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02화 (202/300)

202화 이스라엘에서(3)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이스라엘 대사관 안.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스라엘 특명 전권 대사는 창문 너머의 탄약그룹 본사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코에 닿은 커피 향이 익숙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방 안으로 들어온 주한 이스라엘 대사.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사님.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고… 어떻게, 저희 대접은 부족함이 없었는지요?”

그 또한 모사드 출신이어서일까?

자신보다 훨씬 상급자를 모시는 듯한, 깍듯한 태도.

특사는 그런 대사에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는, 무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족할 게 무에 있겠습니까? 그냥 할 일을 하는 것인데. 그리고.”

탁, 탁. 손가락으로 가볍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특사.

이곳, 한국의 여름은 유독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모양이었다. 고된 눈물처럼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 한 줄기.

“본국에서 여기 이곳, 한국까지 온 거리만큼 다시 동쪽으로 떠나야 하는지라.”

“아아, 저희도 전달받았습니다. 미국으로 가신다지요? 역시 본국 방침은 확실하게 정해졌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서서히 어두워지는 바깥.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빗물은, 유리창에 비친 특사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의 바로 앞에 놓인 유대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은촛대.

어두운 밤,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촛대에 올라간 자그마한 불꽃은 몽환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늘 바람 앞의 촛불이었습니다. 유대 민족이 처한 상황은.”

“그야 늘 그랬지요. 수천 년의 세월이 그러했으니. 그나마 나라 없는 백성은 면한 게 다행이랄까요.”

“글쎄요. 나라가 있다고 해서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덜컹, 덜컹.

장마가 시작된 모양인지, 거세게 불기 시작한 바람이 유리창을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촛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하던 말을 이어나가는 이스라엘 특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나라를 세우고도 바람은 60년 동안 쉬지 않고 불어왔으니까. 그리고, 지금.”

말허리를 끊음과 동시에, 손을 뻗어 유리창 손잡이를 힘껏 열어젖힌 특사.

기다렸다는 듯, 굵은 빗줄기와 함께 방 안으로 파고드는 거센 폭풍우.

가느다란 회색빛 연기만을 남긴 채, 일곱 개의 촛불은 순식간에 빛과 온기를 잃었다.

“방풍림 역할을 해 주던 큰 나무가 우리 앞을 떠난다면, 은촛대 위의 작은 촛불은 꺼집니다.”

“특사님….”

“탄약그룹이 한국 정부를 움직여 항의 표시를 한다고 해도, 절대 협상의 여지를 주지 마십시오. 절대로.”

결심을 마친 특사.

평소 절대로 기억에 남지 않을 인상만을 훈련하고 또 훈련했던 그의 얼굴에, 오래간만에 뇌리에 꽂힐 만한 색깔이 칠해졌다.

“바뀐 국제 정세에서는… 창고 속 밀알 종자 한 알 한 알이 아쉬울 때니까.”

숨 가쁘게 바뀌고 있는 정세.

결국, 이스라엘에 남은 것이라고는 첨단 기술력뿐인 상황.

특사가 보기에 그 첨단 기술이라는 생명수는 사우디 쪽 자금이 눈독을 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탄약그룹이라는 허울 좋은 연막을 치고서.

“조국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먼 동방의 기업과 맺은 약속을 깨는 것쯤이라면, 그 어떤 자책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자리에서 일어난 특사. 방을 나서려는 그에게 대사가 말을 걸었다.

“아, 특사님. 만약에 저쪽에서 항의가 아닌, 제안을 던져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판을… 바꿀만한 제안을요.”

“개인이 바꿀 수 있는 판이 아니니, 그런 염려는 접어두십시오. 그럼, 이만.”

개인이 바꿀 수 없는 판.

미국과 중동, 그리고 이스라엘이 올라간 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는 고작 한 사람의 움직임만으로 정국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드넓은 홍해를 반으로 가를 만한 능력이 있는 자라면 또 모를까.

방 바깥으로 나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특사. 그는 어제 이 자리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지었다.

“뭐, 서준 한이라고 했던가? 그 젊은 친구가 모세처럼 기적을 행하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하겠지.”

* * * *

“아니, 진짜로? 그때 만났던 그 양반이 모사드라고? 이게 뭔 개떡 같은 경우여.”

“거의 확실하다고 하네요. 외교부 장관 말로는.”

모사드.

악명 높기로는 미국의 CIA나 한국의 국가정보원을 아득히 뛰어넘은, 이스라엘의 정보 기관.

총리 직속인 그 기관은 외교 안보 분야에서 다른 내각의 영향력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외교부 장관이 걱정 어린 눈을 하고서 내게 말을 꺼낼 만큼.

‘힘들 겝니다. 한 회장님.’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음, 중동 정세가 상황이 영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가령….’

무언가 생각할 것이 있는 듯, 말꼬리를 흐린 외교부 장관. 그는 앞에 놓인 술을 쭉 들이켜고는, 옷소매로 입을 닦으며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셰일 오일, 이라던가.’

‘……!’

셰일 오일.

그렇지… 이때쯤부터 슬슬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을 거다.

미국 전역에 압도적인 양이 매장된, 그리고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뽑아낼 수 있는 차세대 석유 자원이.

그리고, 이 셰일 오일의 등장은 석유로 먹고사는 나라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것도 중동이라는 지역 단위 전체에.

‘셰일 오일 탓에 미국이 중동에 두는 무게감도 이전보다 훨씬 낮아졌고요. 그래서 이스라엘 측이 급한 겁니다.’

‘중동을 지키던 경비견이 이제는 그저 밥만 축내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런 겁니까?’

그리고, 중동의 이슬람 산유국들 가운데, 깍두기처럼 끼어 있는 이스라엘.

패권국인 미국의 경비견 노릇을 하던 이스라엘에, 개 주인이 발을 뺀다면… 이제껏 겁 없이 짖어대던 업보를 청산당해야 할 수도 있을 터.

당장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주어진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승냥이들 사이에 낀 경비견이 이빨을 세우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겁니다. 일단 살고 보겠다는 것이지요.’

아마 정식 외교 채널이 아닌, 정보기관인 모사드를 움직여 일을 처리하는 것도 그 일환일 터다.

생각보다 도움이 된, 외교부 장관과의 술자리.

그 회상을 마치고 이제 슬슬 머리를 굴려보려는데, 이게 웬걸. 내 눈앞에 있는 것은 김원철 아저씨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으으… 내가 옛날에 중동에서 그놈들한테 시달렸던 거 생각하면, 아주 밤에 요실금이 생길 지경이여.”

“아니, 벌써 그러면 어떡합니까, 아직 젊다고 큰소리 빵빵 치시면서.”

“아, 비뇨기관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 문제여. 들어봐봐.”

대충 옛날 중동 건설 붐 시절, 연지의 얼치기 테러리스트와 엮여 모사드에 끌려가 같이 세트로 조사를 받아보았다던 김원철 아저씨.

“진짜 지독하다니까? 아주 그때 옆의 아랍인 입속으로 뺀찌가 들어가는데, 히야, 저거 치과의사 면허는 있나 싶더라고.”

“겁이 없던 겁니까, 아니면 그냥 별생각이 없던 겁니까…?”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잔혹함과 악랄함. 아무래도 그런 기관과의 대화는 쉬이 합의점을 찾아내지는 못할 터였다.

“아무튼, 곤란하게 생겼어요. 저쪽이 내미는 얼굴이 모사드라면, 아예 경제 논리 자체가 안 통한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이스라엘 쪽 관련 부처에서 죄 답변 거부만 떴걸랑. 아무래도 이쪽 논리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 나는 곧바로 아저씨의 말을 받아, 뒤에 이어질 말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안보. 경제 논리보다 중요한 건 안보 논리뿐이니까요.”

“압도적으로 그렇지.”

이제는 떠듬떠듬 기억나는 회귀 전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스라엘이 딱히 침공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한창 민감한 이 사춘기 같은 질풍노도의 국제 정세만 잘 넘어간다면,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찜해 놓은 이스라엘의 기업, 모터즈 아이즈 또한 그럴 것이고.

“안보, 그건 나랏님들 문제고, 저희는 계산식이 좀 달라야지요.”

반짝반짝한 민머리 위로 물음표 하나를 띄워 놓은 김원철 아저씨.

“무슨… 말이여?”

“기업 하는 사람들은 저희 논리대로 가야죠. 모터즈 아이즈, 자율주행 원천 기술 분야에서 이걸 대체할 기업이 있습니까?”

“없지. 무조건 잡아야 하는 대어걸랑.”

“그럼 답 나왔네요.”

“답이… 나왔다고라?”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 앞에 선 나. 인제 보니, 입고 있던 카디건 단추가 잘못 꿰여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상아로 만든 단추를 전부 풀었다가 다시 잠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첫 단추부터 영 잘못 끼워진 모양인데, 하나하나 천천히 다시 맞춰 봐야지요. 일단 그림부터 좀 크게 봅시다. 중동 쪽 전체로.”

맨 위쪽부터 시작해 아래쪽까지 다시 온전히 잠근 단추. 아래로 향한 시선 끝에는, 거울에 비친 대형 목제 지구본이 닿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시의적절하게 그 지구본 정중앙에 위치한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오랜만에 이 양반 목소리 듣겠네요. 빈 살만 왕세자.”

* * * *

“개종하였는가?”

“네?”

간만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된 빈 살만 왕세자.

반가운 인사말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는 대뜸 내게 신학적인 질문을 던져대었다.

“한국인들은 보통 종교는 따로 없고, 콩푸? 공자? 뭐, 그 철학자의 뜻을 따르는 민족이라 들었는데.”

“아니, 대관절 무슨 말씀이신 겁니까?”

“서준 한 회장, 그대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라면… 결혼만을 기다리는 내 막내 여동생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뭔 오해를 하나 싶었는데, 그 <주님의 동산> 사건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대충 사이비 종교를 박멸해 가톨릭의 본령을 세우고 기강을 잡았다는 식으로.

“일본 공주와의 혼인은 이해했네. 아내는 네 명까지 둘 수 있으니. 하지만, 아예 그 아이와 결혼을 못 하게 되면 곤란하지!”

“아니, 그게 말입니다.”

누가 사공이 많아야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혼자서도 남들 분량의 노까지 영차영차 저어가며 오해의 동산으로 향하는 빈 살만 왕세자.

심지어 일부다처제 어쩌고 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 아예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기세다.

“지금도 울고 있다네.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로.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내 마음도 너무나 아프고.”

“그… 일단 좀 오해가 있으십니다만.”

한참을 전화통을 붙들고 설명을 하고서야 풀린 오해.

그나저나 막내 여동생이라니, 그 열 살짜리였나 꼬맹이 말하는 건가?

설마 그때 연회에서 농담 식으로 말했던 걸 진짜로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여하튼, 내가 딱히 종교가 없다는 걸 확인한 빈 살만 왕세자는, 그제야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아아, 진작 좀 말하지 그랬나. 아무리 사내가 중심이라지만, 여자 울리는 건 할 짓이 못되네.”

“그… 하아, 일단 알겠습니다. 다 제 잘못이고요. 오늘 전화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드르륵,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목제 지구본.

서서히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지는 지구본 중앙에 내 손가락이 닿았다.

지중해 동쪽, 중동의 경비견 이스라엘이 한참 목청을 돋우고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스라엘. 그리고 중동 전체 상황이 좀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요.”

“상황이 조금 난해하게 돌아가고는 있지. 그래, 이를테면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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