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얼음, 땡!(1)
장성택의 김정은 집무실에 대한 도청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졌다.
평소, 꼭 필요한 순간에만 도청기를 작동하는,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아예 상시 켜둔 도청 내용을 녹음까지 해 두었으니까.
“이런… 이, 이, 이럴 수가!”
그리고, 지금.
헤드셋을 쓴 채로, 첫 녹음본을 재생하는 장성택의 얼굴에는 검푸른 색의 당혹감이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선택했던 결정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돌아왔기에.
“이게 무슨 소리야! 상하이 떼놈이 왜 김정은이를 만났다는 기야!”
<상하이 캐피탈>의 제임스 왕 이사. 그가 김정은과 만나. 장성택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1호 동지…?”
“철규, 너도 이 와서 녹음본 좀 들어 보라! 어서!”
불안한 표정으로 장성택을 바라보는 사촌 동생 장철규.
“……!”
녹음된 내용을 듣자마자, 그는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가며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허어… 이러면, 이러면, 지금 목숨이 총구 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이런 깡끄리 죽탕을 쳐버릴 떼놈 새끼! 김정은이 그놈 앞에서 함부로 혓바닥을 낼름거리다니!”
털썩, 격노를 내지르다 갑자기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장성택.
풀린 두 다리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음을 한탄하며, 장성택은 고개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전부, 끝인 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자신의 지난 인생.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의 딸, 김경희의 마음을 앗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부마 생활.
뒤이어,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 밑에서의 기나긴 세월.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인생이었다. 늘 권력이라는 태양 가장 가까이에서 행성처럼 공전하던 그였으니까.
그러나.
“그나마 딸년이 나보다 먼저 간 게 다행이로구만, 기래.”
이제 곧, 조카로부터 죽임 당할 운명인 장성택.
허리춤에 손을 대어 권총 손잡이를 매만지던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결심했다.
최소한 죽더라도, 인간답게 죽기로.
“보위부 놈들, 내래 철사로 껍따구가 벗겨지도록 온몸을 긁어대다가 고통스럽게 죽이겠지. 그 꼴을 당할 바에야….”
철컥, 장전된 권총 총구를 입에 물고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 장성택.
이제 곧, 이 주름진 손가락만 당기는 그 순간, 그는 이 두려움에서 해방될 것이었다.
모든 아쉬움과 한탄스러움은, 이 비좁고 어두운 지하 벙커에 남긴 채로.
콧김으로 한숨을 내쉬며 장성택이 손가락에 힘을 주려는 바로 그때.
“1호 동지. 아니, 성택이 형님. 잠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헤드셋을 벗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장성택에게 몸을 날려 권총을 치워버리는 장철규.
“철규, 너이도 괜히 고생허지 말고 내 따라오라! 설마하니 자살한 놈 가족한테까지 대놓고 모질게 굴겠나?”
“아니, 아니! 그거이 아니고! 요 김정은이가 말한 내용, 진정하시고 다시 한번 들어 보시라요.”
“뭐이…?”
틱, 천천히 필름을 감으며 재생되는 녹음 장비.
제임스 왕 이사에게 10억 불을 송금하는 이야기로 넘어가자, 김정은은 수익의 70%를 요구하고는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머지 하나는, 장성택이 그 썩을 놈의 감시.
-감시라면…?
-거, 일본에서 마약 팔고 다닌다 했잖나. 기무라 와치루라는 왜놈하고 손잡고.
두근두근.
제멋대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붙잡으며 식은땀을 흘리는 장성택.
북처럼 울리던 심장 박동은 녹음 속 김정은이 내뱉은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정보를 다 물어 오라. 기무라 그놈이 금고에 처넣은 50억 불, 그것도 나중에 되찾아야 할 자금이니까.
툭, 스위치를 눌러 녹음 파일을 끈 장철규와 장성택.
목구멍 너머로 긴장감을 삼키며,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설마…?”
“그렇습네다. 아직, 김정은이 그놈은 형님을, 그리고 형님 세력을 깡끄리 날릴 수 없습네다. 그 50억 불 때문에라도.”
살았다, 라는 생각에 탁 풀린 긴장감.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장성택은 헛웃음과 함께 한탄의 말을 내뱉었다.
“저 50억 달러 때문에 죽을 운명이었던 내가, 이번엔 50억 달러 때문에 어깨 위에서 모가지가 붙어있게 생겼다니.”
“어찌 됐건, 연말까지는 시간이 있습네다, 형님.”
“그렇지비. 그럼 이를 어찌한다….”
이미 김정은이 눈치를 챘다면, 쿠데타는 실행하기 어려울 터. 그렇다면 남은 것은 망명뿐이었으나, 그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중국, 러시아는 당연히 사전에 손을 써 두었기에 불가능할 터다. 아마 육로 국경을 넘기도 전에 저지당할 터.
물론 남한과 미국에 손을 뻗는 것은 애당초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최대한 안전하게 튀어야 한단 말인데….”
“형님, 잠시만.”
그렇게 고민을 이어나가던 그때, 갑자기 울리는 장철규의 위성 전화.
“어, 자본가 동지. 살아 계셨구먼. 이 사달이 났는데, 멀쩡하다니. 정말이지 일본 총리대신 연줄 하나는 튼튼하구먼.”
마약 유통과 돈세탁을 담당하는 기무라 와치루의 전화.
그러나, 평소와 달리 전화를 받은 장철규의 얼굴에는 곧바로 당황스런 빛이 서렸다.
“뭐라…?”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었기에.
“잠깐만 기다리라. 아니지, 아니지. 내래 전화를 돌리갔어. 1호 동지하고 직접 말하라.”
궁금한 듯, 곧바로 물음을 던지는 장성택.
“무슨 일이냐?”
“성택이 형님. 기무라 와치루 대표가… 아니, 이제는.”
그는 그 순간에도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이 위험이, 결국 누군가가 설계한 거대한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한낱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후우, 탄약그룹 한서준 회장이라는 자가 이리 말합디다. 구명보트를 던져줄 터이니, 어서 헤엄쳐 오라고.”
* * * *
오키나와의 바닷물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투명했다.
양 웬리 국무장관이 좋아서 사족을 못 쓰는 북한산 마약 결정만큼이나.
“기가 막히지? 내가 현역 때 바다 수영 하나는 1등이었다니까?”
“진짜 특전사 출신은 맞나 보네요.”
저 멀리 암초가 보이는 곳까지 순식간에 자유형으로 갔다가 돌아온 김원철 아저씨.
평소 뭔가 뺑끼스러운 모습만 보아서는 영락없이 방위병의 이미지건만, 이럴 때는 확실히 북파공작원 출신 태가 나기는 한다.
“누구 물에 빠진 사람 있으면 귀신같이 건져낼 수 있어야. 아, 물론.”
뭐, 이제는 굳이 북한까지 가지 않아도, 북한 사람을 보게 생겼지만.
“저어기, 북쪽 동네에서 여기 오키나와까지 헤엄쳐 오는 양반은 우리 회장님이 좀 건지셔야 하고.”
“안 그래도 그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바닷가 선베드에서 일어나 머리에 꽂아 넣은 선글라스를 내려 쓴 나.
이제 슬슬 들어갈 시간이다. 여기까지 몸소 행차할 북한 사람을 맞이할 채비는 해야 하니까.
한때 1인자의 아성을 노리던, 몰락을 앞둔 2인자인 북한 사람을.
“아무래도, 북한의 그 자금, 뒤탈 없이 시원하게 먹어치우려면, 장성택의 협조가 필요할 테니까요.”
그렇게 다시 호텔로 돌아간 나.
뜨거운 물줄기를 몸에 맞으며, 나는 바로 어제 있었던 장성택과의 통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너이 종간나새끼, 지금 나 가지고 장난하니! 너 이게 무슨 개짓거리 하는 기야!
내 정체를 밝히자 아주 단단히 역정을 내던 장성택.
-왜놈인 줄 알았더니만은, 남조선 아새끼라고? 그것도 대기업 자본가 부르주아지라고? 너이 비싼 밥 먹고 할 짓이 그래 없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 눈에 선했다.
-이 죽탕을 쳐버릴 놈! 너, 거기 가만히 있으라! 내래 특작조를 파견해서 네놈 모가지를 썰어버리갔어!
심지어 암살 운운하며 제 분노를 감추지 않는 모습.
그러나.
‘그 특작조가 당신 명령대로 내 모가지를 썰 것 같습니까? 김정은이 명령을 받고서, 당신 모가지를 썰러 가는 게 더 그럴듯한데요.’
-뭐이? 야, 이 개자슥아. 지금 무신 헛소리를 하니?
‘이봐, 슬슬 상황 판단은 할 때가 되지 않나?’
그 분노는 뒤이은 내 말 한마디에 손쉽게 가라앉을 것일 뿐이었다.
‘당신 목숨줄 50억 불. 지금 내가 쥐고 있잖아.’
-……!
‘사전에 알고서 개성에서부터 작업한 거라고. 김정은이가 장성택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까지 전부 고려해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 소리.
째깍, 째깍. 한참이나 담배 연기를 내뿜던 장성택은, 재떨이를 꽁초로 수북하게 채울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힘 빠진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악독한 놈. 뭐 이런 지독한 놈이 다 있는가? 내래 단단히 엮였구먼, 기래.
‘이제 좀 대화할 상태가 되었나 봅니다. 자, 그럼. 선택의 시간입니다.’
선택의 시간.
모든 퇴로를 차단한 장성택에게 던져 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
누군가에게는 극도로 불합리하지만, 내게 있어 극도로 합리적인 그 선택지를 다시금 되새기며, 나는 장성택에게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부터 두 개의 옵션을 드리겠습니다. 절충안이나 제3의 길은 없으니까, 괜히 딴죽 걸지 마시고요.’
-후우, 어디 말해보라.
‘하나,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해 연말 즈음 고사포에 맞아 고깃덩어리로 죽음을 맞이한다.’
-하! 선택지는 무신! 그냥 대놓고 제놈 하고픈 대로 하겠다는 것이구먼.
나름 격렬한 저항이 있으리라 생각했었거늘, 장성택은 말투만 거칠 뿐, 다른 발버둥을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라는 변수를 제외한 자신의 운명은 그저 끔찍함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뭐, 김정은이 고놈이라면, 내래 고사포가 아니라 야포를 써서라도 피떡을 만들 테지만.
‘그러면,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네요.’
그렇기에, 너무도 쉽게 말을 꺼낸, 그 마지막 선택지.
‘장성택, 당신이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 없는, 그 유일한 선택지는 바로….’
그 선택지는 회상에서 깨어난 지금, 이곳 오키나와 호텔에 도착한 장성택의 입을 빌려 다시금 상기되었다.
“내래, 한서준이 네놈이 통치 자금 빼돌리는 데 총알받이가 되어 달라?”
“핵심을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물론.”
장성택의 관리 하에 있던, 북한의 해외 비자금 50억 달러.
그것을 내가 쓸 수 있도록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
그리고, 그를 위한 촉매로 가장 적당한 것은 다름 아닌, 원래 그 자금의 금고지기인 장성택이었다.
“총알받이가 된다고 실제로 총을 맞는 건 아닙니다. 멀쩡히, 유복하게, 해외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사실 겁니다.”
“끄응….”
물론, 이제부터는 북한 김씨 일가를 힐난하며, 기나긴 망명 생활을 이어나가는, 투사 장성택으로서 살아가야 할 운명이겠지만.
“어쩌시겠습니까? 친환경 인간 비료 대(對) 슬기로운 망명 생활. 암만 봐도 답은 정해져 있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