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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20화 (273/300)

220화 Ransomware(4)

끼익, 육중한 철문에 달린 녹슨 경첩이 맞물려 돌아가 내는 괴상한 소리.

안양교도소 후문.

아직 아침이슬조차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시간. 쿰쿰한 양복 차림의 한화기는 넥타이도 매여 있지 않은 목깃을 매만지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거야 원, 개털이 따로 없군.”

개털.

그 누구도 나와 있지 않은, 오로지 혼자뿐인 출소.

환영 인사 하나조차 없는 그 적막함을 곱씹으며, 한화기는 뒤를 돌아 안양교도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촌스러운 글씨로 쓰인 표어를 보고서는 픽, 웃음을 지은 한화기.

그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 그가 맞이할,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하긴, 한서준이 눈치에 그나마 남은 놈들도 움직이기 힘들겠지.”

“참, 나. 그나마 남은 놈들이 어디 제대로 된 놈들이긴 합디까?”

그리고, 그 순간.

한화기의 앞길을 가로막는 차 한 대.

천천히 내려진 운전석 창문 안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김원철…?”

“가시죠. 저녁까지 드라이브나 같이 하시고. 어차피 여긴 버스도 잘 없는 동네여.”

적막 속, 덜덜거리는 엔진음만이 시간이 멈추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김원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한화기. 그는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짧은 물음 하나를 던졌다.

“네놈,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는 무슨. 그런 거 아니요. 다만, 이제 그 뭐시기냐.”

차창에 한쪽 팔을 올려두고는 웃는 낯으로 한화기를 바라보는 김원철.

물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입가의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우리 회장님허구 마귀할멈… 아니지, 이사장님허구 두 분 눈에 눈물 나는 건 못 보거든.”

“고작 머슴 따위가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뭐, 돌아온 탕아만 하겄수? 아무튼, 그래서… 좀 미리 사전에 약을 쳐 둬야겄어요. 자, 이거. 일단 서 계시지 말고, 안에 타서 보셔.”

무심한 듯, 한화기에게 내미는 종이봉투 하나.

운전석 옆자리, 구깃거리는 소리가 날 만큼 서류를 세게 낚아챈 한화기의 이마에 곧바로 푸른색 핏줄 하나가 돋아났다.

“<코코아> 감사에 한서호. 중국 담당 전무에 한서후… 무슨 짓이지?”

“고 밑에 보시면 하나 더 있잖수. 탄약그룹 고문 한화기.”

툭, 툭.

조금씩 차 앞 유리에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잔뜩 먹구름 낀 하늘 아래, 와이퍼 돌아가는 소리만이 긴장감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이사장님 뜻에 따라 허울뿐이라도 핏줄의 대우는 해드릴 테니까, 사고 치지 마시라는 겁니다.”

“김원철, 이놈이…!”

“에헤이, 화내지 마시고. 다음 장.”

당장이라도 죽일 듯, 김원철을 바라보는 한화기.

마지못해 넘긴 다음 장의 내용을 본 한화기는 분노에 차 이를 앙다물 수밖에 없었다.

“남겨두셨던 수족들. 이참에 싹 청소 한 번 했습니다.”

“……!”

탄약 의료원부터 시작해 자잘한 계열사 안에 아직 남아 있던 한화기의 정보원들.

주로 실력이 없거나 행실에 문제가 있는 그들이었기에, 쳐내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리고, 그제야 시동을 켜고 차를 출발하는 김원철.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차 안에서, 그는 룸미러로 한화기를 바라보며 경고를 날렸다.

“나야 뭐 종교는 없기는 헌디, 마태복음인가? 야고보서인가? 뭐 그런 말도 있더만요.”

이 경고가 부디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마음속으로 간곡히 소망하며.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리라.”

점점 거칠게 쏟아져 내리는 겨울비. 진눈깨비로 덮인 길을 밟아나가며, 김원철은 마지막 사족을 덧붙였다.

“곧 가실 이사장님 덕에 다시 얻은 삶이잖수. 괜히 욕심부리다가 코 깨져서 죽지 마시고, 편안하게 쭉쭉 좀 갑시다. 쭉쭉.”

그리고, 그 말에 그 어떤 대답도 않고서, 갈기갈기 찢어진 서류 다발을 아무렇게나 차 안에 내던지는 한화기의 모습.

“차 세워.”

“아이고, 위험해요. 노란 불이여.”

“차 세워!”

끼익, 질척한 도로 위에서 아무렇게나 멈춘 차량.

한화기는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고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얼레? 아, 어디 가요! 한 고문님!”

“어이, 김원철이. 내 충고 하나 하지.”

“뭐요?”

“오늘의 이 시간. 언젠가는 반드시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고.”

당장이라도 죽일 듯, 문 안쪽의 김원철을 응시하는 한화기.

아무렇게나 검은색 장우산을 펼치며,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길을 떠났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자신만의 외길을 향해.

“저녁 병문안 일정은 참석하겠다. 그때 다시 네놈 낯짝을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떠나간 한화기.

그리고, 주홍색 안전등이 켜진 차 안에서,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뱉는 김원철.

이미 한화기의 주사위는 던져진 모양이었다.

“아이고, 문은 좀 똑바로 닫고 가지.”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김원철은 방금 있었던 일을 스스로 복기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

“그나저나… 우리 회장님, 우째.”

그 결론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일종의 전주곡임에 틀림이 없었으리라.

“이거, 당분간 고생 좀 하게 생겼는디 말이여.”

* * * *

“저 왔습니다, 어머니.”

“이리 가까이 오거라. 얼굴 좀 보자꾸나.”

탄약 의료원. VIP 병실 안.

숙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에는, 비록 눈물방울은 맺히지 않았으나, 이제 곧 홀로 남을 자식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많이 야위었구나. 네가 힘든 곳에서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야위었다는 말을 내뱉었지만, 실상 자신의 모습이 훨씬 더 야윈 할머니.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던 할머니는, 뒤에 선 이들에게 힐끔 눈길을 한 번 주고는 잔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쿨럭, 쿨럭. 방 안에 사람이 많으니 답답하구먼.”

정말 남은 생명의 불씨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것일까?

가습기에서 나오는 뿌연 수증기 탓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들에게 할머니가 말을 건네었다.

“서호, 서후, 서희는 잠시 나가 있거라. 다른 사람들도 자리 좀 비워주게. 이렇게 두 사람만.”

떨리는 손가락으로 힘겹게 맨 앞에 선 나와… 숙부를 가리키며.

“여기 두 사람만 빼고 말이야.”

-삐, 삐, 삐, 삐.

오직 의료기기에서 나오는 기계음만이 가득 찬 병실 안.

한숨을 길게 내쉰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후우, 길어야 한 달쯤 남은 것 같구먼. 내 목숨도 그리고… 쿨럭, 쿨럭!”

조금씩 심해지는 잔기침.

의료진을 부르려는 나를 말리며, 할머니는 입가의 피를 옷소매로 닦아내었다.

그리고 이어진, 병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또렷한 말 한마디.

그 말은 숙부를 위한 말이었다.

“파국. 탄약그룹에 불어올 피바람도 딱 한 달쯤 남았겠지. 그렇지 않던?”

“…….”

“분할 게다. 화가 치밀어 올랐겠지. 네 자리라 여긴 곳에서 끌려 나와 밑바닥 나락 끝에 처박혔으니.”

양 주먹을 꽉 쥔 숙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아셨으면서 그러셨습니까.”

“내 알면서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랬다.”

“어머니!”

“그리고 지금, 나는 네가 탄약그룹에 위험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리 불러들였고.”

“……!”

무리가 온 걸까?

할머니의 이마 자락에 흘러내리는 식은땀 줄기.

“서준이 이리 가까이 오너라.”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듯, 할머니가 내게 손짓했다.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하마. 네 숙부가 다시금 저번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할머니….”

“그때는, 그때는….”

떨리는 목소리.

단지 육신의 아픔만이 아닌, 마음의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떨리는 말끝.

내가 아닌, 멍하니 선 숙부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내뱉고 싶지 않은, 그러나 내뱉어야 할 그 말을 꺼내었다.

“잔혹하게 나가도 좋다. 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약속하겠습니다.”

가슴이 미어터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숙부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할머니.

“탄약그룹 고문직은 그대로 가지고 있거라.”

안쓰러움과 불안함.

그 두 개의 엉킨 감정을 간직하며 할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숙부에게 진심 어린 말을 남겼다.

“적어도, 이전 같은 풍족한 삶은 그대로 누릴 수 있을 게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을 터이니… 쿨럭! 쿨럭!”

끓어오르는 피를 토해가며.

“할머니!”

“빨리, 중환자실로! 어서!”

기다릴 새도 없이 들이닥친 의료진. 아마 무리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녹색 비상등이 켜진 중환자실 앞에 선 나와 숙부.

“…….”

“…….”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눈동자.

원래대로라면… 회귀 전 기억을 가진 나였다면, 나는 곧바로 칼을 빼 들어 숙부를 쳤을 터.

하지만.

“잡아주시죠.”

눈가에 아른거리는 할머니의 그림자. 그리고, 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에, 숙부에게 내밀 수밖에 없는 손.

“잡으셔야 합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니까.”

잡아라.

차라리 지금 내 손을 잡고… 이쯤에서 마무리 짓자.

그게 당신에게도, 그리고 당신을 위해 마지막 생명을 끌어다 쓴 할머니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모래성 위의 옥좌에 앉은 것은 편안한지 모르겠군.”

그 어떤 슬픔조차 찾아볼 수 없는 숙부의 얼굴.

오직 냉혈만이 가득 찬, 그 살모사 같은 무표정.

내민 내 손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숙부는 그대로 뒤돌아섰다.

해서는 안 될,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남긴 채로.

“어디 계속 마음 놓고 앉아 있어 보라고. 그 자리, 내가 앉을 자리는 앞으로도 아닐 것 같으니.”

* * * *

-깡!

강남의 모 야구 베팅 클럽.

기계에서 발사된 단단한 야구공이 알루미늄 배트에 맞아 경쾌한 소리를 내며 멀리 뻗어나갔다.

“최 비서. 이게 진짜 말이나 되는 건가? 진짜로?”

“도련님….”

“한서준이 그 버러지 놈이 회장인 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할머니의 그 반응은 또 뭔데!”

그리고, 거친 콧김을 뿜어대며 야구 방망이를 내동댕이치는 한서호.

병원에서 빠져나간 그는, 이곳에 올 때부터 연신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랑 서후는… 아니, 나는! 아예 사람도 아니라는 건가?”

서태후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던 한서호.

적장손, 한씨 집안의 적장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던 그였으나,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했다.

그는 이미 곁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도 그래. 그 모욕을 당하시고… 어떻게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시냐 이 말이야! 분하지도 않으신가!”

“쯧쯧, 어리석은 놈.”

갑작스레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서호.

그의 앞에 선 남자는 바로.

“아버지…?”

“시야가 협소한 건 고치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곧바로 알루미늄 배트를 집어 든 한화기.

그는 공이 나오는 기계를 응시하며 천천히 양손으로 타격 자세를 잡았다.

“멀리 봐야지. 칠 때는 호흡을 가다듬고 타점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깡!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앞을 향하는 야구공.

“정확하게 뻗어 나가는 것이다.”

잔뜩 주눅이 든 한서호에가 다가가, 한화기가 입을 열었다.

“서호 너. 잠시 지방 좀 내려갔다 오너라.”

“예…?”

툭, 떠밀 듯이 내미는 명함 한 장.

“가서 배워라. 옹이구멍 같은 네놈 시야를 넓혀줄, 밑바닥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다소 음침하기까지 한 그 명함에 적힌 것은… 모 저축은행 대표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JL 저축은행 대표이사] 조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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