표이자, 히나 공주의 보호자 역할까지 맡은 다음 손님은 바로… 우리 엄마 되시겠다.

* * * *

“할머니도 걱정하고 계셔. 어떻게 가는 곳마다, 벌이는 일마다 자꾸 위험한 것만 골라서 하냐고.”

“뭐, 다 그런 거죠. 멀쩡하니 됐습니다.”

“못 살아, 정말… 물론, 서준이 네가 있는 위치가 잔소리로 어떻게 못 할 만하긴 하지만.”

“그보다, 엔터 쪽 상황은 어때요?”

걱정 섞인 잔소리 시간은 새로 나온 커피가 다 식고 나서야 비로소 중단되었다. 그리고, 이럴 땐 재빨리 주제를 바꾸는 것이 이득이다.

부드럽게 다른 쪽으로 넘어간 화제.

“무주공산이지. 적어도 <주님의 동산> 영향권에 들던 회사들은 전부.”

“음.”

“자금줄도 막혔고, 지분 관계도 복잡해지고, 괜히 자기들도 이미지 나빠질세라, 실무자 선에서는 폭탄 피하기 바쁘지.”

“잘되었네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괜찮게 돌아가나 보네.”

알쏭달쏭한 내 말에 물음표 하나를 머리 위에 띄워 놓은 엄마.

나는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서랍에서 USB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때 엄마가 줬던 이거.”

엄마가 내게 줬던, 향후 엔터 업계가 어떻게 변할 것이고, 거기에 맞추어 어떤 전략을 채택할지를 구상한 USB.

“바로 한 번에 밀어붙이지는 못하더라도… 마중물 정도는 줄 수 있는 타이밍 아닌가?”

이번 사건으로 달라진 상황.

그렇다면… 굳이 계속 발톱을 숨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모든 발톱의 날을 세워 보이지는 않더라도, 발 사이 숨은 뾰족함은 보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판국이 되었으니까.

“CZ E&M에 눈치 보이지 않을까? 그쪽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평상시라면 그럴 텐데, 지금은 판이 뒤집혔잖아요. 어차피 저쪽에서도 <주님의 동산>이 하던 포지션을 맡을 주체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야 그렇지만….”

“서서히 종이에 물 스며들듯이 해 보자고요. 그때 엄마가 보여준 계획대로.”

감동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

그러나, 꼭 이런 좋은 타이밍에는 훼방꾼이 존재하는 법.

노크 소리와 함께, 언제 왔는지 집무실 문간에 기댄 김원철 아저씨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크흠, 감동의 모자 상봉은 참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것이지만서도, 에… 우리 회장님은 이제 제가 쓸 시간이걸랑요.”

“어머, 원철 씨. 오랜만.”

“잠깐 새치기해도 되쥬?”

“어휴, 못 살아. 알았어요. 그럼, 서준아 나중에 봐. 가끔 본가도 좀 오고.”

엄마를 보내고 평소처럼 냉장고에서 꺼낸 간식과 함께 소파에 앉은 김원철 아저씨.

“거, 가끔씩 본가도 좀 가고 그러지. 맨날 회사에서만 살잖어.”

“팔자입니다. 아무튼, 무슨 일이세요?”

자기도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내게 실현 불가능한 제안을 던지는 김원철 아저씨.

평소 같았으면 또 해괴한 논리를 펼치며 언어유희를 즐겼을 아저씨는, 오늘은 웬일인지 자신의 논리적 허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어… 방금 한 말은 취소. 아무래도 일만 오지게 하는 그 팔자 말이여. 또 사주가 거하게 맞아들어가서리.”

“네? 그게 무슨…?”

“일단, 요거 좀 봐봐.”

그리고, 그 논리적 허점은… 김원철 아저씨보다는, 오히려 내게 더 묵직하게 다가왔고.

검은색 결재판에 끼워진 외부 문서 한 장. 거기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과 발신인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금번 <주님의 동산> 사건의 사후 처리를 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서준 한 회장님과의 만남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특명 전권 대사 배상.

“이스라엘… 특명 전권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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