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06화 (206/300)

206화 로마의 휴일(3)

바티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니, 정확히는 아직 한국 영공에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로 듣게 된 지구촌 소식.

위성 통신으로 연결된 전용기 안, TV 화면 속 아홉 시 뉴스에서는 오늘도 평화로운 세상살이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다음은 글로벌 뉴스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남부 예멘 접경지대에서 대형 유조 차량을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는데요.

-기름과 화약을 가득 실은 30여 대의 유조 차량은, 사우디 국경수비대 주둔지를 향해 돌진했다고 합니다. 김민지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환장하겠네, 진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도 되듯, 내가 혼잣말을 내뱉자마자 바뀐 화면.

차분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뿌연 먼지가 풀풀 흩날리는 사막 도시로 장면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대뜸 터져 나오는 폭발음.

붉은색 화염구가 번쩍임과 동시에 끔찍할 만큼 짙은 검은색 연기가 푸르렀던 하늘을 가득 메웠다.

-세 시간여 전 발생한 자폭 테러. 이 끔찍한 사태로 인해, 사우디 정부 측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반쯤 군사 조직이나 다름없는 사우디 국경수비대에 대한 대규모 공격.

딱 봐도, 일반 테러리스트가 아닌, 뭔가 전문 특수전 부대 느낌이 물씬 나는 이번 공격에 가만히 있을 사우디가 아니었다.

곧바로 TV 화면에 비친, 빈 살만 왕세자의 붉게 물든 얼굴에는 분노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으니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행위에 대해, 우리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신의 저주를 받을 자들이여!

정말이지, 갈 데까지 가는 평화로운 중동 정세. 그새 흰머리가 한두 가닥 자라난 나는, 콜라 캔을 한 손으로 구기며 화면 속 김민지 기자의 클로징 멘트를 눈에 담았다.

-반군에 대한 강력한 토벌을 진행하겠다는 사우디. 한편으로는 반군의 배후에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있다는 의구심이 커져감과 함께, 중동 정세는 점점 수렁으로….

삑! 기계음과 함께 꺼진 화면.

리모컨을 사사로이 놀린 범인은 김원철 아저씨였다.

“아, 왜 끄고 그럽니까. 안 그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자인데.”

“하여간, 은근 취향 다양하단 말이지. 꼭 걸그룹 멤버 보는 것마냥. 그것보다.”

이번만큼은 진지한 표정의 김원철 아저씨. 그냥 장난을 치고 싶어서 껐다기보다는, 아예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는 모양이었다.

아예 테이블을 이쪽으로 돌려, 내 얼굴을 마주 보는 자세를 취할 정도였으니까.

“중동 쪽 말이여,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상황이 좀 안 좋긴 합니다. 한번 꼬인 것도 풀기 어려운데, 거기에 다른 매듭을 마구잡이로 묶어 두네요, 특히 이스라엘 측이.”

대형 사고를 너무 대놓고 친 이스라엘.

분명 일부러 저런 것이겠지. 궁지에 몰린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해코지할 생각이 있다면, 어떤 험한 꼴을 보게 될지 미리 주지시키기 위해서.

사실, 이게 다 미국의 중동 정책 변화 때문이다. 정확히는… 새롭게 국무장관 자리에 오른 양 웬리, 그 양반 때문에.

김원철 아저씨 역시 이에 동감하는지, 곧바로 그 문제의 양 씨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양 웬리 국무장관 말이여. 미국 쪽 정보통이 그러는데, 외교가에서 아주 없는 걸로 유명하드만.”

“없나니요? 자기 존재감 나타내려고 엄청 강경파 쪽으로 나서는 양반인데.”

“아아, 존재감이 아니라 싸가지가 없다네.”

싸가지가… 없기는 하지.

사실 이 사람. 손익 계산에 철저한 사람이라 상무부 장관에 딱 어울리는 인재이거늘, 어쩌다 올려 쓴 감투가 하필 국무부 장관이라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고 있다.

“저번에 이스라엘 특사 말이여. 그 모사드 아저씨. 그 양반도 거하게 물 먹었다는 소문이 있어야. 그것도 그놈의 스테이크 앞에서.”

스테이크 이야기가 나왔다면, 외교 사절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대우를 받은 셈이다.

새하얀 도자기 접시 위의, 핏물이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

분명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도 않고, 본인 할 말만 통보하고 끝냈겠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한번 겪어 보니까, 양 웬리 장관 스타일은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그 사람, 아예 뭔가를 떠먹여 줘야 합니다. 그냥은 입에도 안 대요.”

“그르게 말이여. 아주 밥숟가락에 잘 구운 스팸하고 소금 김까지 올려서 비행기 해 줘야 먹나 봐. 슈웅 소리 내줘가면서.”

어디 비행기뿐일까. 흘리지 말라고 턱받이까지 해서 손수 입에 먹여줘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한참 정치인의 주가가 오를 대로 오른, 초강대국의 국무장관을 통제할 힘은 아직 내게 없다.

그렇기에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조금 복잡하고 번거롭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법.

나는 간이 화이트보드 위에 적힌 U.S.A 글자 옆에, 붉은색으로 X자 표시를 그려 넣었다.

“그러면… 지금 제가 손에 쥔 패로 미국을, 정확히는 양 웬리 장관을 움직이는 것은 글러 먹었겠네요.”

“그렇지. 기껏 무서운 국정원 아저씨들 눈치 봐 가면서 모은 자료인디, 허투루 날릴 수는 없겄지.”

“그러니까요. 자, 그럼… 이제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인데.”

자그마한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U.S.A 아래의 두 나라의 상징물.

삼각형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 만든 다윗의 별. 그리고, 유려한 곡선으로 쭉 뻗은, 얇디얇은 초승달.

“이스라엘,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흐흐흐, 이거 스타트를 잘 끊어야겠네. 둘 중 누가 더 똥줄이 바싹바싹 타느냐가 문제로다.”

북한의 핵물질을 손에 쥔 이란이라는 공공의 적.

이 협상 카드가 있다면… 방금까지 신나게 싸우던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좋든 싫든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타이밍.

“일단 좀 고민을 해 봐야겠습니다.”

이런 대형 폭탄을 해체하는 것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순서로 하나하나 선을 제거해야 한다.

자칫 뇌관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내 선에서 처리할 범주를 넘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 난해하던 해체 순서는 의외로 생각보다 간단하게 결정되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방문한… 국가정보원에서.

* * * *

서울, 강남구. 대모산 자락을 끼고 눌러앉은 국정원 본원.

바티칸에서부터 대통령의 허락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국정원 측에서는 내게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첫눈처럼 하얗게 센, 뒤로 넘긴 머리를 한, 국정원장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사실 아무리 VIP 명령이라 한들, 저희 쪽 감정이 불쾌하다는 건, 한 회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무려 35년을 국정원에 몸담은 국정원장.

아직 대통령이 레임덕에 걸린 것도 아니건만, 그는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원장님뿐 아니라, 이하 모든 요원분들의 심정까지도요.”

“글쎄요… 그런 건 그저 말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고는, 나를 로비 한쪽 구석으로 데려간 국정원장.

앞으로 손을 모은 그는 얕은 한숨 소리와 함께,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보이십니까? 저기 검은색 석판에 새겨진 별들 말입니다.”

속칭 <이름 없는 별>.

신분 자체가 국가기밀이기에, 작전 도중 순국해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이역만리 타국 어딘가에서 고통스럽게 스러져 간… 우리 식구들.”

눈시울이 붉게 물든 국정원장.

아마도… 그의 동기, 선배, 후배들 가운데 누군가가 저 별이 된 모양일 터.

차마 떨구지 못한 눈물을 삼키며, 그는 내게 불만을 표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별이 된 이들의 핏값이, 그저 한낱 사기업의 이윤을 벌어다 주기 위해 지불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국정원장이 내게 물은 것은 걱정했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였다.

더 크게 점화되는 것이 아닌, 국정원 정도 선에서 끝나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탄약그룹이 권력에 붙어 사익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그렇기에, 나는 이 합당한 의구심을 몸소 풀어주어야만 했다.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닌,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을 설득을 통해서.

“염려하시는 그 부분,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장의 눈을 그대로 바라본 나. 부리부리한 강골인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조금 위축될 법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시선을 피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그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간 나.

“그렇기에… 저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약속드리겠습니다.”

“……?”

재킷 안쪽에서 꺼내든 흰 장갑.

나는 장갑 낀 손으로 검은색 석판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말했다.

“열여덟 개의 이름 없는 별. 그리고… 원장님께서 제게 건네주신, 이 북한과 이란 사이의 핵물질 거래 정보.”

움푹 파인 뺨처럼 안쪽으로 음각된 열여덟 개의 별.

모든 별을 하나하나 만지면서 옆으로 뻗은 내 손에, 마침내 아무것도 조각되지 않은 매끈한 검은 면이 닿았다.

앞으로 더는 조각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탄약그룹이 촉매가 되겠습니다. 열아홉 번째의 이름 없는 별이 새겨지는 날짜를 최대한 늦추도록.”

“촉매라…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그리 자신 있게 말씀하십니까?”

진심이 닿은 걸까?

납득하기 이전에 내 말을 들어는 보겠다는 국정원장의 태도.

나는 조금 슬픈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원장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오신.”

비슷한 생각에 비슷한… 느낌.

분명 그 또한 여기 국정원장과 비슷한 심정이겠지. 정보기관에 평생을 몸담은 사람으로서.

나는 국정원장과 거울 쌍 같던 이스라엘 특사를 생각하며, 앞에 선 이 백발의 사내에게 진심 어린 당부의 말을 내뱉었다.

“그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비단 탄약그룹만이 독식하지는 않을 겁니다. 음지에서 일하는 분들 또한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실 만큼.”

* * * *

“이게… 옳은 선택인지 도통 모르겠구려. 특사.”

“옳은 일입니다. 아니, 옳은 일이어야 합니다, 총리님.”

이스라엘의 이사야 총리와 독대 중인 특명 전권 대사.

시가 연기가 뿌연 방에서 특사와 마주 본 이사야 총리는 한숨을 내쉬며 불안감 섞인 말을 내뱉었다.

“후우… 미국이 이 나라를 버린다면, 우리 이스라엘이 고립될 처지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좀 보시지요.”

사우디 남부, 초토화된 국경수비대 주둔지의 모습.

그리고… 남부로 이동하는 사우디군의 모습이 찍힌 위성 사진.

“사우디 측에서 아랍 전체를 묶어 이스라엘을 적대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저들 이교도들은 이곳 예루살렘에 초승달 모양의 칼을 들이밀 것이고.”

고개를 가로젓는 특명 전권 대사.

비장한 모습을 한 그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 칼끝이 목젖에 닿기 전, 최대한 날카로운 발톱을 저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목숨과 3,000년 만에 되찾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특사….”

유약한 모습의 이사야 총리.

평화를 원하는 그였건만, 점점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국제 정세 상황.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이 지옥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특사의 비서관이 전한 소식 하나였다.

“저… 특명 전권 대사님?”

“무슨 일이지?”

“전혀 생뚱맞은 곳에서 긴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탄약그룹 서준 한 회장, 한번 만나 뵌 적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만.”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뜬 특사.

혀를 끌끌 차며, 그는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쯧쯧, 장사치가 아직도 포기를 못 한 모양이로군. <모터즈 아이즈> 건 이야기는 다 끝났다고 전하게.”

“아, 그걸 논하고자 함이 아니랍니다. 좀 더 큰 그림, 그러니까….”

뒤이어 내뱉은 비서관의 말에 휘둥그레진 특사의 두 눈.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본 이사야 총리와 특명 전권 대사.

“바람 앞의 촛불인 이스라엘의 생존 문제. 자신이 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꽉 맞문 중동의 수렁에, 늪지를 메꿀 만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