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01화 (201/300)

201화 이스라엘에서(2)

고풍스러운 은촛대가 그려진 편지지. 반쯤은 협박 비슷한 어조로 나를 초대한 이스라엘 특명 전권 대사.

운명의 신이 장난질이라도 치는 걸까?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탄약그룹 본사 건물 바로 앞, 청계천 너머의 고층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감도 영 안 오네요. 뭐, 좀 생각나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글쎄올시다지. 그래도 굳이 추리를 해보자면… 아마 그 제물용 유대인 두 사람 문제 아니겄어?”

나와 함께 본사 건물 밖으로 나와 청계천 돌다리를 건너는 김원철 아저씨.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내게 온 통보문에는, 아저씨가 말한 대로 <주님의 동산> 사건의 사후 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하지만, 이게 한국 외교부 쪽 채널이면 또 모를까, 바로 우리 회장님한테 물어볼 건 아니지 싶기도 하고.”

“저도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굳이? 이스라엘 정부가 탄약그룹에? 아니, 정확히는.”

정부 대 정부. 개인 대 개인.

원칙적으로 보아서는 이스라엘 정부는 한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내가 따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한국 검찰, 경찰에는 형식적인 부분 외에는 특별한 무언가를 요구한 적 자체가 없는 이스라엘.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의아함. 그건 바로.

“저. 한서준이라는 개인을 콕 집어서 만나자는 게 제일 의아하죠. 그것도 특명 전권 대사 딱지를 달고 있는 그쪽 핵심 고위직이.”

“내 말이. 근데 또 이거 아니면, 다른 건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새 가을께로 접어들려 하는 여름의 끝자락.

약간은 선선해진, 그러나 아직 다소 꿉꿉함이 남아 있는 바람을 뺨에 스치며 돌다리를 건넌 나.

그렇게 이스라엘 대사관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다른 길로 새려는 김원철 아저씨.

“참으로다가 어려운 일이여. 그럼, 잘 댕겨 오슈. 이따 보자고.”

“아니, 같이 가시자면서. 둘이 함께라면 세상 다 겁낼 것 없다는 위용은 또 어디로 간 겁니까?”

“흐흐흐, 나는 요 1층에 빵집 간다는 거였고. 거기 단팥빵이 기가 막히걸랑.”

“아니, 그게 무슨.”

낄낄거리며 거하게 뒤통수를 치는 김원철 아저씨.

진짜 근처 빵집에서 단팥빵을 산 아저씨는, 내게 빵 봉투 하나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아마 난 가도 못 들어갈 것이여. 보좌 역할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음….”

“특명 전권 대사. 분명 편지에서 우리 회장님만 콕 집어서 만나자 했으니, 결정권도 없는 놈이 가봐야 입도 뻥끗 못 할 겨.”

그르릉 소리를 내며 조금씩 뿌옇게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언제 불어났던 건지,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한 청계천.

묘하게 불길하게 온몸을 휘감는 감각을 느끼며, 나는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오려나? 이따 유세나 보좌관더러 우산 좀 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네.”

말을 마치자마자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줄기. 나는 살짝 젖은 어깨를 툭툭 털고 이스라엘 대사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내게 다가온 한 외국인 여성.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서유럽과 중동 느낌이 반반씩 섞인 그 여자는, 나를 다른 쪽의 비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서준 한 회장님이시죠?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바로 이쪽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안내를 마치고는, 왔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그녀.

점점 커지는 엘리베이터 안의 숫자를 바라보며, 나는 불안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쪽 직원에게 내 신상을 다 주지시키고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일을 진행한다라.”

분명, 일반 대사관 직원은 아닌 듯해 보인 아까 전 그 여성.

유리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 어느새 잔뜩 불은 청계천에는 거센 물살이 잿빛 구름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거 영… 과하게 을씨년스러운데? 날씨든, 이쪽 대사관 내부 일이든.”

* * * *

방은 밀실에 가까웠다.

이중 철문을 지나, 창문 하나 없는 삭막한 방 안.

그 회색빛 방안에서 홀로 소파에 앉은 한 이스라엘 남자.

분명 자세히 보고 있음에도, 유달리 인상 자체가 뇌리에 남지 않는 그 남자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이스라엘 특명 전권 대사입니다.”

“한서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고받기 시작한 명함.

그런데, 이게 웬걸. 이 무색무취의 남자가 내게 건넨 명함에는 직책과 전화번호 이외에 그 어떤 개인정보 또한 적혀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그, 여기 성함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만…?”

“아아, 이해하시죠. 제 쪽에서 정확한 신분을 밝힐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특명 전권 대사.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그는 뒷말을 덧붙였다.

“물론, 굳이 서로 가식적인 예의를 차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럴싸한 이름을 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는 아니니까요.”

“이거, 오늘 담화 주제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허리를 중간에 끊은 나.

이만치 비협조적인 대우를 받는데, 굳이 나 또한 맞춰줄 필요는 없을 터.

몸을 앞쪽으로 기울여 무미건조한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그에게 직설적인 물음을 던졌다.

“본론부터 바로 말씀해 주시죠. 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그것도 특명 전권 대사 딱지를 달고 계신 분께서 저를 보자고 하신 건지.”

툭, 탁자 위에 거칠게 던지듯 놓은 문서 한 장.

이스라엘 대사관 도장이 찍힌, 나를 이곳으로 부른 문서를 들이밀며, 나는 한층 더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굳이 이 <주님의 동산> 건 이슈를 그럴싸한 포장지로 쓰실 만큼 말입니다.”

달그락, 찻주전자를 기울이는 특명 전권 대사.

아무런 향도 없는 차를 유리잔에 따른 그는,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그저 짤막한 대답만을 남겼다.

불과 여섯 글자에 지나지 않았으나, 파급력만큼은 충분한 대답을.

“모터즈 아이즈(Mortors eyes).”

“……!”

“인수가 막바지 상태이지요? 유감스럽게 되었습니다만,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는 취소될 겁니다.”

“그게 무슨…!”

“그리고, 그 사이비 종교에서 제물로 희생될 뻔한 이스라엘 국민 두 사람은, 적당한 포장지가 될 것이고요.”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을 가득 메운 침묵.

똑딱거리는 벽걸이 시계추 소리가 몇 차례나 반복해서 들렸을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에 도무지 감조차 잡지 못했던 나.

차분해야 한다. 우선 이 갑작스럽게 얽힌 매듭을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나는 조심스레 그를 떠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생각인 겁니까?”

“아아, 서준 한 회장. 당신 잘못은 아닙니다. 탄약그룹 잘못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갈등 문제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보안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특명 전권 대사.

벽에 걸린 유화(油畫) 쪽으로 다가간 그는, 액자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시는 것보다 더 큰 그림에서… 하필이면 이 소녀 표정이 거슬려서 말입니다.”

어느 중세 귀족의 방 안 풍경을 그린 건지, 고풍스러움이 화폭 전체를 가득 메운 유화.

화려함과 삭막함이 공존하는 그 그림 속에서, 오른편 구석의 소녀는 환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오히려 위화감이 들 만큼.

“참 아름답고 순수해서 보기는 좋은데, 맥락이 맞지 않으니 원.”

알쏭달쏭한 힌트만을 남기고는, 곧바로 바깥으로 향하는 특명 전권 대사.

여전히 생김새가 기억에 남지 않는 그는, 뜻 모를 묘한 말만을 남긴 채 일방적으로 내게 안녕을 고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저는 다시 다른 나라로 가야 해서.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또 뵙지요.”

* * * *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무례에 가까운 태도.

일반적인 사업가라면… 뭐, 애초에 사업가가 그런 언행을 하지도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특명 전권 대사라면 엄연히 정부 기관 소속인 자다. 그것도 상당한 고위직의.

“하이고, 우리 외교가의 거물이신 한 회장님이 이래 사람을 소개해 달라 카이, 내 기분이 억수로 좋다 아입니꺼,”

남의 속도 모르고 환한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는 김 교수.

일본 특사단에서 만들어진 이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것도… 김 교수 쪽이 아니라, 내 쪽의 필요에 의해서.

“사우디 왕실의 오른팔! 태국 민주주의의 수호자! 일본 국민의 파워레인저! 그리고… 바티칸의 천사님인 한서준 회장님!”

“김 교수님, 제발 좀.”

벌써 딸기코가 된 채, 주정뱅이 시동을 걸어대는 김 교수.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한 또 다른, 제3의 인물 쪽을 바라보며 특유의 걸쭉한 사투리를 내뱉었다.

“아, 딱 사실만 고대로 말했다 아잉교. 안 그래예, 차관님? 아, 인자 차관이 아이제. 우리 때깔도 고우신 장관님요!”

“허허허, 김 교수님 벌써 취하셨네. 가실 때까지 쭉쭉 들이켜셔야겠습니다.”

일본 특사단에서 초반 혐한 이슈가 해결되자, 한달음에 일본으로 다가왔던 외교부 차관.

재주는 내가 넘었지만, 승진은 그가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제법 호의를 갖고 대하는 외교부 장관.

“크흠, 대통령 낙하산치고는 모난 사람은 아닌데, 같이 술만 마시면 이렇게 되어서야 원.”

“백번 이해합니다, 장관님.”

맛탱이가 가 방구석에 쓰러져 자는 김 교수를 치워두고, 이 신임 외교부 장관은 내 술잔을 채우며 물었다.

“그나저나, 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요?”

“조금… 난해한 상황에 처해서 말입니다.”

살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 장관. 이 자리의 본론 주제가 나오자, 나는 편안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씩 풀어나갔다.

급하게 나를 찾은, 심지어 대놓고 수상하기까지 한 이스라엘 특명 전권 대사. 거기에, 갑자기 불발된 모터즈 아이즈 기업 인수 건.

한참을 이야기를 듣던 외교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흐음, 이스라엘 특명 전권 대사가 그렇게 나온다라.”

“도대체 이스라엘 행정부 측에서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마땅한 이유도 말하지 않았고요.”

수상하기 짝이 없을 만큼 얽혀버린 상황.

노련한 외교관 짬이 어디 가지 않은 걸까? 그는 흩어져버린 구슬 더미 같은 이 상황을 단숨에 꿸 바늘 하나를 가지고 와 내게 내밀었다.

“일단, 한 가지 포인트가 잘못 잡혀 있습니다.”

“네?”

“특명 전권 대사. 아마 이름을 안 밝혔을 텐데,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은 이스라엘 행정부가 아니라.”

행정부 소속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뒷말을 이어나가는 외교부 장관.

“모사드(Mossad). 총리 직속의 정보기관 소속일 겁니다. 그래야 설명이 되거든요.”

“모사드…!”

모사드.

이스라엘의 국정원이라 할 수 있는 이 기관은, 악명높은 첩보 활동으로 유명했다.

쉽게 말해서… 지금 나는, 그리고 탄약그룹은 모종의 이유로 이 모사드라는 기관에 찍힌 셈.

내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운 외교부 장관. 그는 아까보다 한층 굳은 얼굴로 내게 조언의 말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한 회장님께서 큰 흐름이 바뀌는 때에 물살에 휘말리신 모양입니다. 그것이 의도가 어떻든 상관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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