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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08화 (265/300)

208화 사막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2)

내가 보여준 자료 화면에 충격을 크게 받은 것일까?

딸그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메마른 콘크리트 바닥에 권총을 떨어트린 특명 전권 대사.

이란과 북한의 핵물질 거래 내역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한 그는, 양손을 부르르 떨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북한…? North Korea? 그들이 지금 이란의 핵무장을 돕고 있다고? 이게 정말인가!”

“증거가 지금 특사님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명백한 증거가.”

“이럴 수가…!”

단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인지, 침착함 대신 과격함을 선택한 특사.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인 조국의 운명을 한탄했다.

“빌어먹을! 사우디도 모자라서 이란까지! 어째서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우리 이스라엘 백성에 시련만을 남기시는 것인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린… 불쌍한 애국자. 당장의 다급함에 내가 보인 큰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못한 모양인 듯, 그는 이란이라는 부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반쯤 장님이나 다름없는 이 남자. 나는 친절하게도 맹점을 하나하나 짚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시련일지 축복일지는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공공의 적. 이란이 미국, 사우디, 이스라엘의 공공의 적 노릇을 한다면, 이 시련은 오히려 축복에 가까울 것일 테니까요.”

“……!”

그제야 비로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톡, 톡. 연신 책상 끄트머리를 손톱으로 쳐대며 무언가를 골똘히 궁리하는 특사.

얼음장 같은 찬물을 한 바가지나 들이켠 후에야, 조금 차분해진 어투로 돌아온 그가 내게 물음을 던졌다.

“사우디 쪽도… 빈 살만 왕세자도 이 계획을 알고 있나? 아니, 알고 있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어차피 이스라엘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먼저이니까요.”

그리고, 이스라엘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더는 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에게 주어진 퇴로라고는 방금 내가 뚫어준 구멍 하나 외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자료가 든 USB를 그 자리에 그대로 남긴 채,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선 나.

총기로 무장한 바깥의 경비병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럼, 하고자 한 이야기는 모두 나눈 것 같군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

어두컴컴한 방 안, 희미하게 빛나는 백열전구 아래 주저앉은 특사.

뒤를 돌아선 나는 그에게 마지막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뭐, 거기 보이는 것처럼 구체적인 각론 또한… 제법 풍성하게 마련해 두었거든요.”

* * * *

“어흐,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야. 내가 일하면서 별 고생을 다 해봤는디, 이번 건 레전드였어야.”

“뭘 또 그렇게 엄살을 부리십니까. 총 맞은 것도 아니고.”

무서운 모사드 소굴에서 두 발로 걸어 나와 자유의 몸이 된, 나와 김원철 아저씨.

정작 머리에 권총이 겨눠진 건 나였는데, 엄살은 아저씨가 부리고 있었다. 하여간, 은근히 겁은 많아서.

“아무튼. 그래서, 그 각론은 마음에 든다나? 그 특사 양반 말이여.”

“그 자리에서 한참을 고민하던데요. 그러고 나서도 정부 내각에서도 결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날, 풀려나온 내게 열흘 가까이나 아무런 연락도 않던 이스라엘 정부.

한동안 호텔에서 감시가 붙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한동안 내게 아무런 접선도 시도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아마 고위층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을 것이 분명했으리라.

“물론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인정해야 했지만. 그리고, 아마 지금 빈 살만 왕세자도 상황은 똑같을 겁니다.”

이스라엘이 사우디가 부담스러운 것처럼, 사우디 역시 이스라엘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 가시 돋친 채, 환경에 의해 억지로 발톱을 세우고는 있으나, 결코 충돌을 원치는 않는 상황.

양쪽 모두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결국, 내가 제시한 계책뿐일 터.

“공공의 적. 감당 안 되는 이웃과 동침하기 위해서는 마을 바깥에서 어슬렁거리는 맹수 한 마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말을 마침과 함께 사자가 그려진 맥주 캔 뚜껑을 딴 나. 입구에서 올라오는 하얀 거품을 입술로 훔치며, 나는 확신했다.

이번 계획의 각론, <예루살렘 계획>. 어쩌면… 자의 반 타의 반 발을 들였던 이번 중동 건으로 인해, 탄약그룹이 한 단계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딩동!

마침내 도착한, 기다리던 연락.

짧은 메시지가 담긴 화면을 본 내 입꼬리가 위쪽을 향해 올라갔다.

-[특사] 함께 합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또다시 울려대는 휴대전화.

마치 운명의 장난이라도 된 것처럼, 동시에 맞물려진 톱니바퀴 두 개를 바라보며, 나는 웃음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거야 원. 빈 살만 왕세자도 양반은 못 되나 봅니다.”

“응? 뭐래, 뭐래? 뭐라고 왔는디? 어어… 특사만 연락한 게 아니고, 빈 살만도 같이 온 겨?”

말없이 손에 든 휴대전화를 돌려 김원철 아저씨를 향해 보인 나.

마침내… 거대한 퍼즐의 완성을 알리는 조각 하나가 철컥 소리를 내며 끼워지고 있었다.

-한 회장, 그대가 말한 <예루살렘 계획>. 바로 진행토록 하겠네. 자네도 바로 워싱턴 D.C로 따라오게나.

* * * *

시곗바늘을 조금 앞으로 되돌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중심부의 왕궁 안.

-쾅! 쾅! 쾅!

당장이라도 부수어질 듯,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책상.

“사우디군은 말단 병사부터 장군까지 전부 머저리들밖에 없는 것이더냐! 쓰레기 같은 오합지졸들!”

가장자리에 금박을 입힌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빈 살만 왕세자.

그 충격에 탁자 위에 놓인 물담배가 떨어지고 유리 파편이 대리석 바닥을 뒹굴었지만, 좌중의 그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저깟 유리 조각보다 곱절은 날카롭고 매서운, 빈 살만 왕세자의 분노가 사우디군 수뇌부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깟 유대 놈들 입김이 조금 더 들어갔다고, 어떻게 반군에게 그딴 쥐새끼 같은 꼴을 보인단 말인가!”

“송구하옵나이다. 차마 뭐라 드릴 말씀이….”

폭약과 함께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차 서른 대. 순식간에 당해버린 그 자살 폭탄 테러 공격은, 사우디 남부 국경수비대 주둔지를 한순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1,700명! 1,700명이 잿더미가 되었다! 시체도 못 찾을 만큼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고!”

“죄송, 또 죄송하옵나이다, 왕세자 전하. 조속히 사후 대책을 세우도록….”

“닥쳐라! 네깟 놈 대가리에서 무슨 대책을 논해!”

정말 어지간히도 화가 났던 모양이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우디 국방부 장관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빈 살만 왕세자.

“끄악! 전, 전하….”

“멍청한 놈!”

국방부 장관이자 빈 살만 왕세자의 사촌 동생인 그의 쓸모없는 머리 위에 봉긋 혹 하나가 솟아올랐다.

“평소처럼 군 내부에서 적당히 해결할 생각 따위일랑 그 미련한 머리통 속에서 깔끔히 지워버리도록!”

“허, 허면 어찌하면 되겠사옵니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사온데….”

핏줄이라는 낙하산의 한계를 명실공히 보이는 국방부 장관.

나름 왕실 출신 중에서도 골라 뽑은 자이건만, 그의 머릿속에서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달 내로 해결책을 가진 놈을 데리고 오는 것도 못 하겠다는 것이냐! 돈을 아가리에 쑤셔 넣어도 좋으니, 무조건 대책을 찾아!”

“알, 알겠사옵니다, 전하!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쏜살같이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국방부 장관.

시종에게 명령해 새로운 물담배를 가지고 오게 한 빈 살만 왕세자는, 한숨과 함께 긴 회색빛 연기를 내뿜었다.

“빵 위의 구더기 같은 작자들! 내 그리도 돈을 쏟아부었건만… 나아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질 않는단 말인가!”

이제껏 외국으로 빠져나간, 한화 수십조, 수백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부.

미국, 영국, 프랑스,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까지. 국방비 명목으로 세계 각국으로 흘러 나간 돈값을 하는 이는 사우디군 내에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조금씩 성과를 보이는 것은 한국의 탄약그룹과 맺은 국방개혁 사업뿐일 정도였으니까.

“후우… 국방개혁이 끝나는 그때까지는 구멍 난 전력이 노출되면 안 될 터.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비록 반군의 뒷배에 선 것이 이스라엘임을 알면서도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렇기에 고심하는 빈 살만 왕세자. 그는 창문을 열어 훅 파고드는 밤의 사막바람을 얼굴에 쐬며 중얼거렸다.

“이스라엘과의 대립은 최대한 피해야 하고, 사우디의 위신도 상하면 아니 되고… 음?”

양립할 수 없는 논제 두 개를 가지고 고민하는 빈 살만 왕세자.

골치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매만지고 있는 그 순간,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의 사슬이 끊어진 것은, 아마 휴대전화 화면에 적힌 이름 석 자가 그의 눈에 들어온 뒤부터였으리라.

“서준 한 회장…? 이 친구, 꼭 타이밍도 참 묘하단 말이지. 마치 예전에 큰일을 앞두고서 그랬던 것처럼.”

항상 초대형 이슈를 몰고 다닐 때마다, 전조 증상처럼 이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 오곤 했다.

연기처럼 몽글거리는 기대감을 들이키며, 전화 통화 버튼을 누른 빈 살만 왕세자.

약간의 기대감을 목소리에 담아, 그가 첫마디 말을 내뱉었다.

“그래, 간만이로군. 무슨 일인가?”

-도를 아십니까, 왕세자님?

갑작스레 들려오는 뜬금없는 전도에 당황한 빈 살만 왕세자.

사이비 종교를 때려잡았다고 하더니, 본인 스스로 새로운 사이비 종교를 만들기라도 한 걸까.

헛기침을 내뱉은 빈 살만 왕세자가 반문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왕세자 전하의 목소리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기에 묻는 것입니다만, 혹여나 요사이 일이 잘 풀리지 않으신지요?

뭔가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말투에 귀를 쫑긋 기울이는 빈 살만 왕세자.

이스라엘 때문에 심약해진 정신상태 탓인지, 일단 그는 이 한국인 상담사에게 속에 쌓인 것을 좀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이것 참, 묘하게 빨려드는데… 뭐, 그렇긴 함세. 그 빌어먹을 유대 놈들 때문에 말이지.”

-그게 다 마음의 균형이 망가지셔서 그렇습니다. 마음은 땅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땅의 균형을 맞추어야 해결되는 일이지요.

“뭐라고…?”

점점 알 수 없는 말만을 이어나가는 사이비 교주 꿈나무.

싱숭생숭하던 빈 살만 왕세자의 마음이 온전히 열린 것은, 뒤이은 사탕수수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난 후였다.

-제게 중동의 균형을 맞출 비책이 있습니다만… 약간의 성의만 표시하신다면, 제가 왕세자 전하의 마음을 편케 해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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