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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35화 (288/300)

235화 장성택을 만나보자(3)

금붕어와 매화꽃이 화려한 금실로 수놓인, 붉은색 비단으로 만든 기모노.

유세나 보좌관은 단아하게 말아 올린 머리를, 백금으로 만든 비녀를 꽂아 차분하게 정리하곤 내게 물었다.

“굳이… 저까지 변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회장님?”

“해야지요. 지금 유세나 보좌관은 기무라 캐피탈의 사쿠라코 실장이니까요.”

“그래도 이 빨간 기모노는 좀… 너무 화려하지 않나요?”

“일부러 화려한 것으로 주문한 겁니다.”

내가 특이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다.

북한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보기 힘든, 기모노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 분명, 유세나 보좌관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장성택이 내게 향하게 될 시선을, 이리저리 분산시킬 수 있도록.

“장성택의 눈에 저, 기무라 와치루라는 사람의 인상은 잘 보이지 않을수록 유리한 상황이니까요.”

그 말을 듣고서야 할 수 없다는 듯 본인의 역할을 수용한 유세나 보좌관.

그리고,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를 건너자, 급격히 덜컹거리기 시작하는 차량.

영 좋지 못한 포장도로. 그리고,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

북한. 나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하차! 전원 내리라우!

-날래 날래 내리시오! 검문이 끝나야 들어갈 수 있으니!

입·출경 경계선을 지나자마자 달려오는 북한 군인들.

끈 달린 자동소총을 등에 멘 채로, 검문을 시작하는 그들은 몇 사람을 앞에 보내더니만, 금방 내 쪽으로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야, 이 간나는 억수로 이쁘구만, 기래.”

“히야… 우리 집 안방에서 삐쩍 꼴은 마누라 년하고는 차원이 다르구먼.”

기무라 와치루와 사쿠라코라는, 가짜 일본 여권을 내밀자,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유세나 보좌관을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천박한 욕망을 입에 담는 북한 군인들.

“크흐, 쟤 살결 뽀얀 것 봤니? 그냥 저 왜년 실종 처리하고 가져가면 안 되겠니?”

“가만있어 보라. 여기 동행한 사내가 누군지 확인부터… 헉!”

순간, 얼어붙은 북한 군인.

여권을 든 그의 손이 벌벌 떨리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온 동료 군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기무라 와치루? 어디서 들어 봤었는데… 어어, 기억났다!”

“1호 동지가 특별 지시했다던 그 자본가 놈 말인가? 이런! 내래 모가지가 썰려 나갈 뻔했구먼, 기래!”

장성택.

말단 군인들까지 이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면… 그 역시 급한 상황인 건 확실한 모양이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숙청의 그림자를 알고는 있을 터.

나는 군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여권을 되돌려받으며 물었다.

“문제 있습니까?”

“아, 아닙네다.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들어가시믄 됩네다.”

그렇게 마무리된 입출경 절차.

나무로 된 게다를 신고 종종걸음으로 나를 뒤따라오는 유세나 보좌관 뒤쪽으로 보이는 풍경.

황량한 민둥산 아래 지어진, 대규모 공장 지역.

개성공단이었다.

“개성공단….”

그리고, 이번 방문단을 인솔하는 국정원 직원이 연단 위로 올라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자, 여기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남·북·일 경제 협력단 민간 위원분들께서는 공단 시찰하러 가실 겁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건네었다.

늘 대통령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만 봐왔던 그 남자는 바로.

“한 회장님?”

“기무라라니까요, 지금은.”

박동희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그랬지요, 기무라 대표님. 여하튼, 저쪽에서 준비가 다 끝났으니 따로 빠지셔서 차에 타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빨리 준비되었네요. 여기 오자마자 이 정도면 이미 어제부터 기다렸다는 건데.”

“도대체 기무라 대표님께서 무슨 수를 쓰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하던 말을 이어나가는 박동희 정책실장.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제껏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이 막연한 희망 사항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해 주었다.

“지금 몸이 달아 있는 쪽은, 백 퍼센트 장성택 쪽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타이밍도 적절하게 나머지 인원들의 인솔을 시작하는 국정원 직원.

-출발합니다! 안전 위험이 있으니, 개인행동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분주하게 흩어졌다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 어수선함을 틈타, 나는 유세나 보좌관과 함께 박동희 정책실장이 별도로 마련한 차에 탑승했다.

“그럼, 저희도 출발하죠. 좀 특별한 개인행동을 하러.”

앞쪽의 북한군 차량을 따라 이동하는 우리 세 사람.

민둥산 중에서도 그나마 초록이 우거진 곳을 향해 가는 길. 점점 주위의 가시철조망으로 도배가 된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군사 시설… 이거 살벌하기 짝이 없네요.”

그리고, 그 울타리 너머 보이는, 경계가 삼엄한 군부대 입구 초소.

아까 본 경비병들과는 달리, 중무장한 모습의 그들 중, 장교 계급의 사내가 차를 멈춰 세웠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네다.”

-필요 없다.

“1호… 1호 동지?”

초소 한쪽 전자기기에서 들려오는, 낮고 거친 목소리.

군부대 가장 깊은 곳, 벙커 안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장성택의 목소리였다.

-사안이 급하니 검문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들여보내도록.

“예! 알겠습네다!”

끼익, 녹슨 쇠끼리 맞물려 돌아가는 불쾌한 경첩 소리.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는 내게, 장교 계급의 사내가 무전기를 건네었다.

-거기서 들리십네까?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네다. 오늘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네다.

부푼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 장성택. 그 기대감은… 아마 거친 칼날이 되어 그에게 되돌아가겠지.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찌른 줄도 모르고서.

-북조선에 오신 것을 환영합네다. 기무라 와치루 대표님.

* * * *

같은 시각.

지하 벙커 안, 초소 CCTV 영상을 지켜보며 사촌 동생 장철규와 대화를 나누는 장성택.

“기무라 와치루, 이자가 일본 쪽 총리대신과 라인이 있다고?”

“처음에는 그냥 본인 주장이라 설마설마 했습네다만, 알아보니 고저 진퉁이었습네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

“일본에 마약 도는 양이 다섯 배는 넘었는데, 쪽바리 놈들 경시청이나 검찰에서 아무 말도 없던 거이 이상하다 했습네다만.”

일본 시장에 마약을 대량으로 살포한 장성택.

금방 눈치를 채고 대량 단속에 나설 줄 알았던, 일본의 수사기관은 유독 조용했기에, 뭔가 의아함이 있었던 상황.

그러나, 칙칙한 CCTV 화면 속, 벙커 복도를 걸어 들어오고 있는 이 묘한 일본인 사내가 그 의아함의 원인이었을 줄이야.

“고 조용했던 이유가 기무라 와치루 때문이다, 이건가.”

“고놈이 모습은 안 드러내 놓고서, 발은 또 넓은 거이, 암시장 쪽 물자 조달도 자신이 있다 합네다.”

“이래저래 쓸모가 있다는 것인데….”

의자에 몸을 깊게 묻고 눈을 감은 장성택. 편해야 할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김정은의 압박. 숙청의 칼날은 자신이 아닌, 외곽 끄트머리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장성택의 세력을 잠식해 가고 있었으니까.

‘1호 동지! 이게 어찌 된 일입네까? 사업체 몰수라니!’

자금줄 노릇을 하던 외화벌이 일꾼의 몰락과.

‘갑자기 사회안전성 놈들이 들이닥쳐가 자료란 자료는 싹 다 털어 갔시오! 고 우에서 혹시 피바람 부는 건 아이겠지요?’

노동당 고위 간부 집단의 대규모 신원 조회까지.

이제 더는 돌아갈 길이 없는 상황.

결심을 마친 후, 눈을 뜬 장성택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 당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갔지.”

“형님….”

“어데 면상떼기나 한번 보자고. 기무라 와치루. 과연 내 목숨줄을 붙들어 둘 놈인지.”

그리고, 그 순간.

인위적으로 딱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우렁차게 외치는 경비병의 목소리.

-고저, 손님분들 들어가십네다!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보이는, 풍성한 콧수염의 일본 남자.

알 수 없는 위화감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그는 장성택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기무라 와치루입니다.”

* * * *

그리고, 같은 시각.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

“북한 쪽 자금이 들어왔다지?”

“예, 주군. 저희 계좌로 입금이 끝났습니다.”

“천만다행이로군.”

옌룽에게 북한의 비밀계좌에서 송금받은 건에 대해 보고를 받는 제임스 왕 이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했다.

“이번 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터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유일한 동아줄이니.”

“물론입니다, 주군. 이번 건만 성공한다면.”

동아줄.

영향력을 잃은 그들, <상하이 캐피탈>을 다시금 예전처럼 커지게 할 그 동아줄을 만지작거리며, 옌룽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베이징 중앙 정계 쪽에서도… 주군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분명 그렇겠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바다를 향해 시선을 옮긴 제임스 왕 이사.

“한서준… 그리고, 탄약그룹.”

저 누런 황해 너머, 자그마한 한반도에 있는 탄약그룹.

4년 반 전, 그 시작은 별 것 아니었다. 그저 멍청한 젊은 후계자를 몰아내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을 뿐.

그러나.

“그놈 때문에 마음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군.”

평소 냉혈한 모습과는 달리 두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임스 왕 이사.

한숨을 내쉰 그는 이를 악물며 다짐하듯 말을 꺼내었다.

“이번을 끝으로 이 지긋지긋한 악연도 끝이다. 설마하니 제깟 놈이 북한 통치자금에 대해 알 리도 없으니.”

“극비 내용이니 보안에 문제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고… 아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어딘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자리를 뜬 옌룽.

늘 그랬던 것처럼, 소파에 누워 천장에 조각된 동북아시아 지도를 바라보는 제임스 왕 이사.

툭 튀어나온 한반도 쪽을 잡아 쥐듯 손을 뻗으며, 그는 비장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번 일로 둘 중 어느 하나는 죽겠군.”

사생결단.

그러나, 그 순간에도 제임스 왕 이사는 알지 못했다.

이 싸움의 끝에서, 땅 위에 스러질 시체가 될 자는 자신 쪽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뭐라고! 도대체 어째서…!”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격노 섞인 옌룽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였다.

“이 개 같은 가오리방쯔 놈들아!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약속을 뒤집어 놓나!”

“옌룽…? 무슨 일인가?”

반쯤 얼이 나간 모습의 옌룽.

씩씩거리는 화를 조금 식힌 후에야, 시뻘게진 얼굴을 한 그는 제 주인에게 통화 내용에 대해 보고를 올릴 수 있었다.

“주군… 북한의 장성택 측에서.”

그토록 믿고 있던, 벼랑 끝에 매달린 동아줄이, 사실은 썩어 문드러진 새끼줄만도 못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송금된 10억 불. 되찾아야겠다며… 계좌 동결을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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