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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31화 (284/300)

231화 방코 델타 차이나 뱅크(2)

조선노동당 청사 건물 3층.

검회색 인민복 차림의, 남산만 한 배가 불룩 튀어나온, 이제 서른 살도 안 된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며, 그는 자신 앞으로 송달된 결재 문서에 서명을 하며 말했다.

“기라믄, 호위사령부 부부장 인선은 내 알아서 처리하는 것으로 할 테니, 장 부장은 맡은 일이나 잘 완수하라우.”

“…….”

신경질적인 어투로 장성택에게 쏘아붙이듯 말하는 김정은. 장성택은 그런 김정은을 영 못마땅한 눈초리로 흘겨보면서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어이, 장 부장. 왜 대답이 없나?”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 장성택.

자신이 킹 메이커 역할을 해 왕관을 씌워준, 그러나 욕심으로 가득 찬 조카아이.

그것이 김정은을 바라보는 장성택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장 부장!”

구둣발로 거칠게 책상 앞판을 부수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함치는 김정은.

쨍그랑! 탁자 위, 검은색 잉크병을 벽에 내던진 그가 장성택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기래, 아직도 내한티 고모부 소리가 그리 듣고 싶소?”

“…아닙네다, 위원장 동지.”

“아니긴, 주름진 면상에 다 쓰여 있구먼.”

털썩, 멱살 쥔 손이 풀리자,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는 장성택.

기 싸움의 형상을 한, 권력과 권력의 충돌은 매 순간 지금처럼 어긋남이 커지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후견인이 필요치 않아지는, 그 정도만큼.

“호위사령부 인선, 절대 건들지 마시오. 내 목숨줄 지키는 놈들까지 당신 손에 들고 흔들지는 못해!”

“…오해이십네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백투혈통 김일성 조선의 영광뿐입네다.”

“오해인지 이해인지는 예산 움직이는 꼬라지가 말해주는 법이지.”

그리고 그 가식적인 고모부의 변명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책상 서랍을 열어젖힌 김정은.

총알이 장전된 권총 바로 옆, 김정은의 친필 서명이 적힌 서류 한 다발.

그 서류의 제목은 장성택의 얼굴을 당혹감으로 새하얗게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비자금 관리 내역] 방코 델타 차이나 뱅크.

“아바이께서 남기신 마카오 해외 자금, 올해 말까지 정리해서 싹 넘기시오.”

“……!”

“설마 행랑아범이 곳간 문지기 노릇 한답시고 주인 행세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결국, 들켜버린, 방코 델타 차이나 뱅크 비밀계좌의 존재.

안전에 놓인 권총 조정간을 격발로 바꾼 김정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그는 자신의 고모부를 겨냥한 채로 하던 말을 연이어 나갔다.

“미화 50억 불. 내 다 알고 있으니,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말고.”

* * * *

-쾅!

평양, 장성택의 지하 벙커.

“이런 깡끄리 죽탕을 쳐버릴 핏덩어리 새끼! 깜냥도 못 되는 제깟 놈 왕좌에 올린 공신이 누군데, 감히!”

김정은과의 대화를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온 장성택.

끓어 넘치는 분노를 좀처럼 억누르지 못한 그의 얼굴은, 배신감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후우, 후우! 이 천하의 쳐 죽일 패륜아 같은 새끼! 아주 목줄이 아니라 사형장 올가미를 채우겠다?”

“1호 동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네까?”

그리고, 늘 그렇듯이 장성택의 옆자리에 있는 장철규.

실무를 총괄하는 그 또한, 이번 김정은의 태도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계속 당과 국가, 군대에 장씨 가문 입김이 닿게 하려믄, 그 비자금 없이는 불가능합네다. 그리고.”

숙청. 장씨 가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예고되어 있다는 것을.

“이미 거기서 10억 불은 상하이 떼놈들에게 빌려주기까지 했고요.”

“거, 입 좀 다물라.”

“1호 동지… 아니, 성택이 형님!”

“그 입 좀 닥치라!”

결국, 격노를 표출하는 장성택.

그 늙은 팔에 무슨 힘이 솟았던 것인지 철제 탁자를 통째로 엎어버린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후우… 내 생각할 거이 있으니, 조용히 하고 있으라.”

그리고 시작되는, 장성택의 계산.

조금씩 세력을 불리는 김정은의 권력. 그리고 그에 비례해 잃어가는 자신의 권력.

그 평행추가 백두혈통 쪽에 더 기울게 되는 시기는 바로.

“1년, 대략 그쯤 남았겠구먼, 기래.”

쿠데타부터 레짐 체인지, 하다못해 망명까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살 수 있는 궁리.

“백두혈통을 끌어내리는 건… 공화국 전체가 망하는 길이고.”

김 씨 백두혈통 시스템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는 북한이라는 국가.

심지어, 김정은 외에 달리 옹립할 백두혈통도 없는 상황.

그렇기에… 장성택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침대에 눕는 것과 같은 그 선택은.

“꼭두각시를 부리는 상왕. 그 방법뿐인가.”

왕좌에 앉은 김정은을 완전히 통제할 만큼 절대 힘을 놓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이었다.

“인력 송출도 안 돼. 석탄이나 수산물 수출도 안 돼.”

그러나, 대북제재로 인해 달리 자금줄을 확보할 방법이 없는 북한이라는 나라.

그 가난한 나라에서 손쉽게 돈이 되는 것이라고는 오직.

“마약… 하나 남았군, 지금 흥남 필로폰 공장 생산 라인이 얼마나 돌아가나?”

순도 높은 마약뿐.

“라인 넷 중 셋은 놀고 있다 보시면 됩네다. 돌아가는 나머지 하나도 종종 멈추고요.”

“기래, 기렇단 말이지….”

이미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고급 마약의 대명사로 불리는 북한산 마약.

당장 여의도 K호텔에서 김범호가 하는 약부터 북한제 제품이었으니까.

“흥남 필로폰 공장. 지금부터 전체 라인 온전히 가동한다. 주간만 돌리지 말고, 야간에 주말까지 쉼 없이 돌리라!”

“1호 동지…?”

“일본허구 남조선에 쉼 없이 뿌리면 기깟 비밀계좌 50억 불, 정은이한테 주고서도 아무 걱정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살기 위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하는 동북아시아 마약 시장 규모.

최종 결재 서류에 서명을 하며, 눈에 불을 켠 장성택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죽을 팔자라면, 발버둥이라도 쳐보고 죽는 거이 낫지 않간?”

* * * *

“청와대로 갑시다.”

“예, 회장님.”

탄약그룹 본사 건물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

채 5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손으로 턱을 괸 채로 이번 일의 해결할 키포인트에 대해 생각했다.

“장성택, 김정은… 마카오의 북한 비밀계좌라.”

대략적인 상황은 모두 알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디테일.

“정보가 부족해.”

탄약그룹 정보팀 쪽에서도 쉬이 알아내지 못하는 민감한 정보.

그렇기에, 나는 부득이하게도 이곳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오, 한 회장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반갑지는 않지만, 그간 내가 해 온 것이 있기에 반가운 척을 마다하지 않는 대통령.

아무래도 확실히 대선을 100여 일 앞둔 시기인지라 잔뜩 민감한 모양이었다.

“큰 선거를 앞두고 괜히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부담은 무슨, 내 자세한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번 건은 내가 어찌 손도 못 쓰지 않았던가.”

늘 그렇듯, 잔디밭을 거닐며 야구공을 허공에 힘껏 던지는 대통령.

“이것 참, 유감스럽게 되었어. 한화기 고문, 그 친구가 이래저래 엄한 짓을 하려 든단 말이지.”

평소보다 힘이 덜 들어간 야구공은, 마치 제 주인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야당 때문에 그걸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나도 이래저래 골치가 아픔세.”

“대통령님께서 처하신 상황. 전부 이해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얄궂게도 내 발 앞으로 떨어진 야구공. 허리를 숙여 공을 주운 나는 글러브를 낀 대통령에게 가볍게 송구하며 말했다.

“퇴임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님과 저희 탄약그룹.”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어차피 대선 주자로 뛸 김 의원.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도 영 깜이 되는 양반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실질적인 힘이 맴도는 곳은.”

팡, 시원한 소리와 함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간 야구공.

“상왕이 되신 대통령님 손에 계속 있을 테고요.”

“…….”

뜻이 통한 것인지, 힘이 들어간 것이 눈에 보일 만큼 우그러진 글러브.

그 안에 든 공을 만지작거리며, 대통령이 내게 대답했다.

“그래도 곤란함세. 지금 탄약그룹에 직접 개입하면 야당에서 물어뜯기 딱 좋을 때란 말이지.”

“직접 개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정보, 그저 정보만 주시면 되니까요.”

상왕이 되고 싶은 대통령.

어쩌면 팔자 비슷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저기 휴전선 너머 북쪽에도, 이 욕심 많은 정치인과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니까.

“그럼 나머지 일은… 저 북쪽에 있는 또 다른 상왕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거든요.”

* * * *

“아버지?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일은 잘 풀리고 있는데.”

늦은 밤, 한화기의 자택.

탁자에 몸을 기울여 독주로 술잔을 채우는 한화기. 그 모습을 본 한서후는 맞은편에 앉아 제 아버지에게 물음을 던졌다.

“뭐가 그리 걱정이셔요? 짱깨 놈들 데리고 오니, 조폭 놈들도 죄 꼬랑지 내리고 밑으로 기어들어 왔고.”

“<상하이 캐피탈>의 개입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허나.”

그리고, 모든 근심이 그곳에 있다는 듯, 가득 채운 독한 술을 끊임도 없이 단 한 번에 들이켜는 한화기.

내뱉은 한숨 소리와 함께 한화기가 말했다.

“그들이 자금 조달을 한 곳이 문제일 뿐.”

“아아… 북괴 놈들 돈.”

북한 자금.

그저 단순히 경영권 싸움을 넘어선, 공안 문제가 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UN의 대북제재를 어길 수도 있는 상황.

한서후 역시 그 점에 대해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제 아버지처럼 잔에 가득 독주를 채우는 한서후.

“일단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북한 돈이든 어디 탈레반 돈이든, 일단 살아야 수습이라도 하는 거지.”

“그야 그렇긴 하다만.”

“아버지,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정말 죽거나 살거나, 단두대 매치뿐입니다.”

비장한 각오와 함께 목구멍 너머로 털어 넣는 술 한 모금.

그 모습을 본 한화기는 둘째 아들이 자신과 퍽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말에 대답했다.

“후우. 그래, 서호 네 말이 옳다.”

이제는 정말… 돌이키려야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

그제야 비로소 술기운이 가신 한화기가 한서후에게 물었다.

“해서, 북한에서 <상하이 캐피탈> 측으로 입금 작업은 어찌 돌아가고 있지?”

“지금 마카오부터 시작해서 신나게 세탁 중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반복하며 무언가를 생각 중인 한서후.

생각을 마친 한서후의 입에서 나온 별것 아닌 말은, 앞으로의 미래가 어찌 될 것인지 예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직 그 스스로만 그 뜻을 모를 뿐.

“일본, 일본 쪽에서 조총련 야쿠자하고 마약쟁이들 통해서 땟국물깨나 시원하게 빼고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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