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51화 (215/300)

251화 매듭짓기(1)

서울중앙지검 6층.

한화기가 있는 방 바로 맞은편, 어두컴컴한 취조실 안.

-북한으로부터의 자금뿐 아니라, 조직폭력배 일당의 자금까지 총동원했다는 한화기 고문. 현재 검찰은 JL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수사 결과를 종합하여….

오직 자그마한 화면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줄기.

탁, 박은지 검사는 노트북을 덮고는, 전등 갓 아래에서 표정을 구기고 있는 조폭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네었다.

“보자, 상황 판단은 좀 되고 있어요들?”

“…….”

“하긴,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다 보여줬는데, 모르면 그게 병신이지. 읏차.”

드르륵, 탁자를 양손으로 밀자 미끄러지는 바퀴 달린 의자.

마치 놀이동산의 범퍼카를 타듯, 박은지 검사는 의자를 타고 조석구와 주괘율 두 사람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조석구 씨. 그리고, 주괘율 씨. 아니지, 아니야. 굳이 조폭 새끼들한테 내가 씨 자 붙여 주면서 존대할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지금.

연이어 앉은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 어깨동무한 채로 낮게 그르렁거리는 박은지 검사.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불어, 달건이 새끼들아.”

물론 그 친절한 협박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워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여라!”

“…모릅니다.”

가장 먼저 변명의 포문을 연 것은 조석구였다.

“아, 한화기인지 소화기인지 그 시뻘건 길쭉이 얼굴이 그라드래요. 요거, 요거. 탄약그룹 자기가 진짜 주인이라고. 그니께 투자 좀 하라고.”

“하! 그럼, JL 저축은행이 북한 자금을 받은 것은?”

“어따, 그것도 죄 한화기가 시켜서 그랬던 것이여잉. 따지고 보믄 나는 불쌍한 사기 피해자여라!”

“에라이, 새끼야. 변명을 해도 꼭.”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는 박은지 검사.

그녀는 오른쪽 손아귀에 힘을 꼭 쥐며 물음을 던졌다.

“여기, 주괘율 아저씨는 뭐 할 말 없고?”

“…….”

“하긴, 범죄수익 은닉한 건데, 빼도 박도 못하겠네. 당신은 뭐, 계속 입 꾹 닫고 묵비권 행사할 것이고. 읏차.”

제자리로 돌아온 박은지 검사.

“자, 우리 이렇게 하자고.”

그녀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여기 두 조폭뿐만이 아니라, 바로 복도 맞은편 취조실의 한화기까지 이곳에 오게 한 남자를.

“나야 시간 많지만, 당신들한테는 시간이 별로 없거든? 여기 알람 시계 보이지?”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탁자 위에 올려진 싸구려 탁상시계.

드르륵, 태엽을 감아 1분 남짓한 시간제한을 설정한 그녀는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말을 꺼내었다.

“이거 울리기 전까지 그냥 싹 다 불어. 그럼 종범에 단순 가담자로 엮여서 한 10년 안짝으로 나올 거야.”

꿀꺽, 목구멍 너머로 침방울 넘어가는 소리가 긴장감을 더 팽팽하게 만드는 순간.

“…….”

“…….”

박은지 검사는 흘러가는 탁상시계 초침을 가리키며, 잔뜩 긴장한 그들의 동공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막 울잖아? 그럼 나도 당신들 구할 방법이 없어. 그냥 있는 죄, 20년이고 30년이고 정직하게 두들겨 맞는 거고.”

째깍째깍,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초침 소리. 분명 흘러가는 시간이었건만, 조석구와 주괘율 두 사람에게는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삐! 삐! 삐! 삐!

일말의 여지도 없이 매몰차게 울어대는 탁상시계.

손바닥으로 알람을 끈 박은지 검사가 바깥에 있는 수사관을 불렀다.

“안 되겠다. 어이, 김 수사관님!”

“아, 예! 검사님!”

“저기 복도 건너에 한 씨, 두 사람. 어떻게 되었어요?”

“아, 여기….”

박은지 검사에게 수사관이 내민 쪽지 하나.

“아이고, 큰일 났네. 이거 어떻게 하냐?”

곧바로, 조폭 두 사람을 바라보는 박은지 검사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퍼져 나갔다.

“흐흐흐, 한화기가 한서준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 가 버렸어. 그러니까.”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는 주괘율과 조석구.

“뭐, 뭐, 뭣이여잉!”

“그 무슨…!”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며, 박은지 검사는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었다.

“정직하게 빠따 잘 맞으세요. 조폭 두 분.”

* * * *

“비웃으려고 온 것이냐?”

이번 일의 끝맺음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이야기나 나누어 보자고 했건만, 숙부는 아직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치기 어린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아예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을 조롱하려고 말이다!”

수갑 찬 손을 부르르 떨어대며 거세게 역정을 내는 숙부.

밑바닥으로 떨어진, 그것도 같은 상대에게 두 번이나 패배한, 이 꼬리 내린 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을 추켜 뜬 채로 목청이 터지도록 짖어대는 것일 테니.

그렇기에.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직은… 숙부에게 손을 내밀 수 없다.

좀 더 강하게, 좀 더 처절하게 기세를 꺾고, 다시는 내게 송곳니를 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록 누군가는 잔혹하다 여길지라도.

“진짜 나락으로 가는 길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뭐라…?”

“국가보안법, 대외무역법, 외국환거래법 위반. 여기에 더해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숙부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나.

팽팽한 실처럼 당겨진 긴장감은 좀처럼 끊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탄약그룹 고문직을 가지고 있기에 추가되는 배임죄. 조직폭력배와 함께 금융범죄단체까지 구성하였으며.”

그 실에 목이 묶인 숙부가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거기에 기존 가석방이 취소되어 집행되는 잔여 형기까지.”

“한서준, 이놈이…!”

“검찰 측이 말한 대로라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의 예상되는 형기는.”

그리고, 숙부의 눈앞에 내민, 세 개의 손가락.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자른 말허리를 천천히 이어 붙였다.

“최소 25년 형. 판사 운이 안 좋다면 30년 이상.”

“……!”

“그 정도는 되어야 진짜 조롱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와닿는 모양이었다.

박은지 검사가 준 담뱃갑을 구깃거리며 다리를 벌벌 떠는 숙부.

이제… 조금 이야기를 해도 되려나?

짧게 한숨을 쉰 나는, 반쯤 구겨진 담뱃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피우실 거면, 저도 한 대 주시죠.”

“…안 피우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기무라 와치루 연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필요한 상황이면 입에 대기도 하는 담배.

금방 뿌옇게 변한 취조실 안.

부르르 떨며 연거푸 연기를 내뱉는 숙부에게, 내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방금 말씀드린 것은, 숙부께서 모든 것을 홀로 안고 가셨을 때의 기준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간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두 가지.

내가 바라 마지않는 조건과 함께.

“완전한 굴종. 그리고, 무조건적인 협력.”

“……!”

“두 번 다시, 그 어떤 경우라도 제 목에, 그리고 탄약그룹에 칼을 들이밀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숙부, 당신이 되었든.”

숙부, 그리고 한서호, 한서후 세 부자는 사실 이미 내게 적대하려야 적대할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아니면, 바다 건너 중국에 있는 이가 되었든지. 뭐, 경우에 따라 휴전선 너머에 있는 새끼 돼지일 수도 있겠네요.”

끝내 엮지 못한,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나를 향해 창끝을 세우는 <상하이 캐피탈>.

거기에, 이번 일로 인해 기무라 와치루가 나라는 사실은 언젠가는 김정은의 귀에도 들어가게 될 터.

고개를 푹 숙인 숙부가 초라해진 어깨를 수그리며 말을 흐렸다.

“…다 알고 있었군. 애초에 모든 것을 전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손을 내밀 때다.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다. 괜한 동정심에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냉정하게, 모든 무장이 해제된 이 남자의 생명줄을 붙여 주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것.

미처 물리치지 못한 나머지 적대 세력, <상하이 캐피탈>과 김정은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기 위해서일 뿐.

그리고.

“마지막 자비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닌, 할머니께서 베푸시는 자비라고 봐도 좋습니다.”

이제는 떠나신 할머니의 미약한 뜻을… 조금이라도 존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손에 놓은 채로,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은 숙부.

라이터 불꽃을 켠 나는, 그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마지막 회유의 말을 건네었다.

“<상하이 캐피탈>의 제임스 왕 이사.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비단 이번 일뿐 아니라,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아는 것을 다 말하십시오.”

적어도 이제부터 받을 죗값을, 감내할 수는 있을 만큼의 무게로 줄여 주며.

“그러면, 지금 이 순간부터 창살 안쪽에 계실 기간은 10년을 넘지 않을 겁니다.”

“…악랄하군. 손발을 자르되, 밑바닥 희망은 남겨두겠다는 것인가?”

“그 정도는 계셔야 합니다. 일이 거하게 벌려졌으니.”

그 이후, 나는 팔짱을 낀 채 입을 닫고는 고심하는 숙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10분, 20분, 한참을 고뇌하는 숙부.

재떨이에 쌓인 꽁초가 수북이 야트막한 동산을 이루었을 때쯤, 고개를 든 숙부.

“이봐, 수사관! 밖에 있나!”

마침내, 내가 건넨 제안에 그가 결단을 내렸다.

“칼 한 자루만 가지고 오도록. 종이 한 장과 함께.”

“아니, 한 고문님요. 칼은 왜…?”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에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는 검찰 수사관.

“가져다주시죠.”

내 허락이 있자, 곧바로 탁자 위에 놓인, 은장도만 한 작은 칼 한 자루. 곧바로, 숙부는 칼집에서 그 칼을 꺼내 들고는 입을 열었다.

“내 모든 것을 내던졌건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두 번씩이나.”

한숨과 함께 연이은 그의 말.

“이대로 내 목을 그어 버리고도 싶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하군.”

섬찟한 말을 내뱉은 것과 달리, 평온한 모습의 숙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내뱉은 한 마디.

“후우… 받아들이겠다. 완전한 굴종. 그리고 무조건적인 협력.”

제법 날이 선 칼끝으로 제 손가락을 찌르는 숙부.

흘러나온 선홍빛 붉은 핏물. 곧바로 숙부는 흰 종이 위에 혈서를 쓰기 시작했다.

굴종과 협력.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적어 내려가며.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 아들놈들 또한 이 결정에 걸맞은 적절한 처분이 있어야 할 터다.”

“서호, 서후 두 사람은 징역 5년 이내로 끊겠습니다.”

“…알아서 잘하리라 믿겠다.”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 찬 취조실 안. 혈서를 건네받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숙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순간.

“그럼, 이만. 정보는 차후에 면회실에서 듣겠습니다.”

“잠깐!”

피 묻은 손가락으로 구깃구깃한 종이 한 장을 더 건네는 숙부.

“이건…?”

“고작 혈서 따위로는 부족하겠지.”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장.

“내년 어머니 기일에 산소에 가져가도록. 애당초 나갈 수도 없거니와.”

죽음의 문턱에서 숙부를 위해서, 남은 모든 것을 주겠다는 그 유언장이었다.

“가서 뵐 낯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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