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예루살렘 계획(2)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꼭대기 층, 교황의 집무실.
잠시 체통과 위신은 성경책 겉표지 사이에 끼워두기라도 한 듯, 선 채로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교황.
결국,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바깥에 대기 중인 추기경을 애타게 불렀다.
“추기경. 추기경! 거기 밖에 있나요?”
“아, 예. 교황 성하. 무슨 일이신지요?”
하도 교황에게 많이 시달려서였을까? 조금은 핼쑥해진 듯한 추기경.
교황은 그런 그의 모습 따위는 아무런 상관하지 않는 듯,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크흠, 혹여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없습니까?”
“저, 교황 성하… 오늘만 벌써 같은 것을 다섯 번이나 물으셨나이다.”
“추기경! 이는 다섯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도 물을 법한 일인 것을 모르십니까?”
그 남자.
격앙된 목소리로 신앙심을 간증하듯 부르짖는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벌써 이스라엘부터 사우디를 걸쳐 미국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러 서준 한, 그 위대한 청년이 몸소 고행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까?”
가톨릭 세력의 확장이라는 사탕에 눈이 먼 교황. 그 모든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추기경은 목 뒤쪽을 잡아 쥐고는 솟아오르는 혈압을 간신히 억눌렀다.
“일단 서준 한 회장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빨리 알아보도록 하세요. 워싱턴 D.C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그다음으로 무슨 행보를 보일 것인지까지, 전부!”
“하아… 알겠사옵니다, 교황 성하.”
미운 예순 살의 생떼.
집무실 방문을 닫고서 빠져나가는 추기경의 귓가에 교황의 중얼거림이 내려앉았다.
“이거 아무래도 서준 한 회장이 죽거든, 나중에라도 성인(聖人) 지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먼. 허허허.”
정말이지 극한 직업이 아닐 수 없는 추기경.
가톨릭의 진짜 성인(聖人)들이 장식된 대리석 조각들이 줄지어 선 복도를 걸으며, 그는 부하인 주교에게 푸념을 시작했다.
“…하아, 환장하겠군.”
“교황 성하께서 유독 기대가 크신 모양입니다.”
“끄응, 너무 커서 문제일세. 아주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라니까.”
관자놀이를 매만지는 추기경.
지나칠 정도의 교황의 설레발에 그는 여간 머리가 아픈 게 아닌 모양이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창밖으로 길게 연기를 내뿜던 추기경은, 검은색 사제 로브에 묻은 담뱃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사실 어느 정도 이해는 감세. 가톨릭교회의 부흥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니.”
“이 또한 주께서 인도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 생각하시지요.”
“후우, 그래. 그래야겠지. 음?”
그리고, 그 순간.
바깥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함께, 급히 주교에게 다가오는 사제 한 명.
이마 자락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문서 하나를 건넨 그는 곧바로 교황 집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비서실 쪽 사제인데, 무슨 일이길래 저리도 급히 뛰어가는 건가?”
“저… 추기경님.”
탁, 탁, 탁. 복도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조심스레 떨려오는 주교의 목소리.
고개를 갸웃거리는 추기경에게, 문서에서 눈을 뗀 주교는 긴장되는 얼굴로 말을 꺼내었다.
“아무래도 아까 교황 성하께서 중얼거리셨던 그 성인(聖人) 시성 말입니다. 진짜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게 무슨…?”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를 올려놓은 추기경. 주교는 대답 대신 그에게 방금 건네받은 문서 마지막 장을 그대로 펼쳐 보였다.
“아니, 이… 이건!”
눈이 휘둥그레 튀어나온 추기경.
이미 제반 사정을 알고 있던 그였기에, 문서의 전체 내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에 추신처럼 덧붙인, 속칭 ‘그 남자’의 메시지가 가톨릭교회 전체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예루살렘 계획>. 그 모든 열쇠가 모였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빠른 시일 내로 예루살렘으로 와 주시길.
그저 공상으로만 여겼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문서를 잡아 쥔 추기경의 손은 떨림으로 가득 찼다.
“허어, 이 말도 안 되는 난해한 문제를 진짜로 풀어냈을 줄이야….”
저 멀리, 복도 너머에서 환호성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교황 또한 같은 내용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가톨릭교회의 부흥. 그것도… 예루살렘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미국 국무장관의 조력을 받는 모양새로의 의식.
바티칸에서 동쪽으로 훌쩍 떨어진, 예루살렘에서 조만간 있을 그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추기경은 대리석으로 된 이름 모를 성인(聖人) 조각상에 손을 올렸다.
어쩌면… 그 옆자리, 빈 공간에 세워질 조각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거 최초의 한국인 성인의 탄생인가? 세상에 무신론자 출신 성인이 있다라, 기가 막히는군.”
* * * *
“아이, 참. 누가 내 욕을 하나.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욕은 무슨. 누가 감히 우리 한 회장 욕을 한다고.”
비행기 안.
미국 워싱턴 D.C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지금.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김원철 아저씨도, 유세나 보좌관도 아닌… 정치 요괴이자 지지율 성애자인, 대통령이었다.
“당장 데리고 오게. 내 청와대 뒷산에 봐둔 떡갈나무가 있지. 당장 내 말 한마디면, 튼실한 몽둥이 하나가 바로 대령 될 것이야.”
“아니, 굳이 때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누가 욕한 건지도 모르는데….”
교황 방한(訪韓) 건과 함께 복잡하게 얽힌 중동의 고차방정식을 풀었다는 데에 기뻐하는 대통령.
아예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올 지경인 그는, 붙박이처럼 내 옆에 딱 붙어 거친 상남자의 애정을 마음껏 과시했다.
“그만큼 내 한 회장을 아낀다는 말이지. 세상에 어떻게 이런 복덩이가 내 임기 때 딱 맞추어서 있냐 이 말이야.”
하기야, 이 양반도 나와 함께하면서 얻은 정치적 이익이 많기는 많았다.
특히나, 이번 건 같은 경우에는… 차기 대권에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한 상황이고.
유리잔 가득 따른 샴페인으로 입을 축인 대통령. 그는 내게도 잔 하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세 종교를 통합하고, <평화 트랙>으로 중동의 안전을 수호하는 남자.”
챙,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히는 두 개의 유리잔.
부담스러운 분위기에 부담스러운 술. 거기에 뒤이은 대통령의 말은 내게 더욱더 부담스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거기에 미국의 외교 정책까지도 말 한마디에 뒤집은 우리 한서준 회장.”
“아, 부담스럽다니까요. 제발.”
“어허, 겸손할 필요 없대도. 나중에라도 정계 쪽에 관심이 있다면 꼭 말하고. 안 그래도 마침 타이틀 하나 얻을 것 같더만.”
타이틀.
이래서 말은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로마에 있었을 때, 그냥 장난스레 김원철 아저씨와 주고받았던 노벨 평화상 어쩌고. 설마 그게 현실이 되었을 줄이야.
노벨 위원회에서 온 공식 문서를 내 눈앞에 팔랑거리며, 대통령은 자랑스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한 자 한 자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자 한. 서. 준.”
“그, 대통령님. 제발 좀….”
“후보자 딱지만으로도 이 얼마나 큰 명예인가. 그렇지 않던?”
다행히도 그런 하늘 위의 수치스러운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 때쯤, 대통령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박동희 정책실장.
“각하, 이제 곧 도착입니다. 창문 아래에 경치 좀 보시겠습니까요?”
“아아, 박 실장. 그래, 그럼세.”
이 애완견 같은 남자.
내가 대통령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자, 뭔가 스스로 분발해야겠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닫혀 있던 창문 커버를 열어젖힌 그는,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어투로 아부를 떨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크흐, 저게 그 성지(聖地)의 최고봉,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입니다요. 각하, 저는 지금 심장이 콩닥거리며 뛰고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 그놈의 심장은 또 왜 뛰고 그러는 게야?”
“저곳, 성전의 황금 지붕 아래 모인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세 종교의 대리인들. 미국 국무부 장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바로….”
정말이지, 인간 비데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박동희 정책실장.
최대한 공손하게 손바닥으로 대통령을 가리키며,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가 딱!”
“허허, 박 실장 이 친구. 또 오바하기는.”
“솟아오르는 국격! 그리고 조만간 있을 교황의 한국 방문까지! 이게 다 여기 한서준 회장을 곁에 두신 각하의 복이십니다!”
평소 같았으면 눈살을 찌푸렸을 아부의 향연. 그러나, 지금만큼은 부담스러움에서 나를 구해준 은인이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닫은 채 그 아부를 배경음악 삼아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참 대단한 양반이야. 저 사람도. 그나저나.’
이제는 건물 하나하나가 제대로 눈에 들어올 만큼 낮아진 고도.
쿵,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것이 느껴짐과 함께, 드디어… 이 긴 여정의 끝을 알리는 충격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김원철 아저씨가 연락이 없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거지?’
본래대로라면 슬슬 나와 합류했어야 했던 김원철 아저씨.
그러나, 어찌 된 것인지 한번 한국에 들어갔던 아저씨는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이번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그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짤막한 메시지 하나만을 보낸 채로.
“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비행기가 서서히 엔진을 끄고 자리에서 멈추자, 대뜸 내 한쪽 손을 잡아 쥐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대통령.
“어어… 대통령님? 갑자기 무슨…?”
마치 소풍에 온 유치원생이라도 된 것처럼, 잔뜩 상기된 표정의 대통령.
미리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그는 환한 웃음을 짓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역사를 써 보러 가자고! 나갈 때 손 붙잡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 잊지 말게나. 바로 만세, 하는 거야!”
“어어… 어?”
환갑의 나이에 완력도 참 좋은 대통령.
반강제로 끌려 나가 기자들 앞에서 만세 포즈를 취하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찰칵! 찰칵! 찰칵!
“MBS 김철수 기자입니다. 대통령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만세! 평화 만세! 여기 한서준 회장과 함께하니 더없이 기쁩니다그려!”
일단은… 지금 저 멀리 보이는 빈 살만 왕세자, 이스라엘 특사, 양 웬리 국무장관, 그리고 교황까지.
네 사람과 함께 풀어나간 이번 고차방정식부터 어서 끝내야겠다고.
그래야 한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 바깥일에 신경 쓰지 않고, 이 불길함이 감도는 무언가를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