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Ransomware(1)
조 선생.
안양교도소 3층, 복도 왼편의 우두머리인 이 조석구라는 남자의 인생은, 그야말로 역동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이다.
칼 한 자루로 호남권을 주름잡고, 나아가 충청도와 부산 일부 지역까지 진출한 조직폭력배의 수괴.
‘나가 조석구여! 이 창시를 끄집어 토막 칠 잡놈들아!’
잔혹하기 짝이 없는 칼질로, 근거지 일대의 조직폭력단을 하나하나 통합해 나가는 조석구.
워낙 세를 불리는 속도가 빨라, 지역 정계를 기웃거릴 정도가 될 정도였지만, 그에게는 결코 채워지지 못할 공허함이 있었다.
어쩌면 두려움이라 해도 좋을 만한.
‘니기미, 이놈의 사람 피 냄새 좀 안 맡았으면 좋겄네… 난중에는 나도 요 시체 꼬라지가 될 것 아니여.’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히는 음지의 삶.
조직의 선배도, 후배도, 동기도,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지독한 인간불신.
그리고… 자라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 상속조차 되지 못할, 범죄조직 스노우파의 수괴라는 허울뿐인 자산.
거기에 더해서.
‘어따, 백날 배때지에 칼바람 들락거도록 용을 싸면 뭣허냐. 으차피 검사님 호통 한방에 골탱이가 빠개지는 삶인디.’
조직이 커질수록 자신의 목을 향해 조금씩 조여 오는 수사기관의 포위망.
상대 조직에서 빼앗은 홍등가에서 벌이는 매춘. 동갑내기 동향 사람 주괘율과 함께한 불법 도박. 중국 보따리상 신발 밑창에 넣어 밀수해 온 마약까지.
뒷세계의 비즈니스는 늘 시퍼렇게 날 선 개작두 위를 맨발로 걷는 것만 같았다.
‘흐미… 참말로 사람이 숨을 못 쉬겄네잉. 건달 짓거리를 접으면 뭣을 해야 한다냐? 벌어재낀 검은돈은 우째 세탁허고잉?’
그리고, 그에게 혜성처럼 다가왔던 기회, 금융업.
금융위기 이후 몰락한 지방의 저축은행 두어 개를 인수해, 간신히 제도권의 삶을 살게 된 조석구.
비록, 검찰의 칼날을 전부 다는 피하지 못해 자잘한 건으로 4년 형을 받은 그였지만, 조석구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사업가의 탈을 뒤집어쓴, 합법적인 건달의 삶으로.
‘으허허허, 인자 여서 나가기만 하믄 다 끝이여라. 나가 곧 호남 바닥의 영주님이니께!’
저축은행을 통해 호남 변경백(邊境伯)을 꿈꾸는 조석구.
그렇게, 안양교도소 3층에서 바깥으로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에게… 지금, 또 다른 기회가 광명처럼 비치고 있었다.
그저 외지의 변경백에 머무는 것이 아닌, 진짜 중앙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어데 보자… 우리 한화기 본부장께서 나도 부르셨다고라?”
빈 안양교도소 소장 집무실.
깔끔한 검은색 가죽 소파 위에 걸터앉은 조석구는 눈앞의 한화기를 바라보며 회색빛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 보니께, 주 회장 나오는 길에 스끼다시맹키로 나까지 끼워 나오란 건 아닐 것이고.”
“조폭 출신 치고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으허허허… 거럼! 허벌나게 좋제! 좋아부러!”
한화기의 대답에 광인이라도 된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눈빛을 밝히는 조석구.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극한까지 발달한 그의 후각에 쿰쿰한 돈 냄새가 물씬 돌기 시작했다.
지방 저축은행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대 재벌 기업을 먹어 치울 냄새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 조석구가 한화기를 향해 피비린내 나는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묻겄소. 임자는 뭣 땀시 나를 부르셨는가?”
* * * *
딸깍, 금속제 라이터 뚜껑이 세 번 열리자, 이내 교도소장 집무실은 금세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탁자 위 판유리에 아무렇게나 재를 터는 한화기. 치켜뜬 눈 때문에 이마에 주름이 진 그는 조석구, 주괘율 두 사람에게 말을 꺼내었다.
“서로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겠지. 본론부터 말하겠다. 가석방이 가능할 것 같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탁자 모서리에 거칠게 비벼 끄는, 담배꽁초 끄트머리의 마지막 불씨.
눈빛을 번득거린 한화기.
그 눈빛은… 마치 제대로 기회를 잡은 독사의 것과 똑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제 어머니의 생명을 제물 삼더라도 꼭 집어삼켜야 직성이 풀릴 법한.
“마지막 가시는 길에 선물을 남기신 분이 있어서 말이지. 3.1절에 나갈 것 같더군.”
“가석방이라. 일단 축하는 드리겠소만.”
팔짱을 낀 채로 한화기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주괘율.
의도적으로 신경을 긁으려는 것일까?
그는 소파에 깊게 등을 묻고는 다리를 꼰 채 말을 계속해 나갔다.
“헌데, 백 점짜리 시험지를 자랑하시려 부른 것은 아닐 테고. 필시 바라시는 게 있을 터.”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침묵 속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늘리는 벽시계.
까끌까끌한 회백색 수염을 몇 차례나 문지른 후에야, 두 사내가 주고받던 눈빛의 평행선은 파열음을 내며 깨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당신 조카아이 때문이겠지. 산 채로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그 개 같은 놈 말이오.”
“하! 말귀를 빨리 알아듣긴 하는군.”
“헌데, 나는 말입니다. 그저 복수심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요.”
툭, 종이 한 장과 싸구려 볼펜 한 자루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 주괘율.
옆자리에서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는 조석구의 을씨년스러운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 그는 볼펜을 굴려 한화기 앞으로 내던졌다.
“계산은 정직하게 해야지. 나가서 한서준이 모가지를 친다 치고. 해서, 내가 그리고 여기 조 선생이 얻을 건 또 뭐요?”
“아주 많지. 당신네들 뱃가죽이 부풀다 못해 터져나갈 만큼.”
빙그르르 굴러온 볼펜을 손에 쥔 한화기.
거추장스러운 요식행위 따위야 중요치 않다는 듯, 손아귀 가득 힘을 준 그는 볼펜의 하얀 플라스틱 부분을 으깨며 입을 열었다.
한때 자신이 그리도 손에 넣고 싶던, 그러나… 이제는 영영 갖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한 마디.
“내가 이 손으로 도산시킬 탄약그룹을… 살코기뿐만 아니라 골수까지 철저하게 파먹을 권리.”
탄약그룹.
2008년의 위기로 혼란스러웠던 탄약그룹이 아닌, 2012년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하는 그 탄약그룹.
거기서 나는 비릿한 육향에 매료된 듯, 한화기 맞은편에 앉은 주괘율과 조석구, 두 사람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허어…!”
“으흐흐흐. 으메, 통도 큰 양반이어라.”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독사의 유혹과도 같은 제안.
그것은 데생이 마무리된 흑백의 도화지 위에 물감을 적시듯, 한화기의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점점 피부로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임직원 인사, 하청회사 납품 지정, 자금 조달, 회계 감사까지,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미는 한화기. 그의 광기 어린 눈동자에 가득 찬 것은… 모든 것을 불사를 파멸, 오직 그것뿐이었다.
“한서준이 그 쳐죽일 놈이 알토란처럼 키워 놓은 탄약그룹. 나와 함께 갈라 먹게 해 주지. 당신들 모두 자유의 몸이 된 상태로.”
* * * *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급한 회사 일을 마치고 곧바로 달려간 탄약 의료원 VIP 특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서 눈을 감자, 곧바로 해일처럼 몰아닥치는 피곤함.
수마(睡魔)에 잠시 기진맥진해진 정신은, 김원철 아저씨의 목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어이쿠, 퇴근한다고 가더니만, 여기 또 온 것이여? 우리 회장님도 대단허다, 진짜루.”
“아아, 오셨습니까.”
“에휴, 이게 참… 힘든 일이여. 아프신 양반 본다는 게. 그나저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
그간 함께한 오랜 세월을 추억하는 것이었을까?
잠시 말이 없던 아저씨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리 이사장님 잘도 주무시네.”
“후우, 일단 좀 나가시죠. 잠시 이야기할 것도 있고.”
할머니의 치료와 관련한 것 또한 실무적인 부분은 김원철 아저씨에게 어느 정도 일임된 상황.
아무래도 나는 최대한 할머니가 고통 없이 있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김원철 아저씨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연명 치료 쪽으로 가기로 했어야. 일단 목표는 최대한 오래 사시게 하는 쪽으로.”
“흐음….”
고통스러운 삶을 억지로 질질 끄는 연명 치료. 그 괴로운 길을 굳이 선택해야 하는 건지 의아한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김원철 아저씨는 양 손바닥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아, 너무 그렇게 보지 말어. 이건… 이사장님 방침이니까.”
“할머니가요?”
“본인이 최대한 오래 살아있어야 안전핀 역할 하신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니까.”
안전핀 역할.
분명… 그렇긴 하다. 본인의 존재만으로도 가석방된 숙부가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아니, 적어도 그런 마음을 바깥으로 표출하지 못하도록 하실 테니.
“안 그래도, 그 말썽꾸러기 두 사람 한국 불러오는 것도 있고.”
그리고, 이어지는 한서호, 한서후 두 형제의 이야기.
두 사람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 지시한 것은, 사실 할머니의 이름을 빌린 내가 한 일이었으니까.
“아아, 잘하셨습니다.”
“잘한 건지는 모르겄어, 사실.”
고민된다는 듯, 평소 습관처럼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어 나가는 김원철 아저씨.
“아무래도… 괜히 한화기 그 양반한테 자꾸 발톱 하나씩 달아주는 게 아닌가, 그 생각이 들어서리.”
“일부러 달아주는 겁니다. 나중에 언제라도 제 목덜미를 파고들라고요.”
“으응…? 뭔 말이여, 그게?”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해 봤거든요. 할머니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꺼내주실 숙부. 과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는지를.”
회귀 전, 나를 감옥에 10여 년 동안이나 집어넣고 보였던 숙부의 행보.
조각조각 찢어진 탄약그룹. 분명 숙부는 애초에 이 회사를 제대로 경영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책임지고 위기를 극복하는 것보다, 그저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호주머니에 쑤셔 박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가만히 있을 사람은 절대 아니긴 한디… 그래도, 한편으로는 탄약그룹이 요 몇 년 새 엄청나게 덩치가 커졌잖어?”
거기에, 회귀 전보다 다섯 배 이상 커져 있는 탄약그룹.
구겨진 커피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면서, 김원철 아저씨는 내 생각에 자기 의견을 덧붙여 말했다.
“아기코끼리일 때는 어떻게 넘볼 법도 한디, 웬 맘모스가 떡하니 나오니 엄두도 못 내지 않을까 싶고.”
“당연히 엄두도 못 낼 겁니다. 숙부 혼자 탄약그룹을 집어삼킬 깜도 안 되고요. 그러니까 더더욱 부수려고 하겠죠.”
“……?”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부숴서 하나하나 토막 쳐서 말입니다.”
“어어… 잠깐만, 잠깐만. 경영권이고 뭐고… 그룹의 미래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회사를 쪼개 팔 거다?”
“제가 봐온 숙부라면 얼마든지 그럴 겁니다. 그래서… 한서호, 한서후 두 사람을 불러들인 거고요.”
그렇기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두 사촌 형들의 귀환.
바깥에 막 나와 세력을 모으기 시작할 숙부에게, 가장 신뢰 가는 이들은 혈육일 테니까.
“일종의… 랜섬웨어 역할을 하게 만들려고요. 자기가 랜섬웨어인지도 모르는 두 바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