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사막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1)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세 종교 모두를 묶어주는, 하나의 린치핀 비슷한 동네가 있다.
지금 이곳, 산자락 위에서 저 멀리 사해(死海)가 내려다보이는, 그 도시의 이름은 바로.
“예루살렘. 살다 살다 내가 여기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예루살렘. 이름조차 기억 안 나는 이스라엘의 수도보다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진 이곳.
서양 세계의 성지(聖地)나 다름없는 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서… 이제 곧 중동 전체를 뒤흔들 격변이 시작될 것이다.
“종교 가진 양반들은 여기가 그렇게 인생 버킷리스트인가벼? 아주 세 종교에서 다 난리더만.”
“저희처럼 종교 없는 사람들이면, 굳이 올 이유는 없긴 하지요.”
“성원식 사장, 그 양반은 여기 오고 싶어서 난리였잖어. 아주 일요일마다 성당 꼬박꼬박 댕기는 양반이니까.”
예루살렘으로 출장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도 어떻게 끼고 싶어서 몸부림치던 성원식 탄약 인프라 사장.
물론 일본 쪽 원전 관련 사업을 진행할 총책임자가 있어야 하기에, 그는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성원식 사장도 나중엔 오게 될 겁니다. 이번 일만 잘 끝내면요.”
오게 될 거다.
아니, 오게 만들 것이다.
앞으로 탄약 인프라를 넘어, 탄약그룹 전체에 또다시 대형 먹거리가 강제로 입 안에 쑤셔 넣어지게 될 테니까.
예루살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크게 기지개를 켠 나는, 김원철 아저씨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건넸다.
“여하튼, 국정원에서 받은 북한-이란 간 핵물질 거래 정보는, 얼추 정리가 다 끝났습니까?”
“엉. 안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다 취합해서 보고하려고 했지. 이스라엘 애들 보여줘도 될 정도여.”
가방에서 묵직한 서류 뭉치 하나를 꺼내어 내게 전달한 김원철 아저씨.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불과한 이 서류 안의 내용. 그러나, 서 말의 구슬도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보배가 될지, 그저 창고 자리나 차지하는 천덕꾸러기가 될지가 갈리는 법.
그런 의미에서 이 서류 전체를 꿰는 맥락은 제법 내 마음에 들었다.
김원철 아저씨가 평소와는 달리, 조금의 웃음도 없이 학을 뗄 정도로.
“그나저나 난 진짜 북한 애들만 보면 기가 막히드만.”
“그러게 말입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사람들이에요.”
이란과 손을 잡은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서로 맞잡은 손을 어떻게 감아쥐었느냐는 것.
“간이 배때지 바깥으로 나온 게 분명하다니까. 세상에 무슨 깡으로 이런 짓을 하냐고.”
도무지 일반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북한식 악수 방법.
나는 대모산 아래 국정원 밀실에서, 그 내용을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 * * *
‘…미친 것 아닙니까, 북한 당국은?’
‘원래 정상적인 집단은 아닙니다만, 요사이 좀 심하긴 하지요.’
끝내 국정원장으로부터 협력을 약속받았던 나.
자세한 내용이야 김원철 아저씨를 중심으로 한 비서실에 전달되겠지만, 전체적인 얼개는 가장 먼저 내가 알아야 할 터.
때마침 다가온 점심시간. 함께 간단히 도시락으로 식사를 나누며, 나는 국정원장에게 북한이 이란과 어떻게 손을 잡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심분리기 같은 기자재는 그렇다 쳐도, 이거 핵분열 통계 데이터에 과학자 파견은 좀 심한데요. 그리고.’
펄럭, 한두 장씩 차례로 넘어가는 페이지. 생각보다 이란은 북한을 통해 제법 많은 것들을 공급받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그저 물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받고 있었다는 것.
물론 그것은 북한 기준으로는 사람이 아니라 물자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핵노예… 까지. 정말 자국민을 소모품으로 보는 모양이네요.’
핵노예.
우라늄 광산에서 일하는 인부 또는, 방사선 피폭 실험을 위한 일종의 마루타들.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그 끔찍한 내역을 바라보는 내게, 국정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원래도 그렇긴 했지만, 최근 저쪽 정치판에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았습니까?’
‘폭풍우… 아아, 권력 승계 말입니까?’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겨울을 코앞에 둔 지금.
갑자기 다가온 찬바람에 천벌이라도 실린 걸까?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
갑자기 붕 뜬 권좌 밑에, 아직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막내아들 김정은을 간신히 붙들어 둔 채로.
‘김정일이가 오늘내일하고, 아직 김정은이 그 핏덩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결국, 실권은 장성택이 쥐었는데.’
도시락을 모두 먹은 후, 테라스로 나가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국정원장.
북쪽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에, 회색빛 연기가 휘날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른 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뿐이지요.’
‘숙청… 말입니까?’
‘반대 파벌은 싹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고 합니다. 가족들까지요. 이번에 이란으로 간 그 핵노예들은 거기서 조달했을 겁니다.’
* * * *
“핵노예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까지 한다냐.”
“거기야 원래 정신 나간 곳이니까요.”
국정원에서 있었던 담화를 떠올린 나.
확실히 북한도 북한이지만, 이걸 받은 이란 정부 측도 정상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게는 더없는 기회인 상황.
“일단 그 불쌍한 양반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할 일은 하나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기회를 지렛대 삼아 큰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이곳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일일 터.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구시가지의 성전산을 눈에 담으며, 스스로 던진 물음에 자답했다.
“핵무기를 쥔 이란, 중동 지역에 있어 공공의 적 역할을 할 무서운 사자를 마을 입구에 풀어놓는 것.”
“하여간, 이런 쪽 머리는 진짜 좋아. 선대보다 훨씬 더.”
“아버지는 좀 화끈한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럼, 가볼까요?”
“어어… 잠깐만.”
슬슬 산에서 내려갈 생각이었건만, 정상에서 가만히 두 발을 붙인 채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는 김원철 아저씨.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보고 나서야, 아저씨는 평소처럼 짓궂은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다.
“흐흐흐, 안 그래도 얘네 벌써 엉덩짝이 들썩들썩하나 봐. 전화 오고 난리도 아니여.”
“그러게요. 이거 보니까, 밑에 대리인이 아니라… 아예 결정권자 엉덩짝도 같이 들썩거리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김원철 아저씨를 향해 똑같이 흔들어 보이는 내 휴대전화.
전하라고 했던 내용이 제법 충격적이긴 했던 모양이었다. 바람 앞의 촛불인 이스라엘의 생존 문제. 내가 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아무래도 오늘, 이 모사드 양반 진짜 이름이 뭔지 알 것 같네요. 그럼, 진짜 시작해 봅시다.”
* * * *
엉덩짝이 흔들리긴 어지간히 흔들렸던 모양이다.
내가 언덕에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려, 나를 둘러싼 양복 입은 사내들.
친절한 모사드 아저씨들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곳은, 어느 이름 없는 폐가 비슷한 곳이었다.
다만,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농부 할아버지가 아닌, 일전에 대사관에서 한 번 보았던 이름 모를 모사드 아저씨일 뿐.
“…….”
툭, 툭.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지, 자꾸 손가락으로 나무 책상을 쳐대는 특사 양반.
다른 이들은 모두 나갔기에, 나와 특사, 단 두 사람만이 있는 이 공간. 특사는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또한 마찬가지이고.”
“편히 말씀하시죠.”
“내게 전언을 보낸 것으로 보아하니, 현 상황이 백척간두에 섰음을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그러니 확실히 짚고 가지요.”
허리춤에 찬 권총을 손에 쥔 특사. 특유의 개성 없이 기억에도 남지 않을 그 얼굴에, 순간적으로 흉악스러운 살기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모터즈 아이즈.”
“…….”
“고작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내게, 그리고 이스라엘에 얕은수를 쓴 것이라면… 서준 한 회장, 당신은 결코 온전히 귀국하지 못한다는 것을.”
언제 닿은 것인지, 내 관자놀이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금속제 권총의 총구.
그 명백한 적대감 속에서, 나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이 사람. 아니, 이 사람을 넘어 이스라엘이라는 이 나라가… 지금 굉장히 급하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기에.
그렇기에 외려 편한 마음으로 내뱉은 말 한마디.
“오랜만이네요, 이런 상황.”
“뭐요…?”
“아마 태국 남부에서 크라 운하 건으로 이슬람 반군 세력에게 붙잡혔던 때였을 겁니다. 그때도 대장 격은 이렇게… 권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고개를 조금 돌려 철문 너머를 바라보는 나.
숨겨도 숨겨지지 않은 인기척이 문간 너머에서 오로지 나만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였다.
“바깥에는 분명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아랫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인간 벌집이 되는, 그런 싸구려 전개.”
“말이 불필요하게 길어지는군. 서론이 장황한 자의 입안에는, 보통 뱀의 혓바닥이 들어 있는 법이고.”
내 담담한 말투가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 걸까?
철컥, 차갑도록 묵직한 방아쇠 당기는 소리.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는 순간, 장전된 납탄은 내 머리를 꿰뚫을 터.
그러나.
“그 뱀의 혓바닥이라도 필요한 상황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에는 말입니다.”
“이놈이 감히…!”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전체. 이스라엘은 감당 못 합니다. 절대로.”
“……!”
떨림이 시작된 권총의 총구.
어디 내 말이 틀렸냐는 듯, 맞닿은 총구 쪽을 향해 고개에 힘을 준 나는 하던 말을 연이어 나갔다.
“지난 네 차례의 중동전쟁과는 다를 겁니다. 개 주인이 셰일 오일이라는 카드를 쥐었으니, 승냥이 떼가 개를 물어뜯은들 별 상관이 없겠지요.”
“…네놈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군.”
떨리는 총구만큼이나 중심을 잃은 특사의 목소리.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방아쇠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가락.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확신했다. 칼날을 가져다 대면 톡, 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이 팽팽한 긴장감은, 내 쪽이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그렇기에 지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칼자루를 특사를 향해,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해 휘둘렀다.
“결국, 개가 살아남으려면, 개장수와 승냥이 떼, 모두의 눈을 이리로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툭,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탁자 위에 무심히 내려놓은 붉은색 USB 하나.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특사의 손에 쥔 권총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제 고국 북쪽에 불량 이웃이 좀 유별나게 굽디다. 대뜸 사자 우리에 빗장을 풀 열쇠를 하나씩 하나씩 던지지 뭡니까?”
권총을 거둔 특사의 손은 곧바로 USB를 향했다.
푸른빛을 내는 화면을 응시하며, 곧바로 일렁이기 시작하는 그의 눈동자.
이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나 다름없을 터. 차분한 시선으로 특사를 바라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볼 때, 조만간 페르시아의 사자가 아랍에 포효할 것 같습니다만. 어쩌면… 주인 잃은 개에게는 기회 아니겠습니까?”
“서준 한 회장 당신 도대체…?”
한쪽 손을 살며시 들고서 특사의 말허리를 자른 나.
이제야 비로소 장전된, 형체 없는 나만의 권총.
나는 특사를 향해 묵직한 총구를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전체의 판을 단 한 번에 뒤틀어 버릴 방아쇠를.
“공동의 적을 두고 승냥이 떼와 어깨걸이를 하시지요. 개장수도 사자가 날뛰는 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못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