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장성택을 만나보자(1)
풍성한 콧수염, 어디 외국의 록커처럼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
이마를 찡그리자 보이는 것은 거울 속, 평소보다 유달리 진한 눈썹과 진하게 쌍꺼풀진 눈이었다.
내 모습이지만 내 모습이 아닌 외양.
“아니, 이게 누구여? 우리 회장님인 거… 맞지?”
회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김원철 아저씨는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도 지금 내 모습이 새롭고 어색한데,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오죽할까.
키높이 구두를 신어, 어지간한 농구선수만 한 높이에서 김원철 아저씨를 내려다보며, 나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때요, 좀 어울립니까?”
“어울리고 자시고, 난 처음에 누군지 못 알아봐서 뭔가 싶었다니까? 여기 한씨 집안에 내가 모르는 핏줄이 또 있나 했을 정도로.”
“그럼 대성공이네요.”
나랑 친구처럼 가장 가까이 지낸 김원철 아저씨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지금의 내 모습.
아까 유세나 보좌관 또한 깜짝 놀라며 ‘누구세요?’ 만을 반복해서 말할 정도였으니, 효과는 완벽한 모양이었다.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대성공? 무슨 변장 대회라도 나가는 겨?”
“그런 건 아니고, 이제부터 사람 하나를 감쪽같이 속여야 할 거거든요.”
“사람을 속인다고? 도대체 누구를?”
“이런 겁니다.”
툭, 대답 대신 건넨 여권 두 개.
늘 익숙한, 태극 문양이 그려진 초록색 한국 여권 하나와, 금색 국화가 그려진 진홍색의 일본 여권까지.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를 올려둔 김원철 아저씨.
“뭐여, 이건. 그리고 왜 여권이 두 개?”
“한일 합작으로 새로운 신분을 얻었거든요. 한시적으로 존재하지만, 임팩트 하나는 확실한, 그런 신분을.”
한국 국정원과 일본 내각조사실의 협조를 받아 만든 새로운 신분.
일본에 유통되는 북한산 마약. 그리고 그들의 비밀자금을 받아 탄약그룹을 공격하려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을 들은 양국의 지도자는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은밀하게 내게 최선의 협조를 해 주었다.
‘내 대선 탓에 직접 지원은 못 하지만, 이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네.’
청와대 안주인인 대통령의 허락과.
‘어쩐지, 갑자기 마약 문제가 심해졌다더니. 이거야 원, 한 회장님은 천상 일본 국민의 영웅을 할 팔자인가 봅니다.’
갑자기 나를 일본 애니메이션 히어로로 만들어 버린 일본 총리까지.
그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김원철 아저씨는, 여권을 넘기며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뭔 소린지… 얼레?”
펄럭, 탁자 위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두 개의 여권.
왼쪽의 진홍색 일본 여권 안에 적힌 이름부터 읽기 시작하는 김원철 아저씨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무라 와치루… 김원철? 뭐여, 이거 내 이름 아녀?”
“아니요. 이젠 제 이름입니다.”
강제로 빼앗은 김원철이라는 이름. 그 이름 바로 옆에는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지금 내가 한, 풍성한 콧수염이 가히 예술적인, 변장한 모습의 사진이.
“저는 지금부터 한·일 복수국적의 조총련계 이민자 3세 김원철, 일본명 기무라 와치루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여…?”
“그것도 그냥 재일 한국인이 아니고. 제법 그럴싸한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일본 총리와 연줄이 닿은 금융가의 떠오르는 루키인 거죠.”
말을 내뱉음과 함께 내민 손가락.
나는 여권 맨 끝에 끼워진 명함 한 장을 가리키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북한의 자금 따위 얼마든지 세탁할 수 있는.”
“허억…! 잠깐, 잠깐만!”
가짜 신분에 걸맞은, 가짜 사모펀드 대표의 직함이 적힌 명함이.
“요 가짜 신분으로 일을 벌이겠다는 겨? 아니, 뭘 어쩌려고?”
“저번에 한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방코 델타 차이나 뱅크에 있는, 북한 비밀계좌 50억 달러. 그 전부를 제가 중간에서 가로채겠다고.”
말을 마치고 집어 든 두 개의 명함. 나는 탁자 옆에 놓인 목제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고는, 아시아 끝자락에 붙은 조그마한 반도 위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직접 북한에 가서.”
“뭐라고…? 북한으로 간다고? 우리 회장님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즉답 대신 끄덕이는 고개.
아마 숙청을 앞둔 장성택이라면, 그곳이 중국이든 일본이든 외국으로 쉬이 나가지 못할 터다.
그렇다면… 내가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갈 수밖에.
“그 늙은 호랑이가 조만간 젊은 수컷에게 목덜미를 물리게 될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 * * *
평양 인근, 장성택의 지하 비밀 벙커. 평소와 다르게 장성택은 집무실에 자리하지 않았다.
비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깊이 내려간 곳. 벙커의 최심부.
굵고 가는 전선으로 얽히고설킨 천장. 기계음을 내뱉는 각종 전자기기.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장성택. 한숨을 내쉰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헤드셋을 쓰고는 눈을 감았다.
자신을 죽이려 드는, 김정은의 집무실을 도청하기 위해서.
“1호 동지. 이건… 너무 위험한 거이 아닙네까?”
“장철규, 너이는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되나?”
장성택을 말리는, 그의 사촌 동생 장철규.
그 우물쭈물한 모습에 속이 답답했던 것인지, 장성택은 그에게 볼펜을 던지며 쏘아붙였다.
“정은이 그놈이 권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언제 쏠지 그 생각만 하는 거 모르던?”
“그래도… 지금 하시는 이건 걸리면 삼대(三代)가 모가지입네다.”
최고존엄의 집무실을 도청하는 것. 분명 죽어도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었다.
아마 일가친척에 친지들까지 모두가 정치범 수용소로 들어갈 것이 분명한 상황.
그러나.
“어차피 숙청되면 다 죽는 기야.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만히 그 입이나 닫으라!”
“동지….”
“시작한다.”
딸깍, 누르고야 만 붉은색 스위치.
김정은의 집무실은 도청 방지를 주기적으로 하기에, 딱 정해진 시간에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북한의 게슈타포라 할 수 있는 보위부의 수장과 면담하는 때에.
-고저, 장성택이가 야코가 팍 죽었다고?
-그날 독대 이후로 몸을 사리고 있습네다.
들리기 시작하는 김정은과 보위부장의 목소리.
예상했던 대로, 대화 주제는 장성택 그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기업소나 지방 군대 쪽에 시찰 나가는 일도 줄었고, 국내에서 자금 자체를 움직이지를 못하게 되었습네다.
-늙은 구렁이 놈이 몸을 사리고 있다라… 제 모가지가 간당간당하다는 건 알고 있나 보구먼, 기래.
꽉 쥔 주먹과 함께 툭 튀어 오르는 이마의 핏줄.
분노에 차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장성택이 중얼거렸다.
“배은망덕한 종간나 새끼… 제깟 핏덩이 놈을 거기까지 올린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그의 격노 따위야 일절 상관도 없다는 듯, 패기 넘치는 함성으로 김정은에게 결의를 다지는 보위부장.
-저희 보위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네다! 지금 당장이라도 장성택이 놈을 개처럼 네발로 기어 오게 할깝쇼?
그 순간,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핏기가 싹 가시고 온몸의 소름이 올라오기 시작한 장성택.
아직 대비가 덜 되었기에, 김정은의 끄덕임 하나만으로도 곧바로 살이 뜯기고 뼈가 부서지다가 짐승 먹이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쯧쯧쯧, 둔한 사람. 내가 왜 장성택이 놈에게 연말까지 마카오 비자금을 회수하라 일렀는지 모르겠나?
-아아…!
아직 장성택의 마지막 골수를 빼먹지 못한 김정은.
마카오에 있는 방코 델타 차이나 계좌. 그 50억 달러라는 자금은 장성택의 목을 죄기도 했으나, 곧 그의 숨통을 붙여 놓기도 한 것이었다.
-12월. 올해 연말에 큰 돌부리를 치우고 신년부터는 모든 당과 국가, 군대의 요직에 내 사람을 집어넣을 것이다, 이 말이야.
-역, 역시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지도자이신 위원장 동지입네다!
-권력은 절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백두혈통도 아닌, 장 씨 행랑아범 따위에게는 더더욱.
그러고는, 끝난 대화에 맞추어 종료된 도청.
쾅!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친 장성택.
빠득, 소리가 날 만큼 이를 세게 앙다문 그의 입에서 곧바로 거친 포효가 쏟아져 나왔다.
“이 개 잡종 새끼! 갈빗대를 뽑아다 돼지 사료로 갈아버릴 천하의 개 쌍놈 새끼가!”
“1호 동지… 아니, 성택이 형님.”
정식으로 듣게 된, 권력자가 가진 숙청의 의지.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장성택. 그는 벽에 걸린 달력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남은 목숨을 세기 시작했다.
“12월, 12월… 후우, 남은 시간은 고작 석 달인가.”
곧 푸르렀던 잎사귀가 낙엽이 되어 하나둘씩 떨어지게 되고, 마지막 줄기에 매달린 낙엽이 힘없이 떨어질 바로 그때.
그때가 바로 장성택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성택의 모습을 바라보며 뒤에서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사촌 동생 장철규.
“성택이 형님, 사실 오늘 말씀드리려던 거이 있었습네다.”
“후우… 굳이 지금 말할 내용인가?”
“지금 말해야 합네다. 이 도청 내용을 안 들었다면 또 모를까.”
꿀꺽,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는 침방울.
긴장된 나머지 담배를 쥔 손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장철규가 장성택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쩌면… 위원장 동지. 아니, 김정은이 그 찢어 죽일 놈의 숙청 계획. 막을 수도 있어 보입네다.”
“뭐라…!”
“이것 좀 보시라요.”
주섬주섬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꺼낸 명함 하나.
묘하게 탄약그룹 로고와 비슷하게 생긴 불꽃 모양 바로 아래, 한국어와 일본어로 적힌 회사 이름.
“기무라 캐피탈? 어디 일본 쪽 사모펀드인가?”
“이번에 일본으로 마약 유통을 늘렸지 않습네까. 거기 돈세탁 전문가랍네다.”
금박을 입혀, 전등불 아래에서 반짝이는 명함. 그 빛이 꼭 자신을 구할 것처럼 느껴지기라도 한 걸까?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가는 장철규.
“단순히 마약 관련 돈세탁만이 아니라… 방코 델타 차이나에 있는 계좌 금액까지 전부 세탁 가능한.”
“잠깐… 그 말은 설마?”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한 두 사람.
방코 델타 차이나. 그곳에 있는 50억 달러. 이 정도 금액을 한 번에 집중적으로 쓸 수 있다면 어지간한 불가능해 보이던 일은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대규모 군수 물자를 구매한다든지, 그리고 대규모 병력을 단시간에 운용한다든지 하는 식의.
“이거이 빨리 세탁해서, 아직 영향권 내에 있는 사단장들에게 쫙 뿌려야 합네다. 여차하는 순간 평양으로 전차부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쿠데타…!”
어느새 벙커 최심부를 가득 메운 담배 연기.
전등불 아래, 뿌연 연기 속에서, 장성택이 결심한 듯,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김정은이를 잡아서 딱 얼굴마담 상징물로만 쓰고, 북조선 전부를 내가 손에 쥐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네다, 형님.”
“기래… 무조건 골라야 하는 선택지인 것이지비. 최대한 빨리 접선해보라우. 당장이라도 좋으니, 일단은 북조선으로 오라고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