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25화 (278/300)

225화 별이 떨어지고(3)

장례식이 끝나고, 어느덧 5월로 접어든 하루.

벚꽃이 진 여름의 초입. 할머니의 49재는 장례식이 있었던 혜연사에서 똑같이 진행되었다.

다만, 그토록 북적거리던 장례식 때와는 달리, 참석자는 오로지 나와 김원철 아저씨 두 사람뿐이었지만.

“나무아미타불. 이제는 속세를 떠나신 서명희 이사장님께서 부디 성불하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이따금씩 목탁 소리에 맞추어 울리는 스님의 목소리.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처마 아래에 선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뜻하신 대로 최대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제 목에 칼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과할 만큼 시간을 주었고요.”

우르릉, 거친 소리를 내며 흐린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

혹시 할머니께서 대답이라도 하신 걸까 싶은 마음에, 나는 떨어지는 빗물에 손을 뻗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이어나갔다.

“가시는 길, 마지막으로 쓰셨던 그 유언장. 저도 보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숙부가 아닌 제게 쓰신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손에 있던 모든 것을 숙부에게 쥐여준 할머니.

비록 탄약그룹 경영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재산이었지만, 그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디 자신을 보아서라도 헛된 짓을 벌이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의미였으니까.

-쏴아아아.

이제는 폭우로 변한, 부스스 내리던 빗방울. 처마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구두코가 조금씩 적셔졌음에도, 나는 실내로 들어가지 않았다.

적어도 하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실 할머니께, 부득이한 심정으로 양해를 구해야 했기에.

“죄송합니다. 뜻하신 바대로는 일이 흘러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번쩍, 어두운 산자락에 섬광이 인 번개 한 줄기.

눈을 감고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조용해져 가는 바람 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이 모습을 감추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회장님아….”

뒤돌아선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갈 뿐.

설령 그것이 골육상쟁의 비극을 야기하는 것이 되더라도.

“본사로 이동합시다. 사사로운 감정은 배제하고 계획했던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 * * *

“우리 회장님 촉이 맞았어.”

본사로 이동하던 중, 조금 가라앉은 내 기분을 살피고는 말을 꺼낸 김원철 아저씨.

태블릿 PC 한 대를 꺼내더니, 곧바로 화면을 켠 아저씨는 내게 영상 속 인물 하나를 확대해 보여주며 말했다.

“그때 그 한화기하고 장례식에서 이야기하던 무섭게 생긴 양반. JL 저축은행 쪽 사람이더라고.”

박박 깎은 머리에 온몸을 휘감은 용 문신.

기억났다. 그때, 숙부와 걸쭉한 사투리로 이야기하던 그 사람.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자 나타나는, 간략한 인적 정보.

중학교 중퇴, 전과 15범, 저축은행 같은 금융업 임원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이 사람.

“박 이사라. 이 사람도 조폭 출신입니까?”

“그런 셈이지. 그 회사 사람들이 죄다 그 모양 그 꼴이여. 물론 금융 엘리트들도 상당수 있긴 하지만. 여기 보면.”

뒤로가기를 눌러 다시 보이는 CCTV 영상.

몇 군데 표시해 둔 곳을 누르자, 숙부와 한서호를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까 전, 조폭 출신 인물과는 전혀 상반된, 딱 봐도 먹물깨나 들었을 법한 사람들이.

“안경잽이들은 죄다 금융 쪽 사람들이여. 그, 제현고등학교였나? 그 동네 수재들 모인 학연.”

제현고등학교.

분명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사이비 교주 박금덕이 말했던 학교.

호남 쪽 최고 수재들이 모인다는 그 학교는, 주로 금융권에 상당한 학맥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밝은 쪽과 어두운 쪽, 양쪽 모두에서.

‘이쪽 동네 조폭들이 검은돈으로 저축은행 인수한 건,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

그날, 허겁지겁 내가 가지고 온 사식을 입에 욱여넣으며 이야기하던 박금덕.

‘시간문제였을 뿐이야. 여기 동네는 산업 자본이 없으니, 엘리트들이 갈 곳은 금융 쪽 말고는 없었고. 거기에 한 다리 건너 조폭이 있다면.’

한참을 떠들던 그녀는 폐쇄된 공간이었지만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천장과 벽, 심지어 탁자 옆까지, 도청 장치는 일절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내게 속삭이듯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쪽에서 나오는 검은돈… 금융 엘리트들이 마사지만 좀 하고 나니, 순식간에 하얗게 세탁되어 나오는걸.’

얼추 잡혀가는 윤곽.

내가 박금덕이 말한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김원철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다음 보고를 이어나갔다.

랜섬웨어로 심어둔 한서호에 대한 보고를.

“한서호가 JL 저축은행 조한철 대표하고 마늘밭 간 보고도 들어왔어야.”

“주괘율 쪽 자금까지 손에 넣었다, 이거군요.”

“그렇게 된 셈이지. 이제… 어떻게 하실라고?”

끼익,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길에 멈춘 차량.

회장 집무실로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말을 아꼈다.

“차근차근 합시다. 하나씩.”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다트판에 꽂힌 화살을 집어 든 나.

툭, 붉은색 정중앙 동그라미를 향해 손목을 휘감아 던진 화살 하나.

쇠로 된 앞쪽 화살촉은 흐름을 타고 날아가 곧바로 다트판 위에 타격음을 내며 거세게 박혔다.

한서호의 행적이 정리된, JL 저축은행의 로고가 인쇄된 종잇조각을 꿰뚫으며.

“한서호 라인부터 정리합시다. 여기 JL 저축은행.”

화살촉에 구멍 난 종잇조각을 손으로 잡아 찢는 나.

단단히 고정된 A4용지 크기의 종이는 곧바로 북, 소리를 내며 3분의 1가량의 크기로 찢겨나갔다.

앞으로 전개될, 이들의 운명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객 돈으로 장난질만 못 치게 만들어도, 1조 원이 3,500억 원으로 확 줄어들 테니까요.”

“음, 그게 제일 좋긴 한디, 공권력이 나서기가 좀 애매하잖어.”

권력기관, 특히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 김원철 아저씨.

나 또한 기억하고 있다. 장례식 때 박동희 정책실장의 태도로 보아서, 이번 일은 오로지 나 혼자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대범했다.

“공권력이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야죠.”

“응…?”

종잇조각 위, 너덜너덜해진 JL 저축은행의 로고.

[고객을 위한 대출, JL이 함께합니다.]라고 적힌 문구 옆에는 환한 얼굴의 광고 모델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의미심장한 웃음을 입가에 건 나처럼.

“탄약그룹도 한번 받아봅시다. 그 탄탄하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저축은행 대출을.”

* * * *

강남의 모 고급 일식집.

은은하게 들려오는 샤미센 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한화기.

살짝 얼굴이 붉어질 만큼, 벌써 초저녁부터 두어 병의 술을 마신 그는 안주머니에 잡히는 종잇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이깟 푼돈 따위… 가시는 길까지 나를 농락하시는 것이었나?”

푼돈.

서태후가 남긴 마지막 유산.

피를 토해가며 남긴 그 마음을, 한화기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왜곡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먹고 떨어져라. 그런 것이라면… 난 아예 제대로 된 혈육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모양이로군.”

와락, 파열음을 내며 거칠게 구겨지는 유언장.

종잇조각을 쥔 한화기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서운함과 열등감, 그리고 배신감이라는 감정의 해일에 의해서.

“첩년이 낳아 온 반쪽짜리 손자가 배 아파 낳은 아들보다 우선한다라.”

길게 내뿜는 잿빛 담배연기.

드넓은 방안을 전부 한탄 섞인 연기로 채울 때쯤, 누군가가 바깥의 나무 문을 조심스레 두들겼다.

-똑똑!

장남, 한서호였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래. 일 처리는?”

“깔아둔 판은 전부 준비되었습니다.”

환한 미소를 입에 걸고는 제 아버지 앞에 앉은 한서호.

들뜬 표정의 그는 제 업적이라 생각한 것을 하나씩 자랑하듯 풀어놓았다.

“한서준 그 어리석은 놈이 방심한 게 컸습니다. <코코아> 감사가 편법으로 기밀 장부를 볼 수 있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독 감정적으로 손을 뻗는 한화기.

서태후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는 평소보다 한층 더 따뜻한 태도로 제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수고 많았다. 역시 큰아들이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솟아오르는 감정에 연신 장남의 어깨를 꾹꾹 눌러 잡는 한화기.

“확실히 네가 있어서 든든하구나. 저 거칠고 천한 것들과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깟 조직폭력배와 한배를 타는 것 따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장남이다. 고작 서너 달 만에 이런 성과라니.”

그리고, 이와 반대로 자랑스럽지 못한 또 하나의 아들.

차남, 한서후를 머릿속에 떠올린 한화기는 술잔을 비우고는 쯧, 소리와 함께 거칠게 혀를 찼다.

“서후 이 무능한 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건만.”

“서후 그 녀석은 제가 잘 타이를 터이니, 아버지께서는 그런 자잘한 일보다 큰일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구나.”

나름 제 아비의 비위를 잘 맞추는 한서호.

겸사겸사 이번 일이 끝나면, 중국에 나간 동생의 몫을 자신이 가져갈 생각인 그는, 이 쏟아지는 총애를 어떻게든 끝까지 이어나가야만 했다.

“제가 끝까지 아버지 곁에 있을 터니, 너무 갑갑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고맙구나. 한 잔 받거라.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핏줄끼리 술잔을 기울여 보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이어지는 술자리.

잔을 가득 따른 청주가 가장자리에 쏟아지지 않을 만큼 넘실거리는 그때, 한서호의 재킷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괜찮다. 급한 일이면 받아도 된다.”

“아… 예.”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한서호.

부하 직원이었다면 일단 끊은 다음 호되게 욕이나 한 사발 날리려던 그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JL 저축은행의 대표이자 조석구의 하나뿐인 아들, 조한철 대표였다.

“네, 조 대표님. 이 저녁에 무슨 일이십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한 감사님!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러대는 조한철 대표.

이제껏 보았던, 조직폭력배의 아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던 유약한 모습과는 달리 격노에 찬 모습.

한서호가 무어라 대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전화기 너머의 조한철은 마구잡이로 분노를 토해내었다.

-탄약그룹 재무 정보는 다 꿰고 계신다면서요! 갑자기 이런 변수가 생기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탄약그룹의 저축은행 전체에 대한 대규모 대출 신청! 지금 그것 때문에 금융감독원에서 특별 감사가 왔습니다! 모든 저축은행 전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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