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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44화 (297/300)

244화 다가오는 전쟁(2)

빈 살만이 화롯불 앞에서 내린 결정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울에까지 닿았다.

하얗게 사색이 된 얼굴로, 한화기의 집에 들이닥친 조석구와 주괘율.

“흐미, 시벌. 한 고문님요! 대관절 이것이 우찌 된 일이여잉!”

쾅, 경첩이 부서져라 큰 소리를 내며 한화기의 서재 안으로 들어온 조석구. 그는 거의 하소연을 하듯 반쯤 우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주 그냥, 빈 살만인지 살라당인지. 고 중동 모래밭 오랑캐 놈 때문에 와꾸 짜 둔 것이 싸그리 날아가 버렸어라!”

그리고, 그의 뒤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태블릿 PC 한 대를 건네는 주괘율.

“상황이 심각합니다. 이걸 좀 보시죠.”

그 안에는, 갓 뽑아낸 주식 관련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우후죽순 솟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증권신문] 빈 살만 왕세자, 탄약그룹과 결별? 사우디 국부펀드, 탄약그룹 주식 매도 시작!

혈맹이나 다름없던 탄약그룹과 사우디, 양측의 헤어짐을 추측하는 황색언론부터.

-[한성일보] 사우디 국부펀드 측은 불화설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번 매도가 정상적인 결정은 아니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겉의 베일을 들추어 진실을 힐끔거리는, 제법 그럴싸한 추측까지.

“…….”

그리고, 그런 소란스러움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이번 사태에 대해 숙고하는 한화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그렇게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던 그의 입에서 단호한 말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별것 아니군.”

“뭐, 뭣이여잉…?”

툭,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내려놓은 태블릿 PC. 무릎에 손깍지를 낀 채로, 심드렁한 얼굴을 한 한화기가 조석구에게 물었다.

“해서, 대응은 어찌하고 있나.”

“아, 대응은 무신 대응! 뭘 어짜겄소, 우덜도 싸게싸게 따라가 붙어야제!”

“따라간다?”

“먼저 팔아 재끼고! 그다음에 보자고! 일단 으데까지 떨구는지는 봐야 들어가든 할 거 아니요!”

격한 반응의 조석구. 상황이 급류를 맞아 출렁거리니, 미리 매집해 둔 주식부터 팔고 관망하자는 그의 말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잠깐.”

한쪽 손을 들어 폭주하는 조폭 두 사람을 제지하는 한화기.

딸깍, 딸깍. 주름이 깊게 팬 미간 사이로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연신 마우스를 달깍거렸다.

빨간 막대와 파란 막대. 호가창에서 연신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특정 숫자.

복잡하기 짝이 없는 보조 지표들을 이리저리 들이댔다 뺐다를 반복한 한화기는, 마침내 최종 결정을 내렸다.

“매도 중단. 기다리도록.”

“뭐, 뭐여?”

“호들갑 떨지 마라. 일단 주식의 움직임을 잘 보도록.”

환한 모니터에 고정되는 조폭 두 사람의 시선.

비록 푸른색의 매도 우위 상황이었으나, 매도와 매수 양쪽은 얼추 시소게임을 하듯 서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얼레? 매물이… 소화가 된다꼬?”

“한서준 그 영악한 놈이 판을 추잡스럽게도 짜 두었다는 뜻이다.”

확실히 재무 쪽에서 잔뼈가 굵기는 한 모양이었다.

모든 움직임의 함의를 뚫어보고는, 손바닥으로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혼잣말을 내뱉는 한화기.

“저쪽도 모든 것을 다 걸겠다는 것인가….”

침묵 속에서 목울대 꿀렁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운 지금, 마음을 먹은 한화기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이봐, 조석구. <상하이 캐피탈>에서 보낸 북한 자금. 지금 JL저축은행에 완전히 들어왔나?”

“내일 오후께 들어온다네잉. 오늘까지는 나랑 주 회장 돈으로 해부러야 혀.”

“그렇다면….”

탄약그룹이라는 거대한 성채를 향해 쏘는 첫 포문.

지금, 마지막 전쟁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지금 가진 모든 현금 6,500억 원. 바로 탄약그룹 순환출자 고리별로 투입한다! 물량부터 확보하도록!”

* * * *

“히야, 가관이네.”

“당연히 가관이지요. 일부러 개판이 되게끔 판을 짰으니까.”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사실 일이야 회장 집무실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하지만, 일부러 나는 김원철 아저씨와 함께 이곳 현장으로 왔다.

갑작스럽게 땅 위에 떨어진 초대형 운석처럼 한국 주식시장에 큰 충격음을 준, 빈 살만 왕세자.

아수라장에 가까운 장내. 그것은 비단 오프라인에서만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빈 살만 형님이 고춧가루 씨게 뿌렸쥬? 기관 놈들 거하게 물렸쥬? 외국인 놈들도 숨통이 턱턱 막히쥬?

-증권사 직원이다. 위에 쥬쥬 어쩌고 지껄인 놈, 잡히면 내 손에 사살당한다.

-응. 니 손이 있어야 할 곳은 한강 다리 난간이고요.

휴대전화 속, 온라인에서까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번 사건.

걸려 오는 전화를 끈 김원철 아저씨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내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국내 기관하고 외국인들이 난리가 난 것 같은 게, 나한테도 자꾸 전화 와서 물어본다니까?”

“개미 투자자들은 탄약그룹 주식에 별로 손을 덜 대는 편이니까요. 아무튼. 목표했던 것들은 하나씩 맞물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망대 위,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한강.

나는 손가락 세 개를 쭉 펴고는 그 가운데 하나를 접으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세간의 시선을 끄는 것과.”

세간의 시선을 끄는 것.

숙부와 <상하이 캐피탈>, 그리고 조석구·주괘율 조직폭력배 일당이 마음 놓고 일을 벌이지 못하게 눈치를 보게끔 하는 것. 아마 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쉽사리 자금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는, 나는 두 번째 손가락을 접으며 내 가슴팍을 두드렸다.

“저렇게 던져대는 기관의 패닉 셀(Panic sell) 물량을 받아먹는 것.”

“우리도 물량 확보는 해야 하니까.”

“거기에, 저 아수라장 속에서라면, 제가 매집하는 것이 좀 감추어지기도 하겠지요.”

마지막 남은 손가락을 접은 나.

나라는 자연인 자체가 매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 매집 흔적이… 탄약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바깥에 드러내는 것이 문제일 뿐.

“하긴, 순환출자 구조가 외부에 100% 공개되는 것은 좀 부담이기도 하고. 문제는….”

습관처럼 뒤통수를 긁으며, 증권사 어플이 깔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김원철 아저씨.

새하얀 화면 안쪽에는 누군가의 족적(足跡)이 담겨 있었다.

“이거 매도 물량, 저기 강남의 우리 한화기 고문님도 슬슬 입 벌리고 받아먹는 것 같지?”

“고민하는 흔적이 차트에 적혀있더라고요.”

빨간색과 파란색 캔들, 그리고 수많은 검은색의 글자와 형형색색의 보조 지표가 그리고 간, 숙부의 발자국이.

“먹을까, 말까? 먹어도 되나? 함정 아닐까? 먹어도 된다면. 얼마만큼을 어느 정도 빈도로 먹어야 하는 걸까?”

몸을 돌려, 오른편 강남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나.

겨울로 접어드는 가을 날씨여서 그런지, 저 멀리 숙부가 사는 곳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고민하는 모습이 손바닥 위에 훤히 보이니,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흐흐흐, 마음이 상쾌한 것이겠지, 요 날씨처럼. 그런데 조금 걱정되는 것 있어야.”

“걱정이요?”

“저놈들, 장성택이 말한 대로라면, 북한에서 추가 자금이 미화 10억 불쯤 들어왔다던디?”

비록 망명을 가 있지만, 아직 북한 고위직에 제법 정보망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는 장성택.

한 푼이 아쉬웠던 그는, 내게 이런저런 정보를 소정의 대가를 받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김정은의 수상한 자금 이동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여기에 원래 가진 조폭들 자금, 그리고 <상하이 캐피탈>이 중국에서 자체 조달한 금액까지 하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지요. 그리고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응…?”

내게 남은, 마지막 문제.

쥐고 있던 캔 커피를 우그러트린 나는, 결의에 찬 눈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이기더라도, 아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링 위에 눕혀야 합니다.”

“아.”

“만약 다음에 또 공격이 들어오면?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거액의 자금을 끌어오면? 그때도 지금처럼 방어할 수 있을까 하는.”

와락,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캔 커피.

이제는… 정말 끝을 내야 한다. 마지막 연민과 동정은 이제 허락되지 않는 선까지 오고야 말았으니까.

길게 숨을 뿜어낸 나는, 마침내 결의에 찬 각오를 내뱉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확실히 뿌리를 뽑을 겁니다. 숙부, <상하이 캐피탈>, 그리고 근본도 없는 조폭 세력까지 전부. 물론.”

“물론…?”

“그저 말뿐인 다짐이었다면,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그렇다.

모든 다짐에는… 그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특히나 지금처럼, 상대와 나 둘 중 패배한 어느 하나가 완전히 파멸될 상황에서는 더더욱.

“무슨 또 생각해 둔 게 있는 겨?”

“제가 괜히 위험한 것 뻔히 알면서도, 이번 일에 북한을 엮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촘촘히 설계해 둔 나만의 거미줄 뭉치.

“제게 위험한 것이라면, 상대에게도 똑같이 위험한 법이니까요. 아니, 어쩌면.”

북한과의 자금 거래.

이제부터 나는 그 찐득하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거미줄을 조금씩 조금씩 촘촘하게 엮을 것이다.

제 날개가 거미줄에 닿아, 날지도 못하게 된 줄도 모르는 상대를 확실하게 먹어 치우기 위해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만큼, 치명상을 입게 할 위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요.”

* * * *

청와대 본관.

“골치로군.”

“죄송합니다, 각하. 제가 더 꼼꼼하게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민망한 얼굴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는 박동희 정책실장.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평소처럼 그에게 역정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되었네. 이게 박 실장 자네 잘못도 아니고. 굳이 잘못이 있다면야.”

불가항력.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그 또한 알고 있기에.

“10년 전의 최 후보에게 있겠지.”

최 후보.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그는, 일절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명문대 출신의 고시 합격자.

수십 년간의 외교관 생활, 명예로운 직책들로 수식된 커리어. 말쑥한 외모와 유려한 언변까지.

단 하나,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숨겨둔 사생아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서.

“후우, 이거 묻을 수 있겠나? 아예 언론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말이야.”

“어렵습니다. 이미 빨대들이 강남 바닥의 마담들 상대로 쓱 훑는 중입니다. 다만….”

주저하는 박동희 정책실장.

말을 꺼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에게 대통령이 다그침을 시작했다.

“뭐든 상관없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니.”

“아…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묻지는 못해도, 덮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덮는다? 어떻게 말이지?”

“그… 탄약그룹 한서준 회장 말입니다. 그자가 선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보낸 시나리오가 있긴 합니다.”

“한서준!”

반색하는 대통령.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박동희 실장의 양어깨를 꼭 부여잡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늘 그래왔듯, 합당한 대가가 있는 경우, 항상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패가 굴러들어 왔기에.

“어서 말해 보게! 그게 무슨 방법인지를!”

“그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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