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10화 (209/300)

210화 예루살렘 계획(1)

하늘에서 내리는 수억 개의 크리스털. 빛나는 수정 조각을 하나하나 엮어 늘어뜨린 샹들리에 아래, 잔뜩 주름 잡힌 눈살 사이에서 빛나는 양 웬리 국무장관의 눈동자.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마구잡이로 씹어먹으며, 그는 빈 살만 왕세자와 이스라엘 특사, 두 실세 쪽에는 일절 눈을 돌리지 않았다.

“후우….”

오직 나 한 사람.

나에게만 그 시선을 고정한 채, 은제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X자로 교차해 두는 양 웬리 국무장관.

어쩌면 외교가에서 다소 결례라고 볼 수도 있는 이 상황.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와 이스라엘 특사는 자존심 따위는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양 웬리 장관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나만을 그대로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린다는 듯이.

그렇기에, 이 괴로운 침묵은 내가 먼저 끊을 수밖에 없을 터다.

“스테이크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이쪽 의전 담당자에게 따로 언질을 드렸거든요.”

“무슨…?”

“조리법을 조금 달리해달라 부탁했습니다. 아예 익히지 않다시피 한 레어 스테이크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조리법이 낫지 않나 싶더군요.”

딸그락, 소리를 내며 접시 위에서 식탁으로 떨어지는 포크와 나이프.

점점 돌처럼 굳어지는 양 웬리 국무장관의 표정이야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나는 물 한 모금을 삼키고는 곧바로 하던 말을 연이어 나갔다.

“지금, 어색함으로 가득 찬 이 자리에 모인 이유처럼.”

“어쩐지, 사막 모래 알갱이가 씹히는 것처럼 텁텁하더니만. 아아, 시즈닝도 마음에 안 들었었지. 꼭 방사능 가루를 뿌린 것처럼.”

대놓고 북한과 이란의 핵물질 거래 내역을 언급하는 양 웬리 국무장관.

잔뜩 얼어붙은 분위기.

빈 살만 왕세자도, 이스라엘 특사도,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만큼 팽팽해진 긴장감.

나는 내 눈을 응시하는 양 웬리 장관에게 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보라며 턱 끝을 살짝 움직였다.

“이거 참 곤란합니다, 한 회장님. 제멋대로 레시피를 바꾸시면, 이렇게….”

그리고, 내 행동에 응답이라도 하듯, 입을 연 양 웬리 국무장관.

그 순간, 쨍그랑! 파열음을 내며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에 흩뿌려진 도자기 접시.

부서진 조각 가운데 가장 날카로워 보이는 하나를 들고서, 그가 내게 경고하듯 말을 건네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손님은 접시째로 바닥에 처박아 버리니까.”

“이해합니다. 다소 불쾌하셨을 수도 있다는 점. 익숙지 않으신 메인 디시를 드셨으니까요.”

달랠 필요는 없다.

굴종할 필요 또한 없다.

그저 하나하나 주지시킬 뿐이다.

무엇이 당신에게 이익이 될지. 그리고, 무엇이 나와 이 자리에 앉은 저 두 실세에게도 이익이 될지.

나는 칼날처럼 매서운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반문했다.

“앞으로 나올 디저트는 장관님의 마음에 쏙 들어야겠지요? 아까의 불쾌함을 잊어버리실 만큼.”

“…….”

유독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양 웬리 국무장관.

한참을 그렇게 깨진 접시 조각을 손에 쥔 채로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씹던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근처의 직원을 불렀다.

“어이! 웨이터!”

쟁반에 들어 있던 입가심용 크래커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는,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목구멍 너머로 삼키는 이 남자.

충분히 생각을 정리한 듯한 그는, 깍지 낀 양손으로 턱을 괴고는 내게 말했다.

“들어는 봅시다. 어디 얼마나 기가 막힌 디저트를 준비한 건지. 만약 내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지 못한다면.”

제법 매서운… 협박 비슷한 말 한마디와 함께.

“무능한 요리사는 사막 불구덩이에 처박혀야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실 염려는 일절 안 하셔도 좋습니다.”

빙긋, 웃으며 그 날선 협박을 받아치는 나.

나는 손가락으로 식탁 위의 마카롱 하나를 집어 들며 대답했다.

“<예루살렘 계획>이라는 디저트는 분명 장관님의 입에 딱 맞을 테니까.”

<예루살렘 계획>의 각론.

그 말이 나오자마자, 연회장 내의 사람들의 표정은 정반대로 갈렸다.

양 웬리 국무장관의 알쏭달쏭한 얼굴과, 이에 대비되는… 빈 살만 왕세자와 이스라엘 특사의 옅은 미소로.

* * * *

시곗바늘을 조금 앞으로 돌려서, 막 연회장 안에 들어왔던 나.

심술꾸러기 양 웬리 장관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 빈 살만 왕세자와 이스라엘 특사는 아직도 서로 그르렁거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상황.

‘거, 그만들 좀 싸우시고 이리 좀 오셔서 앉으시죠.’

고개를 가로저으며 질린다는 듯한 내 말투에 민망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대답 대신 헛기침을 내뱉는 두 아저씨.

‘크흠….’

‘어흠!’

나는 곧바로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사우디. 어쨌거나 핵무기를 든 이란이라는 상황 앞에서는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 인정하십니까?’

반쯤 강제로 만들어진 국가적 위기 상황.

짤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이스라엘 특사 쪽이었다.

‘후우… 이런 망나니 찬탈자 따위와 같은 배를 타야 하다니.’

‘뭐라! 이 무도한 이교도 놈이!’

‘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설령 악마와 손을 잡아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을 터.’

갑자기 드리프트를 꺾어버리는 태세 전환에 멍한 표정이 되어버린 빈 살만 왕세자.

뭔가 할 말은 많은 모양이었지만, 그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현실에 타협하는 쪽을 택했다.

‘후우, 저 유대 놈들이 구석에 조용히 숨어있다면, 알라신의 자비로움은 그늘진 곳까지도 비추는 법이지.’

‘좋습니다. 대충 뜻은 모은 것 같군요. 그러면 이제.’

나는 진정된 두 아저씨들을 앞에 두고, 유세나 보좌관에게 손짓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내게 지도 한 장을 가지고 오는 그녀.

아라비아반도 쪽을 상세하게 그려낸 바로 그 지도에는, 유달리도 붉은색으로 된 선 하나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무려… 장장 2,000km에 달하는, 철로 모양의 선이.

‘<예루살렘 계획>. 그 각론에 대한 것을 다시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여기 지도를 좀 봐 주시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를 걸쳐 페르시아만과 접한 항구까지 향하는, 일명 <평화 트랙>.

대놓고 이란을 견제할 수 있으면서도, 사우디와 이스라엘 두 나라를 강제로 묶어버리는… 일종의 2인 3각 달리기와 같은 철로.

‘끄응, 가슴으로는 이게 맞는 건가 싶지만…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가 되는군. 꼭 해야 할 프로젝트로다.’

‘저쪽과 아예 공동 경제권으로 묶인다라….’

고심하는 두 사람.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이 아저씨들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만년필을 들고 조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뿐이고.

‘미국 또한 이 안은 받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예 이란의 바닷길을 통째로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자, 그럼.’

나는 품 안에서 준비해둔 만년필 두 자루를 꺼내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싫은 표정을 한 채, 서로 눈을 마주 보는 빈 살만 왕세자와 이스라엘 특사.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내가 맡은 향은… 묵직한 검은색 잉크가 종이 위에서 춤을 추는 향이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조약서를 검게 물드는 만년필 두 자루.

‘이거, 서준 한 회장. 그대가 말하는 것마다 묘하게 넋을 놓고 듣게 되는 것 같군.’

‘후우, 내 살다 살다 사우디와 손을 잡게 될 줄이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부담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 둘.

싸우다가 정이라도 든 걸까?

두 사람은 서로 물담배 하나씩을 입에 물고서 피식 웃음 지었다.

‘깔끔하네요. 좋습니다. 그럼, 양 웬리 장관더러 준비가 끝났다고 하겠습니다.’

‘아, 서준 한 회장. 잠시만.’

돌아서는 나를 붙잡아 세운 빈 살만 왕세자.

몽롱한 연기를 내뱉으며, 그는 타당한 걱정이 섞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약에 말일세… 미국 측에서, 정확히는 양 웬리 그자가 이 안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아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설마 내가 이것 하나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걸 위해서… 이미 로마의 중심, 바티칸에서 벌써 밑밥을 싹 깔고 왔는걸.

‘미국 서남부를 기반으로 한, 동양인 이민자 출신 정치인은 언제나 표에 굶주려 있는 법이니까요.’

* * * *

“빌어먹을. 꼭 아픈 곳만 골라서 포크로 쿡쿡 찔러대는 것 같군.”

<예루살렘 계획>의 각론인 평화 트랙.

핵 무력을 점점 강화해 가는 이란을 충분히 견제할 그 계획을 들은 양 웬리 국무장관은 복잡한 얼굴로 연신 혼잣말을 내뱉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사우디의 호르무즈 해협까지. 아주 이란이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게 생겼군.”

“그 국제 운송 허브에 미군이 주둔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의 국익에 충분한 기여가 될 겁니다.”

“끄응… 이봐! 웨이터!”

옆에 선 웨이터에게 손짓하는 양 웬리 국무장관.

“예, 장관님!”

“위스키! 아무거나 제일 독한 놈으로, 빨리!”

미리 준비했던 걸까?

말이 마치기도 전에 웨이터는 곧바로 얼음에 담긴 위스키 병 하나를 통째로 내왔다.

“크흐, 요새 듣기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만 던진다고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당하니 이것 참, 기분이 묘합니다. 하지만.”

위스키가 일종의 신호 비슷한 것이었나 보다. 주변 보좌 인력을 전부 물리는 양 웬리 국무장관.

이 자리에는, 오직 네 명의 남자만이 남아, 각기 네모난 식탁 한 귀퉁이씩에 자리하고 있었다.

딸그락, 손목을 흔들어 위스키 잔 안의 둥근 얼음을 한 바퀴 돌리는 양 웬리 국무장관.

“그 제안은 오로지 미합중국만이 거절할 수 없는 것이고… 양 웬리라는 개인에게는 딱히 구미가 당기지는 않습니다만?”

빙그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역시나 양 웬리답다. 단지 자신이 맡은 직책에 대한 것뿐이 아닌, 개인의 욕망까지 동시에 채우는 것을 바라니까.

물론 그 욕망은 얼마든지 만족할 때까지 채워줄 것이다. 여기 오기 전,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으니까.

“디저트가 하나만 나와서야 어디 제대로 된 만찬이라 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국무장관 그다음 스텝… 굵직한 선출직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뿌리를 둔 캘리포니아주에.”

“허어….”

조금은 민망할 수도 있는 욕망을 정면으로 찌른 나.

살짝 당황한 그의 심장을 향해, 나는 파도가 몰아치듯 계속해서 피 끓는 욕망을 불어넣었다.

“주지사 한번 하셔야지요. 제가 알기로는 핵심은 히스패닉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바로 정면에 앉은 그를 향해, 고개를 앞으로 뻗은 나.

이브에게 빨간 사과를 물고 속삭이는 뱀처럼,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단어 두 마디를 던졌다.

도저히 베어 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이 달콤한 사과 같은 말을.

“교황. 그리고 예루살렘.”

“……!”

“<평화 트랙> 착공식에 함께 하시죠. 마음씨 좋은 교황 할아버지 옆자리는 비워 드리겠습니다. 선거용 사진은 충분히 건지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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