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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04화 (204/300)

204화 로마의 휴일(1)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3층의 둥근 돔.

이름 모를 천사가 조각된 대리석 난간에 기댄 채, 서로를 마주 보는 한국 대통령과 교황.

금색으로 수놓은 새하얀 사제복 차림의 교황은, 안경 너머의 주름 잡힌 눈웃음을 지으며 대통령의 손을 꼭 붙잡았다.

“오늘 이 만남은 참으로 뜻깊었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디 한국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감사합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부디 뜻하신 바 이루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검은 옷의 추기경 무리와 대통령실 직원들이 둘러싼, 의도적으로 연출된 화기애애한 분위기.

자리에 모였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이내 회담이 마무리되자, 대리석 바닥을 걸어 나가던 대통령의 입에서 본심이 흘러나왔다.

“이거야 원. 사람이 순진한 건지, 아니면 속이 뿌연 건지. 교황 딱지씩이나 단 영감이니 순진하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잔향처럼 남아 있는, 맞잡았던 손아귀에 남은 촉감.

결례라고 여길 만큼, 살짝 얼얼하기까지 할 정도로 꽉 잡은 그 손에는 교황의 말 하지 못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물론, 정치 요괴 대통령이 그걸 모를 리는 없었고.

“후우, 자꾸 본론은 안 건드리고 가장자리만 깔짝거리는군. 이봐, 박 실장.”

“예, 예! 대통령 각하!”

뒤쪽에서 실무진을 닦달하다가 자신을 부르자 부리나케 뛰어오는 박동희 정책실장.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대통령은 그런 그에게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교황, 저 영감 말이지. 내후년 대선 전까지 방한(訪韓) 가능하겠나? 앞뒤 준비 기간 다 자르고 계산하면, 내년 이맘때가 딱 최적인데.”

“그, 그러니까, 실무진 선에서 최대한 추진하는 방향으로….”

“쯧쯧, 이 아둔한 사람 같으니.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제대로 된 답을 들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던 대통령.

사실 박동희 정책실장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게 취미인 그였으니까.

“그, 그렇습니까요…?”

“허어, 답답한 친구. 정말 모르겠나? 지금 교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성당 바깥으로 나가자 곧바로 쏟아지는 로마의 햇살.

찌뿌둥한 듯, 기지개를 켜는 대통령.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엄지손가락으로 교황이 있는 쪽을 가리킨 그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저 영감도 정치인 사촌쯤 되는 치라네. 장점은 임기가 죽을 때까지라는 거고, 단점은.”

그리고, 광활한 광장 앞에 모인 수많은 인파. 그러나, 태반이 관광객일 뿐, 개중 가톨릭 신자로 보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자기 기반인 성당 다니는 사람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아아…!”

신자 수가 적어지는 만큼, 조금씩 줄어드는 교황의 영향력.

회담에서, 한국에 와 선거에 도움이 좀 되지 않겠냐는 대통령의 제안에 교황은 웃음 지으며 소리 없이 답했었다.

바로 이렇게.

“선거 타이밍 맞춰 한국 방문해서 내 위신을 세워 주면, 그 대가로 뭘 줘야 하는지 먼저 말해보라는 것이야. 저 영감은.”

스스로 세운 해석이 퍽 만족스러운 듯, 콧대를 드높이며 웃음 짓는 대통령.

그 모습을 본 박동희 비서실장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진짜 귀신 같은 양반이여. 무슨 놈의 통밥이 저렇게 콤퓨타처럼 기가 막히게 빨리 돌아간다냐.’

이제 밥값을 해야 할 차례.

딩동! 인간 비데 박동희의 혓바닥에 붉은색 전원이 들어왔다.

“크흐… 역시 대통령 각하십니다요. 국내 정치 같은 작은 웅덩이가 품기에는, 그 원대함이 바다처럼 넓으십니다!”

“허허, 이 사람. 거, 쓸데없는 말은. 뭐, 듣기는 퍽 좋긴 하구먼그래.”

한동안 이어진, 즐거운 아부 타임.

충분히 달콤한 말을 즐겼는지 한쪽 손을 들어 올린 대통령. 그는 앞턱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말을 꺼내었다.

“여하간에, 이거 골치가 좀 아프게 생겼군.”

“네…?”

“표 계산을 잘해야 해. 내가 대놓고 가톨릭 손만을 잡으면, 다른 종교에서는 이미 잡혔던 손을 놓을 수가 있어.”

국내 가톨릭 신자 수는 약 500만 명.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중앙에서 통제 가능한 종교 조직이지만, 여기에도 맹점은 있었다.

각기 800만 명씩의 신자를 가진 불교와 기독교 쪽의 시선.

청명한 로마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통령은 닿을 수 없는 구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거란, 둥근 양철통 위에 얹은 널빤지에 올라가 묘기를 부리는 게야. 제아무리 양옆으로 흔들거려도 중심을 잡아야 한단 말이지.”

대통령이 살짝 감성적으로 변한 지금이 타이밍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박동희 정책실장.

평소처럼 하면 되는 것이다. 바로 밑의 실무진을 닦달해서 그럴싸한 대책을 내놓고, 주군에게 예쁨을 받는다. 아랫것들이야 주말에 야근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으니.

“백 번, 천 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각하! 일단 아랫것들을 족쳐서 그 비상하신 생각을 현실로 만들….”

그러나, 그 순간.

목숨을 건 충성 맹세 도중 울리는 휴대전화.

“받게. 괜찮으니.”

“크흠… 죄송합니다, 각하.”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어깃장을 놓았으니, 일단 욕받이가 되는 것은 필수이다. 전화를 건 행정관에게 곧바로 푸닥거리를 시작하는 박동희 정책실장.

“어, 김 행정관! 너 마침 전화 잘했다. 야, 이 자슥아. 너는 VIP 생각 좀 읽고 나한테 미리 언질이라도 줬어야지… 어어?”

그러나, 하필 타이밍도 얄궂게 곧바로 들려온 김 행정관의 다급한 목소리.

누군가가 이곳, 바티칸에 왔다며 어서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박동희 정책실장이 되물었다.

“뭐? 그 천둥벌거숭이 놈이 지금… 여기에 왔다고? 아니, 도대체 왜! 어째서!”

늘 뭔가 태풍을 몰고 다니는 천둥벌거숭이.

탄약그룹의 불꽃 모양 로고처럼 화끈한 그 남자의 등장에, 전화기 너머의 김 행정관 또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번 바티칸 일정이 영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며.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교황을 만나야 한답니다. 대통령 각하의 복심을 자기보다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요!

* * * *

“낯선 천장이다.”

무슨 싸구려 소설 도입부라도 되는 대사를 내뱉는 김원철 아저씨.

잠깐 꿈나라에 갔다 오더니, 거기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 좀 하고 온 모양이다.

“낯설긴 뭐가 낯섭니까. 똑같은 비행기 천장이구만.”

“아니, 공기 자체가 다르잖어. 분명 위스키 거하게 빨고 자기 전에는 한국 간다던 비행기였는데.”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던 김원철 아저씨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눈떠보니 갑자기 바티칸? 이게 낯선 천장 아니면 또 뭐겄어.”

“됐고요. 시간 많이 없습니다. 대통령 일정에 맞춰서 교황까지 싹 다 봐야 하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여. 그러고 보니, 아까 자기 전에 보니까 뭔 노벨 평화상 어쩌고 하드만. 그거랑 관련된 겨?”

노벨 평화상.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세 나라끼리 손 꼭 잡고 하하 호호 웃음 짓게 만드는 것.

외교계의 미션 임파서블이나 다름없는 이걸 수행해 낸다면, 사실 노벨 평화상 정도도 노려볼 만하다.

언뜻 보기에,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이번 장해물.

그러나… 회귀 전, 감방 생활에서 주워들은 지식은, 내 앞에 놓인 장해물을 훌쩍 뛰어넘을 디딤판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특히나,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던 방장과 부하의 일상적인 콩트에서.

‘으따, 점마들 저건 또 무슨 핵을 만든다고 그르냐? 가만 보면 개나 소나 다 핵무장이여잉. 말세여 말세.’

‘행님! 행님도 조직 다시 복귀하시믄, 핵폭탄으로 애들 딱 무장시키십쇼!’

신문 한쪽에 나온 이란의 핵무장.

북한이 이란에 기술과 부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힌 사설. 곁눈질로 방장 손안의 신문을 훔쳐보던 부하는 호들갑을 떨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크흐, 조직 이름도 마, 핵폭탄파…! 그래 지으시면 기가 막힐 낀데.’

‘에라이 빡대가리 자슥아. 뭔 개똥 같은 주접을 싸고 있냐! 핵폭탄은 또 어떻게 사게!’

‘북쪽 아들한테 팔라카믄 안 됩니꺼? 이란인가 하는 놈들도 걔들한테 샀다카든데예.’

경찰도 모자라 국정원에 끌려가 몽둥이찜질 당할 일 있겠냐며, 주먹으로 부하 머리통을 쥐어박던 방장.

그때… 그 헛웃음 나오던 두 콤비의 일상 개그에서, 이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줄이야.

“노벨 평화상. 수상은 몰라도 후보군까지는 올라갈 수도 있고요.”

“무슨 소리인지…?”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세 나라의 대립.

그러나… 여기에 외부 변수라는 당구공을 큐로 툭 밀어 넣는다면, 분명 내가 원하는 예쁜 그림이 만들어질 터.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김원철 아저씨에게, 나는 가볍게 지시를 내렸다.

“박동희 정책실장에게 연락이나 넣어 주세요. 아마 지금쯤 슬슬 회담도 흐지부지 끝나가고 있을 테니까.”

* * * *

바티칸 외곽의 한 5성급 호텔 안. 대통령과의 만남은 아주 빠르게 성사되었다.

다만, 조금 생각할 거리가 남았는지, 내게 손인사를 하고서도 생각에 잠겨 있는 대통령.

탁자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들기며, 그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흠, 한서준이로는 조금 약할 것 같은데. 사우디 문제도 있고….”

참 뻔한 생각을 하는 것이 눈에 선할 정도다.

교황 방한 건으로 어떻게든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모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슨 카드를 내놓아야 할지 고심하는 대통령.

나는 냉장고에서 물병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에 툭 소리를 내며 올려두었다.

“지금 생각하시는 그것, 둘 다 맞습니다. <주님의 동산> 이단 파문 건은 급이 낮고요, 빈 살만 눈치도 봐야 하니까.”

“음? 자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나를 올려다보는 너구리 같은 이 양반.

<주님의 동산> 건으로 나를 카드로 쓸 생각이 읽힌 것이 조금은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헛기침을 내뱉으며 내가 건넨 물병의 뚜껑을 돌려 따는 대통령.

“이것, 참. 발가벗겨진 기분이로구먼. 아무리 생각해도, 한 회장 자네는 정치인이 천직인데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탄약그룹이나 잘 지키는 게 천직인 듯싶습니다만.”

정치 입문이라니,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그런 골치 아픈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바티칸에서부터.

의자에 앉은 나는 대통령을 가만히 바라보며 화두를 던졌다.

“그래도, 기왕 보이는 것. 못 본 척 넘어가기에는 대통령님께서 조금 서운해하시지 않겠습니까?”

“음…?”

“교황 방한 문제,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제 쪽에서도 필요한 퍼즐 조각이니 말입니다.”

호언장담하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는지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대통령.

교황 방한.

사실… 그 자체만으로 따져서는, 내게 그다지 큰 이익이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교황이 한국에 오거나 말거나 탄약그룹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좀 더 큰 그림. 교황이라는 퍼즐 조각을 짜맞추는 순간, 풀리게 될 중동 문제라는 고차방정식.

대통령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간 나는, 목소리를 낮춘 채 조심스레 속삭였다.

“국정원 쪽 대북 정보. 자유롭게 열람·유포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특히 이란과 관련된 거래 목록에 대해서.”

“뭐, 뭐라고…?”

국제사회 몰래, 북한의 도움을 받아 핵무장을 진행 중인 이란.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의 적. 국정원이라는 나무 큐를 쥔 내 손에서… 이란이라는 당구공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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