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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23화 (276/300)

223화 별이 떨어지고(1)

청주여자교도소까지의 먼 길. 기껏 사식까지 사서 들고 갔건만, 나를 본 전직 사이비 교주 박금덕의 얼굴에는 환영 대신 경악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헉! 이, 이, 이… 이단 놈이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이 천벌 받아 마땅한 독사의 자식이여! 헉…!”

그리고, 옆에 선 김원철 아저씨를 보자마자 두 번째로 놀라는 박금덕.

“뭐, 뭐야! 신입 대머리 신도까지…?”

그래도 <주님의 동산> 잠입 작전 과정에서 김원철 아저씨의 얼굴이 기억에 남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 어수룩한 모습이 전부 연기였냐며 이제는 숫제 화를 내기까지 하는 박금덕.

“흐흐흐. 요건 아직 몰랐나 보다야. 나 잠입했던 것까지는.”

“뭐, 모를 수도 있죠. 지금 보니까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데.”

헝클어진 머리칼, 너덜너덜한 손톱, 삐쩍 마른 체구에 움푹 팬 양 볼까지.

아무래도 박금덕은 이곳에서 한계까지 몰린 모양이었다. 뭐, 히나 공주를 납치하고 유대인 두 명의 심장을 뽑아낼 생각까지 했던 사람에게 맞는 벌이긴 했지만.

“거기에 이 안에서 취급도 영 좋지 않아 보이고. 아직도 구타가 있나?”

육안으로 확인한 그녀의 건강 또한 매우 나쁜 상황.

아마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는 것이 분명할 터다. 특히, 아예 바닥까지 추락해 바깥에 비빌 곳조차 없는 박금덕에게는 더더욱.

딱, 딱, 딱. 연신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며 다리를 떠는 그녀.

그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았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사람을 포섭하자는 결단을.

“자, 길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박금덕 씨, 당신도 당신이 만든 종교 안 믿잖습니까? 그냥 돈벌이로만 썼지.”

“그 돈벌이 좀 제대로 해보려던 사람, 송두리째 인생을 조져놓은 놈이 할 말이더냐?”

“그러게 히나 공주는 또 왜 건드려서 이런 사달을… 아, 일단 그건 차치하고.”

펄럭, 김원철 아저씨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나.

1심 판결문이 적힌 그 서류에는 근엄하신 판사님이 최선을 다해 내린, 박금덕이 겪을 지옥의 시간이 적혀 있었다.

“어디 보자. 박금덕 씨. 1심 판결 징역 11년 나오셨네요?”

“크윽…!”

그리고, 판결문 뒷장에 붙은, 항소 신청서.

고등법원에서 다시 한번 봐 달라며, 항소를 신청한 주체는 의외로 박금덕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여죄를 털어달라는 검찰 측의 신청이었지.

“2심이라. 그것도 검찰이 추가 혐의 붙여서 올려치기 하는 거였네요?”

“…….”

제법 그럴싸한 이유에 조금 억지스러운 내용을 더해 만든 항소.

탁자가 흔들릴 정도로 다리를 벌벌 떠는 박금덕. 나는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가 항소 신청서를 건네며 약간의 겁을 주었다.

“최소 15년. 아니, 어쩌면 20년까지도 가시겠네요. 보니까 신에게는 이미 버림받은 것 같은데.”

“이 저주받을 작자가! 어딜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놀릴 만하니까 놀리는 겁니다.”

북, 북.

파열음을 내며 찢어지는 서류 뭉치.

흰 눈이 내리듯 바닥에 흩날리는 종잇조각들을 발끝으로 밀어두고, 나는 텅 빈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당신 인생. 징역 11년으로 끝날지, 15년, 20년으로 끝날지, 내 손에 달려 있거든.”

“뭐라고…?”

“좀 더 착하게 굴면, 가석방까지 감안했을 때 7~8년. 거기에 독방 이감까지 되는 걸, 왜 그리 미련하게 굽니까?”

형기를 줄이는 것. 그리고 같은 죄수들의 괴롭힘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확실한 당근을 쥔 나는 당근을 매단 노끈을 박금덕의 눈앞에서 흔들며, 김원철 아저씨에게 동의를 구했다.

“안 그렇습니까?”

“세상에 못 하는 것은 없지. 특히나 법무부 장관하고도 말 잘 통하는 우리 회장님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뒤이은 숙부의 가석방 이야기와 탄약그룹의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시킨 김원철 아저씨.

손톱이 다 뜯어져 피가 흐르도록, 박금덕은 입 안에 제 손가락을 집어넣고서 연신 중얼거림을 계속해나갔다.

“7년 가석방. 그리고 독방 이감까지….”

“뭐,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겁니다. 물론, 이론을 실제로 만드는 건 박금덕 씨에게 달린 것이지만.”

“내가… 제가, 뭘 하면 되는 건가요?”

결심을 마친 건지, 아예 말투까지 존댓말로 바뀐 박금덕.

나는 서류 가방에 손을 집어넣으며 그런 그녀에게 화답했다.

“간단합니다.”

툭, 탁자 위에 내려놓은 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나주에서 수십 년 사셨으면, 그리고 뒷세계에서 사이비 종교까지 운영하셨으면, 그쪽 동네 돌아가는 사정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최신 정보를 얻을 것이다.

현지에서 토착 세력들과 수십 년을 부대끼며 산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정보를.

나는 그녀의 손에 펜을 꼭 쥐여 주며,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마지막 당부의 말 한마디를 건네었다.

“최근 일까지 다 쓰세요. 조석구라는 호남 쪽 토착 조직폭력배에 대해서 아는 건 전부.”

* * * *

청주여자교도소 인근의 모 한식당.

딸그락, 밥맛이 없는 건지 젓가락을 유기그릇 위에 올려둔 김원철 아저씨.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장난이 아닌디….”

몇 시간 전, 박금덕에게서 들었던 호남 쪽 조직폭력배들의 최신 근황.

그저 단순히 확인 차원에서 접근했던 그것은… 생각보다 거대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난 조석구니 JL 저축은행이니 해도. 그까짓 거 시골 촌 동네 조폭이 졸부 되었구나, 생각했걸랑.”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특정 고등학교 출신 인맥으로 얽히고설킨, 금융권 엘리트들과 조직폭력배의 유착.

아마 조석구가 저축은행 고객들의 돈을 횡령한다 하더라도, 한동안은 잡음이 나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을 정도였으니.

“진짜 제대로 활동을 안 해서 그렇지, 타이밍만 맞게 들어간다면… 탄약그룹,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순환출자 구조를 벗어나야 혀. 그게 안 된다면 지분 보강이라도 더 해야 하고.”

“여유 자금으로 최대한 매집해 보겠습니다. 일단, 그래도 저쪽이 지배 구조까지는 아직 모를 테니까요.”

결국, 관건은 탄약그룹 지배 구조.

저들이 알기 전에… 미리 내 경영권을 확고히 해야 하는 상황.

“한 달 잡고 진행해 봅시다. 저쪽도 움직이려면 제반 준비가 필요할 테니… 어라?”

그리고, 그때.

타이밍도 얄궂게 울려대는 휴대전화.

“서희 누나?”

탄약그룹의 모든 재무 쪽을 총괄하는, <코코아>의 대표이사. 서희 누나였다.

“어, 무슨 일이야?”

골치가 아픈 듯, 평소보다 날카로워진 서희 누나의 목소리.

<코코아> 감사 자리에 들어간 한서호가 아무래도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알았어. 계속 지켜보다가 한서호가 지배 구조에 접근하면 바로 권한을 끊어 버리거나 해야지.”

적절한 지침을 내리는 것으로 종료된 통화.

“무슨 일이여? 한서호가 왜?”

머리 위에 물음표 표식을 띄우고는 궁금증으로 가득 찬 얼굴의 김원철 아저씨.

나는 후식으로 나온 오미자차로 입을 헹구고는 대답했다.

“심어둔 랜섬웨어가 드디어 밥값을 하는 모양입니다. 한 달, 그걸로는 너무 늦을 것 같습니다. 더 빨리 진행해 봅시다.”

* * * *

<코코아> 기밀 정보 관리 센터.

접근하는 정보에 제한 코드가 뜬 화면을 보며, 역정을 내기 시작하는 한서호.

“빌어먹을… 이거 왜 정보 조회가 안 되는 거냐고!”

쾅, 쾅!

여러 차례 비밀번호를 입력해 보았지만, 계속 거부되는 로그인.

허탈함에 눈을 질끈 감은 그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얼마 전 JL 저축은행에서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1조짜리 작전이니만큼, 우리 한서호 감사님께서 신경을 이빠이로다가 쓰셔야겄어잉.

그때, 영상통화 화면 너머로 피 묻은 칼을 들이밀며 한서호에게 웃음 짓던 조석구.

-최대한 후딱 찾아가 가지고 오쇼. 탄약그룹 지배 구조 와꾸가 우째 생겨 먹었는지를. 발가락 잘리믄 똑바로 걷지도 못햐.

그 섬찟한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깊게 박힌 모양이었다. 발가락에 서늘함을 느낀 한서호.

조급한 마음에 화를 터트리며, 그는 연신 분통을 터트렸다.

“<코코아> 감사 딱지 달아주겠다며! 그럼 비밀 회계장부에도 접근할 수 있어야지!”

“지금 뭐 하는 거죠? 한서호 감사님?”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한 사람.

“한서희, 너….”

“회사에서는 상호 존대. 잊으셨습니까?”

한서희였다.

“후우, 한서희… 대표님.”

“그래도 남매인데, 여기서 기 싸움하자는 게 아니고요. 왜 감사님께서 지금 기밀 문건을 열람하시려는 거죠?”

“아, 그 뭐냐. 재무구조 개선 건으로 내 업적 좀 쌓으려고 그래요.”

적당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한서호.

그는 되지도 않는 연기까지 해가며, 자신과 척진 여동생에게 연신 변명을 늘어놓았다.

“안 그래도 위에서 후 불면 다시 나이지리아로 쫓겨날 팔자인데, 뭐라도 좀 해 보는 거지! 괜히 사람 억울하게 말이야….”

“일단 알겠습니다. 마저 일 보세요.”

한서호의 생각과는 달리, 한서희는 딱히 이번 일에 대해 트집을 잡거나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저 뒤돌아선 채, 들리지 않게 한 마디 안타까운 말을 내뱉었을 뿐.

“병신 같은 큰오빠.”

저벅저벅, 긴 복도를 걸어가며 표정을 찌푸리는 한서희.

“그냥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나? 그릇도 작은 사람이?”

이미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훤히 보이는 그녀.

그저 이 모든 판을 설계한, 제 사촌 동생의 손에 놀아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오빠와 아버지 모두.

“한서준이가 지금 위에서 다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어…?”

정해진 보고까지 마무리하고 본인의 집무실로 돌아간 한서희.

무언가 살짝… 불길한 감정이 그녀의 등줄기를 따라 올라와 머리 꼭대기까지 닿은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불길한 문자 한 통.

“탄약 의료원에서…?”

무채색의 흑백 화면 위에 적힌 문자 메시지 한 통.

그 무미건조한 문자 메시지는… 앞으로 전개될, 탄약그룹을 둘러싼 비극의 막이 올랐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4월 2일, 15시 40분. 서명희 이사장님께서 작고하셨습니다. 가족분들께서는 급히 내원하시어 장례 절차를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 * * *

서태후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생명을 모조리 소진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감긴 눈을 뜨고는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봐, 간호사.”

“이사장님, 산소호흡기가…!”

“소란 떨 것 없다. 종이허구 펜 하나만 가지고 오지.”

거추장스러운 산소호흡기마저 떼어버린 서태후.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했던가. 병마와 싸운 이래로, 그녀는 가장 총기가 넘치는 눈으로 시곗바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카운트다운을 세는 것처럼.

“허어, 이러려고 저승사자 놈이 잠시 말미를 준 모양이로구먼.”

어느새 준비된 펜과 종이.

떨리는 손으로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쓰는 서태후의 눈에 이슬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부디, 부디… 어리석은 짓으로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 없기를….”

마지막 유언장.

다른 이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둘째 아들 한화기만을 위한 유언장.

지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현금과 부동산을 모두 그에게 남기겠다는 유언을 남기는 서태후.

그녀는 사실 알고 있었다.

앞으로 그 못난 둘째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도.

그렇기에… 티끌만큼 남은, 앙상한 생명력을 모조리 써버리더라도, 막아야만 하는 미래.

“이 어미에게 서운했던 감정이 있다면, 이런 것으로나마 다 날려 버리고… 쿨럭! 쿨럭!”

“이사장님!”

피를 토해내면서까지 유언장을 모두 작성한 그녀.

입가에 묻은 핏물을 엄지손가락에 묻혀, 유언장 위에 지장을 찍은 서태후가 쓰러지고 있었다.

탄약그룹의 안주인이, 한 시대의 거인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어머니가… 쓰러지고 있었다.

“분에 넘치는 과욕으로… 마지막 기회를… 날리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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