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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28화 (281/300)

228화 쩐주(3)

기껏 생각해서 취향에 맞춰주었는데도, 뜻하지 않게 욕을 먹을 때가 있는 법이다.

마치 지금, 강남 청담동의 모 클럽 VIP룸을 잡고서, 우리 애정하는 김범호에게 초대장을 보냈던 것처럼.

“아, 또 뭔데!”

저 격한 반응을 보니, 초대장을 받고서 나름 잔뜩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당신만을 위한 특별 초대. 연예인급 미모의 여성도 참석!] 이라는 문구에 설레지 않을 망나니는 없을 테니까.

물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온 유세나 보좌관의 미모는 연예인급이기는 하니까.

“…요.”

그리고, 유독 유세나 보좌관에게 약한 김범호.

예전, 서윤지와 불륜 시절, 청소부로 잠입했던 유세나 보좌관. 그때 반했던 그 모습이 아직도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아아, 내 사랑 청소 누나… 그렇게 보지 말아요.”

“으윽. 역겨워.”

대놓고 경멸하는 모습의 유세나 보좌관.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김범호에게 포상 비슷한 건지도 모를 텐데.

그렇게 잔뜩 매도당한 김범호는, 조금 정신이 든 모양인지, 옷차림을 바로 하고는 젠체하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크흠, 한 회장님. 나 같은 고급 인재를 자꾸 험한 곳에만 쓰려고 그러시는데 말입니다.”

털썩, 클럽 VIP룸 소파 한가운데에 주저앉는 김범호. 아주 자연스럽게 고급 양주를 따르며, 그가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 옛날의 김범호가 아니걸랑. 마약도 끊고! 술도 줄이고! 여자도 적당히 만나고! 꿀릴 게 없다 이거요.”

딱 봐도, 더 말할 것도 없다.

김범호 이놈, 요새 확실히 술이 고프긴 한 모양이다.

얼음을 채운 잔 가득 따른 고급 양주를 쭉 들이켜고는, 김범호는 내게 애써 센 척을 하며 말했다.

“크흐! 그러니까, 저번처럼 괜히 애먼 검사 년 하나 붙인다든지, 우리 그러지는 맙시다, 제발.”

“누가 뭐라나. 아니, 애당초 착한 어른이로 살아달라고 지금 여기 부른 거 아닌데.”

달그락, 당황한 기색이 손끝에 닿은 건지, 잔에 든 얼음이 요동치는 모습. 동공에 지진이 잔뜩 일은 김범호가 내게 되물었다.

“뭐라고…?”

“힘들 것 아니냐고. 망나니 본능 억누르고 사는 것.”

빰, 빰, 빰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클럽 음악.

마침 잘되었다. 나도 술 한잔하고 싶었으니까.

유세나 보좌관을 시켜 방문을 걸어 잠그게 한 나는, 김범호 앞자리에 앉아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그러고는 내미는, 김범호의 금융 거래 내역서.

“카드는 돌려받았어도 사용 내역은 죄 아버지한테 실시간으로 가지, 옛날만큼 마음껏 쓰지도 못하지, 가끔씩 집안에 기강 잡힐 때 뺏기지.”

“이건 또 어떻게…!”

“아지트였던 K 호텔 라운지 바도, 내년 초부터 공사 들어갈 거라며? VIP 전용 실내 수영장으로.”

순식간에 합죽이가 된 김범호.

과일 안주 하나를 이쑤시개로 집어 건네며, 나는 김범호에게 속삭였다.

“필요할 것 아니냐고, 유흥비.”

“아, 진짜!”

그리고, 김범호는 악마의 유혹을 거절할 위인은 못 되는 사람이었고.

“우리 한 회장님은 나를 너무 잘 아셔서 문제여. 그래서, 뭐 어쩌자고? 댁이 돈 대주시게?”

“못 할 건 또 뭔데.”

“뭣이라고…?”

“자, 이거.”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별.

최고 등급 바로 아래 레벨의, 그래도 상당히 고급 라인업에 속하는 탄약카드 한 장.

비밀번호를 적은 쪽지와 함께 내민 그 카드를 본 김범호의 두 눈이 왕방울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탄약… 플레티넘 카드?”

“어, 한도 30억 원. 이 정도면 두 달은 실컷 놀지?”

“두 달에 30억 원…! 진짜로?”

“그럼, 진짜지. 탄약그룹 회장이 직접 만들라 지시한 카드인데.”

손에 쥔 카드를 한 번.

그리고,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기에, 바로 열린 김범호의 재롱잔치.

“헤헤헤, 제가 말입니다. 우리 한서준 회장님의 영원한 딸랑이 김범호 아닙니까. 혹시 여자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쇼, 충! 성!”

“충성은 무슨,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다만, 이제 조건이 있어.”

“조건…?”

꿀꺽, 위아래로 목젖을 꿀렁거리는 김범호. 옆자리로 가까이 다가가, 어깨동무를 한 나는 김범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보모 역할 하나 하자고. 망나니 친구 하나 붙여줄 테니까 같이 좀 놀아 줘.”

“그러면 그렇지. 감시자 내지는 쁘락치, 뭐 그런 역할을 하라는 건가…?”

“말귀는 빨리 알아들어서 좋네.”

“뭐, 나야 시한부 친구 불러주면 좋지. 그런데 그게 누군디?”

“아아, 우리 둘 다 잘 아는 사람. 심지어 우리 범호 형하고는 동갑이라니까.”

“동갑이면… 설마?”

전직 망나니에 붙게 될 현직 망나니. 이 두 재벌가 망나니들은 뻑적지근하게 놀아재낄 것이 분명했다.

4년 동안 나이지리아에서 놀지 못했던 것을 이자까지 쳐 가면서.

“한서후. 한동안 못 풀었던 회포 좀 거하게 풀게 도와줘 봐.”

* * * *

같은 시각.

한화기 자택 서재에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서류를 검토 중인 한서후.

“아오, 옘병할. 죽겠네, 진짜. 뭔 일이 이렇게 다 몰리냐.”

말은 호탕하게 내뱉었으나, 쉽지 않은 <상하이 캐피탈> 측과의 협상.

아버지인 한화기가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현 상황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한서후 혼자서 다 맡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의 미운 형, 한서호가 그리울 정도로.

“하, 한서호 이 인간은 형이란 게 진짜 도움이 안 돼. 따까리로라도 뭘 시켜 먹을 수가 없네.”

회색빛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한서후.

인터넷 뉴스 게시판 중간까지 휠을 내리자, 그의 눈에 익숙한 이름 석 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코아 전(前) 감사, 한서호 씨 구속영장 발부]

영 좋지 못한 신세로 전락했다는 내용과 함께.

“하, 배임죄로 걸어버리시겠다? 우리 형님은 아무래도 깜빵 체질인가 보네. 숫제 거기가 집이여, 뭐여.”

무능의 대가는 추락.

그건 굳이 형인 한서호의 신세를 눈여겨볼 필요조차 없이, 이미 뼈에 새긴 교훈이었다.

나이지리아 정글에서 온갖 고난을 겪어가며 얻은 교훈.

“나까지 저 꼴이 날 수는 없는데.”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져 오는지, 담배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캐비닛 안, 독한 중국술 하나를 꺼내어 병째로 들이켜는 한서후.

“크흐,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아버지는.”

그리고, 그 불안감은 한서후 뿐만이 아닌, 아버지인 한화기 또한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었다.

제 둘째 아들을 매일같이 닦달했을 정도로.

‘분명 시간이 없다고 했을 텐데! 왜 중국 놈들과 미팅이 미뤄지는 것이냐!’

‘그, 제임스 왕 이사가 중국 중앙정치에서 입지가 부족한지라, 시간이 걸린다 해서….’

‘변명이나 늘어놓지 말고!’

달력에 붉은색 펜으로 그려 넣은, 8월 15일이라는 날짜에 적힌 D-day.

이제 곧,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로 돈줄이 묶였기에 잔뜩 분노한 상태로.

‘그 미친 조폭 두 마리가 광복절날 튀어나오기 전에, 무조건 일을 해결하도록. 반드시!’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부리부리한 눈을 떠올리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학을 떼는 한서후.

다시금 중국술을 들이켜며, 그가 신세를 한탄하듯 푸념했다.

“아, 진짜. 내 아버지긴 하지만, 어지간히 미친놈이라니까. 아주 성깔이 그냥….”

한 잔 한 잔 넘어가는 술에 달아오르는 취기. 그 역시 30대의 젊은 사내인지라, 이럴 때마다 동하는 게 있는 법이었다.

술과 단짝 친구인 유흥. 여자와 파티와… 어쩌면 약물까지도 곁들여서.

“일 끝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답시고 뭘 할 수도 없으니 원… 어어?”

그리고, 그때.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걸려 온 통화.

“뭐여, 이건. 어, 웬일이냐?”

-야, 너 한국 왔다며! 왜 나한테 말 안 했냐?

재계의 철딱서니, 김범호였다.

“야, 바빠. 끊어, 이 새끼야.”

-에헤이, 또 또 비싸게 군다.

“비싸게 구는 게 아니고, 새끼야. 나 당분간 아버지 때문에 유흥비 못 쓰는 처지니까 나중에 놀자고.”

-뭐여, 한서후가 거지라고? 이거 순 나이지리아 사람 다 됐네? 진흙쿠키 좋아해?

“아, 이 새끼 진짜…!”

갖은 인종 차별성 개그를 치며 한서후의 속을 벅벅 긁는 김범호.

한참을 그렇게 놀려대고 나자, 김범호는 조금은 조심스러워진 말투로 한서후에게 미끼를 던졌다.

-야, 됐고. 그냥 나와라. K 호텔로 와.

“뭐라고…?”

-그냥 와서 놀라고. 뭐 일 있다며? 그럼 이번엔 내가 내고, 그거 일 끝나고 네가 내면 되는 거지.

“끄응… 그렇긴 한데.”

수면 위에서 흔들리는 찌.

돈줄 끊긴 한량 출신으로서 그 마음을 잘 아는 김범호였기에, 그는 딱 적절한 타이밍에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한서호라는 거대한 붕어가 문 낚싯줄을.

-걸그룹 연습생들 총출동.

“진짜로…?”

-빨리 튀어 오라니까. 현지 흑인 여자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

“흑인 여자랑 안 놀았어, 새끼야.”

셋, 둘, 하나.

얼큰한 취기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

자기도 모르게 옷을 챙겨 입은 한서후가 휴대전화에 대고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국산품 애용 모르냐? 지금 바로 갈 거니까, 제일 이쁜 애는 따로 빼 둬.”

* * * *

같은 시각. 상하이.

“이건… 해서는 안 됩니다, 주군.”

“…….”

양쯔강을 낀 푸둥 지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

대답 없는 제임스 왕 이사에게 옌룽이 성토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베이징에서 간신히 목숨줄만 달아 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은 일단 힘을 기르고… 다시 중앙 정계가 바뀔 때, 그때 움직이심이 옳습니다, 주군.”

“그때가 오겠는가?”

“주군…?”

“아무래도 올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뚜벅뚜벅, 유리창 앞에 섰던 제임스 왕 이사가 옌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상당히 궁지에 몰린 듯한 표정을 짓고서.

“베이징은 태자당이 전부 장악했지. 그리고, 우리 상하이방 파벌은 전부 쫓겨나 변방에 숨어 있을 뿐.”

“…….”

“지각변동이 너무 빨랐다. 예상치도 못했던 속도로. 마치 역사의 분기점을 누군가가 강제로 틀어버린 것만 같이.”

그리고 위를 향하는 제임스 왕 이사의 시선.

천장에 조각된 목제 동북아시아 지도. 그곳에 단검처럼 삐죽 튀어나온 한반도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을 지금 이 낭떠러지 끝으로 몰게 만든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한서준… 그자가.”

이미 틀어진 역사의 분기점.

그 인과율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도 모른 채, 제임스 왕 이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운명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끝을 보겠다. 한화 1조 원, 내 전부를 털어 넣어서라도.”

“주군…!”

“전부 삼킬 수도 없으니, 한화기·한서호 부자의 말대로 가겠다. 탄약그룹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쥐어진 손아귀 안. 우그러지듯 들어온 한반도.

적막한 방 안, 그곳에는 오직 제임스 왕 이사의 떨리는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내 손으로 끊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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