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사기꾼이 되는 법(3)
우지끈!
상하이 푸둥지구, 고층 건물 꼭대기 층. 평소 쥐 죽은 듯 조용한 오피스는 오늘따라 불청객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소란스러웠다.
급히 로비로 나가, 이 초대받지 못한 손님을 말리는 옌룽.
“한, 한화기 고문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놔라! 주인끼리의 자리다. 네깟 놈이 낄 계제가 못 돼!”
차가운 얼굴을 한, 분노에 찬 한화기의 모습.
아니, 그 표정은 분노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목숨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벌인 일. 이 일이 최소한 날개조차 펴보지 못하게 된다면, 절벽 위에서 뛰어오른 후의 미래는 오직 추락뿐이었으니까.
“버러지 같은 놈들! 네놈들 움직이는 것 따위,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주군께서도 지금 수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 중이십니다. 조금만 기다라시면 장성택 그자와 다시 연락을…!”
“이 손 치우지 못하나!”
보안 직원 그 누구도 감히 말리지 못할 만큼, 한 층 전체를 울릴 만큼 크게 내지른 함성.
손목을 잡은 옌룽마저 거세게 뿌리친 그는, 사무실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방문을 발로 거세게 밀어 찼다.
-쾅!
경첩이 헐거워질 만큼, 격한 파공음을 내며 열린 문.
곧바로, 방 안에서 창밖 풍경을 내려다보던 사내 하나가 거울에 비친 한화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한화기 고문님.”
“제임스 왕 이사.”
끼익, 힘을 주어 끌어당긴 철제 의자. 그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한화기는 제임스 왕 이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설명을 들어 보지. 어찌 된 일인가.”
마지못해 돌아선 제임스 왕 이사.
“후우… 익히 아시는 대로입니다.”
한화기 바로 앞에 마주앉은 그는 제 나름대로의 변명을 시작했다.
호의적이었던 북한의 장성택. 그러나 무슨 일인지 갑작스럽게 부린 변덕.
임시 계좌에 예치된 자금인지라 불가항력으로 빼앗기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자괴감과 무력감까지.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무언가 복기를 시작하는 한화기.
“북한 장성택 놈이 갑자기 돈을 빼고, 내 병신 같은 아들놈은 마약으로 중국 감옥에 처넣어졌다라.”
마치 흘러간 선율을 하나하나 되짚어 떠올리는 작곡가처럼, 그는 장성택이라는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를 되새겼다.
“그것도 하필이면 동시에 말이지.”
“그렇습니다만….”
“이봐, 제임스 왕 이사. 당신은 이상하지도 않은가? 이렇게 맞물려지는 것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독사 같은 눈으로 한화기가 하나하나 복기한 오선지 위에는, 묘한 불협화음이 작곡되어 있었다.
마치 듣는 이의 귀를 의도적으로 괴롭게 만들기 위한 불협화음이.
“정보가 샜다. 어디선가.”
“그게 무슨…!”
“조폭 놈 중에 입을 가볍게 놀린 놈이 있을 수도 있고, 북한 내부 문제일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휙, 휙. 한화기 자신과 제임스 왕 이사 두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는 손가락.
“나나 당신. 둘 중 한쪽에서 보안이 뚫렸을 수도 있을 터.”
“주군께서 그러실 리는 없습니다!”
보다 못한 것이었을까? 시뻘건 얼굴로 방 안으로 들이닥쳐 소리치는 옌룽.
“옌룽. 그만.”
“주군!”
“진정하게. 가만히 있어.”
그제야 비로소 가라앉은 방 안의 분위기.
똑딱똑딱, 시계추 소리만이 가득 메운 공간 속에서, 한참을 고심하던 제임스 왕 이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능한… 일입니다.”
“인정은 하는 건가?”
“그렇지요. 그리고, 지금 책임 소재를 색출하느니, 누굴 탓한다느니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고요.”
“뜻은 대충 맞게 가는군. 해서.”
깍지 낀 손으로 한쪽 무릎을 당기며, 제임스 왕 이사를 노려보는 한화기.
“자금 조달.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금 조달.
그가 이곳 상하이까지 온 가장 큰 이유.
현재 자금 상황으로는 조석구의 2,000억 원과 주괘율의 1,500억 원을 더한 3,500억 원뿐.
최소한으로 필요한 1조 원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
한화기의 눈길을 피하며, 제임스 왕 이사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아직…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중국 내에서 끌어올 자금도 없다는 건가?”
“최대한으로 모은다면야, 한화 2,500억 원 언저리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겠지요.”
이제 부족한 금액은 4,000억 원.
그것도 중국 내에서 자금 조달이 가능할지조차 불투명한 상황.
그 상황을 설명하며 제임스 왕 이사가 변명하듯 말을 꺼내었다.
“제가 다시 장성택 쪽과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잠깐.”
한쪽 손을 들어 그의 말허리를 끊은 한화기.
무언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눈을 감은 그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 분간 찾아온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갑작스런 한화기의 통찰이었다. 자신이 어째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통찰.
“장성택은 한서준 그놈과 손을 잡았다. 정황상 그리 보는 것이 맞지 않겠나?”
“……!”
“선수를 친 것이지. 그 찢어 죽일 놈이.”
한순간에 맞춰진 퍼즐.
그 명쾌하고도 절망적인 퍼즐 그림을 보고 망연자실한 모습의 제임스 왕 이사.
“한서준, 그자가….”
그러나.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리겠군.”
“한 고문님?”
“간단한 일 아니겠는가.”
절규에 찬 상황 속에서 무언가 빛을 본 듯한 한화기.
차갑도록 시린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그는 모든 것을 베팅한 도박사의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북한에서 장성택의 자금을 못 끌어온다면, 그 반대편 자금을 끌어와야겠지.”
“설마…?”
저벅저벅, 자리에서 일어난 한화기는 방 한가운데의 무언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흑색 칠을 한,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포커 테이블.
탄약그룹의 불꽃 로고처럼 새빨간 칩 하나를 집어 든 그는, 그것을 뒤섞인 카드 사이에 던져 넣었다.
“어디 한번 떠보자고. 김정은 그놈이 제 고모부와 사이가 얼마나 좋을지. 물론.”
건드려서는 안 될, 최악의 위험을 짊어지고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도박사처럼.
“나는 최악의 경우에 판돈을 걸 것이고.”
* * * *
같은 시각.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연회장.
“그야말로 정신이 제대로 나간 사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총리대신 각하.”
자민당 간사장과 함께 2층에서 난간을 잡고 아래층을 내려다보는 일본 총리대신.
연회장, 길게 늘어진 식탁 정중앙에는 한 남자가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그의 욕망만큼이나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흐르는 레어 스테이크를 입가에 쑤셔 넣으며.
“참, 사람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탐욕적인 경우도 있다 싶습니다.”
“한서준 회장이 길을 잘못 들였지. 그때 예루살렘에서 괜히 가슴에 불을 지펴 놓아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대표자들이 한데 모여 선언하며 평화의 의식을 나눈, 속칭 ‘예루살렘 선언’.
노벨 평화상 후보자까지 오른 양 웬리 장관의 주가는 그로 인해 수직상승한 상황.
한껏 달아오른 몸값에, 이제 그의 눈에는 다음 스텝만이 보일 뿐이었다.
텍사스 주지사. 미합중국 대통령 자리로 가는 그 관문이.
-달그락!
그제야 배가 찼는지 도자기 접시 위로 포크와 나이프를 올려두는 양 웬리 국무장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일본의 총리대신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 결국, 지금 와서는 모든 것이 이렇게 연결되었지만.”
자신을 올려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양 웬리 국무장관에게 환한 의전용 미소를 보이면서.
“꼭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지.”
저벅저벅, 나선형 계단 바로 앞에서 만난 두 정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악수를 청한 두 사람은, 각자의 손을 꽉 붙잡으며 인사말을 내뱉었다.
“어서 오십시오, 양 웬리 국무장관님.”
“오래간만입니다, 총리대신 각하. 그나저나.”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는 양 웬리 국무장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게 아니냐는 표정으로, 그가 물음을 던졌다.
“서준 한. My lucky boy. 그자는…?”
“성격도 급하시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 솔직하게 탐욕적인 사람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일본 총리대신.
“원래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도착하는 법이니까.”
그 순간.
끼익 소리와 함께 양 웬리 국무장관의 등 뒤에서 열린, 연회장 정문.
“마침 오는군.”
환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배경 삼아 걸음을 옮기는 오늘의 주인공.
“두 분 다 간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총리대신 각하. 그리고.”
일본 총리대신과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은 그는,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내민 한쪽 손.
“양 웬리 국무장관님.”
그리고, 양손으로 그 손을 꽉 쥐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양 웬리 국무장관.
“서준 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 * *
“노벨 평화상은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지. 그것만 있었어도 주지사도 건너뛰고 바로 대통령까지 도전했을 텐데!”
무슨 어린애를 달래는 것 같다.
욕망에 너무나 솔직한 어른이인 양 웬리 국무장관.
“물론, 내 텃밭을 먼저 가꾸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텍사스는 아주 비옥한 텃밭이죠.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만 꽉 잡고 가도 든든할 정도로.”
나와 마주 본 채 앉은 양 웬리 국무장관.
이미 오래 기다렸는지 벌겋게 핏줄 선 눈은 욕망에 취해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러면… 생각보다 일찍 본론을 꺼내 들어도 될 터.
“특히나, 미국의 위상을 떨치는 일을 아주 좋아하는, 애국심 넘치는 지지층 아니겠습니까?”
툭 하고 던진, 노골적인 본론.
와인을 입에 머금던 도중, 눈썹 한쪽을 추켜올린 양 웬리 장관이 웃음 지으며 내게 되물었다.
“흐흐흐. 그래서, 우리 지지층의 애국심을 자극할 소재는 뭔가?”
“여기 옆에 계시지 않습니까?”
한쪽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일본 총리대신을 가리킨 나는, 하던 이야기를 연이어 나갔다.
“폭증하는 북한산 마약 중독자 때문에 고통받는 동맹국의 국가원수.”
“What? Made in North Korea?”
“샘플을 좀 보시겠습니까?”
아리송한 표정의 양 웬리 국무장관에게,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비닐봉지 안, 너무나도 투명하고 반짝반ᄍᆞᆨ 빛나는, 새하얀 결정.
김범호와 한서후가 그토록 좋아하는 북한산 마약이었다.
“최고급 순도입니다. 약쟁이들이 껌뻑 죽는.”
“이건… 확실하군. 한번 코에 가져다 대면 훅 가겠어. 정말이지 아름다운 크리스털이야.”
아무래도 양 웬리 국무장관도 소싯적에 약 좀 해 본 모양이다. 경험자가 아니고서야 내뱉을 수 없는 말을 한 그는, 조금 겸연쩍은지 헛기침을 하고는 내게 물음을 던졌다.
“크흠, 그래서. 이 북한산 마약이 뭘 어쨌단 말인가?”
“아아, 물론 이 정도로는 아무 효과가 없겠죠. 하지만.”
내 손 위에서 흔들거리는, 마약이 담긴 비닐봉지.
식탁 위, 일본 국토가 조각된 대리석 위에 놓인 마약은, 조금씩 조금씩 내 손가락을 따라 아래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마약이… 도쿄를 건너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까지 흘러들어 온다면?”
“……!”
“그리고, 그 ‘적성 국가’에서 만든, ‘북한산’ 마약이 장병들에게 퍼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면?”
머릿속으로 셈을 하는 모습의 양 웬리 국무장관. 굳이 계산기를 두들기게 둘 필요는 없다.
내가 곧바로 펼친 해답은 첫 설탕을 맛본 어린아이처럼 짜릿하기 그지없을 테니까.
“우리 텍사스의 공화당원들은, 양 웬리 장관님을 적극 지지하지 않겠습니까?”
“텍사스 주지사… 지지율!”
서방의 예루살렘. 동방의 북한. 양 웬리 국무장관의 양손에 두 개의 보검을 쥐게 된다면, 공천부터 당선까지의 길은 탄탄대로일 터.
마치 환각제를 맛본 사람처럼, 양 웬리 장관이 내게 소리쳤다.
“서준 한 회장! 내가 뭘 도우면 되겠는가?”
“간단합니다. 그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