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50화 (214/300)

250화 전쟁(5)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과 최 후보.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숨죽인 채로, 대형 TV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북한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담긴, 체포영장 사본을 탁자 위에 펼쳐 놓고서.

“시작하는군.”

대통령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걸까?

TV 속에 보이는, 기자들로 북적이는 야당 후보자 사무소 풍경.

그리고,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연단 위를 향해 오르는 숙부.

“…….”

화면 너머 냉혈동물처럼 번득이는 두 눈.

저 허기진 모습은… 당장이라도 탐욕스러운 뱃속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나 한서준이라는, 그리고 탄약그룹이라는 먹잇감을 향해 풀숲 사이를 기어가는 숙부.

한참을 어둠 속에서 독니를 갈고 닦던 도중, 마침내 보이게 된 맨살이 드러난 발목.

내 발목을 물어뜯으려는 숙부를 보자, 나는 한탄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시퍼런 눈동자로, 카메라 너머 나를 응시한 숙부는 마이크를 쥔 채,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부로, 발목을 칭칭 감아 올라 내 허벅다리 속 혈관을 물어뜯겠노라고. 터져 나오는 붉은 핏방울로 제 목을 축이겠노라고.

-철없는 핏덩이를 싸고도는 누구와 달리! 공명정대한 누군가가 대한민국에 필요하지 않은가!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연설.

좁아진 시야 탓에 옆을 보지 못하는 숙부를 향해, 대통령은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욕심이 지나친 자일세. 아니 그런가, 최 후보?”

“과했지요. 제 그릇을 넘는 물을 담는 것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각하.”

“그렇지… 그러니, 한화기 저자는.”

점점 커지는 숙부의 목소리.

핏대 솟은 목을 쇳소리가 나게 하면서까지, 숙부는 나락을 향해 고삐가 풀린 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확신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기 계신 후보자분을 적극 지지한다고…!

그리고, 나는 대통령이 못다 한 말을 받아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향해 가게 되는 것이고요.”

파멸의 길.

그 지옥으로 향하는 길을 직접 만들고, 역으로 간곡히 바라왔기에. 부디 이 길을 걷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서.

그러나.

“바로… 지금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숙부.

내가 나지막한 한숨을 길게 내뱉자, 곧바로 화면 속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 일동.

숙부의 면전에 영장을 펼쳐 보이며 박은지 검사가 이렇게 외쳤다.

-한화기 씨. 당신을 국가보안법 및 대외무역법,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합니다!

길고 길었던 숙부와의 전쟁이.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로, 전부.

“…끝났다.”

그래, 끝났다.

허탈함과 시원섭섭함, 호승심과 흥분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묶여 가슴팍에 남았지만.

-뭐, 뭐야! 네년은 뭐 하는 년이냐! 어딜 평검사 나부랭이가 감히…!

적어도 나는, 그리고 내가 이끄는 탄약그룹은, 이제 숙부라는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나 스스로 혈육 간의 전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짐으로써.

-당신이 한 진술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만 개기고 좀 가자, 한화기 이 인간아!

짝, 짝, 짝.

TV 화면이 꺼짐과 동시에 들려오는 박수 소리.

“완벽하군, 정말 완벽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대통령.

방금까지 손뼉 치던 그 손을 내게 내민 그는, 정말 감격했다는 얼굴로 찬사 아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게 바로 기획이고, 이게 바로 연출이지! 꼭 소싯적 대학로에서 보았던 감동적인 연극 같았다네!”

꽉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감격했다는 표현을 퍼붓는 대통령.

“치밀하게 짜인 전개. 정교한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배경. 그리고, 반동 인물의 추락까지 전부! 최 후보, 아니 그런가?”

“아주 정확히 보셨습니다. 정말이지… 왜 대통령 각하께서 여기 한서준 회장을 그리 극찬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람 속도 모르고 자기들 마음대로 떠들고 있는 두 정치인.

나는 이 호들갑스러운 아저씨들은 잠시 뇌리에서 잊어버리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의 낮은 앙상했다.

푸르렀던 초목도, 알록달록하던 단풍도 전부 자취를 감춘 채, 새하얀 눈 꽃송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황량한 계절.

결국, 이 순간 또한 지나갈 것이다. 승리를 거머쥐었건만 가슴 한쪽이 씁쓸한 이 기분도, 하늘로 떠난 할머니에 대한 죄송스러움도 모두.

“그러게요. 정말 다 끝났네요. 적어도 제 숙부와의 일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애써 웃음 지은 나.

그다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었던 감정은 아니었는데. 때마침 타이밍도 적절했던 모양이었다.

황급히 문을 두들기고는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박동희 정책실장의 모습.

“대통령님. 잠시 드릴 말씀이…!”

그래. 그랬었지. 이건 단순히 탄약그룹뿐만이 아니라, 일국의 대통령 선거에도 관련이 있던 일이었으니까.

박동희 정책실장의 손에 든 보고서에는 여론의 실시간 반응을 집계한 내용이 적힌 모양이었다.

흐뭇한 얼굴로 표 계산을 하더니,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입꼬리를 올리는 대통령.

“이런, 이런. 벌써 사방 천지에 난리가 났구먼.”

탁, 탁.

손끝으로 종이 뭉치를 두들기던 대통령이 내게 말을 건네었다.

“뭐, 자네나 우리나 피차 처리할 일이 많은 것 같으니,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그럼 자네도 가야 할 곳으로 가 보게나.”

가야 할 곳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나와 대통령.

고개를 끄덕인 나는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야지요. 끝맺음은 제 손으로 직접 해야 하니까요.”

“저… 한 회장님? 대관절 어디로 가시겠다는 건지요?”

아직 감이 오지 않는 건지,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를 띄워 놓은 최 후보.

환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나는 집무실 문을 박차고 나감과 동시에 대답했다.

최 후보에게 하는 대답이면서,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하는 대답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아마 제 숙부 되는 사람은 검찰 조사보다 저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 *

서울중앙지검. 6층 조사실.

“…….”

낡은 황갈색 죄수복을 입고서, 동공이 반쯤 풀린 채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한화기.

도둑처럼 찾아온 패배가 자신에게 들이닥친 것을 체감하기라도 한 것일까?

넋이 나간 것처럼, 그는 연신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뭘 어째서유, 당신네 조카한테 개기고 초전박살 난 거지.”

심드렁한 말투로 묵직한 팩트를 날리는 박은지 검사.

피의자 앞에서 국밥을 먹던 그녀는, 숟가락을 내려놓은 손으로 마우스를 들었다.

“얼레? 못 믿나 보네? 아까 설명했던 걸로는 모자랐나? 그러면… 어디 보자.”

딸깍, 딸깍, 딸깍.

어두운 방, 노트북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

익숙한 두 얼굴이 화면에 비치자, 놀라 하는 한화기의 얼굴.

“조석구, 주괘율. 흐미… 아주 살벌하게도 생기셨어. 그치?”

“……!”

수갑을 찬 채, 한화기 자신이 입은 것과 똑같은 죄수복을 입은 모습의 조폭 두 사람.

그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헛웃음을 지으며, 한화기가 물음을 던졌다.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인가. 함정이라도 판 것처럼?”

“뭐, 그렇다고 보면 됩디다. 아무튼, 내 하다 하다 북한 돈에 조폭 돈까지 둘 다 끌어다 쓰는 양반은 처음 봤다니까.”

박은지 검사는 자신이 한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예 뉴스 채널을 틀어버렸다.

-검찰에서는 현재 JL 저축은행 실소유주 조석구와 경기 남부의 조직폭력배인 일정파의 수괴 주괘율에게 각각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이번 사건.

-치워! 어따, 이거 치우라니께! 우째서 선량한 금융가에게 이런 대우를 한당가! 북한 어쩌고 그것은 나는 모르는 일이여라!

체포영장을 받고 발악하는 조석구의 모습과.

-후우… 다 끝났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이로군.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개를 떨구는 주괘율의 얼굴까지.

-북한의 통치 자금을 송금받고 돈세탁까지 한 JL 저축은행을, 검찰과 금융 당국은 공동 수사본부에서 정밀한 조사를….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듯, 모든 빠져나갈 수 있을 법한 쥐구멍은 막혀 있었다.

그 어느 곳에도 도망칠 수 없게끔.

“저기 조폭 양반 말마따나 다 끝났어요. 진짜 당신이 졌다고.”

그리고, 자신이 포식자인 줄 착각했던 그 사냥감은, 이 현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떨리는 어깨. 꽉 쥔 두 주먹.

아랫입술을 깨물어 피가 흐르는 것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은 건지, 넋이 나간 얼굴의 한화기.

“내가… 내가… 패배라니! 내 모든 것을 던져서,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천한 사생아 핏덩이 놈에게!”

“이 양반아. 당신 여기 죄수복 입혀서 앉힌 게, 그 핏덩이가 짠 각본이라고.”

그런 한화기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차는 박은지 검사.

손목시계를 힐끔 들여다본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라이터와 함께 한화기에게 건네었다.

“에휴, 일단 이거나 받으쇼.”

“……?”

“담배 태우시지? 기다리면서 피우고 있어요. 한화기 씨, 당신. 잠깐 만나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얀 종이로 싸인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멍하니 들여다보기만 하는 한화기.

그 모습이 조금 보기 안쓰러웠던 걸까? 의자에서 일어나는 박은지 검사.

문을 열고 자리를 비우려는 그녀.

그러나, 그때.

“으앗, 깜짝이야! 왜 문 앞에 있고 그래! 그나저나, 생각보다 일찍 왔네?”

멋쩍은 웃음과 함께 문밖에 선 누군가를 맞이하는 박은지 검사.

방 안쪽의 한화기를 힐끔 들여다본 그녀는 뒤통수를 긁으며 곧바로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에휴, 나는 모르겄다. 아무튼, 수고!”

그리고, 지금.

끼익, 경첩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한 사람.

“노기는 좀 사그라드셨습니까?”

“……!”

결코, 승리에 취해 방정맞거나 하지 않은, 오히려 평소보다 묵직하고 절제된 모습을 한 그 남자는 바로.

“한서준… 이 쳐 죽일 놈이!”

덜컹, 철제 의자에서 솟구치듯 일어서는 한화기.

격노에 휩싸인 시뻘건 얼굴은 당장이라도 제 조카를 죽이고 자신 또한 지옥으로 따라갈 심산인 듯했다.

그러나.

“역정을 내신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은.”

귓가에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

한화기 자신을 파멸시켜 이 나락에 처박은 그는, 손수 담배에 불을 붙여 건네고는, 곧바로 철제 의자에 앉았다.

뜻 모를 말 한마디를 건네며.

“이야기나 나누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번 일의 끝맺음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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