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얼음, 땡!(2)
평양 외곽, 김정은의 별장.
전날 폭음을 해서일까,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특각으로 요양을 떠난 김정은.
그 육중한 몸뚱이가 모두 들어가고서도 한참이나 남을 법한 침대 위에서, 그는 여인 하나에게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이리 가까이 오라.”
“위원장 동지를 모시겠습네다.”
“네년은 기쁨조 중에서도 발군이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생기있다.”
“모난 년을 이리도 좋게 보아 주시니 참으로, 참으로 기쁩네다.”
누운 채로 입에 문 쿠바산 시가.
거친 잿빛 연기를 천장 위로 뿜어낸 김정은이 돌아눕자, 눈치를 보던 기쁨조 여성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십네다. 혹여 근심이 싹 가시기라도 하셨습네까?”
“그랬었지… 네년은 기쁨조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눈썰미가 좋기도 했지비.”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기쁨조 중에서도 나름 신뢰감이 쌓인 듯, 그녀를 곁눈질하는 김정은.
담배를 비벼 끈 김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입고는, 곧바로 창문을 열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꼭대기에서 평양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을 눈에 담으며.
“최고 존엄이라 함은, 그 우에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기야. 친족도, 경륜도, 인망도 깡끄리 뒤엎고 말이지. 특히나.”
살찐 손으로 꾹 붙잡은 목제 창틀. 솔 내음으로 진정되었던 그의 심장을, 다시 분노에 찬 혈류가 마구잡이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꼴에 고모부라는 곁가지 하나 들고, 천방지축으로 좌우 분간 못 하는 놈이라면 더더욱!”
쿵! 거친 파공음이 날 만큼, 신경질적으로 거세게 닫아버린 창문.
삐걱거리는 경첩을 뒤로한 채, 김정은은 안경을 쓰고는 탁자에 놓인 보위부 보고서 두 부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장성택이 놈의 모가지를 따버릴 수 있갔어.”
숙청.
연말로 예정된 그 숙청의 시곗바늘을 더 빨리 돌릴 수 있는, 보고서를.
‘고저, 자본가 왜놈이 슬슬 마약 주문을 줄이고 있습네다. 외화벌이 일꾼들 말로는 거의 세탁이 끝난 듯합네다.’
39호실 실장이 작성한 첫 번째 보고서. 딱딱한 문어체였지만, 마치 옆에서 보고하듯 들어오는 요점.
‘대규모 자금이 일본 쪽 금융기관에 예치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위원장님께서 신경 쓰시는 그 자금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리고, 제임스 왕 이사가 보낸, 두 번째 보고서까지.
대내외 모두 이구동성으로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성택이 관리하던, 미화 50억 불. 그것이 조만간 세탁이 끝나 김정은 자신의 품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환상을.
“내래 이 침대 우에서도 장성택이 놈의 모든 술수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알고 있다, 이거이!”
“역시 백두혈통의 본류를 손수 이으신 분답습네다. 이 미천한 년이 그런 분을 옆에서 모시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요.”
“기럼! 기렇티!”
자기 확신에 취해 웃음 짓는 김정은. 습관처럼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그는, 빙글빙글 권총을 돌리며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자, 그럼 나도 슬슬 시작해야겠군. 이봐! 밖에 누구 없나?”
평소와는 다른, 묘한 정적.
반 박자쯤 뒤늦게 대답한 목소리는, 그를 따라다니는 보좌진들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익숙하지만, 여기서 들어서는 안 될.
“예, 예! 위원장 동지!”
“뭐야, 보위부장이 왜 여기 왔나? 아, 일 없고. 거, 장성택이 놈이나 좀 불러 오라! 자금 회수를 할 때가 되었으니!”
“그… 그게 말입니다.”
당황한 얼굴로 말끝을 흐리는 보위부장. 순간,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한 기운에 김정은은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뭐야? 따로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무슨 공식이라도 된 것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고.
“장성택이 그 역도 놈이… 해외 자금 50억 불을 들고 일본으로 날랐습네다!”
“무슨…!”
“지금… 일본 국영 방송에서 아예 망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네다. 미리 막지 못해 죄송합네다! 죽여주십시오, 위원장 동지!”
* * * *
-찰칵! 찰칵! 찰칵!
터지는 셔터음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이제 환갑을 갓 넘은 남자.
주름진 이마, 감긴 눈, 검은 혈색까지. 자리에 앉은 장성택이 눈을 뜨자, 곧바로 전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장성택 부장님! 질문받아 주십시오!”
“미스터 장! 현재 심경이 어떻습니까?”
기자들을 바라본다기보다, 오히려 이들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을 한 장성택.
그는 나와 일본 총리대신, 양 웬리 국무장관이 서 있는 2층 유리창을 바라보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쳤다.
“지옥 같은 북조선 김씨 일가 독재 정권! 그 추악한 민낯을 바로 옆에서 보아온 저 장성택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적극 규탄합네다!”
완전한 항복을 뜻하는, 일종의 선서 비슷한 행동을.
“새롭게 얻은, 자유로운 세상 만세! 만세! 만세!”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내려진 사인.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비로소 장성택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스터 장! 질문 있습니다! 숙청설이 사실인가요?”
“신변에 위협이 있었던 점은 사실입네다.”
민감한 질문은 어물쩡 뭉그려뜨리기도 하고.
“방코 델타 차이나 뱅크의 미화 50억 불의 행방은 어디로 간 겁니까?”
“…해당 부분은 제가 차후에 설명토록 하겠습네다.”
해서는 안 될 대답은 흘리기도 하면서.
그리고, 나는 그런 장성택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누군가에게 웃음 지었다.
“외신 기자들 정보력 하나는 기가 막히네요. 안 그렇습니까?”
이제부터… 함께 사후 처리를 하게 될 두 사람에게.
“양 웬리 국무장관님. 그리고, 총리대신 각하.”
내 말에 먼저 대답한 사람은 양 웬리 국무장관이었다.
방코 델타 차이나 뱅크의 50억 달러에 대해 질문한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여는 양 웬리 국무장관.
“아아, 저기 저 깜둥이 기자 말이로군.”
“아니, 제발 인종차별 발언 좀.”
진짜 이 사람은… 능력은 좋은데 인품이 문제다. 자기 비서관이 흑인인데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단어를 사용하다니.
물론, 양 웬리 국무장관은 그런 지적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저 친구, 나도 잘 아네. 아주 찰거머리지. 한번 물었다 하면 손에 묻은 검은 잉크처럼 지워지질 않아.”
“…뭐, 기자들 펜 놀리는 것쯤이야, 미국 국무부 선에서 적당히 갈무리 지어주실 것이라 믿고요.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건.”
양 웬리 국무장관과 총리대신을 번갈아 바라보는 나.
뜸을 들이는 내 모습에,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씨익 웃음 짓고는 내 뒷말을 기다렸다.
“장성택에게 뜯어낸 이 50억 달러. 이 전리품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그렇겠지. 한번 케이크를 잘라 보자고.”
저벅저벅, 연회장 중앙의 식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양 웬리 국무장관.
그는 케이크 앞에 놓인 하얀색 플라스틱 케이크 칼을 내게 건네며 대답했다. 미화 50억 달러. 그 케이크를 어디 한번 먼저 잘라 보라고.
나는 서슴없이 그 하얀 칼을 받아들고는 대형 케이크 앞에 섰다.
“일단, 바깥손님들에게 보여 줄 큼지막한 덩어리로, 절반 좀 안 되게 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푹, 형형색색의 크림이 뭉개지며 잘려나가는 케이크 덩어리.
그 묵직한 덩어리는 접시에 담아 옆으로 치워졌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잘 보이는, 빛이 환하게 드는 곳으로.
“하긴, 저 개떼 같은 기자 놈들이 납득할 만한 겉치레는 있어야 할 테니.”
“그렇겠죠. 거기에 필요한 합리적인 금액은 20억 달러. 장성택이 미국 정부에 망명하면서 자금을 넘기는 모양새가 될 케이크 조각입니다.”
내 제안에 고심하던 두 사람은 이내 별다른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위장막으로 쓸 부분은 필요하긴 했으니까.
그제야,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제 생각을 내놓지 않던 일본 총리대신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남은 것은 30억 달러겠군. 이렇게… 셋이서 나눌 금액이 말이야.”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기대감.
그들의 눈동자에는 이 막대한 전리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선거 자금은 많을수록 좋은 법.
그렇기에…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들에게 최대한의 양보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를 내세울, 그런 결단을.
하얀색 칼을 뽑아 든 나.
“이렇게 가르는 편이 합당할 듯합니다.”
푹신한 케이크에 칼을 찔러 넣은 나는, 세 덩어리로 나누어진 케이크를 각각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20, 5, 5. 제가 20입니다.”
“20, 5, 5? 이보게, 서준 한 회장! 너무 욕심이 지나치군!”
종잇장처럼 얇은 케이크를 받아 들고는 역정을 내는 양 웬리 국무장관.
일본 총리대신 또한 조금은 실망한 듯한 모습이었다. 평소의 진중한 모습을 잠시 뒤로한 채, 멋쩍은 헛기침과 함께 실망스러운 감정을 드러냈을 정도였으니까.
“크흠, 한 회장님이 잘 와닿지 않으신가 본데, 이번 건은 우리 두 사람의 협조가 있어야 합니다.”
협조.
당연히 필요하다.
애초에 북한 비밀 자금이라는 떳떳하지 못한 돈을 중간에서 빼돌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당연히 권력을 가진 이들의 도움은 필수 불가결한 상황.
하지만.
“두 분 다, 잠시 이걸 보아주십시오.”
과연… 필수 불가결한 것이 이들뿐일까?
무표정으로 케이크를 바닥에 툭 던지는 나. 그리고, 이에 놀라는 두 사람.
“이게, 무슨…!”
“부디 멀리 보셨으면 합니다.”
나 또한 이들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사람은 분명할 터.
과거부터 쌓인 신용, 현재 내가 보여준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보여줄 협력 관계까지.
그렇기에, 거침없이 내지를 수 있는 수.
“저, 한서준이라는 사람. 그리고 제가 회장으로 있는 탄약그룹이라는 성벽.”
협조해라.
“누군가 지금 그 성벽을 부수려 하는 지금, 급선무는 그들에 대한 방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당신들도 나를 지켜라.
내가 당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만큼, 당신들도 내가 곤경에 처한 작금의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라.
그렇게만 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두 분 모두가 편히 기댈 수 있는, 견고한 성벽으로서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당신들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겠다. 라는 신호.
부드럽지만 지그시 바라보는 내 눈매에 압도된 듯,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양 웬리 국무장관과 일본 총리대신.
“크흠….”
“알, 알겠네. 그리하지. 나 또한 동의하겠네.”
그리고, 내가 보낸 그 신호를 충분히 이해한 두 사람.
빙긋, 웃음 지은 나는, 다시 하얀색 케이크 칼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쉽게 풀려서 다행이군요. 자, 이제부터.”
큼지막하게 잘려 나간 미화 20억 달러, 한화로 2조 원이 넘는 케이크를 어떻게 즐길 것인지를.
“저는 탄약그룹이라는 성벽을 지키러 떠나겠습니다. 그럼, 모든 방어가 끝나는 그날,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