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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27화 (280/300)

227화 쩐주(2)

4년 전부터 한국 입국 전까지.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나이지리아. 그곳에 유배되었던 한서후가 필요한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히이이이익!’

정글 한복판에 있는 광산, 흙 묻은 손으로 야외에서 먹는 점심 식사 도중, 떼거리로 들이닥친 독충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뭐, 뭐야! 왜 밥 먹는데 말벌 떼가 와서 겸상하는 건데!’

‘아아, 살인 꿀벌이구먼유. 훠이, 훠이!’

밥을 먹던 도중, 중금속 녹인 흙탕물에 머리를 처박고 부들부들 떠는 한서후.

인부들의 방충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시뻘건 녹물로 머리를 적신 그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아이고, 괜찮어유, 괜찮어. 아무도 안 물렸슈.’

‘아니, 살인 꿀벌이라며! 쏘이면 콱 뒈지는 거 아니냐고!’

‘쏘이면 죽기야 죽겄쥬, 그런디.’

요란한 날갯짓 소리를 내며, 저 먼 곳으로 물러가는 살인 꿀벌.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지 광산 직원이 한서후에게 말했다.

‘지는 여기서 일허는 것이 더 괴로운 걸 어쩌겠어유.’

‘…….’

탄약그룹 내에서 무언가 하자 있는 자들이 유배하러 오듯 쫓겨나는 이곳, 나이지리아.

카드빚, 파산, 이혼이라는 트리플 크라운.

스스로 인생 실패자라며 자조하던 광산 직원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차라리 밥 먹다가 쏘여서 죽어버리면, 돈 나오지, 편해지지… 나이지리아가 그런 동네여유.’

“옘병할… 어어?”

그리고, 그런 감상에 젖을 여유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또다시 몰려오는 재앙의 파도.

어설픈 대장간에서 만든 자동소총 한 자루씩을 쥐고는, 광산 사무소 쪽을 향해 뛰어오는 시커먼 사내들.

‘뭐, 뭐야? 저 깜둥이 놈들은 왜 총을 들고 오는 건데?’

‘어이구야, 또 시작이네.’

‘또 시작? 그게 무슨… 으아아아!’

-탕탕! 탕! 타타타탕!

시커먼 사내들이 든 시커먼 소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

단발 조정은 아예 선택사항조차 아니었던 건지, 아예 그 흑인들은 총알 따위 아낌없이 연발로 갈겨대고 있었다.

‘미친! 왜 총질인데!’

‘저기 보시믄 알어유.’

그리고, 반대편.

똑같이 소총으로 중무장한 동양인들.

‘衣冠禽兽, 黑鬼!’

탄약그룹에서 보낸 한국 용병들, 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험악한 문신을 한 동양인 집단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국어와는 다른 언어였다.

‘중국 말…? 뭐라는 거야?’

‘대충 사람 껍데기 쓴, 짐승 같은 깜둥이들이라 하네유.’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월례 행사여유. 짜장 애들하고 동네 군벌하고 투닥거리는 거. 어쩐지 이번 달은 곱게 넘어간다 싶었는디.’

컨테이너 사무소 뒤에 엎드려 오드오들 몸을 떨고 있는 한서후.

‘Die! Fucking yellow monkey!’

멎지 않는 총소리에 한참 격해진 교전. 나이지리아 흑인 군벌 쪽에서도 고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까만 원숭이나 노란 원숭이나, 즈그들끼리 다 원숭이라네유.’

‘그건 나도 알아들어!’

‘아아, 빡대가리인 줄 알았슈. 어이쿠야! 도련님, 이리로 오슈. 얼른.’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건지 한서후의 손목을 잡고서 엉금엉금 반대쪽으로 기어가는 현지 광산 직원.

‘옘병… 아까는 죽네 사네 말벌에 쏘이네 해놓고서, 저 살겠다고 도망가는 것 보소.’

‘어쩌겄슈, 죽고 싶어도 살아야지.’

멀찍이 떨어진 바위 뒤에 숨어서, 광산 직원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채로 숨을 헐떡거렸다.

‘암만 삶이 지옥 같아도 버티면 희망은 있다, 뭐 그런 말도 있잖어유.’

‘버티면… 희망이 있다고?’

매캐한 화약 냄새 때문이었을까?

참 얄궂게도, 그 말 한마디에 뭔가 단단히 자극을 받은 모양인 한서후.

그날 밤, 한서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곳 나이지리아에서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느라.

* * * *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간단했다.

‘짱깨, 전진 앞으로.’

‘돌으셨슈? 도련님 혹시 돌대가리유?’

어제, 광산에 자동소총을 들고 나타나, 현지 군벌 세력과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인 중국인들.

어찌 되었든, 그들과 무조건 친분을 쌓기로.

‘전진 앞으로! 아, 술하고 안주 가지고 온 놈 머리통에 총알구멍 내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특유의 넉살 때문인지, 생각보다 한서후를 좋게 본 중국인 측의 우두머리.

‘하! 네놈도 유배 온 거냐? 이거야 원, 나이지리아가 무슨 죄인 집합소도 아니고.’

거기에, 본래 몸담은 조직에서 숙청되어 쫓겨났다는 동질감은 그들을 서로 가깝게 만드는 데에 특효약이었다.

‘기가 막히는군. 이게 무슨 술이라고?’

‘그냥 공업용 알코올에 현지 바나나주스 탄 겁니다. 한국 과일소주나 이거나 비슷비슷하더라고요.’

‘크흐, 쓰레기 술인 건 아는데, 은근 입에 맞는단 말이지.’

그렇게 흘러간 4년이라는 시간.

매주 금요일마다 이어졌던 술자리는, 어느새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자네도 곧 유배가 풀린다지? 이거 타이밍도 참 얄궂군. 나도 다음 달쯤 이 거지 같은 땅을 뜬다.’

‘대인께서도 본국으로 가십니까?’

‘상하이로. 제임스 왕 이사가 조직을 얼추 재정비했다는 모양이야.’

술병이 굴러다니는 마작판 위, 맞잡은 두 사람의 손.

그간 정이 돈독히 든 모양이었다.

눈가에 이슬방울까지 대롱대롱 매달고는, 중국인 우두머리는 한서후를 격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군. 좀 더 큰 먹잇감을 나누어 먹으며 말이야.’

‘물론입니다, 왕 대인.’

그렇게, 나이지리아를 떠나 한국에 돌아온 한서후.

저보다 훨씬 어린, 제 아버지와 형을 감옥에 집어넣었던 사촌 동생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기회다!’

기회.

탄약그룹을 손에 넣을, 아니, 적어도 갈기갈기 찢어 다리 한 짝은 제 뱃속으로 들어가게 할 법한 기회.

‘무슨 조폭 놈들이 이렇게 돈이 많아! 1조짜리 사이즈면 상하이에서 굳이 자금을 끌어올 명분도 없는데!’

중간에 주괘율과 조석구라는, 조폭 세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던 그 순간에도, 한서후는 포기하지 않았다.

철없는 망나니의 모습에서, 때를 기다리며 사냥감을 노리는 젊은 맹수의 모습으로. 그는 그저 풀숲에 몸을 숨긴 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정글의 바람이 바뀌는 바로 그 순간.

‘서호 형이…? 하! 그 책상물림만 하던 병신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흐흐흐.’

한서후는 숨겨두었던 발톱을 거리낌 없이 펼쳐 보였다.

곤경에 빠진 제 아버지, 한화기 앞에서.

“그 힘 세고 돈도 많은 쩐주는 바로….”

모자란 6,500억 원.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소요 자금을 대줄 초대형 쩐주.

당장 목숨줄이 위험에 처한 한화기가 받지 않을 수 없는, 탄탄한 동아줄이 될 쩐주는.

“중국, <상하이 캐피탈> 쪽과 이야기가 된 상태입니다.”

* * * *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서후를 바라보는 한화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는 영상 통화가 연결되었던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는 나지막이 의자에 앉아 읊조렸다.

“<상하이 캐피탈>… 서후 네가 어떻게 그들과 연줄이?”

<상하이 캐피탈>.

분명, 한화기에게 있어 한 번쯤 생각해본 카드. 그러나, 그들과 연결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탄약그룹 승계 전쟁 당시 실패로 인해 거부당한 연락.

그리고, 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 정계의 대격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아니, 불가능한 것이었다.

폐급이라 여겼던 제 둘째 아들놈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버지. 저 나이지리아에 허투루 있다가 온 것 아닙니다. 정글부터 사막까지. 고생, 고생, 쌩고생을 다 해가면서 깨달았습니다.”

철부지 애새끼에서 제법 사내 태가 나 보이는 한서후.

어쩌면 제 형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한화기가 앞으로 마주할 전장의 오른편에 둘 기사로는.

“이대로라면, 이름 모를 벌레처럼 늪지 밑바닥이나 기어 다니다가 찍소리도 못하고 죽겠다는 것을.”

그렇기에, 조금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턱끝을 추켜올리는 한화기.

“말해봐라.”

“거기, 나이지리아에는 짱깨 놈들이 오지게도 많더군요.”

찻잔 속 뜨거웠던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그간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한서후.

창밖 너머 하늘에 걸려있던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이 되어서야, 그의 4년간의 간략한 일대기는 마지막 페이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아버지.”

“해서, <상하이 캐피탈>의 제임스 왕 이사가 다시 영향력을 회복했다?”

“그런 셈이지요. 거기에 연락할 라인까지 확보했으니, 기회 아니겠습니까?”

기회.

이대로라면 자칫 가석방된 조폭들에게 휘둘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쩐주이자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존재.

“제임스 왕, 제임스 왕이라….”

“그래서 말입니다. 기회를 주시면, 제가 언제 한번 중국에 갔다 올까 합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옆에 선 작은아들은, 이제는 쓸모없어진 큰아들의 존재를 대신해, 한화기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마치 제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적어도, 저 대국의 큰 자본을 끼고 있다면, 광복절 특사로 나온 깡패 놈들이 아버지께 함부로 칼날을 들이밀지는 못할 테니까요.”

* * * *

“한숨 돌렸네? 서호 오빠도 아예 폐인이 되었고.”

탄약그룹 회장 집무실.

딸그락,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 짓는 서희 누나.

누나는 탁자 위에 놓인 신문 기사를 가리키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금감원 조사 끝났고, 이제 검찰 불려 다닌다던데? JL 저축은행 조한철 대표하고 두 손 꼭 잡고서,”

“뭐, 애초에 한서호 자체가 깜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긴, 서호 오빠는 좀 뭐랄까, 샌님 스타일? 그냥 관리자 이상으로 뭘 못하는 사람이지. 오히려.”

“오히려?”

“서후 오빠가 좀 크게 크게 일 벌이는 스타일이고. 좀 막무가내에 무식하긴 해도.”

“그럴 거 같지. 일단 나이지리아에서 살아온 것만 생각해도 그렇고.”

한서후.

나이지리아 이후 사람이 한층 성숙해진 듯한 모습.

분명, 지금쯤 제 형을 완전히 제치려고 숙부에게 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을 터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을 자기도 감지하고 있는 건지, 내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음을 던지는 서희 누나.

“그런데… 왜 하필 서후 오빠한테 중국 쪽 담당 임원직을 준 거야? 전혀 안 어울리잖아.”

“할머니께서 그래도 손자들에 대해 관심은 거두지 않으셨거든.”

말을 마침과 함께, 서랍에서 꺼낸 종이 뭉치 한 다발.

거기에는, 할머니가 개인 비서를 통해 이리저리 수집했던 손주들에 대한 지난 4년 치 정보가 담겨 있었다.

-[한서후] 나이지리아 보고서

“서후 형 말이야. 주로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중국 쪽 사람들하고 교류했더라고.”

“중국 쪽이라면, 설마…?”

말하지 않아도 짐작 가능한 중국 쪽 세력. <상하이 캐피탈>.

탄약그룹의 재무 정보를 훤히 꿰고 있는 서희 누나의 얼굴에 곧바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상하이 캐피탈>이 다시 접근한다면… 그래도 상당히 부담일 텐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일단, 한서후 또한 랜섬웨어로 쓸 수 있으니까.”

“응?”

“망나니 기질 어디로 안 가거든. 그리고, 망나니는 같은 망나니 출신이 잘 아는 법이고.”

그리고, 곧바로 꺼내 든 휴대전화.

과연 사람의 본성은 바뀔까, 안 바뀔까?

나는 그 철학적인 명제에 대해 한번 시험을 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버튼을 눌렀다.

나이지리아에서 겪었던 개고생이 과연 우리 망나니 한서후의 본성을 바꿨는지 안 바꾸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김범호. 우리 K그룹 동갑내기 망나니가 활약할 시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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