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전쟁(2)
평양, 조선노동당 청사 3층. 김정은의 집무실.
문 안으로 종종걸음으로 들어오는, 70대 노인 한 사람.
손주뻘이나 다름없는 김정은에게 머리를 숙이며, 그는 이 심기가 불편한 독재자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 공손한 말씨로 말을 건네었다.
“고저, 위원장 동지… 월례 보고 올리겠습네다.”
펄럭, 살찐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넘어가는 종잇조각.
한 장 한 장, 서류가 뒤쪽으로 넘어갈 때마다, 주름진 김정은이 미간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갔다.
그리고, 3, 2, 1.
속으로 숫자 셋을 세자 시작되는 그의 분노 섞인 사자후.
“뭐야! 이건 또 뭐이야!”
쾅! 책상을 부술 듯 거세게 내려친 서류뭉치.
바닥에 흩날리는 종잇조각에는 국가회계 현황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적자를 나타내는 새빨간 숫자가 보는 족족 죽죽 그어진.
“이거 보라! 왜 외화 자금 사정이 이 모양이간!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인데, 무슨 나라 살림을 이따위로 하나!”
“송구합네다. 그거이 장성택 그 역도 놈 때문에….”
사라져 버린 미화 50억 불. 한화로는 약 6조 원.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 정도 돈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그리 큰 타격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애당초 이런 비자금에 가까운 돈을 국가 예산에 포함하지도 않을 것이고.
하지만, 여기는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다른 말로 지옥불 맛 조선.
“송구는 무신 놈의 송구! 이거이 다 네놈이 곳간 살림을 개판으로 하지 않았는가 이 말이지비!”
방방 날뛰는 김정은.
그 모습을 보며, 북한 대외경제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생각했다.
‘너이 새끼돼지 놈이 돈을 좀 옴팡지게 써 재끼지만 않아도 되는 것 아이겠니? 사치품에 미사일에 핵 개발에….’
깊은 내면의 세상으로 잠수를 시작한 대외경제상. 생각해 보니, 김정은이 하는 뻘짓은 사치와 무기 개발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뭔가 외국과 관련된 일이라면 하는 족족 뭉텅이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으니까.
‘그리고, 상하이 떼놈에게 10억 불은 또 왜 보낸 건지! 하여간, 이놈의 애새끼 하는 꼬라지가 아주 백두혈통만 아니었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만.
내면의 대나무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고함을 너무 신나게 지른 걸까?
생각에 잠겨 있던 대외경제상의 귓가에 갑작스러운 호통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황 경제상! 어이, 황 경제상, 이 새끼야!”
“아, 예! 위원장 동지. 죄송합네다, 이제 쇤네도 몸뚱이가 노쇠하여….”
“쯧쯧… 늙은이가 가는 귀까지 먹으면 어떻게 하나! 여하간, 나갈 돈 좀 아끼고 들어올 돈은 좀 더 늘려보라! 인민들 뱃가죽 좀 조여도 되니.”
이미 인민들이야 더 조일 뱃가죽도 없을 테지만, 그런 것 따위 김정은에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렇기에 별다른 반론 없이 그저 고개를 조아릴 뿐인 대외경제상.
“알갔습네다, 위원장 동지. 식량 배급을 좀 조절토록 하겠습네다.”
“기래. 원래 인민들은 딱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기야. 기럼, 나가 보라.”
뒷걸음치며 물러나는 대외경제상.
그가 떠나자 의자에 목을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는 김정은.
그의 눈에 보이는 화려한 샹들리에에 매달린, 금과 다이아몬드 장식.
그는 유지해야만 했다. 이 북조선이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영지를.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 역시 이렇게 살게 될 운명이니.
그렇기에, 고심에 찬 모습으로 쿠바산 시가 한 개비를 입에 문 김정은.
“통치 자금이 부족하긴 한데… 남조선에서 성과를 내는 거이 답일 터.”
제임스 왕. 그리고 한화기.
분명 두 사람이 세운 계획은 그럴싸했다. 거대 재벌 그룹 하나를 통째로 폭파하고, 하이에나 떼처럼 그 살코기를 마음껏 배 속으로 쑤셔 넣는다는 계획.
“거기서 두 배. 아니, 세 배를 불리면 미화 30억 불이 들어올 터이고. 후우, 가만있자.”
행복한 망상을 하며 연기를 내뿜는 김정은.
<상하이 캐피탈>의 제임스 왕 이사를 생각하는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그의 이전 후견인이었던 장성택.
툭, 피우던 시가를 바닥에 집어 던진 김정은이 역정을 내었다.
“빌어먹을 장성택이 놈! 그 찢어 죽일 놈의 일본 망명만 없었어도, 50억 불은 너끈히 들어왔을 긴데!”
그리고, 뭔가 타이밍이 영 좋지 않은 때에 문을 두드리고는 고개를 빼꼼 내미는 대외경제상.
“뭐이! 왜 또 들어오고 그러나!”
“그… 위원장 동지. 장성택이 놈 있지 않습니까?”
어지간히 타이밍 하나는 안 좋은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주제마저도 장성택인 상황.
주먹으로 탁자를 쿵쿵 두들기며, 시뻘게진 얼굴을 한 김정은이 화를 내며 대답했다.
“장성택 그 개자식은 또 왜! 네놈도 그놈 손 붙잡고 일본에라도 가고 싶은 기야!”
“아, 아닙네다! 그렇지 않습네다! 그기 아이고.”
그러고 싶다는 말은 가슴 속에 묻어두고, 본론을 꺼내는 대외경제상.
“일본에서… 장성택이 놈하고 마약 유통이랑 돈세탁하던 왜놈 하나가 있지 않았습네까, 그 기무라 와치루라고.”
“기무라 와치루?”
기무라 와치루.
기억을 더듬어 뭔가 한국인스러운 일본 이름을 기억해 낸 김정은.
“아아, 그래. 미국, 일본 정부에 자금 싹 털리고 잠적했다는 그 금융쟁이 말인가? 그 망할 놈은 또 왜?”
“그거이, 기무라 와치루 그자가….”
김정은의 뇌리에 스치는 묘한 불안감. 깜빡거리는 그 적신호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성택을 속인 자가, 이제는 김정은 자신마저 속이러 오고 있다고.
그러나.
“평양, 평양으로 오겠다고 합네다. 꼭 위원장 동지를 뵙고 장성택놈의 비자금 이야기를 하고 싶답네다.”
몽환적으로 타오르는 장성택의 비자금이라는 불씨. 그 일렁이는 모습은 직감이 알리는 적신호 따위야 얼마든지 집어삼킬 수 있었다.
물론, 종국에는 더 큰 것을 집어삼키겠지만.
* * * *
시곗바늘을 조금 앞으로 돌려, 내가 김정은에게 평양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기 며칠 전.
이야기를 마친 지 채 한 시간도 안 되었건만, 그새 소식이 퍼진 모양이었다.
막 청와대에 갔다 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회장 집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따봉을 연달아 발사하는 김원철 아저씨의 엄지손가락이었다.
“크흐, 역시 우리 회장님이여. 차기 대권 주자까지 싸그리 구워삶아 두었네.”
“최 후보,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되게 만들어야 구워삶은 효과가 나겠지요. 물론.”
벗어 던진 양복 상의와 함께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나.
일단… 산 하나는 넘었다. 아니, 정확히는 큰 산을 넘기 위한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올랐을 뿐.
그 언덕배기 위에서 올려다본, 내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은.
“진짜 바라는 효과는… 숙부가 야당 측 후보를 지지함과 동시에 이루어지겠지만.”
“진짜 가만 보면, 생각하는 것이 부처님이여. 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꿰뚫어 본다니까.”
일단은 차근차근 나아갈 뿐이다. 김원철 아저씨 말마따나, 손바닥 위에 세상을 축소한 채로 가만히 내려다보면, 언젠가는 그 실마리가 잡히기 마련.
그런 생각을 하며 컵에 담긴 물을 들이켜고 있는데, 내게 서류 하나를 가지고 와 내미는 김원철 아저씨.
“일단… 그룹 지배 지분 투자 현황 나왔어야. 우리 쪽도 저기 한화기 쪽도, 둘 다.”
“어디 한번 봅시다.”
서희 누나로부터 받은 자료.
거기에는, 최근 한 달여간 소리 소문 없이 나와 숙부,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지분은 양쪽 모두 확보하지 못한 상황.
“역시 쉽지 않나 봅니다. 둘 다.”
“매집 물량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일단, 물밑에서 팽팽하게 힘겨루기 하는 중인 거지. 시간 좀 걸릴 것이여.”
“이길 수는 있겠습니까?”
“엉. 20억 달러라는 자금력이면 100% 이기지. 하지만.”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앞에 앉은 김원철 아저씨.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찌 되었든 간에 이번에 무언가 끝을 봐야만 한다는 내 의지를 더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이겨도 영 찝찝한 승리겠지. 어쨌거나 최종 목표는 이놈의 불안불안한 순환출자 구조 벗어버리는 거 아니여.”
지주사.
외부 공격 따위가 들어오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
물론,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있다. 일단 돈이 많이 들고, 순환출자보다 필요한 지분이 많으니까.
“이대로라면 경영권 방어는 하는데, 계속 위태로운 모래성이지. 지주사 전환은 언감생심이고.”
“흐음.”
모래성 위, 아슬아슬하게 올려진 탄약그룹이라는 요새.
이 거대한 요새의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언제고 모래 지옥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상황.
그렇다면.
“결국,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려면 핵폭탄 두 개를 설치해야 합니다.”
초강경 모드로 나설 수밖에.
때마침,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근대 일본 역사서.
도무지 일본 총리대신이 보내주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이 역사서의 표지는… 시원하게 핵 두 방을 맞는 일본 국토의 모습이었다.
마치, 조만간 보게 될 숙부의 얼굴처럼.
“리틀 보이(Little Boy)로는 숙부가 야당 후보를 지지하게 해야 하고요.”
히로시마에 떨어진 한 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숙부의 발을 묶는 것.
“팻 맨(Fat Man)으로는 저쪽이 탄약그룹에 밀어 넣는 자금이 북한 돈이라는 증거를 찾는 것.”
나가사키에 떨어진 또 다른 한 발.
이 전쟁을 끝맺을… 숙부를 나락으로 보내 버릴 최종 카운터펀치.
“한화기 그 양반, 우리 회장님이 말한 핵폭탄 두 개 얻어맞으면 화끈하게 멸망하겠지.”
김원철 아저씨 또한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그 핵폭탄을 어떻게 구하느냐가 문제 아니겄어?”
물론 사족 하나를 덧붙였지만.
그리고, 일견 어려워 보이는 그 사족은, 내 머릿속에서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고.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 핵폭탄을 두 개씩이나.”
“엉…?”
자리에서 일어난 나.
나는 북쪽으로 창이 난 곳을 바라보며, 저 멀리 북한산 너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휴전선 너머 북쪽에, 3대째 핵에 미친 사람 하나가 있거든요.”
그리고, 꺼내 든 분장 도구.
바깥에서 커피를 가지고 온 유세나 보좌관의 식겁한 모습을 뒤로한 채, 풍성한 콧수염과 긴 장발 가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무라 와치루, 조선계 일본인 금융업자의 모습이.
“잠깐만. 그 분장 도구는, 설마 또…?”
“가야지요. 평양으로. 가서 만나야만 하니까.”
그래. 직접 만날 것이다, 김정은을.
내가 그린 퍼즐의 큰 그림. 그 마지막 조각이 되어줄 사람이 거기 있으니까.
“저번에는 토사구팽의 두려움에 떨던 장성택을 속였다면, 이번에는 탐욕에 찌든 새끼 돼지 김정은을 속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