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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48화 (212/300)

248화 전쟁(3)

일본, 나리타 공항. VIP 라운지.

이번에는 저번 장성택에게 사기를 쳤을 때처럼 휴전선 루트를 통해 이동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또 다른 나인 기무라 와치루 씨의 국적은 일본이었으니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라운지 전체를 전세 낸 지금, 여기까지 굳이 수행원도 단출하게 하고 온 외교부 장관.

과거 일본에서 혐한 이슈를 다루었을 때 차관이었던 현(現) 장관은 내게 걱정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위험합니다. 저번 개성 방문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지요.”

그리고, 나는.

“괜찮습니다, 바로 진행해 주십시오.”

그런 걱정에는 감사하지만, 다소 단호한 어투로 대답하였고.

“어차피 모든 위험과 책임은 제가 감내할 문제이니까요.”

나름 밝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건만, 다른 이에게는 그게 결의의 표시로 보인 모양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땅바닥에 한숨을 내쉬는 외교부 장관.

“후우, 알겠습니다.”

그는 옆에 선 수행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곧바로 은회색 상자에서 나온, 서류 뭉치 한 다발.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부 특별 요원이라는 신분을 새로이 얻게 되었다.

“첫째, 위장 신원 일본명 기무라 와치루, 실제 신원 한국명 한서준은 본 방북 작전에 자의로 참가하는 바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비행기 이착륙 소음 사이로 들리는, 외교부 장관의 떨리는 목소리.

탁자 위에 놓인 서류는 펄럭 소리를 내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겁을 먹고 내뺄 법한 내용이 적힌.

“둘째,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재산 손실에 대하여,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를 보상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재산 손실 위험마저 개인이 온전히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흔쾌히 동의하자, 흠칫 놀라는 외교부 장관.

그의 떨리는 손끝은 마지막 페이지를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 이런 말을 내뱉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듯한 얼굴을 한 채로.

“그리고… 셋째. 방북자의 생명에 중대한 위협이 있는 경우에도, 일체의 구조나 협상을 요청해서는 안 됩니다. 이 또한… 동의하십니까?”

생명에 중대한 위협.

김정은이… 나를 감옥에 가두거나, 심지어는 곧바로 죽여버린다고 하더라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의사표시.

일반적인 경우라면, 절대로 동의해서는 안 될 일. 그러나.

“괜찮습니다. 동의합니다.”

지금은 그 어떤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나아가야만 한다.

내가 치르고 있는, 이 전쟁을 끝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김정은을 속여야 했기에.

“걱정하지 마시고, 처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절차대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유세나 보좌관도, 김원철 아저씨도 없이 홀로 떠나는 북한 출장.

그새 바퀴 한쪽이 빠진 건지, 덜컹거리는 캐리어를 직접 끌고 가는 나는, 가만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북한 특유의 붉은색 글씨로 쓰인, 고려항공이라는 항공사 마크가 붙은 항공기.

“긴장되네, 이거.”

그 묘한 분위기를 눈에 담으며, 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가볍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한 지난날의 기억들.

사우디에서의 쿠데타. 중국 광저우에서의 탈출. 태국 정글에서 있었던 반란군과의 조우.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사이비 종교 교단에 침투한 일까지.

참… 어지간히도 위험한 일을 겪어왔던 것 같다. 마치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해나가야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출국장 앞.

자동문을 앞에 두고서, 나를 여기까지 따라온 외교부 장관이 한쪽 손을 내밀며 나를 불렀다.

“한서준 회장님.”

“아이, 참. 이 시간부로는 기무라 와치루라니까요.”

“아직 출국장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한 회장님이지요.”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간 힘.

손을 떼자마자 그는 내게 USB 하나를 건네었다. 외교부에서 독자적으로 파악한, 김정은의 상세한 인적 사항이 정리된 파일이 든.

“비밀번호는 1qaz2wsx!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기관 공통 비밀번호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김정은 그자는… 상대하시기 보통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비행기에 오른 나.

퀴퀴한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항공기.

“김정은, 김정은이라….”

옆자리에 앉은 북한 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나는, 창문 아래로 보이는 북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어디 한 번 제대로 일을 벌여 보자고.

“고모부도 속였는데 그 조카쯤이야. 어디 한번 제대로 연기해 봐야겠네.”

* * * *

“그 쪽바리 놈이 말이야. 대관절 왜 여까지 온다고 보는가?”

“자본가 놈들 속마음이야 다 음흉하고 속물적인 것 아니겠습네까.”

평양 인근, 대동강 줄기를 따라 우거진 풀숲 속, 김정은의 별장 안.

김정은에게 보고를 이어나가는 보위부장. 그는 오늘 찾아올 손님의 용건에 대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었다.

“장성택이가 망명하면서 미제 놈들에게 홀라당 가져다 바친 돈. 그 일부를 기무라 제 놈이 찾을 수 있다. 이래 말하지 싶습네다.”

“되찾을 수 있다고? 그 50억 달러 전액을?”

“고저, 정확한 금액까지야 모르겠습네다만… 놈이 사전에 말한 대로라면 내용은 그렇습네다.”

툭, 툭. 탁자 가장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두들기며 인상을 쓰는 김정은.

기무라 와치루. 의문에 싸인 일본인 재일교포. 분명 그는 김정은에게 열쇠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작금의 말라버린 돈줄을 꼭 막고 있는 자물쇠, 그것을 열 수 있는.

“위원장 동지. 기무라 와치루, 그자가 막 도착했다고 합네다.”

때마침, 김정은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경호원.

책상 서랍 안에 든 권총을 가만히 바라보며, 김정은은 손을 까딱거리며 명령했다.

“기래. 기럼 어데 면상때기나 좀 보자고. 장성택이 금고지기 노릇 하던 왜놈 말이지비.”

* * * *

“우와….”

진짜 참, 뭐랄까. 놀라울 뿐이다.

“공화국 최중심부가 여간 화려한 거이 아니겠는가? 도쿄 번화가가 잘나 봐야 여기 비하면 거지 소굴이라!”

김정은이 자랑하듯 소개한 내부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다. 그거야 돈만 펑펑 쓴 흔적이 날 뿐, 그냥 전형적인 졸부 스타일의 장식에 불과했으니까.

진짜 내가 놀란 것은.

‘진짜 뚱뚱하다… 저러고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현대인의 4대 질환을 모두 보유한 모습의 김정은.

그는 외교부 장관이 내어주었던 파일에 담긴 내용 그대로였다. 육체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성격을 포함한 정신적인 부분까지.

“감탄을 금치를 못하는구먼, 기래!”

과시욕이 뛰어난, 그러나 포악한 성정의 보유자.

기분에 따라 의사결정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미약한 조울증 증상까지.

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본 나는, 외교부 장관이 건넨 USB 파일의 내용을 온전히 믿기로 마음먹었다.

“실은 이곳의 화려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화려하다고 보기도 좀 어려워서 말입니다.”

“뭐라? 이 종간나 새끼가…!”

김정은 자신이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 기질이 있다는 정보를 포함해서.

“위원장님의 존재감만으로 이미 압도적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나니, 이제야 좀 주변이 보이네요.”

활화산처럼 울그락불그락 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어진 걸까?

분명 권총 방아쇠까지 갔던 손가락은,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맥없이 김정은 그 자신의 뒤통수를 긁고 있을 뿐이었다.

“크흠, 이 사람, 혓바닥에 참기름 칠깨나 했구먼! 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앉으라.”

물론… 아직까지는 손에 쥔 권총을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탁자를 가운데 두고, 길게 늘어진 소파에 마주 앉은 채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김정은.

“해서, 장성택이가 빼돌린 자금. 찾을 방법이 있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 나는 기무라 와치루를 연기하는. 아니, 기무라 와치루 그 자체인 상황.

평소 안 피우던 담배마저 입에 물고 연기를 깊게 빨아 마신 나는, 곧바로 몽롱한 날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후우, 그날 장성택이 그자가 그리된 후부터 여간 골치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손해가 막심했고요.”

“손해를 보았다라.”

“마약은 죄 압수당했지, 수사기관은 모가지를 졸라대지, 거기에.”

잠시 말허리를 끊고는, 김정은의 반응을 기다리는 나.

침묵과 기다림, 초조함과 긴장감.

이 성미 급한 독재자 목울대가 한 번 꿀렁거린 바로 지금, 나는 곧바로 아주 자극적인 어조로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미화 50억 달러. 그 돈이 팔다리가 토막 나 여기저기로 뿌려지는 걸 보니, 꼭 나라 잃은 심정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돈이… 토막이 났다고!”

“아아, 모르셨습니까? 한서준이라고, 그 있지 않습니까. 탄약그룹 회장 자리에 앉은 얼치기 놈.”

“탄약그룹… 그 상하이 떼놈이 잡아먹겠다고 난리 치던 남조선 회사 말인가?”

분명 거짓이지만, 진실을 배경으로 한 판 위에서 그리는 그림.

마구잡이로 섞은 물감처럼 혼재된 정보 속에서, 나는 천천히 진실 위에 거짓된 색깔을 티 나지 않게 덧칠하기 시작했다.

“일단 20억 불은 환수 조치. 일본 총리대신이 5억 불. 미국 국무장관이 5억 불. 그리고 나머지 20억 불이 바로.”

“바로…?”

“한서준, 그놈 호주머니에 들어갔습니다.”

“……!”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돈의 행방.

곧바로, 시뻘게진 김정은의 얼굴에서 분노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 이… 쥐새끼 같은 간나새끼! 사지를 토막 칠 음흉한 새끼가 내 돈을 빼먹었다 이거이!”

“해서, 이대로… 가만히 두실 겁니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 포악한 독재자의 마음속 빗장을 하나하나 풀어가기 시작하는 나.

나 스스로조차도 홀릴 듯한 달콤한 말이 김정은의 귓가에 설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되찾아야지요. 그리고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한서준이라는 작자.”

그리고, 내가 만든 분노와 기대감이라는 감정에 잔뜩 부푼 김정은.

마침내 쥐고 있던 권총마저 탁자 위에 올려둔 그는, 몸을 기울여 내게 물음을 던졌다.

“어떻게, 기무라 네놈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기야…?”

“간단합니다. 한서준의 몰락. 그리고, 위대하신 위원장님의 20억 달러 치 자금 환수.”

사상 최악의 국가를 3대째 다스리는, 내 또래의 독재자.

귀를 쫑긋 세운 채, 내 입에서 나오는 말만을 기다리는 그에게, 나는 마치 최면을 걸듯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이제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대로만 하신다면, 이 모든 것이 전부 이루어질 겁니다.”

성공을 확신하는 미소를 입에 건 채로.

“마치 마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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