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03화 (203/300)

203화 이스라엘에서(4)

어제 있었던 통화에서, 빈 살만 왕세자의 이스라엘에 대한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지금, 여기 탄약그룹 전용기 안에서조차 좀처럼 심란함을 감출 수가 없었을 만큼.

“후우, 여기나 저기나 아주 골치네. 빈 살만, 그 양반까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미국 워싱턴 D.C로 가는 전용기 안. 복잡한 머릿속을 조금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위스키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혼잣말을 덧붙였다.

“사우디에 이스라엘. 거기에 미국까지. 이거,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똑바로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데.”

가뜩이나 모사드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건에 미국과 사우디라는 큼지막한 혹이 두 개나 붙은 상황.

창밖에 보이는 혹처럼 생긴 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어제 빈 살만 왕세자와 전화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회상했다.

‘그 유대 놈들이 근래 유독 미친개처럼 발광을 떨더군. 평소보다 훨씬 더.’

‘네…?’

상황이 조금 난해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운을 띄우자마자, 대뜸 목소리 톤을 바꾼 빈 살만 왕세자.

무언가 평소 이스라엘 측에 쌓인 불만은, 구멍 난 둑을 뚫고 흐르는 물처럼 전화기를 타고 넘치기 시작했다.

‘감히 이슬람의 중심인 사우디에 정면으로 대항하지는 못하니, 반군에 무기나 지원하는 꼴이 눈에 선하단 말이다!’

‘어… 왕세자님, 일단 진정 좀 하시고요.’

쓸모가 줄어들자, 미국에 버림받고 코너에 몰린 쥐 신세가 된 이스라엘.

모사드를 위시한 급진 세력이 선택한 것은, 주변 중동 국가들을 최대한 견제하는 것이었다. 사우디 반군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서.

급한 마음에 이스라엘이 세운, 등 위의 뾰족한 가시. 그 가시에 발가락이 찔린 사우디가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한 일일 터.

‘진정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셰일 오일인지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저 이교도 놈들까지 설쳐 대니 내 어찌 신경이 안 쓰이고 배기겠는가!’

그리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나?

저 멀리 이역만리 타국에서 뾰족 세운 가시는, 신발 밑창을 뚫고 내 발가락에도 닿게 되었다.

‘왕세자님. 그러면, 저희 탄약그룹에서 이스라엘 기술 기업을 인수하려고 하던 계획은…?’

‘물어 무엇하겠는가! 삿된 마음을 먹은 이교도 놈들의 아가리에 왕국의 금괴를 집어넣을 수는 없는 법!’

빈 살만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

그러나 그 황금 수도꼭지를 잠그는 순간, 아무리 물이 많다고 한들 퍼다 마실 수가 없는 법.

이스라엘의 모터즈 아이즈 인수 이야기가 나오자, 빈 살만 왕세자는 자세한 설명도 듣기 싫다는 듯, 곧바로 격하게 거부의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억지를 부린다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군. 그대와 내가 맺은 계약에도 분명 이에 관한 조항이 명시되어 있으니.’

허울뿐이었던, 그러나 이제는 실체를 갖게 된 계약 조항마저 언급하는 빈 살만 왕세자.

-자금 운용을 위탁받은 탄약그룹 측의 투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안보상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 이는 일방에 의해 즉시 중단될 수 있다.

대충 생각했던, 이 형식적인 문구는 갑자기 올가미가 되어 내 목에 가까이 다가왔다. 여차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힐지도 모르게.

유독 힘들었던, 빈 살만 왕세자와의 통화. 어제의 기억을 곱씹던 나는 한숨과 함께 푸념 한 마디를 토해냈다.

“후우, 단단히 꼬였어. 여기저기 나라마다 죄 지뢰 범벅이니 원.”

“그르게 말이여. 이건 뭔가 역대급인디.”

속이 안 좋다고 화장실에 가더니, 언제 옆자리에 왔는지 새로운 위스키병을 따는 김원철 아저씨.

원래대로라면 비행기 내 과음은 지양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예외다.

무서운 모사드 아저씨들. 눈알 뒤집힌 빈 살만 왕세자. 그 사이에 새우처럼 낀 탄약그룹이라는 안주가 술을 부르고 있었으니까.

김원철 아저씨와 건배를 하면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혹시 모터즈 아이즈 투자 건. 탄약그룹 단독으로 진행은 불가능합니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게 벌여놓은 게 워낙 많아서리.”

난감하다는 얼굴의 김원철 아저씨. 곧바로 아저씨의 입에서는 이제껏 내가 벌여온 굵직굵직한 사업 리스트가 하나둘씩 나열되었다.

“사우디 90조 원짜리 장기 방산 사업. 철화 반도체랑 SA 정밀기기 인수. 미국 J-Coco 기술 협력에 일본 원자력 안전 관리 사업까지.”

“많긴… 하네요. 어지간히도.”

“깔고 갈 돈이 기본 조 단위여. 암만 대통령이 빵빵하게 밀어준다 해도, 국책은행 대출도 무제한은 아니고.”

하도 사이즈 하나하나가 큼지막하다 보니, 이제는 더 자금을 끌어다 쓰기도 난망한 상황.

거기에 지나친 부채 비율 역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뭐, 재정 건전성까지 챙겨야 할 타이밍이기는 하지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또 비행기를 탄 거고요.”

거의 다 도착했는지 조금씩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는 전용기.

워싱턴 D.C 특유의 낮은 건물들과 정갈하게 설계된 도심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혼돈으로 가득 찬 중동을 둘러싼 플레이어 중, 가장 까다로운 상대.

“더럽게 꼬인 매듭. 이걸 묶은 쪽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마리가 보이겠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미국의 그 플레이어 역할을 맡은 이는 나와 구면이었다.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반갑게 악수를 청해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간만에 뵙습니다, 장관님. 그때도 장관이셨지만, 지금은 한층 더 끗발 있으신 장관이 되셨네요.”

“오랜만입니다. 서준 한 회장.”

1년 전쯤이었던가?

J-Coco 건 당시,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임을 입증한 것이.

내 앞에 앉은 그의 책상 위에는 검은색 흑단에 음각된 명패가 놓여 있었다.

-미 국무부 장관. 양 웬리.

마침 식사 시간이었는지,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먹고 있던 양 웬리 국무장관.

참 냉정해 보이는 이 동양계 미국인 남자는, 잘 씹지도 않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는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당신이 나를 찾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충분히 이익이 되는 건수를 가지고 왔다는 뜻이겠지요? 시간 낭비 따위 일절 없는.”

어찌 보면 무례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러나 더없이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직설적인 언사.

포크를 까딱거리는 그는 내게 어서 본론을 말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물론… 내 스타일과는 살짝 거리가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스테이크는 레어로 드시는 걸 좋아하시나 봅니다.”

“뭐, 그렇지요. 가장 살아있는 맛 그대로 느껴지거든.”

흰색 도자기 접시 위, 흥건하게 담긴 붉은 핏물. 냅킨으로 입가를 닦는 그를 보며, 나는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이번에 제가 가지고 온 스테이크는 웰던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퍽퍽할지도 모르지만… 먹고 나면 육향이 진하게 남는, 그런 건수를요.”

* * * *

“표현이 좋군요. 중동을 지키는 경비견.”

이스라엘. 그리고 모터즈 아이즈 인수 건에 대해 모사드 쪽이 훼방을 놓은 것을 모두 들은 양 웬리 국무장관.

그는 돌아가는 중동 정세에 대한 내 해설이 제법 그럴듯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비견이라는 표현만 마음에 든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 멍청한 경비견은 이제 밥만 축내고 있다는 것 또한 맞고.”

“일말의 쓸모조차 없지는 않을 텐데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를 억제한다거나….”

“하! 억제는 무슨! 오히려 그놈들 자극이나 안 하면 또 모를까.”

아무래도 최근 미국의 외교정책이 조금 터프해진 까닭은, 이 남자의 스타일에서 기인하는 것도 분명 있으리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이야기가 나오자 포크를 식기 위에 던지듯 내려놓는 양 웬리 장관.

“그 테러나 저지르는 광신도들도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원래는 그놈의 석유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또 계산 방식이 달라졌고.”

“셰일 오일… 말입니까?”

“역시 서준 한 회장, 척하면 척이로군. 그럼, 이제 말 다 한 거 아니겠습니까?”

식사를 마친 양 웬리 장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깔끔한 손절 타이밍. 석유팔이 광신도 놈들도, 그 광신도들 보고 짖으라고 키운 유대인 경비견도 이젠 다 필요 없습니다.”

“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호하고 직설적인 태도.

그러나, 내게 당황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차 쏟아지는 양 웬리 장관의 말은 곧바로 경고로 이어졌으니까.

“아무래도 웰던 스테이크는 맛볼 기회가 없을 것 같군요. 훌륭한 요리사가 제안하는 음식도 입에 맞지 않을 때도 있으니, 지금은 웃으며 넘기겠습니다만.”

그리고 이어진 축객령.

“부디 다음번에 제게 가져올 스테이크는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흐르는 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 * *

“어흐, 역시 기가 맥힌다. 탄약 버거랑은 차원이 달라야. 아주 소고기 육즙이 뚝뚝 흐르는 게, 이게 위장 코팅이지.”

그리고 지금, 양 웬리의 집무실에서 쫓겨나 근처 햄버거 가게로 들어간 나와 김원철 아저씨.

조금 다운된 분위기를 풀려는 듯, 아저씨는 일부러 약간 호들갑스러운 표정으로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고기는 요렇게 바싹 구워야지, 무슨 놈의 레어 타령이여. 아예 육회로 먹는다면 또 모를까. 장관 딱지 달고서 취향도 참.”

“양 웬리, 그 사람. 확실히 캐릭터 하나는 확실하긴 합니다.”

양 웬리 국무장관.

확실히… 쉬운 사람은 아니다. 감성적인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오로지 이해관계로만 움직이기에 더더욱.

“겉은 동양인인데… 속은 누구보다 미국 주류 엘리트 백인 스타일의 사고방식이더군요. 지극히 계산적인.”

“저번에 J-Coco때도 그랬어야. 뭐, 다른 사람들처럼 딱 살가운 맛은 하나도 없지. 그래서 문제겄어.”

차라리 대통령이나 일본 총리대신은 좀 낫다. 천상 보스 기질이 있는 그 사람들은 협상에도 뭔가 여유가 있고 큰 숲을 보니까.

바로 성과를 보여야 하는, 나무만을 바라보는 양 웬리 국무장관과는 달리.

“결국, 미국·이스라엘·사우디 세 나라 모두를 사이좋게 만들어야 하는 건데… 이게 거의 노벨 평화상 수상 조건 급이란 말이여.”

빨대로 콜라를 전부 마셨는지, 묘한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중얼거리는 김원철 아저씨.

노벨 평화상이라니. 그것도 참 얄궂은 표현이다. 세 나라 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그렇지만, 방산업체 회장이 그걸 받는 것도… 잠깐만.

“세 나라를 사이좋게 만드는 방법. 어쩌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팟 하고 떠오른 아이디어.

회귀 전 있었던 지식의 퍼즐 조각들이 우연찮게 맞춰지자, 제법 그럴싸한 방법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노벨 평화상까지 받을 수 있는, 내게는 안 어울리는 방법 하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방법.”

“응?”

“어디 노벨 평화상 한번 받아보죠. 애초에 노벨 아저씨도 저처럼 전쟁으로 먹고사는 무기 상인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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