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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38화 (291/300)

238화 사기꾼이 되는 법(2)

뚜, 뚜, 뚜. 쇳소리에 섞여 나오는 불쾌한 기계음.

점차 잡음이 사라지자, 장성택이 쓰고 있는 헤드셋에서 익숙한 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방코 델타 차이나에 있는 계좌 말이야. 그기 어떻게 내역 조회는 못 하는 기야?

-그기 보안이 워낙 탄탄한 거이, 저희 보위부 쪽 일꾼들이 노력하고 있긴 합네다만… 죄송합네다, 위원장 동지!

보위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정은의 목소리.

분명, 자기 목을 자르려는 대화였으나, 오늘의 장성택은 그 목소리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기무라 캐피탈의 기무라 와치루 대표. 그 사람과 손을 잡은 장성택에게, 이제 김정은은 조만간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엉엉 울 새끼 돼지 꼴이 되고 말 테니까.

“쯧쯧, 정은이 느그 애비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은행인데, 네깟 풋내기 잡놈이 어떻게 캐내겠니? 썩어 터질 패륜아 새끼.”

그리고, 그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이제는 다른 종류의 불안함이 들기 시작한 사촌 동생 장철규.

“형님… 너무 위험한 것 아닙네까? 도청기를 자주 킬수록, 김정은이에게 들킬 가능성도 커지는 기야요.”

“쯧쯧, 들킨들 뭐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네?”

“이미 <상하이 캐피탈>에서 뺀 10억 불. 초기 쿠데타 자금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 말이지비.”

“끄응… 그것도 그렇습네다만.”

이미 엎질러진 물.

기무라 와치루의 말대로, 장성택은 그 10억 불을 회수한 후, 곧바로 무기와 식량을 소리 소문 없이 사들이기 시작했다.

여차하는 순간, 평양으로 진군할, 황해도 일대의 전차부대에 뿌리기 위해서.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장성택에게 말을 꺼내는 장철규.

“실은, 상하이 때놈들이 난동을 부리기는 했습네다. 세상천지에 이런 경우가 어데 있냐고 하믄서.”

“어차피, 그놈들하고 앞으로 영원히 얽힐 일 없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곳은.”

어두운 벙커 안,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 부자의 사진이 걸려 있던 공간에 자리한 지도 한 장.

북한군 시설에 있는 지도답지 않은 그곳에는 한반도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바다 한가운데 길게 늘어진, 일본 열도만이 마약 공급량과 함께 그려져 있을 뿐.

“일본, 기무라 와치루 그놈뿐이고.”

“아아, 그 재일교포 간나. 제법 일을 잘 하긴 합네다.”

“벌써?”

“세탁 속도가 아주 무지막지합네다.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것 같습네다.”

팩시밀리 앞으로 가, 종이 한 장을 뽑아 든 장철규.

일본의 금융기관에서 온, <기무라 캐피탈> 명의의 계좌.

거기에는 최근 일본에서 팔린 마약 판매액이 합법적으로 세탁되어 차곡차곡 모여 있었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거기에 일본 내 마약 유통도 속도가 붙었는지, 점점 발주가 많아지고 있습네다.”

“천운이군! 기무라 그놈을 만난 거이 말이야.”

며칠 면도하지 못해 까끌까끌해진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퍽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성택.

빨간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와 함께 온 콧수염 사내, 기무라 와치루. 장성택은 묘하게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던 그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저희 능력은 믿으셔도 좋습니다. 속도와 안전성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하니.’

동행한 사쿠라코였나 하는 여자의 진한 향수 때문에 몽롱하기까지 했던 그날의 만남.

평소였다면 경계심을 쭈뼛 세워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

그러나.

‘일본 총리대신과의 연줄. 적어도 장 부장님께서 고대하시는 12월까지는 절대 끊어질 일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묘하게 빠져들었던 그의 설득.

그럼에도, 장성택에게는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는 행운이라 여겨도 좋을 순간이었다.

자신을 지옥 끝에서 천당으로 올려준, 동아줄이나 다름없는 사내였기에.

그 판단이 옳았다며, 옳아야만 했다며 스스로 합리화를 하는 장성택. 그는 탁자 위에 올려둔 헤드셋을 다시 머리에 쓰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는지, 장성택의 귓가에 들리는, 김정은의 목소리.

-고, 미제 놈들은 요새 움직임이 없나? 도통 조용하니 더 불안하구먼, 기래.

-몇 달 지나면 중간선거 아니겠습네까? 지금은 몸을 좀 사려야 합네다.

-사려야 한다고? 어째서 그렇디?

미국 이야기를 할 정도니, 분명 도청은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흡족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는 장성택.

“새끼돼지 놈 떠들어 재끼는 소리나 들으면서, 마음 좀 편하게 가져 보자고.”

그리고, 귀를 찌르는 보위부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양 웬리 국무장관 그놈이 임기 막판에 건수 하나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네다. 고놈의 주지사가 그리도 하고 싶은 건지….

저 멀리, 바다 건너 최대 적국에도 권력 때문에 피곤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심신이 이완된 장성택은 그게 퍽 우스웠던 건지, 의자 목 받침에 고개를 대고는 미소와 함께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지비. 그놈의 권력이 뭐라고. 허허허.”

그 미국에서 들려오는 권력 어쩌고 하는 소식이, 제 목숨을 노리는 조카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 * * *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

“이런, 개 같은!”

쨍그랑! 핏기가 진한 스테이크가 접시째로 날아가는, 장관 집무실의 평화로운 하루.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보이는 양 웬리 국무장관의 모습. 과호흡을 하며 괴성을 지르는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후우… 주지사! 주지사! 주지사가 미친 듯이 되고 싶다, 이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비서의 속마음은 이러했고.

‘주지사가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고, 일단 사람이 미친 건 확실한데.’

안 그래도 괴팍한 성격은, 공천 시즌을 앞두고 훨씬 더 예민해진 상황.

“국무장관! 주지사! 그다음은 상원 의원! 그리고… 어쩌면 미합중국의 대통령까지 전부!”

“가, 가능하실 겁니다… 장관님.”

“그렇지! 깜둥이도 대통령 하는 시대에, 노랑이도 대통령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 이 말이지!”

흑인 비서 앞에서 깜둥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할 만큼 제정신이 아닌 양 웬리 국무장관.

“권력! 지위! 명예! 심지어 나는 노벨 평화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지 않은가! 세 종교를 예루살렘에서 화해시켰고!”

차라리 그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면 좀 덜 했을 텐데, 하는 마음의 소리는 잠시 접어둔 채, 흑인 비서가 양 웬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장관님, 조금만 진정해 주십시오. 주지사 공천 정도는 얼마든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 하긴, 자네 같은 실질적 맹인은 봐도 잘 모르겠군! 우리 당내에 얼마나 나를 견제하는 놈들이 많은지를!”

당내에서 적이 많은 양 웬리 국무장관. 물론 그가 아시아계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성격이 저러니 누가 견제를 안 하냐고.’

본인 성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무언가 한 방이 필요한 상황. 주먹을 꽉 쥔 양 웬리 국무장관은 스테이크가 쏟아진 바닥을 빙글빙글 돌며 궁리하기 시작했다.

“막판에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길… 무언가가 필요해. 국무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자극적인 무언가가!”

저렇게 탑돌이 비슷한 의식을 할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조용히 문을 닫고 바깥으로 도망치는 흑인 비서.

“어휴, 사람이 능력은 있는데, 정신 상태가 저래서야… 어어?”

한참을 감정받이 노릇을 했더니, 그새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운 긴급 메시지.

최소 선진국 국가 정상급 이상의 거물급만이 보낼 수 있는 핫라인 화면에는 일본 국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일본 총리대신? 뭐야, 이건?”

딸깍, 딸깍. 마우스가 움직일 때마다 커지는 비서의 동공.

-하여, 해당 사항을 논의코자, 조속한 시일 내로 방일하여 주시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갑작스러운 일본 총리대신의 회담 제의. 그리고, 마지막 단락 끄트머리에 추신처럼 첨부된 무언가.

더 커질 것도 없을 만큼 커진 흑인 비서의 동공이었지만, 해당 내용은 그녀에게 추가적인 충격을 선물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특히나 이번 미·일 회담에는 특별한 손님 한 분이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만나보셨던 그 손님의 이름은 바로.

“서준 한… 탄약그룹 회장? 이 사람이 또?”

국제 정치외교 판에 태풍을 몰고 다니기로 유명한, 탄약그룹의 서준 한 회장.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비서의 엄지손톱에 잇자국이 나기 시작한 그 순간.

“이봐! 비서!”

“어맛, 깜짝이야!”

신난 얼굴로 문을 벌컥 열어젖힌 양 웬리 국무장관.

“드디어 때가 왔다! 서준 한!”

핫라인 내용을 확인했는지 서준 한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그는 연신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이 럭키 보이! 서준 한이 행운을 가져다줄 모양이로군. 당장 오늘이라도 일본 회담 일정을 잡도록. 최대한 빨리!”

이제부터 시작될 거대한 판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잔뜩 기대하며.

* * * *

양 웬리 국무장관이 팬티까지 벗고 소리를 지른 사실은 금방 내 귀에 들어갔다.

그 양반,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 물론, 주지사 정도는 만들어줄 업적은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도 Made in North Korea로.

“그거, 그래서. 실제로 북한 애들 돈 말이여. 세탁 들어가고 있는 건 맞고?”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

아직 정확히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김원철 아저씨.

나는 팔걸이에 팔을 올려두고는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돈세탁도, 그리고 마약 유통도 사실 하나도 안 했습니다.”

“응…?”

“어차피 장성택한테 사기 치고 펑 터트릴 건데 뭐하러 합니까?”

가짜.

“아니, 그럼 그 많은 마약 재고는?”

“일본 경시청 지하 창고에 차곡차곡 모여 있지요.”

“엉…?”

이것도 가짜.

“어차피 북한에 돈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물건 받아서 돈세탁하는 건데, 위조 장부만 보여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다 가짜.

기무라 와치루로서 장성택과 맺은 모든 계약은 다 가짜다.

이행할 필요도 없고, 이행해서도 안 되는, 오로지 북한에 대한 사기만을 위한 가짜 계약.

“그게 다 가짜여서 그렇지.”

그리고, 그 가짜 계약에 따라 송금된 미화 50억 달러는, <기무라 캐피탈>의 계좌 안에서 살살 녹고 있다.

딱 한 방. 일본과 미국의 용인을 얻어 탄약그룹이, 그리고 내가 삼킬 수 있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그럼… 오늘 양 웬리 장관은 또 왜 만나는 건디?”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일본에 양 웬리 국무장관이 외교 회담을 하러 온 바로 오늘. 기무라 와치루는… 한서준이 될 것일 터.

“도화선이 다 마련되었으니, 이제 폭죽놀이를 하려거든 성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냥? 양 웬리가?”

비행기 창문 아래 보이는, 도쿄의 모습. 나는 이제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기무라 와치루를 한서준으로 바꿔 줄, 살짝 정신적으로 맛이 간 성냥 같은 남자를.

“당장이라도 주지사 공천을 받으려고 머리통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성냥인걸요. 오늘 한번 제대로 긁어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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