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예루살렘 계획(3)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만세의 Y자 포즈는 비단 대통령하고만 함께하는 것은 아니었다.
겨드랑이를 못 열어서 안달 난 사람들도 아니고, 아주 사진 찍을 기회만 있으면 내 손을 붙잡고 하늘 위로 추켜올리곤 할 정도였다. 빈 살만 왕세자, 이스라엘 특사, 양 웬리 국무장관에 교황까지 전부.
“평화 만세! 이곳 예루살렘에서 시작되는 평화의 철길은 세 종교 모두를 손잡게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었다.
전용기에서부터 신줏단지 대하듯 나를 바로 옆자리에 끼고 온 그는, 아주 이번 일을 기회로 단단히 여길 심산이었나 보다.
그 환한 카메라 셔터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연신 환한 눈웃음을 보이는 대통령.
“동시에 그 철길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탄약그룹이 첫 삽을 뜰 것입니다! 평화의 나라 사우스 코리아가 이걸 또 이루어냅니다, 여러분!”
유독 ‘한국의’라는 단어에 강세를 넣어 발음하는 대통령.
자세히 보니, 기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 언론사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아예 대놓고 뽕을 뽑을 모양인가 보다.
한참 그렇게 받던 카메라 셔터음 세례.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진짜 오리지널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오오…! 우리 가톨릭의 수호자, 성(聖) 서준 한 회장님이시여!”
세례 하면 끝판왕 격이라 할 수 있는 교황.
이 성스러운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뭔가 앞에 이상한 접두사가 붙은 것 같은데.
“성(聖)…? 설마 성 베드로나 성 요한 같은 그거? 아니, 전 하드코어 무신론자인데 이게 무슨 소립니까?”
“어허! 적당히 장단 맞춰 드리게. 분위기 파악 잘하는 사람이 왜 이러나.”
옆에서 손가락으로 등허리를 쿡쿡 찌르는 대통령.
아무래도 이 너구리, 교황 할아버지하고 사전에 말을 맞췄던 모양이다.
대통령은 반쯤 밀다시피 나를 교황 가까이 떠밀고는 한 발짝 떨어져 그저 흐뭇한 미소만을 마음껏 지어대고 있었으니까.
“어서 이리로 오십시오.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내 소중한 벗이여.”
“저, 교황 성하? 무슨 일인지 일단 설명부터 좀….”
진득한 설명을 원하던 내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바람을 더 말할 수도 없게끔, 곧바로 내 입에 빵과 포도주를 들이붓기 시작한 교황 할아버지.
“읍, 읍읍…! 아니 갑자기 무슨….”
“포도주는 주님의 피요, 빵은 곧 주님의 살이니, 그대 이 성찬으로 말미암아 축복이 있을 지어라!”
교회 예법은 어디 구석에 박아둔 채, 급조한 형식으로 열리는 간이 성찬식.
연단 아래, 고개를 끄덕이는 추기경의 모습을 보아하니… 대충 교황청 내부에서도 합의가 된 모양이었다.
성수(聖水)를 이마에 찍어 바르는, 팔자에도 없는 세례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교황 할아버지로부터 해방된 나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말을 꺼내었다.
“컥, 컥! 아니, 이게 갑자기 뭡니까?”
“뭐긴, 교황 저 늙은이도 원하는 걸 얻었으니 기분 좀 내는 셈이지.”
“그래도 그렇지, 좀 많이 격합니다만….”
“격하기는. 아무튼, 겸사겸사 방한(訪韓) 건도 이미 합의를 보았다네. 다른 조건 없이 원하는 시기에 딱 맞추어 가겠다는군.”
“벌써 논의가 끝났습니까?”
“열흘간 전국 팔도 투어를 시킬 생각이네. 다 자네 덕이지.”
내년 이맘때쯤,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교황.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대통령의 얼굴은 활짝 핀 웃음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사진 몇 장을 더 찍고는, 저 멀리 구석진 곳을 가리키며 내게 속삭이는 대통령.
“아아, 마침 한 회장 자네 덕 본 사람이 하나 더 있구먼.”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연단 위로 올라오는 한 남자.
동양인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미국 주류 백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자, 양 웬리 국무장관이었다.
“이거 다시 보니, 서준 한 회장님께서는 고작 돌 하나로 새 몇 마리를 잡으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뱀처럼 다가와 순식간에 어깨동무를 하는 양 웬리 국무장관.
기자들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내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비밀 아닌 비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랍니다. 이번 <평화 트랙> 건. 확실히 밀어드릴 테니, 내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잊지 마시길.”
대놓고 후원을 바라는 양 웬리 국무장관.
그래, 어떻게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저렇게 대놓고 탐욕을 드러내면서 이익계산이 확실한 자는, 적어도 거래에 있어 깔끔한 법이니까.
“고작 주지사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음?”
“상원 의장,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까지. 최초의 동양계 미국 대통령이 되시는 그날까지 함께해야지요.”
“하!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내 대답이 제법 흡족하다 여겼는지, 맞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양 웬리 국무장관.
악수를 마치고 서로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그는 내게 좀 더 가까워진 듯한 어투로 식사 초대 비슷한 말 한마디를 남겼다.
“앞으로 스테이크는 만찬에서 함께 듭시다. 집무실 책상 밖으로 나갈 만큼, 당신은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교황의 손을 맞잡은 양 웬리 국무장관.
캘리포니아주의 가톨릭교도 히스패닉의 표를 원하는 그였기에, 교황과의 투샷은 반드시 필요했으리라.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산에 올랐습니다. 부디 교황 성하께서 이 성스러운 곳에서 좋은 말씀 한마디를 해 주시길!”
“오오!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우리 양 웬리 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가톨릭교도들에게 부흥이 있기를!”
그렇게 몇 분간 계속된 부흥회 아닌 부흥회.
성스럽고 좋은 말씀의 대잔치가 살짝 지루하다 느껴질 그때, 양 웬리 국무장관이 내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 참. 노벨 평화상 말입니다. 그거 내가 추천한 것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쩐지, 갑자기 급물살을 탔다더니만, 그거 양 장관님 작품이었습니까?”
“원래 세상이 그런 겁니다. 죽음의 상인이 평화상을 받는다든지 하는.”
“…모르겠네요. 될 대로 되도록 내버려 둘 겁니다.”
노벨 위원회로부터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오기는 했는데, 이게 이 양반이 추천서를 넣었을 줄이야.
나름 신경 써서 준비한 깜짝 선물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양 웬리 장관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평화상이야 내년 수상식 때 가서 생각하시고, 일단은… 저기서 서준 한 회장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보입니다.”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두 사람.
본래는 원수지간이었고, 지금도 서로 썩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같은 배를 타게 된 빈 살만 왕세자와 이스라엘 특사.
“어서 가 보시죠. 어쨌거나 원수끼리 사랑하게 만드신 장본인이시니.”
* * * *
-찰칵! 찰칵! 찰칵!
줄지어 선 3개의 Y자.
안 그래도 나보다 체구가 훨씬 큰 두 사람 사이에 껴 있기에, 뭔가 소문자 y가 된 느낌이다.
다행히 천하제일 겨드랑이 대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먼저 빈 살만 왕세자가 마이크를 잡았으니까.
“이슬람의 은인 서준 한 회장의 현명한 계책이, 우리가 이곳에 한데 모이게 하였도다!”
시작부터 부담스러운 멘트.
다행히 빈 살만 왕세자에 뒤이은 이스라엘 특사의 연설은, 내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의 낯부끄러운 내용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항구적인 안전을 보장받을 역사적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의 상징물을 온몸에 치렁치렁 달고 있는 나.
너무 피곤해서 잠시 연단 뒤편으로 빠져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는데, 빈 살만 왕세자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물병을 내밀며 말했다.
“아예 탄약그룹 경영보다 내 책사로 오는 게 낫지 않나 싶은데 말일세.”
“…여기 오면서 한국 대통령한테 한 서른 번쯤 들었던 권유입니다만.”
“뭐, 안 되는 것은 알고 있네. 그리고, 일단 탄약그룹이 <평화 트랙> 공사 총괄도 맡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이곳, 이스라엘의 예루살렘부터 시작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를 걸쳐, 걸프만으로 빠지는 철도인 <평화 트랙>.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 공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총괄은 탄약그룹이 맡게 되었다. 오일 머니 만만세!
“거기에, 저 유대 놈들과도 할 사업이 있어 보이고.”
언제 온 건지, 내 앞에 성큼 다가선 이스라엘 특사.
그는 내 머리 위에 유대인 특유의 둥그런 모자인 키파를 씌워주며 웃음 지었다.
“저 지금 이슬람 전통 스카프인 터번까지 두르고 있습니다만…?”
“가톨릭 상징물인 묵주까지 두르고 계시면서 무슨. 그리고, 진짜 신경 쓰시는 것은 이것 아니겠습니까?”
무미건조한 말투로 내게 무언가를 내미는 이스라엘 특사.
여기 도착점인 예루살렘까지 내가 오게끔 만든, 이번 일의 시작점인 그것은 바로.
“<모터즈 아이즈>. 인수 허가증입니다.”
“…엄청나게 빨리 나왔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더 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으니까요. 이미 이스라엘의 안보는 오늘 이후로 확실하게 지켜질 테니.”
<모터즈 아이즈>.
세계 제일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이로써… 미래 기술의 퍼즐 조각 가운데 하나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고생은 거하게 했지만.
“자! 내빈 여섯 분 모두 한 군데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단체 사진을 찍으려는 모양이었다. 연단 위에서 들려오는, 이번 행사의 의전 총괄팀장의 목소리.
곧바로 내 옆에 다섯 명의 사람이 줄지어 서기 시작했다.
한국 대통령, 양 웬리 미국 국무장관, 이스라엘 특사,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그리고 교황까지 전부.
“히야… 어지간한 국가 원수나 최고 실세 급들 모임인데, 한서준 회장 저 사람도 진짜 대단하긴 해.”
“아, 저 친구가 어디 보통 인간이여? 어지간히 굵직하다 싶으면 다 각본, 연출, 기획에 이름 석 자 들여놓는디.”
웅성대는 기자들 가운데 유독 귓가에 직접적으로 꽂히는 한국어.
정말이지… 이제는 나에 대한 세평이 어떨지 걱정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다.
다소 익숙해진 찬사 비슷한 뒷담화를 다른 쪽 귀로 흘리며, 나는 정면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힘차게 터진 플래시와 함께, 역사의 순간으로 남은 사진 한 장.
그 폴라로이드 사진을 손에 쥔 나는, 뒤이은 연회도 생략하고 곧바로 호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누였다.
“후우, 피곤하긴 하네. 이번 일은 진짜 역대급이었어. 어라?”
쏟아지던 졸음 탓에 일찍 들어온 나였으나, 아무래도 휴식과는 영 인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기다리기라도 하듯, 곧바로 울려대는 휴대전화. 그 네모난 화면 안, 발신자 표시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김원철…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