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40화 (293/300)

240화 사기꾼이 되는 법(4)

평양, 조선노동당 청사 3층.

책상 서랍에서 구소련제 권총을 꺼내고는, 습관처럼 방아쇠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빙글빙글 돌리는 김정은.

그는 평소보다 좀 더 상기된 얼굴을 한 채,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보위부장에게 말을 내뱉었다.

“장성택이 이 찢어 죽일 간나 새끼. 아바이가 남겨 주신 자금을 뒤로 빼돌린 건가?”

“아마도 그리 판단하심이 옳으신 듯합네다, 위원장 동지.”

담배연기로 매캐한 방.

심기가 불편한 김정은의 앞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는 순간, 이 매캐함에 화약 연기까지 더하게 될 터였다.

최대한 사근사근한 얼굴로,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며 입에 발린 말을 내뱉는 보위부장.

“보나 마나 훤하지 않습네까? 10억 불은 제 놈이 툭 떼어먹고서, 손실을 보았다. 면목이 없다. 이런 말로 무마할 속셈일 겝니다!”

“훤히 보이는구만, 기래.”

“물론, 그 상하이 떼놈들이 직접 위원장 동지께 직보를 올렸을 줄은 장성택이 놈이야 꿈에도 몰랐을 터입네다.”

“그도 그렇지비.”

철컥, 묵직한 금속음과 함께 잠겼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권총의 안전장치.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기라도 한 듯, 김정은이 탁자 위에 권총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제임스 왕이라 했던가? 양놈 이름이나 쓰던 그 부르주아지 놈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었으니까.”

최근 며칠간, 김정은에게 간곡히 만남을 청했던 제임스 왕 이사.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만났던, 그 중국 사내를 회상하기 시작한 김정은.

본래 그는 일개 중국의 사모 펀드, 그것도 권력의 끈과 이미 멀어진 지 제법 된 금융인을 만날 생각은 아니었다.

제임스 왕 이사의 입에서 세 글자, 장성택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경애하는 위원장님.’

늘 습관처럼, 치즈를 곁들인 포도주를 맛보며 빈객을 맞이한 김정은.

그는 다급함이 뚝뚝 묻은 제임스 왕 이사에게는 제대로 된 눈길조차 주지 않고선,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고저, 장성택이에게 받은 돈을 맛도 못 보고 회수당했다지비?’

‘그, 그렇습니다. 이는 정말 계약 위반이며 금융가의 관습에도 위배되는….’

‘그만.’

철컥, 무심한 듯 느릿느릿 뽑아 든 권총 한 자루.

정색한 표정의 김정은은 당황한 제임스 왕 이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기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는 기야?’

‘위, 위원장님….’

‘네놈이 닭 쫓던 개처럼 병신 된 걸, 내래 대신 메꿔달라고? 다 필요 없고.’

탄창에 하나씩 채워지는 총알, 가득 채워진 가늠자 중심선.

전등 빛 아래 구리 탄피에 반사된 빛이 제임스 왕 이사의 목에 칼날처럼 내려앉은 그때, 김정은은 손에 쥔 권총을 앞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숨김없이 말하라! 너이 떼놈들과 장성택이가 이 공화국의 국부(國富)를 담보삼아 무신 협잡질을 하려 했는지를!’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이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을 만큼 느슨해진 것은,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난 후가 되고 나서였다.

탄약그룹 경영권 분쟁부터 시작한, 지난 4년 반의 지난한 전쟁. 그리고, 이어진 장성택과의 연결고리.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기래, 그렇게 된 거였구먼. 어쩐지 장성택, 이 늙다리 놈이 순순히 내 말을 듣나 싶더니만.’

분명 무슨 내부 사정이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긴 김정은.

일그러진 표정을 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탁, 치고는 바깥에 대기 중이던 금고지기를 불렀다.

‘이봐! 39호실 부장!’

‘예, 예! 위원장 동지!’

‘이 떼놈 말이야, 모자란 돈이 얼마라고?’

‘남조선 돈으로… 6,000억 원이라고 합네다!’

‘그럼 하얼빈 은행 계좌 통해서 바로 1조 원 빌려주라우! 지금 당장!’

갑작스런 결정에 어안이 벙벙해진 제임스 왕 이사.

‘어째서…?’

‘이거 돈 좋다는 떼놈도 매번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건 아니구먼, 기래.’

키득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김정은은 뒤룩뒤룩 살찐 손가락 두 개를 허공에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내래 두 가지 조건을 걸갔어. 하나는 당연히 이번 일에서 가져갈 수익의 70%.’

조금 과하다 싶은 비율 분배.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상황.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 제임스 왕 이사의 모습을 본 김정은은,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나머지 하나는, 장성택이 그 썩을 놈의 감시.’

‘감시라면…?’

‘거, 일본에서 마약 팔고 다닌다 했잖나. 기무라 와치루라는 왜놈하고 손잡고.’

박하 향이 나는 쿠바산 시가 하나를 입에 물고는 연기를 길게 내뿜는 김정은.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들려오는 정보를 다 물어오라. 기무라 그놈이 금고에 처넣은 50억 불, 그것도 나중에 되찾아야 할 자금이니까.’

이미 제 아비가 묻어 두었던 미화 50억 달러는, 끓는 물 속의 녹는 눈처럼 형태를 잃은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 * * *

일본, 오키나와.

“에취!”

“뭐여, 감기여? 환절기라 그른가, 아니면 누가 우리 회장님 욕을 해서 그른가?”

갑자기 찾아온 재채기.

9월의 날씨가 그리 매서운 것도, 옷을 얇게 입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답은 정해져 있겠지.

“신체 하나는 튼튼하니 전자는 아닌 것 같고요, 아마 거의 100% 후자 쪽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내 지금쯤 뒷말을 하고 있을 사람은 저기 휴전선 너머 자신의 왕국에서 패악질을 부리는 김정은 한 사람뿐이겠고,

“하긴, 워낙 원한 사고 다니는 게 우리 회장님 팔자니까. 그리고.”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김원철 아저씨는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핵심을 짚어냈다.

“어쩌면, 이번엔 북한 지배 계층 전체가 회장님한테 원한을 가지게 될 것이고.”

“뭐, 사실상 확정이라 보시면 됩니다.”

이미 내 손에 들어온, 북한의 해외 비자금.

딱딱하게 굳은 설탕 덩어리 같던 이 돈은 당장 입 안에 넣을 수는 없었다.

일단 북한 돈, 그것도 마약과 관련된 돈이라는 것만으로도 먹어 치우기에는 글러먹었으니까.

“그 돈. 50억 달러. 이제부터 제 뱃속으로 들어갈 거니까요.”

물론, 이제는 먹을 수 있다. 적당한 망치 하나가 이 무식하게 튼튼한 설탕 덩어리를 잘게 부수고 흔적을 지워낼 것이니까.

그 망치의 이름은 양 웬리.

미합중국의 훌륭한 국무장관이다.

“흐흐흐, 진짜 타고났어, 이런 거는. 읏샤!”

거센 기합을 내지르며 하늘하늘한 호텔 테라스 커튼을 걷는 김원철 아저씨.

그리고, 바깥으로 보이는, 남쪽 푸르른 바다의 풍경.

“여긴 확실히 가을인데도 따숩네. 어떻게, 양 웬리 그 양반은 좀 진정되었을라나 몰라?”

“그럴 리가요. 애당초 제가 건넨 그 샘플. 귀신같이 낚아채 간 사람이 양 웬리인데.”

내 눈에 비친 바다는 참 맑고 투명했다.

마치 그날, 일본 총리대신과 함께한 자리에서 꺼내 들었던, 북한산 마약의 결정 색깔처럼.

* * * *

서방에서는 예루살렘 선언을, 동방에서는 북한산 마약과의 전쟁을. 텍사스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가는 꿈에 푹 빠진 양 웬리 국무장관.

행복한 표정의 그는 내게 손을 내저으며 목청을 드높였다.

‘잠깐, 잠깐! 나머지 뒤쪽 시나리오는 내가 쓰도록 하지!’

그러고는, 곧바로 내 손에 든, 마약이 담긴 비닐봉지를 낚아챈 양 웬리 국무장관.

‘잠시 실례하지. 원래 작가라는 직업은 제정신으로는 못 하는 거니까.’

‘양 웬리 장관님…?’

투투둑, 긴 대리석 테이블 위에 쏟아지는 투명한 마약 결정.

지갑에서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어 빨대처럼 둘둘 말기 시작한 그는, 콧구멍에 그것을 쑤셔 박고는 곧바로 거센 숨을 들이쉬었다.

미친 듯한 쾌락이 농축된, 그 마약을 코로 빨아 마시며.

‘Oh, Shit! God damn, Jesus Christ!’

‘아니, 장관님! 지금 무슨…!’

‘후아, 후아… 오우! 이거 정말 죽이는군! 미친 퀄리티야! 특히 이런 최상품은 정말 오래간만이고!’

시뻘게진 코를 부여잡고 반쯤 풀린 눈으로 내게 따봉을 날리는 양 웬리 국무장관.

아무리 마약에 관대한 미국이지만…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은 상황.

그러나, 내 당황스러움 따위 전혀 중요치 않다는 듯, 양 웬리 국무장관은 그저 본인이 할 말만 쭉 이어나갈 뿐이었다.

‘우리 미군은 말이지. 헌병 보직이 진급이 느리기로 유명하지. 그래서, 다들 실적에 미쳐 있고. 어디 보자….’

딱, 딱!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 흑인 비서관을 부르는 양 웬리 국무장관.

서류철에 적힌 오키나와 미군 기지 장성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그는, 풀린 눈을 한 채로 그 자리에서 내게 작전을 말했다.

‘아주 좋군! 여기 존슨 뭐시기 헌병감! 흑인인 건 좀 짜증 나지만, 뭐 어떤가? 오히려 검은 때 묻은 놈일수록 더 악바리거든! 쓰흡!’

분명 흑인 비서관을 앞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인종차별 발언.

비서관은 익숙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저 양 웬리 국무장관이 약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나와 같이.

‘음? 벌써 다 했나? 이보게 서준 한 회장. 아무래도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 보낼 여유분은 따로 구해야겠군!’

정말이지… 여러모로 독특한 캐릭터인 양 웬리라는 사람.

잔뜩 각성한 그 모습을 회상한 나는, 호텔 테라스로 나아가 오키나와의 해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국 국무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약이나 하고 말이죠.”

“뭐, 본인은 그깟 약기운쯤이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니까,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그리고, 해변가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미군.

내가 입안하고 그 약쟁이 장관이 디테일을 완성한 그 작전이 지금 닻을 올린 모양이었다.

“슬슬 시작하나 보네.”

Made in North korea.

북한산 마약과의 가짜 전쟁을.

* * * *

-컹! 컹! 컹!

오키나와 미군 기지.

미친 듯이 짖어대는 군용 셰퍼드 한 마리.

“천장 타일 안쪽! 약 1kg의 마약 발견했습니다!”

“화장실 뒤쪽! 500g 규모 마약 발견!”

코를 벌름거리는 군견이 멈춘 자리에서는 여지없이 마약이 발견되었다.

무언가 어설프고, 또 작위적인 곳에서만.

“이거 개판이구만! 영내에서 마약이라니! 그것도.”

그리고, 그 장소만큼이나 어설프고 작위적인 분노를 연기하는 미군 헌병감.

그는 마약 포장지에 적힌 한글을 어눌하게 읽으며 입을 열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제 3 함흥 화학 공장.

“북한산. 적성국에서 생산한 마약이라니 말이야!”

“존슨 헌병감님. 양 웬리 국무장관님 오십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딱 맞은 시간에 부대를 찾은 양 웬리 국무장관.

“충! 성!”

“아아, 그래. 어떻게, 진척은 좀 있고?”

기자들을 잔뜩 대동한 그는 존슨 미군 헌병감과 허공에서 눈빛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 수 있는 눈빛을.

“간악한 악의 축 노스 코리아가 감히 신성한 군부대 안에 협잡질을 한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노여움을 터트리는 입가에 지어진 자그마한 미소.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그 위에 덮어씌우며, 그는 카메라를 바라본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웅변하듯 말했다.

“나 양 웬리는 미합중국의 국무장관으로서 긴급히 명령합니다. 현 시간부로 북한산 마약과 관련된 모든 자금을 동결토록 조치합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마약보다 더 달콤한, 권력이라는 놈을 맛볼 생각에 취한 채로.

“특히, 일본계 금융기관 중 의심되는 부분은 아주 엄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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