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별이 떨어지고(2)
할머니의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북한산 자락 아래, 뿌옇게 낀 안개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 인근의 절 혜연사.
서글픈 목탁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망자가 된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승려들은 쉬지도 않고 연신 천수경을 낭독하고 있었다.
-자비로운 관세음께 절하옵나니, 크신 원력 원만상호 갖추시옵고, 천손으로 중생들을 거두소서.
불상 아래 놓인, 할머니의 영정.
영정사진에서조차 환하게 웃지 못한 할머니. 늘 위기였던 그룹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던, 서태후라는 별칭을 가진 거인은 그렇게 향과 함께 서서히 세상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모든 번뇌 씻어 내고 고해를 건너, 제가 이제 지송하고 귀의하오니, 온갖 소원 마음 따라 이뤄지리라.
낭독되는 천수경 구절에 담긴 소원이라는 단어.
숙부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보듯, 할머니는 끝내 소원을 빌고 있었다.
부디 어리석은 짓으로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 없기를.
서운했던 감정이 있다면, 이런 것으로나마 다 날려 버리기를.
그리고… 분에 넘치는 과욕으로 마지막 기회를 날리지 않기를.
그러나, 애처롭게도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 채로 조문객을 맞고 있는 숙부의 눈동자에서는, 아직까지 이루지 못할 욕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이글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착잡한 마음을 가슴 깊숙이 담아두고는 당장 여기 찾아온 빈객들을 맞기로 마음먹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정책실장님.”
“마땅히 와야지요. 각하께서 직접 오시기 어려운 점, 부디 회장님께서 이해 바랍니다.”
좀처럼 청와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대통령을 대신해 온 박동희 정책실장.
아무래도 선거를 여덟 달 앞둔 시기이니만큼, 재벌가 장례식에 오기가 영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물론 화환만큼은 누구보다 웅장한 것으로 골라 보내주었지만.
“아무렴요. 민감한 시기이니만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거, 참… 제가 다 죄송하네요. 여하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좋은 곳.
글쎄… 잘 모르겠다. 과연 이승을 떠나신 할머니가 이 상황을 내려다보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는지.
그런 마음을 담아서, 나는 박동희 정책실장에게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흘깃,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긴 나.
헐거운 상 타이를 맨 숙부의 모습.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쉰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던 말을 연이어 나갔다.
“그렇게까지… 편안하시리라고는 생각되지가 않습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애꿎은 박동희 정책실장은 이런 상황이 조금 민망했는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크흠, 저는 그럼 이만.”
어느새 새벽 시간이 되어 잠시 한산해진 빈소.
몇몇 면식도 없는 뜨내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문객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지금.
옷매무시를 바로 한 나는, 곧바로 숙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조금 굳은 표정으로, 응시하는 눈빛을 일절 피하지 않은 채로.
“유언장은 건네받으셨습니까?”
유언장.
할머니가 피를 토해가며 숙부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의 말.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좋겠건만, 숙부는 그저 얼굴에 조소를 띄우고는 향에 불을 붙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상속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께서도 내게 최소한의 죄책감은 가지셨던 모양이더군.”
끄트머리에서 타오르는 연기.
유독 독한 잿빛 연기가 영정을 가리고, 곧바로 숙부의 불쾌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다가왔다.
“물론… 응당 가졌어야 할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결국,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 네놈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피할 수 없는 파멸이라는 운명.
안타까웠다.
복수심과 욕망에 눈이 멀어 이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숙부가.
그리고, 끝끝내 숙부의 마음을 돌리려 그토록 애썼던 할머니가.
한숨을 길게 내쉰 나는, 더는 적의조차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숙부에게 타이르듯 말을 건넸다.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말씀을 삼가셨으면 합니다. 영정 앞입니다.”
“하! 이미 가신 분이다. 남은 사람들 일에 괜히 명분 삼아 끼워 넣지 않았음 하는군.”
가신 분.
그리고, 남은 사람.
그래. 결국, 남은 사람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그 해결 과정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든… 결국, 남은 내가 짊어질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더.”
그리고,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리는 걸걸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서 영정 앞에 다가간 그 험상궂은 사내는, 절을 마치고는 곧바로 숙부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우째… 좀 진전이 있어 보여요잉? 한 고문님요.”
“목소리를 낮추어라. 보는 이가 많다.”
“어따, 이만치 사이즈 큰 장례식은 시장통이랑 다를 바 없어라.”
그러고는, 옆에 있던 한서호를 손짓으로 부르는 그 남자.
“어, 그때 보고 또 보는 것이당가. 으메, 아주 큰아들허고 붕어빵이여라.”
그 조직폭력배 같은 인상의 남자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한서호.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숙부.
무언가…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아주 빠르게.
“숙부와 한서호… 둘 다 알고 있고 만나 봤다고?”
그리고, 그 흐름을 보자, 곧바로 맞물려 떨어지는 내 머릿속의 거대한 퍼즐 판 하나.
하나씩 보이는 편린들이 모이자… 그 작은 조각들은 한 가지 사실을 직감적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고, 정신없어라. 회장님아, 외교부 장관님 오셨걸랑. 얼렁 조문 받으러 가자고.”
“아, 가야지요. 가긴 가는데 말입니다.”
마침 옆자리에 온 김원철 아저씨.
나는 천장 여기저기로 눈을 돌리며 아저씨에게 질문했다.
“여기 절. CCTV 달려 있지요?”
“그렇겠지? 나름 평창동 재벌가 사모님들 오시는 절인디, 은근 설비는 잘하고 있으니까.”
“장례식 사흘 동안 녹화된 CCTV 영상. 주지승에게 말해서 미리 따 놓으세요.”
“영상? 하긴 하는디, 어째서…?”
“숙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양입니다.”
그새 향을 여러 개 꽂았는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스멀스멀 다가오는 그 연기는, 마치 전운(戰雲)처럼 조금씩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곧바로 골육상쟁의 시작이 있을 것이라고.
“영상에서 숙부와 인사하는 사람 중, 못 보던 이들이 있으면 체크해 두세요. 특히… 조직폭력배 느낌이 나는 저기 저 사람처럼.”
* * * *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 감사님.”
장례식이 끝난 후,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JL 저축은행을 다시 찾은 한서호.
그는 자신을 칭찬하는 조한철 대표에게 괜한 겸양을 떨며 대답했다.
“아직 핵심 정보에 완전히 접근한 건 아니니, 칭찬은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만.”
“아니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 감사님이 주신 정보의 가치가 크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동안 <코코아>의 감사로 있으면서, 내부 정보를 최대한 빼돌리는 데에 집중한 한서호.
그 정보가 조한철 측에 제법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연신 제 아버지인 조석구를 언급할 정도였으니까.
“아버지는 그냥 움직이는 분이 아닙니다. 자식인 저조차도… 무섭고 소름 끼치는 사람입니다.”
“…이해합니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무언가 비슷한 심정을 공감하는 한서호.
조석구만큼이나 무섭고 소름 끼치는 한화기를 아버지로 둔 한서호였다.
지금, 한서호 자신이 여기 있는 이유 또한 한화기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내가 움직일 수는 없다. 한서준이 그놈이, 김원철을 통해 내게 사람을 여럿 붙여 두었더군.’
‘아아… 어쩐지.’
‘그러니, 서호 네가 움직여야 한다. 내가 거친 언사로 놈들의 이목을 끄는 동안, 너는 JL 저축은행과 실무를 얼추 마무리 짓도록.’
그리고, 지금.
아버지들의 꼭두각시들은 맡은 바 임무를 거의 끝자락까지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서류를 들여다보며, 한서호가 조한철에게 물었다.
“당장 투입 가능하신 금액은 2,000억 원 정도라고 하셨죠?”
“아, 예. 나머지 6,500억 원은 고객 돈에서 빼 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 JL 저축은행 외에도 주괘율인가 하는 사람 쪽 자금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아, 안 그래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삼촌, 준비되셨나요?”
탁자 위, 마이크 폰에 대고 소리치는 조한철.
곧바로 걸걸한 목소리가 거친 사투리와 함께 돌아왔다.
-삼촌이 아이고! 여서는 박 이사님!
흠칫 놀라는 한서호.
이 목소리는, 분명 장례식에서 만났던 그 남자의 것이었으니까.
한화기 앞에서 국화꽃을 들고는, 일 이야기를 하던 바로 그 남자.
“아… 박 이사님. 그, 오신다는 일정파 분은 어떻게 되셨는지…?”
-안 그라도, 요 아래층서 있응께, 말씀 나누셨으면 후딱 데려가 일 보소! 즈 주인 주괘율이 닮아서 아주 성질머리 하나는 후레야들같은 놈이여.
* * * *
주괘율의 사람이라는 이름 없는 남자. 온몸을 문신으로 휘감은 그는 일반적인 조폭 이상의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서호와 조한철이 경호 인력을 대동하고 있음에도, 잔뜩 긴장이 될 정도로.
“내 살면서 보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트럭 운전석에 앉아 거칠게 페달을 밟아대는 그 남자.
그는 한서호와 조한철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는, 제 할 말만 연신 이어나갈 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얼굴. 천애고아로 태어난 놈이라 그런지 그게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아, 예….”
“그 얼굴. 비록 끝끝내 본 적은 없었지만, 대신 부모님 노릇을 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끼익, 시골길 한복판에서 멈춘 트럭.
“주괘율 회장님이시고.”
어두운 밤, 시골길 한복판.
트럭에서 내린 세 사람. 그들은 인적이 드문 산길의 창고를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강철 자물쇠로 칭칭 감긴 창고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늘밭 아래, 1,500억 원이라는 거액이 잠들어 있는 지하로.
“그리고. 이게 우리 주 회장님이 남기신 마지막 씨앗돈이요.”
“허어…!”
빳빳한 현찰 다발이 가득 찬 지하 창고 안.
지폐 끄트머리를 손톱으로 긁으며, 이름 없는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믿고 맡기라 하시니, 내 십 원 한 장 건들지 않고 그대로 드리겠소만.”
“……?”
“실패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시오. 절대로.”
살기가 가득 담긴 눈알.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서 피식 웃음 짓는 한서호.
제 주인의 복수를 꿈꾸는 이 남자에게 드디어 공통점을 찾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현찰 다발을 상자에 실어 나르며, 한서호는 그 남자의 협박 같은 부탁에 대답을 주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모든 계획은 이렇게 완벽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